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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택수 이사장 |
이미 60년이 넘어 낡은(?) 한미 군사동맹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면 그것은 급변하는 국제정치의 현실적 감각으로 볼 때 지나치게 단순한 아전인수 격의 낙관론이라고 본다.
한미군사동맹은 말이 좋아 상호방위를 위한 군사조약이지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군사력에 의한 일방적인 보호를 받는 종속적 관계다. 따라서 미국 측이 국내의 사정 변경 등을 이유로 입장을 바꾸면 순식간에 일방적으로 군사동맹의 성격이나 내용이 통째로 바뀔 수밖에 없는 원초적인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변화:국내정치 優先
미국 정치에 밝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990년대 클린턴 대통령을 시작으로 지금의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 까지 미국의 국가전략이나 세계전략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무지한 사람들 중에서 오히려 국내정치와 선거전에 유능한 사람들이 정권을 장악한 사례가 많았다는 지적이 있다.
과거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사람들이 유력한 대통령후보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1회성 해프닝과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미국정치의 변화가 어제오늘 시작된 것이 아니란 점에 있다.
“문제는 경제야 이 멍청이들아(It’s Economy, Stupid!”라는 선거구호를 앞세우고 클린턴 대통령이 등장한 1990년대 이후 최근까지 20년 넘게 년간 소득이 5만 달러에서 8만 달러 수준의 이른바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인들의 소득은 전혀 늘지 않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가 건국된 이후 마치 처음으로 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은 것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미국을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수백 년 동안 누적된 백인과 흑인간의 인종 갈등 외에 인구 구조도 바뀌었다. 남미국가 등에서 대규모로 유입된 히스패닉 인구가 흑인(12%)보다 많은 유권자 비중(17%)을 차지할 정도다. 히스패닉이 미국 내 인구혁명을 주도하게 됨에 따라서 미국사회는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대부분의 히스패닉은 영어도 잘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사회에 융합하려는 다른 소수민족과는 다르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히스패닉은 유달리 출산율이 높아서 머지않아 미국 인구의 20%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극소수의 부자와 경제적 약자간의 사회적 갈등이 폭발직전에 이르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다급한 국내 경제 및 정치문제의 해결에 쫓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국방 및 대외 외교정책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
2012년 1월 미국경제의 재생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오바마 대통령은 향후 10년 동안 약 5천억 달러 규모의 국방예산을 삭감하기로 했다. 동시에 미국의 동맹국들에게 스스로의 힘으로 자국의 방위를 강화하는 노력을 할 것을 촉구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2013년9월, 중동정세가 급박하게 악화되자 TV공개 연설에서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경찰이 아니라고 선언하였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전에 개입하고 크리미아를 점령하였을 때에도 그는 백악관 기자단에게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미국 젊은이들의 피를 흘리게 할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은 재정적으로 미국 혼자 모든 비용을 부담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과 유럽 등 국가들이 전쟁비용과 전쟁 후 복구비용을 분담한다는 것을 전제로 추진됐다.
이미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질서나 규범을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지켜주는 정의의 경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돈(재정)문제가 해결돼야 비로소 움직이는, 가치관이나 규범과는 상관없는, 단순한 용병(傭兵)수준으로 전락하기 직전까지 왔다고 볼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구축해 온 세계질서를 미국 스스로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G-ZERO"세계의 도래
국제정치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미 세계전략을 실행할만한 정신적 여유와 경제적 능력을 모두 상실하였다고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다. 구소련 해체 이후 유일한 ‘수퍼 파워’로서 국제질서를 혼자서 좌지우지 해오던 ‘미국일극체제’가 이미 종언을 고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 새로운 국제질서의 안정이 도래하기 전 까지 불안한 시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있다.
이를 빗대서 국제사회의 공동 이익을 위해 주도적 역할을 하려는 나라가 사라진 세상을 지칭하는 이른바 ‘G zero 세계’(무극세계)‘란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향후 10년 후 쯤, 중국의 종합국력이 미국의 50%를 넘는 시기를 전후하여 ‘미국일극체제’ 또는 ‘G zero 세계’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질서 형태로서 ‘미중양극체제(中美兩極體制)’가 구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중국의 학자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국내적으로 13억이 넘는 인구를 갖고 있고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표현대로 아직도 판자촌과 같은 주거환경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2억 명을 넘고 있다.앞으로도 지속적 경제성장과 사회변화에 걸 맞는 체제의 변화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이룩해야 가까스로 국내의 정치사회적인 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른바 ‘중소득국의 함정(middle income trap)’과 ‘체제이행의 함정’을 모두 순조롭게 통과해야만 가능하다.이런 단계를 뛰어넘어 스스로 국내적으로 안정된 체제로 발전하기 전 까지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공동이익을 위한 기여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비록 외형상 경제규모가 크다고는 해도 오늘날의 미국처럼 국내정치 및 국내문제 우선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구도 남의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는 고립주의의 시대, 불안한 ‘G zero 세계’가 우리들의 생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
美中관계가 향후 한미동맹 좌우
이제부터 향후 10년 또는 그 이후의 한미군사동맹 운명을 결정짓는 최대 변수는 미중관계라고 할 수 있다.간단히 말하자면 미중관계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향후 한미군사동맹 성격과 내용, 그리고 역할 등이 구체적으로 결정되게 될 것이다.
