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당대회와 8월의 한국정치

▲박상철 교수

한국에서 8월은 항상 정치 휴지기였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당대표 경선 전당대회를 8월로 잡으면서 잠시 소강상태였던 정치가 재개되고 있다. 조금은 더 세련된 한국정치의 진화를 보고 싶어 하면서 최근에 치루어진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확정 전당대회와 비교한다.

사회과학에서 비교분석하는 것은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내 것의 자화상과 미래를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의 정치행태와 선거문화가 바뀌고 있었고 이는 우리와의 유사점이 무척 많기에 우리의 새로운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한국과 미국을 비교분석 해보면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가 갖고 있는 추악성을 둘 다 공유하고 있는 점에서 확인되었으나 상대적으로 미국의 평당원과 일반 유권자의 권리와 참여가 우리보다 훨씬 제도화되었다는 것은 결정적인 차이였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한국 잠룡들로서 문재인ㆍ안철수ㆍ김무성 등 기존 주자들과 반기문ㆍ남경필ㆍ박원순ㆍ안희정 등 새로운 참여 가능자들은 힐러리와 트럼프의 정치과정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당과 인물 동시 중시형으로 바뀐 미국의 정치현장

미국은 정당이 필수적인 정치주체여야 하는 유럽의 내각제 국가와 달리 대통령제를 선택하고 있어서 정당정치가 퇴색하고 인물중심의 정치가 활발할 때가 제법 있었다. 최근에는 정당 퇴조현상이 역류되면서 인물중심의 정치가 정당책임정치 형태로 전환되고 정착되어왔다. 그런데 이번 제45대 미국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을 볼 때 새로운 미국 정치현상이 등장했는데 이를 정당과 인물 동시 중시행태라고 부르고 싶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적인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빅 이벤트이고 우리와는 남북문제ㆍ한미FTA 등 현안문제와 연계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특정한 미국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힐러리든 트럼프든 누가 되든지 이에 대한 대비는 철저해야 할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예비경선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재선 임기 말이기 때문에 공화당과 민주당 양 당이 공히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오픈프라이머리와 예비선거의 시스템과 및 관행은 참으로 탐나는 것이다. 대통령 예비경선에 묻혀서 보이지 않았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연방 하원의원 후보의 Top Two 예비선거, 우리식 표현으로 국민공천이 있었다. 11월 본선거에 연방하원으로 출마할 후보를 각 당에서 복수로 추천하면 몇 일간에 걸쳐서 일반 유권자들이 당과 당적에 상관없이 마음에 드는 후보를 투표한다. 그래서 상위 득표자 2명의 국민공천을 확정하고 그들이 11월 본선거에 출마하는 것이다. 미국 선거에 있어서 일반 국민의 참여는 정당공천에까지 제도화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예로서 어바인시의 시장이었던 스티브 최가 연방하원의원 출사표를 던지고 공화당 후보에 등록했으며 이 지역구의 두 명의 후보는 공화당 강세 지역이어서인지 11월 본선거에 출마할 공천자가 모두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었다. 한국계인 스티브 최는 2등으로 공천된 것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두드러진 변화중의 하나는 기존 정당시스템에 대한 일반 국민과 국외자 내지 아웃사이더들의 참여가 빈번, 용이해졌다는 것이다. 즉 기존 정당의 정치질서 기초 위에 기득권자와 같은 수준의 보장을 신진 참여자가 동일하게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당의 정치적 결정이 지도부에 의해서 좌우되기 보다는 일반 유권자의 힘이 확장된 셈이다. 정당의 개방성이 최고조로 다달았고 이것이 정당과 인물을 동시에 중시여기는 혼합형 정치행태를 만들어냈다 할 것이다.

