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평가, 양보다 질이다”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얻었던 19대 국회. 과연 국회에선 어떻게 생각할까. 김한근 국회 법제실장은 이 의견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평가’의 기준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정량적인 평가만 난무하고 질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안발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다각도로 평가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국민은 국회를 어떻게 평가해야할까. 김 실장의 주장을 듣기 위해 더리더는 지난달 16일 국회 법제실장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동의할 수 없다. 법제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소위 ‘칼퇴’(정시 퇴근)를 못한다. 야근이 거의 일상이다. 왜 그럴까.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제19대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는 1만7822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 워낙 많은 법안이 발의되다 보니 법안 반영률이 41.7%로, 17대 국회(51.2%), 18대 국회(44.4%)에 비해선 떨어졌다. 법안 발의 건수가 증가한 만큼 반영율이 떨어진 것은 당연하다.

19대 국회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법안 처리가 정부 주도에서 국회 주도로 완전히 넘어왔기 때문이다. 정부 입법은 17대에 1102건, 18대에 1693건으로 꾸준히 증가추세였다. 19대 국회에서는 1093건으로 그 전 국회에 비해 큰 폭으로 줄었다. 법률안 제안의 주체가 완전히 국회로 넘어왔다는 상징적 통계다.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단체와 언론 등은 의원을 평가할 때 법안 발의 건수에 중점을 둔다. 이를 의식해 간혹 법안을 발의할 때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에 치중하는 의원도 있다. 단순히 용어나 표현만 바꾼 유사한 개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거나 동일 현안에 대한 중복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19대 국회의 법안발의 건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는지도 모르겠다. 질적 수준이 양적 수준을 따라갔는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법안이 발의되면 법안 심의와 관련된 행정비용이 발생한다. 지금처럼 법안 발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법안 심의에 투입되는 행정비용도 점점 늘어나고 국민의 부담으로 직결될 것이다.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할 때 이 점을 고려했으면 좋겠다. 실적을 쌓는 것처럼 무분별한 법안을 발의하려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법안발의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법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 ‘입법의 홍수’라고 해서 법을 줄이자는 흐름도 생겨났다. 조금 다른 경우긴 하지만 중국은 유효법률이 250개가 넘지 않는다. 법이 지나치게 많으면 국민생활이 불편해지고 안해도 될 규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나라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법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국민 형벌 강도가 높고 규제도 많다. 특히 문제는 특별법이 많다는 점이다. 형법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특별법을 만든다.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 명칭을 달아서 특별법을 만들기도 한다. 예산을 딸 수 없으니까 법률로 강제하는 것이다. 물론 청소년이나 아동 등에 대해선 특별법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 외에 특별법이 너무 많은 것은 문제다.”

“발의 건수만을 체크하는 정량평가에서 벗어나 질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전부개정안의 경우 일부개정안에 비해 높은 전문성과 더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하나의 법안 발의라고 해도 노력은 천차만별이다. 가중치를 둔다든지 다각도로 평가할 수 있는 지표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법안을 발의하기 전 입법의 필요성과 타당성 측면에서 심도 있고 진지한 검토를 위한 여건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행정부가 시행하는 입안예고 등의 숙의과정을 의원 입법에도 도입하는 방안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기능은 국회의원의 정책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법률안으로 만드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대통령령을 비롯한 행정입법에 대한 분석·평가와 국내외의 헌법 및 법제에 관한 연구 등의 사업을 수행한다. 법안을 발의하는 사람이 모두 전문가는 아니다. 법을 발의할 때 문제는 없는지, 위헌의 소지가 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법안을 잘 다듬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법제실에 의뢰한다. 또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선 10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동의받기가 쉽지 않다. 나중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법제실을 거쳤다고 하면 증명이 된다.”

“19대 국회 임기 동안 법제실로 접수된 법안 초안은 총 2만9157건이다. 이 중 1만1407건(39.1%)을 의원실로 다시 철회했다. 헌법을 위반할 소지가 있어서다. 며칠 동안 법안의 초안을 검토하고 문제가 있는 법안이라고 판단되면 의원실에게 발의할 수 없는 내용이므로 철회하는 것이 좋겠다며 다시 보낸다.”

“그렇지 않다. 공표하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이나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법을 만드는 과정은 철저히 비밀을 유지한다.”

“기본적으로 위헌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기존 있는 법과 상충되지 않는지, 시행령으로 규정될 사안인데 법률로 요구하는 사안은 아닌지를 살펴보고 이미 명백하게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이 난 사안도 평가 대상이다. 특히 과거 규제개혁이나 개선한 사안인데 다시 개악하려는 내용도 반려대상이다.”

“개정 법률안은 20일이고 제정법률안은 규정에 의해 40일 내에 검토해야 한다. 그런데 법안 발의가 폭증해 일이 많아져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제정 법률은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전문가 간담회나 여러 단체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 정부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고 시간이 좀 걸린다. 시간의 효율성을 늘리기 위해 ‘신속처리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입법지원조직이니만큼 의원들이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법제의 대상이 되는 분야에 대한 정책적인 전문성도 함께 요구된다. 이를테면 복지 분야의 법제실무자는 복지 분야 법체계와 내용에 관한 전문성은 물론 복지에 관한 사회현상과 현안을 이해하고 통찰력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된 법제업무지원이 가능하다. 이것이 행정부의 법제처와 법제실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전문가 간담회 개최를 통해 법제관들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입법기관이라고 해서 법만 다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양한 분야를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다. 국회 법제실 특성을 잘 몰라서 그런 보도가 났다고 생각한다.”

 ROTC를 제대한 김 실장은 1990년대 보험회사에 취업해 인사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 입법고시를 치르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를 돌연 그만뒀다. 당시 그는 두 명의 아빠였다.

“국회라는 전당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입법고시를 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2년이 걸렸다. 나는 운이 굉장히 좋았다. 아이가 둘이 있는 상태여서 절박했다. 신림동에 들어가 2년 동안 공부했다.”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다. 먼저 입법고시에 합격한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정리를 잘한 노트를 빌려주기도 했다. 나중에 석박사를 법대로 나오긴 했지만 나는 철학과를 나와서 법을 잘 알지 못했다. 법학을 처음 접했을 땐 정말 어려웠다. 내 친구들이 과외 가르치듯 알려줬다.”

“공무원의 봉급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고수준의 정책을 직접 접할 수 있다. 법안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피드백을 받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정부공무원들과 소통하는 보람이 있는 직장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공무원은 소수를 뽑는다. 정말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어려울 것이다. 공채 지원자들의 경쟁력도 쟁쟁하다. 앞으로 좋은 직원이 많이 들어와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김한근 국회 법제실장
1963년 8월22일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과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국회 경제법제심의관
 국회 의사국장
現 국회사무처 법제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