군사동맹의 덫에 빠진 한국

▲한택수 창조경제연구원 이사장

작년부터 사드(THAAD)배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는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로 부인(否認)일변도의 애매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금년 들어 입장을 완전히 바꾸기 전까지는….

단순하게 결론부터 말해 보자. 사드가 됐든 전술핵무기가 됐든 미국의 군사적 무기나 장비들을 국내에 배치하는 문제는 현실적으로 한국 정부의 외교적 판단이나 의견이 개입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또 국내의 여야 정치인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한들 국론(國論)과 국민들만 분열시킬 뿐 국익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미국과 사실상 종속적인 군사동맹을 맺은 우리로서는 미국이 전략적으로 한국 안에 배치하려는 어떠한 무기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1986년 뉴질랜드 정부가 핵무기를 탑재하고 핵추진 동력을 사용하는 미국군함(軍艦)의 뉴질랜드 국내 기항을 거부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뉴질랜드에 대한 군사방어 의무를 바로 폐기 한 사례도 있다. 박정희 정부 시절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여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당시 카터 미 행정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만일 한국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경우,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미 군사동맹도 폐기할 수 있다고 압박해 핵무기 개발을 스스로 포기하도록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9년4월 북한이 일본 본토 상공을 통과하는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행하자 일본 국내에서도 일반국민들의 안보에 대한 위기감을 배경으로 하여 이른바 핵무장론과 적기지(敵基地)선제공격론이 거론된 적도 있었다. 핵무장론이 현실적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적에 대한 선제공격능력의 확보가 당연히 전제가 되어야 한다.하지만 일본은 일미(日美) 군사동맹 아래에서는 선제공격조차도 허용되고 있지 않다는 현실적 한계를 뒤늦게 알게 된다.

미국은 만일 일본이 일방적으로 제3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미국이 원치 않는 전쟁에 말려들 위험이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사전협의 없는 제3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미일(美日) 군사동맹을 파기하기 전에는, 일본이 자주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현실의 벽에 갇혀 일본의 핵무장론은 조용히 소멸되고 만다.

사드배치와 같은 군사문제는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주요 외교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정부가 자주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은 사실상, 거의 없다. 우리 정부가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고작 한미 군사동맹을 유지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데 현시점에서 한미 군사 동맹 없이 우리의 독자적 군사력만으로 우리의 안보를 유지할 수 있을까? 자주국방 태세가 갖추어지지 못해서 불안한 상황이라면 강대국과의 군사동맹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물론 동맹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시적인 편법이지 궁극적인 해결법은 결코 아니다.키신저 박사도 국제사회에서는 스스로의 이익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과거 수많은 국제분쟁의 해결이 모두 이성과 교섭기술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후세들의 착각이다”,“주권국가는 오로지 힘을 사용하겠다는 의지에 의해서만 자신의 중요이익을 지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약소국이 강대국과의 동맹을 통해 일시적으로 보호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동맹자체가 주권국가의 최종 목표로 자리매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군사동맹의 정치적 성격상 그리고 자주국방을 확보하기 위한 많은 비용과 시간 등을 감안할 때, 스스로의 힘으로 동맹을 벗어나서 자주적 안보태세를 갖추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라도,대단히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흔히 스스로의 힘으로는 동맹을 벗어나 자립하기가 어렵다는 의미에서 이른바 ‘동맹의 덫’에 빠지기 쉽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미국과의 군사동맹의 덫에 빠져 있는 대표적 ‘중등국가(middle power country)’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그동안 60년이 넘도록 한미 군사동맹의 혜택으로 그야말로 경제성장에 전념할 수 있는 안보환경이 조성되었다. 그 덕분으로 북한보다 40배나 큰 경제 규모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독자적 군사력으로는 북한에 대한 충분한 전쟁억지력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월등한 일본도 미일 군사동맹이라는 덫에 걸려서 미국의 도움 없이는 자주적 군사력에 의한 안보가 불가능한 나라로 전락했다. 또 장기적으로도 미일군사동맹 이외에는 자국의 안보를 확보할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구조적으로 고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이 만일 미일 군사동맹을 해체하고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방예산 이외에 추가로 매년 30조엔 이상의 비용이 소요된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와 있다.

이는 노령화하고 있는 일본의 경제력을 감안해 볼 때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다. 따라서 일본이 미국과의 군사동맹의 덫에서 벗어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고립되고 폐쇄된 정권이자 세습국가인 북한은 ‘선군(先軍)정치’라고 하는 독특한 특색을 갖고 있다. 전 세계의 패권 국가인 미국 외교도 일반적 나라들의 외교정책과는 전혀 달리,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특한 ‘선군외교’가 그 기본에 깔려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판단이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가는 나라이다. 미국의 군사전략에 대한 외부의 간섭이나, 제3국에 대한 외교적 배려 등은 기본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허용되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전 세계에 걸친 수많은 미군기지와 관련해 핵을 포함한 전략적 무기의 배치나 철수문제에 대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는 관행을 유지해 오고 있다. 물론 미국이 독일 터키 등과 맺은 핵무기 공유계획(nuclear sharing program)에 의해서 해외에 배치한 미국의 전술핵무기 사례처럼 단순히 군사적 목적 이외에 국제 정치적 전략적 필요성 등이 인정될 경우에는, 오히려 예외적으로 대내외적으로 요란스러울 정도로 언론 매체 등을 통해 ‘홍보전쟁’을 벌이기도 한다.

