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라는 말보다 ‘세계화’가 어떨까요?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

편승민 기자입력 : 2016.05.11 16:35
편집자주더리더는 5월부터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다문화 사회로의 발전에 있어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들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만난 글로벌 리더는 부산시 산하 부산국제교류재단의 로이 알록 꾸마르 사무총장이다. 그는 대한민국 10만 번째 귀화인으로 이미 알려져 있다. 1980년 26살의 나이로 한국에 처음 왔던 로이 사무총장은 이제 한국에서의 삶이 인도에서보다 더 길어졌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영락 없는 ‘부산 사람’이었다.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장으로는 처음으로 외국인 출신인 그는 매력적인 도시 부산을 브랜드 이미징하여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다문화에 관한 질문을 했을 때는 ‘다문화화’가 아니라 한국이 자연스럽게 ‘세계화’되는 것으로 인식해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가능성을 보았던 그는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기에 이 또한 슬기롭게 헤쳐나갈 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1980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어떤 마음으로 오게 됐는지?
▶어린아이의 흥분한 마음으로 한국에 왔다. 어린아이는 순수한 마음으로 걸어서 전세계를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전거를 타면 지평선에 금방 닿을 거라고 느끼듯이 말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인도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했는데, 전공이 동북아시아 정치학이었다. 그 당시 전공 공부를 중국에서 할까, 일본에서 할까 생각했었는데, 그때 갑자기 드는 생각이 ‘새로운 것을 한 번 해보자.’ 해서 한국이란 나라를 택하게 되었다. 물론 그 시대에는 친구들도 그렇고 지인들한테도 “왜 하필 한국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하고자 왔다.

한국에서도 서울이 아닌 이곳 부산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내가 삶을 선택했는지, 삶이 나를 선택했는지 그것도 다뤄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서울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하고 인도로 다시 돌아가서 잠시 교편도 잡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계속 오라는 친구들이 많았고, 그때 어머니가 그 누군가와 평생을 약속했으면 가서 결혼해서 오라고 하셨다.
사실 두 번째로 한국에 왔을 때는 관광비자로 들어왔다가 결혼해서 가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때도 저를 필요로 하는 곳들의 제안이 계속 있었다. 결국 여러 제안 중에 부산외대 인도어과 교수직을 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이렇게 오래 있게 되었다. 나의 선택인지, 선택자체가 나를 불렀느냐의 이야기다. 나의 선택보다 그 시대에 나에 대한 부름이 와서 이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난해 12월 21일, 부산시 산하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에 임용되었다. 국내 지방자치단체 산하 기관장 중 첫 외국인 기관장으로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떤 각오로 임할 생각인가?
▶부산에 살면서 이런 것을 느꼈다. 부산이 세계적으로 알려야 할 만큼 매력 있는 도시인데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시안게임 때도 그렇고 늘 ‘부산, 코리아’라고 도시와 나라이름 까지 붙는게 안타깝다. 요즘 시대는 각 도시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을 지향하지 않는가?. 뉴요커들이 절대 자신들을 미국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는다. 미국은 두 번째이고 그들에게는 뉴욕이 첫 번째인 것처럼 말이다.
나의 목적은 이것이다. 어떤 관광객이 하루를 있어도, 아니면 나처럼 장기적으로 있어도 인생에 있어 참 좋은 추억이 많은 도시가 되게 하는 것이다. 뉴욕사람들이 결코 뉴욕의 모든 것이 다 좋아서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뭔가가 있다. 나한테 뭔가 주어진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도시의 매력을 느끼는 거다. 이제는 이처럼 나라외교보다는 도시외교가 중요한데 부산은 도시 외교가 아직은 좀 약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 그럼 부산이 왜 알려지지 않느냐? 홍보가 필요하고 약간의 브랜드 이미징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그걸 내가 잘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재단의 기초적인 것, 예를 들어 한중일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뭘 할 수 있느냐? 이번에 이집트 철도공사 사람들을 부산교통공사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부산국제교류재단이 ODA사업공모를 통해서 부산교통공사와 같이 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오늘이 아니더라도 몇 년 뒤 부산이 이런 도시고 이런 잠재력이 있구나 하는걸 생각할 것 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이런 이야기들이다. 네트워크들을 확장하고 네트워크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잘 관리하자는 말이다. 그래야 이 관리인들이 부산의 진정한 브랜드 대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인도에서 부산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부산에서 인도의 잠재력을 보여주면 잘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한다. 부산이 환태평양을 넘어 인도양과 아프리카를 넘어 유라시아까지 자기의 네트워크를 계속 구축해 나가는 사업을 재단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동안 한국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하는데 자문역할도 많이 하였다. 앞으로 한국-인도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일까?
▶인도가 해안의 길이만 7500km이다. 섬과 항구 지역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하면 인도의 경제성장에 맞는 시설들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도의 성장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해양사업을 그럼 어디서 도움 받을 수 있느냐? 바로 한국이고, 그 중에서도 부산이라는 것이다. 조선업이 인도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효용성에서는 많이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부산에서 배울 점이 많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는 조선업과도 관계가 있는데, 인도가 경제성장에 맞게 해군력 증강을 함께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해군의 군함이 많이 필요하다. 인도가 군함을 만들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만드는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모디 총리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에서 한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부산이 많은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매치메이킹 사업을 하면 좋을 것 같다. 대량 생산 위주로 가면 인도가 그렇게 쉽게 먹히는 시장이 아니다. 그게 바로 중국시장과의 차이다. 인도는 기술 집약적인, 즉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가야 한다. 부산의 비즈니스들도 그러한 면을 잘 생각해야 한다.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네시아 시장진출과 같은 방법으로는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

