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교수의 정치클리닉]협치와 연정의 힘

▲경기대학교 박상철 교수

제20대 총선 결과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122석, 제1당이자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23석, 제2야당인 국민의당이 38석 그리고 나머지는 정의당과 무소속으로 분산되었다. 과반을 넘는 정당이 없는 국회가 오랜만에 구성되었다.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어떤 한 개의 정당의 힘으로 국회 운영과 법률안 통과와 예산안 확정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국회에서의 협력정치와 연합정치가 불가피하게 되었고 청와대 또한 국회와의 협력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었다. 제20대 국회에서 협치와 연정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협치와 연정을 할까
역대 한국정치에 있어서 여소야대 정국이 간혹 발생되었다. 여소야대 상황을 대처하는 세 가지 타입의 대통령을 상정할 수 있다. 첫째는 여소야대의 상황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는 타입이 있는데 노태우 전 대통령의 3당합당이 그것이다. 제13대 총선 결과 집권여당인 민정당은 125석, 제1야당인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이 70석, 제2야당인 김영삼의 통일민주당이 59석, 제3야당인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35석으로 분산되었으며 당시 호사가들, 특히 김재순 국회의장은 과반수 정당이 없는 여소야대의 4당 체제를 황금분할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오히려 여당이 독주를 하지 아니하고 야당과의 협력정치를 구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정치 문화의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라고 낙관까지 했다. 그러나 여소야대 정국은 얼마 가지 못했고 채 1년을 넘지 못하고 1990년 1월 22일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3당합당하여 거대여당인 민주자유당, 민자당을 탄생시켰다. 많은 전문가들은 3당합당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으로서 정치적 야합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둘째, 인위적 정계개편과는 정반대로 여소야대 정국을 국민에 의해서 만들어진 정치지형으로 받아들이면서 협력정치와 연합정치를 하려는 타입의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 과거 참여정부 시절 여소야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야당인 한나라당에게 연정을 제의한바 있었는데 당시 박근혜 대표로부터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까칠한 정치적 야유를 받으며 실패한바 있다. 한국정치에 있어서 최초로 대통령이 연정을 제의했지만 연정의경험이 전무한 한국정치 문화에 있어서 야당이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적 제스쳐가 되고 말았다.


연정에는 정책연합과 정부를 같이 구성하는 정부연합 그리고 선거연합이 있는데 DJP 공동정권으로 상징되는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연합이 성사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야당끼리 한 부분적인 정책연합과 총선에서의 후보단일화를 통한 선거연합은 간혹 있었으나 여당과 야당이 총선 이후 정책연합 내지 정부연합을 성사시킨 적은 없었다. 지금 제20대 총선 결과는 바로 이러한 의미의 협치와 연정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만들어 졌다.


이런 상황에서 세 번째의 타입으로는 여소야대의 국회에 대해서 연정을 제의하거나 인위적 정계개편도 시도하지 않으면서 정면충돌을 하는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 제20대 총선 직후 야당과의 협치를 제의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5.18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국회 상시청문회법 재의 요구 등을 통하여 협치를 거부한 박근혜 대통령이 이러한 타입에 해당된다 하겠다. 여소야대 정국을 그대로 두면서 협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회와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국민들과의 소통 속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가끔 압박하는 정치를 시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그러한 정치적 카리스마는 대통령 임기 초기에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을 때 가능할 뿐이다. 이에 ‘박근혜 대통령이 협치와 연정을 할까’가 궁금하다.


협치의 구체적인 형태로서의 연정의 힘
연합정치는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정치적 협상과 타협, 그리고 협력의 정치라는 점에서 무원칙한 야합과는 다르다. 그냥 수(數)의 정치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만 몇 년 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과 관련지어 주민투표를 실시해서 낙마한 적이 있었는데 이는 수의 익스트림, 극단의 정치로서 이를 지양하는 것이 협치이자 연정일 수 있다. 현재 실행하고 있는 경기도의 연정은 한국 민주주의 제도와 문화에 있어서 다수결 민주주의와 함께 협의민주주의의 혼재현상이 반영된 정치행태이다. 경기도 연정은 지방정치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정책연합, 정부연합, 선거연합 중 정책연합과 정부연합이 섞여있는 것으로서 2013년 독일의 대연정 사례와 2010년 영국 대연정이 롤모델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연정 시스템은 향후 한국정치에서도 일상화될 수 있는 협치와 연정의 제도화를 위해서 계수의 가치가 있다 하겠다.