사드(THAAD)라고 하는 전략적 무기의 한반도 배치를 앞두고 미국 정부가 군사무기 배치에 관한 일반적으로 애매모호한 관행이 아니라, 언론 매체 등을 통해 떠들썩하게 들고 나오는 예외적으로 방법을 선택하였다는 사실하나만 보더라도 군사적 판단 이외의 그 무언가 메시지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한국 중국 북한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 대한 다양한 메시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일타삼매라고 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꽃놀이패라고 볼 수 있다. 외교와 안보적으로도 중국에 접근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한국 정부의 의도를 구조적으로 봉쇄하고 견제할 수 있는 카드이다.

또 중국 지도부가 위치한 북경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중국군의 본영(本營)을 직접 겨냥하여 타격할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최근 들어 남중국해 등 해양진출을 본격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중국군의 전략을 뒤흔들 수도 있는 카드이기도 하다.

동시에 중국의 대미(對美) 핵(核)억지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암시일 수도 있다.중국은 현재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네 곳으로 상정하고 있다. 한반도 대만해협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은 사실상 미국과의 가상적 전선(戰線)이나 다름없다.

군사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중국은 전선이 확대될 경우 군사자원의 배치나 군사전략을 선택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은 기본적으로 ‘분할통치(Divide&Rule)’ 모델에 가깝다. 아시아 지역은 중국과 일본의 관계,한국과 일본의 관계, 한국과 중국의 관계 등 역내 국가들이 협조보다는 긴장과 대립관계로 흐르는 것이, 역외국가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Divide & Rule’의 전략을 수행하려고 할 경우 오히려 유리한 환경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중국정부가 향후 한반도 사드배치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불만이나 압박의 수위를 가중시킬 경우, 그것은 바로 한국과 중국 간의 긴장관계 조성이라고 하는 미국의 카드에 중국이 말려들어 가게 되는 것이다.

첫째 한반도내의 사드배치가 한국정부가 관여할 수 있는 외교문제가 아니란 현실적 사정을 중국은 이해하여야 한다. 둘째 사드는 그동안 개발되고 실제로 배치된 수많은 미사 일방어(MD:missile defense) 시스템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드의 레이더나 미사일의 구체적 성능도 대부분 공개되어 있는 무기일 뿐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갖고 있는 차세대 비밀병기도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 가장 위협적 군사장비 등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 위치한 ‘다윈’이라는 군사기지에 배치되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강 배치될 전망이다. 다윈은 지리적으로 볼 때 중국에서 무려 4000km 이상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치명적 군사 설비가 배치되고 있다.

다윈은 남중국해에 인접한 지역으로서 중국해군의 남중국해 진출을 봉쇄하기에 는 매우 요긴한 장소이다. 앞으로 미국의 핵잠수함과 항공모함 등 주요전략 무기들의 배치가 예상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미국이 바로 이 다윈기지 내에 중국의 모든 위성을 세밀하게 감시 할 수 있는 우주물체감시용 레이더와 우주감시망원경(SST: SpaceSurveillance Telescope)을 이미 배치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현재 전 세계 29개소에 레이더와 망원경으로 약 1만개 이상의 물체를 감시하고 있다. 골프공 이상의 크기라면 모두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정도다. 중국의 군사용 정찰위성을 포함해 모든 위성에 대한 정밀 추적 감시가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중국으로서는 대단한 군사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사드에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첨단무기들을 사용하는 현대전에서는 위치정보인 GPS정보를 중개하는 위성 등이 파괴될 경우 바로 전쟁수행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셋째 한반도에 배치되는 사드로 인하여 미중(美中)간의‘핵전력(核戰力) 또는 핵억지력의 균형’이 깨지게 될 염려가 있다고 하는 중국 일부에서의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드 하나로 깨질 미중간의 ‘핵전력 균형’이 만일 현실이라면 중국의 미국에 대한 핵억지력(neclear deterrence)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중국의 약세를 노골적으로 대외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사드문제로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려고 든다면 그것은 결코 중국의 이익에도 부합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중국이 스스로 이해하기를 기대한다.

한택수 창조경제연구원 이사장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30여 년 동안 국제금융과 경제는 물론 각국의 군사동향 및 국제정세 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국제문제 전문가로 일반 국민들의 시선으로 세계정세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신인 컬럼니스트 / 1950년 서울 출생 / 서울고, 서울대 경영학과, 보스턴대 경제학 석·박사 / 행정고시 11회, 재무부 은행과장, 주일대사관 재무관, 재경원 국고국장, 국제금융센터 이사장 역임 / 現 창조경제연구원 이사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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