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숙 의원, “강남역 사건은 여성 현주소”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난 5월 벌어진 강남역 사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여성 혐오 사건인지, 아닌지를 두고 갈등이 깊다. 고인을 추모하는 장소였던 강남역은 충돌의 장소가 됐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23년 동안 근무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에 대해 ‘여성 표적 사건’이 맞다고 언급했다. 그는 혐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갈등관계를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1992년 처음 여성의전화에 들어왔다.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운동권에 몸담았다. 정 의원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 중 한 명이다. 그가 노력한만큼 여성의 지위는 올라갔을까. 정 의원과 인터뷰를 진행한 6월13일 국회 개원식이 열렸다. 20대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임명된 날이다. 정 의원이 구상하는 20대 국회는 어떤 모습일지 듣기 위해 더리더가 6월13일 국회 의원회관 630호를 찾았다.

-20대 국회에 원내에 입성했다. 보건복지위원회로 상임위까지 배정 받았는데, 각오 한마디 해준다면
“정치는 가장 힘없는 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말이 있다. 그런 것을 실현하는 정치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는 정치인이 되겠다.”

-정 의원은 1992년 여성의 전화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24년간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는데 인연을 맺은 계기가 궁금하다

“나는 82학번이다.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다. 당시 운동권에 몸담으면서 구로에 있는 공장에 취업했다. 그곳에서 노조를 만들고, 그러다 감옥에 가고 산전수전을 겪었다. 운동권에 몸담으면서 느낀 것은 ‘성차별이 참 심하다’는 것이다. 소위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성차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되겠느냐고 생각했다. 그런 삶을 살아오면서 여성운동을 하리라는 생각을 꾸준히 했다. 1991년 노동운동을 정리하고, 1992년부터 여성의전화에 들어가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2009년부터 2015까지 여성의전화 상임대표를 역임한 후 정계에 발을 들였다. 정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임기제다. 총 6년 동안 대표를 맡아 활동했다. 2015년 1월 임기를 마쳤다. 24년동안 일했던 여성의전화를 떠나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과 의논했다. ‘정치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여성의전화에 있으면서 성평등이라든지 여성과 관련된 정책을 많이 제시했다. 그것들이 국회에만 가면 바뀌었다. A를 의도했는데 B가 되거나 C로 변질됐다. 이런걸 보면서 정말 잘 아는 사람이 가서 정책을 만들어야 의도가 변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누구로부터 제안을 받았나

“김성곤 전 혁신위원장에게 제안을 받았다. 그전부터 서로 알고는 있었다. 여성의전화 대표이사 임기가 종료된 것을 알고 나에게 제안했다. 특별히 어디(계파)에 메인 게 없어서 제안을 한 것 같다.”

-처음 여성운동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을 생각해보면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나

“표면적으로 보이는 차별은 그 때보다 개선되긴 했다. 그러나 아직도 문화라든지,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이 존재한다. 정치권이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느냐. 20대 국회의원 중 여자 정치인은 51명(17%)밖에 안 된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중 여성이 17%밖에 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현실이 어떤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옛날에 비해 좋아졌다’고 하면 물론이다. 옛날에 비해선 좋아졌다. 아궁이에 불을 떼서 밥 해먹을 때보다 더 세상이 더 좋아졌다. 대한민국 경제 수준을 볼 때 전 세계에서 최하위였다가 지금은 10위권 안팎이다. 그만큼 발전을 했지만 성평등 인식은 그렇게 발전하지 않았다.”

-여성 정치 참여를 위해 여성공천할당제를 마련하는 등 노력하지 않았나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을 할 때 어떻게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할 것인지 토론도 하고 방안을 모색했는데 결과적으론 잘 안됐다. 공직선거법에 지역구 30%는 여성에게 공천하라는 룰이 있지만, 어느 당도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여성의 정치 참여확대가 글자로는 있지만 실제로는 잘 안 되고 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데이트·가정폭력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지난 5월 강남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성별 간 갈등이 터졌다. ‘여성 혐오범죄’인지 ‘묻지마 살인’인지를 두고 서로 싸우기도 했다. 여성 운동을 20년 넘게 했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보나