독일의 2013과 영국의 2010 연정은 대연정으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연정은 제1당이 정치적 색깔이 크게 차이나지 않는 군소정당과 하는 소연정과 달리, 정책노선 및 정책이 크게 차이가 날지라도 국가적 안정과 경제발전을 위해서 제1당과 제2당이 연합정치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누리당이 국민의당과 연합정치를 하면 소연정이라 할 수 있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연합정치를 하면 대연정이라 할 수 있다.


독일과 영국의 대연정에 있어서 공통점은 연정의 공동목표를 정하고 핵심과제와 원칙을 분류하며 매우 구체적인 세부실행까지 합의를 보는 치밀한 정치계약서를 만들고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독일 대연정의 경우 성장과 교육 및 통합을 3대 목표로 정하고 있으며 ① 모두를 위한 번영(지속적 경제), ② 독일 교육(좋은 교육과 강한 연구), ③ 사회발전(사회 화합과 연대), ④ 자유와 안전(인권과 강한 국가), ⑤ 안전한 평화(유럽연합 및 세계와 협력과 공동책임), ⑥ 연립정부에서 절차 수행 등 6대 핵심 과제를 분류하였다. 세부실행 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도 예를 들어 ‘자유와 안전’ 핵심정책의 경우 정치적 극단주의 대응, 통신감청 평가, 인터넷 장애, 정보보호, 피고용인 정보보호, 세계금융정보망 합의문, 예방적 구금, 언론자유, 형사소송법 153조 절차 종료, 안락사, 거주자등록법, 시민거버넌스의 효율성, 집달관 공증기능 이전, 사회행정법원 융합 등과 같은 사항을 합의하고 있다.


영국의 대연정도 공동목표와 공동원칙을 합의하여 최종 정치계약을 하였는데, 그 범위에 있어서 정치개혁도 포함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개혁 부분 합의에 있어서 대연정의 원칙을 ‘선거개혁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와 투명성 및 책임성이 확보된 신속하고 근본적 정치개혁’을 원칙으로 삼고, 의원임기를 5년으로 하고 대체투표제와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며 중대범죄로 기소된 의원의 면책특권 남용 금지, 의회관련 수당 등 특권과 요식행위 철폐, 10만명 이상 서명한 청원의 본회의 토론 및 의제 채택 및 법안발의와 표결을 합의하였다. 최근의 독일과 영국의 대연정 사례를 볼 때 협치와 연정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하겠다.


협치와 연정은 과반수에 의존하는 다수결 민주주의보다 합의를 위하여 더 구체적이고 치밀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다. 디테일한 협의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단 합의를 하게 되면 협치의 구체적 실현으로서 연정은 강력한 힘을 갖는 정책과 정부, 그리고 개혁을 탄생시키게 된다.


한국 협력정치 조건과 연정의 확장성
얼마 전(2016. 5. 26) 경기도의회에서 경기연정의 파트너인 경기도지사와 사회통합부지사 그리고 도의회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연정에 대한 중간평가와 발전방향에 대해서 발제를 한 바 있었다. 정치문화, 전통 및 관행과 법적ㆍ제도적 조건이 미비하거나 부재상태에서 경기연정을 중간평가 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라고 표현하였다. 오히려 한국 정치개혁이 요란하게 무언가를 뜯어 고치는 개헌 내지 제도개혁보다는 협력정치가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현실 속에서 경기연정의 향도적 역할에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후한 점수를 주었다.


특히 경기연정은 한국의 잘못된 정당정치로 인한 중앙정치의 종속으로부터 지방정치를 분리ㆍ독립시키는데 좋은 계기가 되었다. 제20대 총선 이후 작금의 한국정치는 불가피한 협치의 시대적 요청으로서 이에 적응하기 위한 정치행위와 제도보완이 절실한 시점이다. 어쩌면 역대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여소야대 현상은 이미 한국선거의 전통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제20대 총선에서도 예상외의 여소야대는 한국적 상황에서 야기된 것으로서 비합리적인 인위적인 정계개편보다는 협치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다. 여ㆍ야 정당 간 대결 외에도 정당 내의 계파간의 연정을 위한 정당문화와 정치교육도 정치선진화를 위한 과제로 설정할 때가 된 것 같다.