*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성장 프로젝트다. 인도 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국내외 기업들의 투자유치를 적극 권유하고 있다.



한국사회 문제 중에 최근 실업률, 청년 취업문제가 심각하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내가 1980년,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이 있었다면 한국이 인력자원을 아주 잘 개발했다는 것이었다. 나라가 가지고 있는 자연자원에 인력자원이 더해질 때 부가가치가 증가하는데, 한국은 자연자원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인력자원만으로 경제를 끌어올렸다. 쉽게 말해서 농사만 짓던 농부가 기술자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80년대와 90년대가 지나고 나자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이런 고등 교육을 받은 인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생산자동화가 한 가지 이유이고, 젊은 층에서 직업의 선호도가 바뀌어버린 것도 문제다. 다들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하지 공장이나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 보니 큰 미스매치가 보여지고 있다.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외 인턴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걸 누가 해결할 것인가? 물론 학교에서도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체 경제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경제 구조의 변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이런 인력들이 외국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 있는 한국기업의 대부분은 로컬 인력을 쓰고 있지만, 로컬 인력 관리에도 한국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럴 때 대학생들을 많이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냥 보내면 취업이 안 된다. 국제화 교육을 어느 정도 받고 가면 수월한데 그렇지 않으면 해외에서 뭐가 아쉬워서 다시 재교육을 시키겠는가?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해외 대기업들이 인도에서 인도사람을 택하느냐 한국사람을 택하느냐? 당연히 인도인이다. 머리도 좋고, 언어도 그렇고, 빨리 일도 배우는데 왜 한국인을 뽑겠는가? 기업인은 이윤창출이 목적이니까 그런 마인드셋은 바꿀 수 없다. 그걸 바꾸는 게 아니라 거기에 딱 맞게끔 약간의 교육과 인턴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학생들도 국제인력시장에서 자기들의 위치, 자신의 경쟁자들을 알고 들어가는 것과 전혀 모르고 들어가는 건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중간 위치에서 그들이 국제 인력시장에서 연착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국제교류재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서도 약 인턴 9~10명이 있고 18개 대학연합과 함께 우수인력들을 국제기구에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국제적인 분위기에서 참여하는 분위기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다.