“일단 나는 이 사건을 ‘강남역 여성 표적 살해사건’이라고 칭하겠다. 여성을 표적으로 한 사건 맞다. 차별에서 온 범죄도 맞다. 혐오라는 것은 싫어하고, 때리고, 차별하고, 추행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꼭 죽이는 것, 싫어하는 감정만 혐오로 칭하는 게 아니다. 강남역에서 벌어진 사건은 여성 혐오로 인한 게 맞다고 생각한다. 여성 표적 살인사건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혐오냐’, ‘아니냐’를 두고 서로 적대적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의미에서다. 이 사건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집약적으로, 가장 위험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지 않을까. 혐오 현상이 왜 촉발됐다고 생각하나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이런 퍽퍽한 세상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게 아니고 개인의 문제로 본다. 그 중에 눈에 잘 보이고 비교적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인 여성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다. 살기 어려워지고 사회에서 자신이 배제된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의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집단에 대해 우월성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혐오라는 표현은 써서 생긴 현상이 아니라 원래부터 우리 사회에 있었다. 차별과 폭력, 배제, 비하 등 차곡차곡 쌓였다. 폭발 직전까지 온 것이다. 그런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혐오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 그 말 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스토킹방지법이다. 스토킹방지법은 데이트폭력을 비롯, 스토킹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다. 15대 때부터 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도 통과되지 못했다. 발의가 중요한 게 아니다. 통과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여성 폭력에 대해 그렇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른 문제들이 더 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성폭력이나 여성 폭력 같은 것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만큼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시키고 싶다.”

“주변에 알려야 한다. 폭력을 당한 사실을 알려야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나중에 사법처리를 할 때도 자료로 쓸 수 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은 필수다. 안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신변보호를 요청하고, 단체도 알아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또 가해자에게 ‘위협과 폭력에 절대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피해자가 그렇게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알려야 한다. 폭력적인 상황은 조금씩 진행된다. 처음에는 물건을 집어던지다가 서서히 신체적인 폭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부터 어떤 상황이라도 폭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폭력과 인권엔 예민한 감수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안타까운 것은 연인이나 부부사이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저 ‘사랑싸움’으로 보는 시각이다. 드라마 같은 것을 보면 때리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 쉽게 나온다. ‘다른 사람들도 저러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굉장히 위험하다. 명심해야 할 점은 연애할 때 폭력을 행사하면 결혼하고 나서는 더 쉬울 수 있다. 실제로 연애할 때 폭력을 쓰면 결혼하고 나서도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KBS 시청자위원을 할 때 흡연하는 장면 없앤 것처럼 폭력 장면도 없애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장면을 나오지 않게 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 부분을 바꾸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바른 지적이다. 폭력을 저지르면 응당 처분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대가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의 법적인 처벌은 높은 수준이만 실제로 벌을 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 가정폭력도 마찬가지다. 가정폭력 사건 구속률이 1%가 되지 않는다. 법은 있지만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처리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1997년 제정됐다. 처음에 만들었을 때는 사람들이 굉장히 겁먹었다.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처벌을 받는받는 사람도 많지 않고 받기 힘들다는 것이 알려졌다. 정말 처벌 받는다고 생각하면 조심할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쉽게 폭력을 저지른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판사나 검사는 자신이 다루는 사건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여성 폭력과 인권에 대한 교과목을 넣어 가르쳐야 한다. 정규 교과목 편성을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꾸준한 교육이 있어야 인식이 바뀐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말도 된다고 한다. 정규 교과목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한다. 교과목을 신설하는 것이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성평등이나 성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체계적으로 배울 일이 없으니까 사회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이 10년 이후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로스쿨이나 경찰대처럼 사법 교육을 받는 곳에서는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 성평등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선 필수적인 요소다.”

“지역공동체가 보수적일 수 있다. 특히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게 큰 문제다. 그래서 지역공동체 회복을 말할 때 무엇을 복원해야 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지역의 보수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도 이야기를 해야 한다.”

“감형된다. 성폭력의 가해자의 70%는 아는 사람이다. 데이트 폭력이나 가정 폭력은 애인이고 가족에게 당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친밀한 관계에서 행해진 폭력은 가중처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자신을 돌보거나 위계관계에 있는 사람이 성추행이나 폭력을 저질렀을 때 더 가중처벌을 받는다. 심리적인 상처도 크고, 돌봐줘야 할 사람을 폭행했기 때문에 더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애인이나 남편이 폭행을 했다고 하면 더 낮아진다. 나도 아는 사이라면 가중처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산적인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국민의 삶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 국민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해결하는 국회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