가령 미중관계가 군사적 충돌을 향하여 움직이게 될 경우와 반대로 미중관계가 동반자적인 협력관계로 움직이게 될 경우에는 한미군사동맹의 실질내용은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미군사동맹이 변하지 않는 상수(常數)가 결코 아니듯 미중관계도 끊임없이 변하는 변수이지 상수가 아니다.
국제정치 역학에 관한 함수관계에 있어서 한미군사동맹이라고 하는 변수는 미중관계라고 하는 변수의 종속변수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美中관계의 미래전망
향후의 미중관계의 미래에 관하여는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충돌 시나리오’다. 100여 년 전, 기존의 유럽 패권국인 영국과 신흥세력인 전제국가체제의 독일이 격돌하는 과정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역사를 상기해 보자. 현재 패권국가인 미국과 정치체제가 전혀 다른 신흥세력인 중국 간의 충돌과 마찰을 충분히 예상할 수도 있다.
2012년1월 미국정부가 공표한 ‘향후
10년간 미국 국방전략 지침서‘에는 중국이 가상적국으로 명기되어 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미군 전력을 증강하여 중국의 군사전략인 A2AD(접근저지, 영역거부)에 대응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안전보장에 대한 방위비 분담을 시야에 넣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동맹국이나 우호국들을 동원, 결집하여 이 지역 내에서 중국에 대한 억제를 위한 포위망을 형성하려고 시도 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대해,미국이 중국을 억제하려는 생각에서 일본과 호주 등 동맹국들을 결집하여 아시아판 미니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결성하려고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중국의 유명한 군사전략 전문가인 펑광첸(彭光謙)소장은 미국이 중국을 억지하기 위해 군사적으로는 아시아판 미니 NATO와 같은 역내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해 배타적인 TPP(환태평양파트너)협정을 추진하며, 정치적으로는 미국적 가치관을 침투시키려하고 있다고 지적 한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등 중국 지도부는 미중간의 군사적 충돌을 우려하여 소위 그리스시대의 ‘투키디데우스의 함정’을 예로 들면서 미국의 호전주의에 지속적으로 경계감을 표시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미국에 대하여 입만 열면 ‘NO충돌, NO대항’을 외치고 있는 것도 알고 보면 바로 미중간의 군사적 충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달 중국의 국영TV에서 중국이 최근 개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인 ‘둥펑(東風)41’의 사정거리를 감안하면 만일 금년 내에 중국의 북동쪽에 실전 배치될 경우 미국의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고 보도한 것을 보았다. 그 보도에서는 둥펑41의 발사장면을 상상케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기차가 세 줄로 나란히 달리다 그 중 한 기차에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직접 발사되는 장면이 방영됐다.
과거 냉전이 한창이던 구소련 시대에 총12대를 만들었지만 박물관에 보내진 2대를 제외하고는 2005년까지 모두 폐기처분되었던, 이른바 ‘인류종말 핵열차(Doomsday Nuke Train)’가 다시 부활하는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둘째 ‘협력과 共存의 시나리오’다.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 원인에 해선 아직도 확실치 않다고 판단하는 역사학자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국 역사학자들 중에는 100여 년 전 영국이 독일과 제대로 된 소통과 협상을 통하여 합의 가능한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진정한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전쟁은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군인 사상자(死傷者)만 3천만 명이 넘고 민간인 사상자도 6천만 명이 넘는 참상은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 국방성 관리나 군인들 중에서도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두려워하며 전쟁을 처음부터 피해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판단하는 의견도 있다.
40년 넘게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미국의 외교와 안보정책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해온 일본의 언론인출신 히다까 요시끼(日高義樹)는 미국이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기피하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태평양군 육군사령관은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전쟁은 무언가 잘못된 소통이나 착오 등이 있었을 경우에만 발생할 수 있는 전쟁”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잘못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 육군과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에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육군 장관도 예산삭감 영향으로 미군은 긴급대응능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미국 스스로의 전쟁수행능력에 대해 불안(?)해 하는 상황들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계에서도 일찍부터 중국과의 군사적 대결이나 긴장보다는 중국경제의 성장 동력을 적극 활용하여 미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촉매로 써야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피터슨 국제연구소 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은 2004년에 ‘G2론’이라는 용어를 통하여 미국과 중국이 이 대등한 위치에서 상호 협력하여 국제경제 질서를 형성해 나가고 양국이 공동으로 글로벌 경제의 주도자적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중국 경제가 협력하지 않고서는 현재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문제의 해결은 매우 어렵다는 점을 미국 경제계 지도자들이 대부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클린톤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내 로버트 루빈이나 부시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헨리 폴슨은 모두 ‘G2론’과 비슷한 입장에서 미중간 경제협력 내지 동맹체제의 구축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폴슨은 장관재직 중에 중국의 왕치산(王岐山) 당시 경제부총리와 긴밀히 협력하여 미중간 전략적 대화를 활발히 전개했으며, 지금도 친중국파로 인식될 정도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4년 무역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전체 무역에서 차지하는 중국 비중은 14.9%이다. 이중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6%,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이다.
중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값싼 소비재들인데 이들은 대부분 미국의 중산층내지는 저소득층이 선호하는 제품들이다. 미국이 무역제재를 통해 중국에 압박을 가하려고 해도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의 서민들에게 돌아가는 구조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고민이자 딜레마(dilemma)이기도 하다.
미국은 과연 중국을 상대로 한 전쟁을 시도할 수 있을까?(6월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