예전에는 다문화 사회의 규모가 작았지만 지금은 다문화 가족 인구도 많이 늘었고 점차 한국도 다문화화 되고 있는데, 어떻게 보는지?
▶이 ‘다문화’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은 ‘다문화’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았던 1990년대까지는 어떤 면에서 보면 상황이 좋았다. 외국인이라면 ‘손님’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안방손님이 되어버렸다. 안방에서는 관계가 ‘좋아한다’와 ‘싫어한다’ 두 가지 뿐이다. 나는 다문화라고 규정지어 버리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본다. 대신에 한국의 코스모폴리탄화(Cosmopolitan 세계화)라고 보고 싶다. 외모가 다르다고 해서 “어디서 왔냐? 다문화인이냐?” 이렇게 시작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물론 보호차별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보호차별의 대상자가 꼭 이 사람들뿐 아니라 한국사람들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정책자체가 보호에 대한 정책이 되어야지 어떤 특정한 이름, ‘다문화’를 붙여서 만들면 나중에 단어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차대전 전후를 봤을 때 유태인이라는 단어가 엄청난 재난을 가져왔다. “우수한 민족이다. 성공사례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보니 모든 문제의 원인이 그 사람들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형용사를 안 썼으면 좋겠다.
다문화 정책이라는 말이 왜 안 맞느냐? 한국 여성들의 국제결혼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미군과 결혼했을 때 바로 미국국적이 되면 한국책임 아니라고 손을 뗐다. 지금은 한국 남성들이 결혼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다문화를 돕는다기보다 그런 남성들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영세민을 도와주는 것이다. 영세민 정책이지 다문화 정책이라고 하면 문제의 여지가 남는단 말이다. 이걸 달리 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쌍하다고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단 이야기다. 기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에 있어서 현재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면?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우리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부산 국제 외국인학교를 나왔다. 나오고 싶어서가 아니었다.당시 외국인으로서 비자연장을 매년 해야 하니 얼마 동안 한국에 살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외국인학교 진학은 그런 이유로서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외국인 학교 선택은 비싸지만 외국인 자녀에겐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또 외국인학교를 졸업하다 보니 한국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외국인학교를 인정받지 못해 국내에서 검정고시를 치르거나, 아니면 외국으로 유학 갈 수 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 학위를 가지고 외국의 좋은 대학교에 얼마든지 입학하는데, 왜, 한국대학교에 가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유학생을 그렇게 많이 받는 한국대학교에서 한국 땅에서 외국인학교 다니는 인재들을 왜 수용하지 못하는지,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런 학생들은 한국의 장학제도에서 신청자격에도 박탈을 당한다. 그 아이들의 부모가 한국에 살며 모든 세금을 지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혜택도 받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에서 공부를 잘했던 아이들이 제도상 한국대학을 못 가서 유학을 보내야 하는 현실은 고급인력들을 낭비하는 격이다. 그래서 정책적인 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자녀들이 외국인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한국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았을 거 같은데 에피소드나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에피소드보다는 사건들이 많았다. 우리 가족처럼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어린아이부터 자기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아이가 유치원을 다녀오면서 “단군의 자손이다.”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온 적이 있다. 그렇게 다니니까 길가에 사람들이 귀엽다고 웃었다. 그런데 며칠 뒤에 학교친구들이 “너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다.”라고 하니까 울면서 나에게 “아빠, 나는 단군의 자손이 아니야?”고 물었다. 그래서 “엄마는 한국사람이니까 넌 충분히 단군의 자손이야. 아빠는 인도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은 하나만 가지고 있지만 넌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거야.”라고 이야기 해줬더니 다음날 가서는 “반반의 자손이다.”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이다. 그렇게 하니까 더 아픈 것이다. 왜 50%인가? 100%와 100%를 가지고 200% 이상의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의 정체성 혼란이 시작된다. 이걸 내가 바꿀 순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지를 깨우치게 하는 게 중요했다. 자기들이 설득력 있게 나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중에 보니 우리 아이들이 거기서 리더십을 갖게 되는 것을 보았다.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게 만드는 게 아니라 소화가 되게 해야 한다. 그걸 하기 위해서 단순히 다문화가 달라야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도 그만큼 달라져야 한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한국 사회 문제도 다른 사회와 똑같다. 전에 이런 것을 경험했던 사회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소셜 엔지니어링, 즉 사회공학을 앞당기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안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이걸 아직도 남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서양 선진국들에선 다문화 출신인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아직까지 쉬쉬한다. 현실에서는 무시하는 것이다. 국제결혼이 한국 여성의 경우 6쌍 중 하나다. 굉장히 높은 숫자임에도 아직까지도 남의 일 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며느리, 나의 사위가 외국인이 될 수 있단 것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한다. 20년 뒤면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 지도층 사람들의 자식들 중에 외국국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산모가 원정출산을 통해 아이와 산모 모두 외국 국적을 취득 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었다. 왜 그럴까? 그 사회라면 어디를 가든 인정받고 보호받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 문제들을 좀 다른 시각에서 보았으면 좋겠다. 문제니까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불가능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의미인가?
▶한국이 나에게는 배움터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는 한국나이로 26살의 젊은이였는데 지금은 백발노인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라건설, 경제건설, 그리고 사회건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주 빠르게 비디오를 감아 보듯이 한국이 나에게 보여줬다.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다른 어느 나라를 가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이 나를 한국에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배움에 대해서 흥미를 잃지 않았고, 매일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나라였다. 전에는 놀랐는데 이제는 왜 이러는지 침착하게 생각할 수 있고, 거기에 대한 해결책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앞으로도 한국은 나에게 끝없이 새로운 배움을 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로이 알록 꾸마르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
1955년생
인도 네루대 대학원 한국어과
인도 델리대 정치학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 박사학위과정 수료
동국대 대학원 교육학(국어교육)
부산대 국제지도자과정
부산일보 독자위원
부산발전연구소(BDI) 자문위원
부산외대 인도어과 교수
부산외대 국제언어교육원/평생교육원 원장
現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

많이 본 기사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