중앙정치 못지않게 지방정치에서도 연정의 불가피성은 높은데높은데 그 대표적인 예로서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치적 조건은 협력정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도지사가 새누리당이고 국회의원이 더불어민주당이며, 도의회는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정치적 상황은 협력정치 내지 연정의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다. 제주도의 정치적 조건에서 도의회의 형편은 여ㆍ야 대결구도 같지만 제주특별자치도의 정치ㆍ행정ㆍ경제ㆍ사회문화적 특수성에서 볼 때 제주연정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중앙정치에 맞는 법보다는 제주도의 현실에 맞는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주도의 여ㆍ야 도의원들이 공통인식을 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발전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 지방정치에서의 협력정치와 연정이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언젠가는 일방적으로 한 정당에 쏠려있는 영ㆍ호남 지역에서도 협력과 연합정치의 필요성은 한국정치의 변화와 발전에 따라서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하겠다.


연정이란 기본적으로 정당이 정치의 주체인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유럽에서 가능하다고들 얘기해 왔었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도 협치와 연정은 매우 중요한 정치시스템으로 작동될 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가 내각제와 다른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대통령과 국회가 국민들로부터 각각 별도로 이중적으로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여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A당 후보를 선출하고 국회는 B당을 다수당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내각제가 아닌 기관대립형인 대통령제에서도 협력정치와 연합정치가 필요한 경우가 바로 이러한 경우일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연정의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정치문화화 내지 정치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치개혁의 중심으로서 협치와 연정 연구
최근에 대연정을 출범시킨 독일의 경우 연정파트너끼리 3개월에 걸친 치밀한 정치협의와 합의의 시간을 가졌다. 제20대 총선 직후 협치를 위한 박근혜 대통령과 여ㆍ야 원내대표부와의 만남의 시간이 과연 협치를 하기 위한 협의와 합의의 시간으로서 너무나도 짧은 찰나의 시간은 아니었는가. 집을 하나 장만할 때도 얼마나 많은 품을 파는데 중요 국가정책에 한국정치 지도자들은 왜 이리들 무책임한가. 참으로 한심하다. 제20대 국회에서의 협력정치를 위한 시간의 할애가 충분하길 바란다. 독일의 경우 연정을 하는 과정에서 파트너는 제대로 정했는가(대연정이냐 소연정이냐), 정책내용은 제대로 합의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국민의 여론추이를 일일체크하다시피 하였다. 한국에서 여당과 야당이 대통령과 국회가 협력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구체적으로 협력하겠다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공개적으로 공론화되어야 한다. 만나서 웃고, 사진 찍고 서로 협력하자는 단어만을 써가지고는 어떠한 협치와 연정도 시작될 수 없다. 만났으니 협치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각자 자기 말대로 따라줄 것만 기대하고 요구하는 한국 대통령과 여ㆍ야의 대표가 만났다. 무슨 협력의 정치가 있겠는가.


그리고 서로 다른 정당 내지 정파 간의 협치와 연정을 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구성원으로부터 동의가 1차적으로 있어야 한다. 경기도 연정의 경우도 새누리당과 구)새정치민주연합 당내에서의 연정 승인이 불충분하여 최근에도 잡음이 있어 보였다. 출범할 때도 연정을 위한 이해도가 부족하여 시간을 끄는 것이었지 구체적 정책협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경기도민들의 연정에 대한 의견을 묻거나 파악하는 것도 충분하지 못했다. 향후, 연정의 기본적인 과정들을 조금씩 익혀가면서 한국정치에도 협력정치와 연합정치의 정치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 연정을 성공리에 운영하고 있는데 그 근저에는 정당의 규율이 강하다는 점이 있다. 오스트리아는 연정 성공을 위한 조건인 정당의 강력한 사회적 통제력과 자율성을 갖추고 있다. 정당에 소속되거나 그 정당을 지지하는 당원ㆍ유관단체 등에 대한 정당의 통제력이 강력하다. 그렇게 때문에 정당 간의 합의가 사회적 합의와 직결된다. 우리나라와 같이 어렵게 정당 간 합의를 하여도 관련단체가 거부하거나 청와대 및 다른 국가기관과 사회단체에서 거부하면 무력화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요컨대 한국은 대통령제 권력구조로서 내각제와 같은 기관융합형이라기 보다는 의회와 행정부 구성을 독립적으로 선출하는 이중적 정당성을 갖고 있으므로 정당의 규율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으며, 그에 따른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높으므로 정부ㆍ의회ㆍ정당 외에 시민의 참여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한국정치의 개혁이 개헌과 제도개선 외에 협력과 연합정치에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한국적 협치와 연정에 대한 전문적ㆍ체계적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

박상철 교수
-법학박사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대학원장/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