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兩岸) 관계, 3개의 33.3% 시나리오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중국과 대만의 경제와 기업문제를 주로 다루던 필자가 이번 호에선 국제관계를 다루기로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중국과 대만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 8년간 중국의 공산당과 대만의 국민당은 아주 잘 지냈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양안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안정됐다. 미국은 주요 대외정책 이슈였던 양안문제에서 한 시름 놓았다. 하지만 곧 대만에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양안 관계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짚어볼 시기가 된 것이다.

그 다음은 양안(兩岸) 관계의 특수성이다. 중국과 대만은 과거에는 경제가 정치를 이끈 시기가 있었다. 중국이 한창 개혁개방의 기치를 걸고 경제건설에 나설 때였다. 당시 중국으로서는 대만의 자본과 투자가 필수적이었고 경제 영역에서의 협력이 정치적 긴장완화를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중국은 더 이상 대만과의 경제협력이 절대적이지 않다. 양안 관계는 이제 경제가 정치를 추동하지 않고 정치가 경제교류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짓는 모양새이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할 점은 양안 관계는 앞으로 전개양상에 따라 한국의 외교는 물론 중국·대만과의 경제교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란 것이다. 이런 바탕에 따라 필자는 석사 때까지의 전공인 정치경제학에 다시 관심을 쏟고 있다.

올해 양안 관계 최대 변수는 차이잉원(蔡英文)의 대만 총통 취임(5.20)이다. 중국과 대만이 안정된 상황으로 갈지 아니면 긴장국면으로 치달을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차이 당선자는 양안 관계의 현상유지를 선언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기대미달로 보는 듯 하다. 그런 탓에 최근 양안 관계는 개선을 향한 뚜렷한 움직임이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때마침 나온 보고서 하나가 눈길을 끈다. ‘차이잉원 취임과 양안 관계 전망.’ 브루킹스연구소, 헤리티지재단과 함께 미국 3대 싱크탱크로 꼽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분석과 전망을 담았다. CSIS는 국제안보,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해 중립적 시각으로 초당적 전략을 제시해 미국 대외정책 입안과 결정과정에 깊숙이 간여한다. 이곳의 전문가들은 정부 고위관리가 되어 활동하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모두 CSIS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CSIS는 지난해 6월 차이 당시 민진당 총통 후보를 초청해 컨퍼런스를 열더니 올 2월엔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을 초청해 똑 같은 장소에서 강연을 들었다. 이어 올 3월 중순에는 보니 글레이저(Bonnie Glaser) 선임고문 등 미국 내 대표적인 중국문제 전문가들이 대만과 베이징, 샤먼을 돌려 현지 고위관리와 학자들과 만났다. 이런 연구소의 보고서는 미국 내에선 물론 중국과 대만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CSIS는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쌍방이 이해관계의 공통분모를 찾아서 협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대만 8년 밀월 관계가 연장돼 복잡한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시나리오다.

두 번째는 ‘관망’(wait and see) 시나리오. 쌍방 추가 합의사항이 없지만 위험한 상황도 없는 국면이다. 하지만 중국은 조용하게 대만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식·비공식 대화 연기, 중국인 대만관광 제한, 양안상품·서비스무역협정 협상재개 거부 등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압력’(pressure) 시나리오다. 중국은 일단 대만이 독립을 추구한다고 판단하면 대화채널 단절, 기존 협력협정 중단, 대만 국제활동무대 제약에 나설 것이란 예측이다. 여기엔 중국의 무력시위도 포함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지 않도록 해줄 것을 미국에 대해서도 압력을 넣을 전망이다.

CSIS가 미국 정부에 제시하는 대응전략은 이렇다. 우선 미국은 중국과 대만 모두에 대해 양안관계의 안정을 유지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국에 대해 차이잉원 신임총통의 말(words)만 들을 게 아니라 행동(actions)도 보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만에 대해 좀 더 융통성 있는 자세를 취하라고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대만의 경제와 국제사회 참여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한다면 중국의 국가 목표에도 역효과가 날 것이라는 점을 중국에 주지시켜야 한다는 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미국 관리들은 차이잉원 신임 총통에 대해서도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보다는 자신의 임기 내에는 독립을 추구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중국에 인식시켜야 한다는 주문이다.

양안 관계가 어떤 시나리오로 갈지 현재 상황에서는 알기 어렵다. 한국에는 3가지 시나리오가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예견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3가지 시나리오는 각각 33.3%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 필자의 입장이다. 복수의 대안적 상황(alternative futures)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각 시나리오 모두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양안 관계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전략적 포지션과도 관련된 문제이다. 하지만 중국의 깊은 속내를 잘 아는 것 같지 않고 대만에 대해선 더욱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탓에 양안 관계 문제를 다룰 때 늘 다른 한쪽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말할 때 외교부 대변인이 금과옥조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현실유지 정책의 뻔하면서도 신통방통한 처방이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중국과 대만 모두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다.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석사를 거쳐 상하이푸단(復旦)대에서 기업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겸임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학자, 일본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KOTRA
중국사업단장을 지냈다. KOTRA 홍콩·상하이·베이징 무역관 근무에 이어 현재 타이베이무역관장으로 있으며 중화권
‘양안삼지(兩岸三地, 중국·대만·홍콩)’모두에 정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