트럼프는 공화당의 독약이자 보약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이복형인 말리크 오바마가 트럼프를 힐러리보다 ‘새롭고 신선하다’라고 얘기했다 한다. 민주당 대통령의 형이 이정도 말할 정도면 현재의 트럼프에 대한 지지는 그 실체가 있다 하겠다. 미국 국익을 우선시하는 전통에 대한 새로운 갈구가 표출되었고 이것이 트럼프에게 간 것이다. 기존의 공화당의 습성으로는 소화해내지 못할 것을 트럼프가 해냈기 때문에 그는 공화당의 보약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주장하고 있는 기존 동맹국들에 대한 위협과 지나친 미국 우선주의는 세계 최대 강국으로서 미국적 전통에 대한 도전을 감행한 트럼프는 공화당 입장에서 볼 때는 동시에 독약임이 분명하다.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는 파격적이었다. 전당대회의 하이라이트를 모델 출신의 장녀 이반카를 출연시킴으로써 가족행사의 파격을 과시하였다.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았다. 선거에서 소위 노이즈 마케팅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데 끝까지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은 정치의 ABC에 반한 것이었다. 이것이 트럼프의 역설이다.
미국 공화당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었고 비관적이기까지 했다. 한때는 후보확정을 위한 유효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제3의 인물을 내세울 수 있는 중재 전당대회를 활용하는 방안까지 제기되었다. 심지어는 부시 전 대통령은 공화당 출신의 마지막 대통령이 자신이 될 것 같다는 비관론을 내놓았다. 대통령 후보 대관식이라 할 수 있는 전당대회에서 조차 경선 라이벌이었던 크루즈는 아예 대통령으로 지지하지 말 것을 선동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후보가 되어야 한다는 대의원과 공화당 성향의 일반 국민들의 지지는 최종적으로 트럼프를 후보로 확정하였다. 공화당의 정당체계 속에서 미국의 강력한 변화의 바람이 일어난 것이다. 이것은 특유의 미국적 정치전통이기도 하다.

힐러리의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안정성과 폐쇄성

민주당 전당대회는 미국 독립을 선언한 과거 수도 필라델피아에서 정통 정치인과 수퍼스타가 대거 동원된 아주 큰 잔치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찬조연설은 근거마저 불명확한 찬사로서 힐러리를 역대 미국 대통령 최고의 후보감으로 치켜세웠다. 그리고 경선 내내 민주당적 전통과는 전혀 다른 정책을 제시하면서 끈질긴 경쟁을 했던 센더스마저 힐러리 대통령 자질론을 거듭 강조하였다. 이러한 격조 높은 후보 대관식과 찬조연설들은 상당히 수사적이어서 오히려 힐러리로부터 나오는 에너지를 가리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마저 든다. 집권당으로서 민주당이 갖고 있는 안정감 못지않게 그에 따른 폐쇄성과 구태의연함 때문에 아마도 민주당의 힐러리는 본격적인 대선가도에서 힘들 수도 있다고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불안정성에 근거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번 대선이 정당의 책임정치와 후보 당사자의 인물중심이 혼합된 선거를 치르게 된다면 민주당 후보로서의 힐러리의 개인적 부각이 절실하다 하겠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이 차별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론과 보호무역주의 및 벽이 높아진 이민정책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기류는 무시해도 될 만큼 미세한 차이 외에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진영의 정책의 충돌은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트럼프와 힐러리의 인물대결로 귀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당대회 컨밴션 효과도 후보 간 인물대결로 수렴, 정리 되었다.

2016년 제45대 미국대통령 선거는 ‘인물’ → ‘정당’→ ‘인물과 정당’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는 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미국 국민들의 직접 정치참여의 패턴 강화로 나타나게 된다. 정당의 책임정치는 이념과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유권자의 정치적 파워의 상대적 비약은 자국민과 국익 우선의 성향을 강하게 띄게 된다. 새로운 미국 정치패러다임의 조짐에 대해서 미국과 동맹관계가 깊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주목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한 것은 미국 정치인과 한국 정치인의 유사성 못지않게 한국의 유권자들도 기존 정당 틀에 수동적 내지 소극적인 지지와 동의를 보여주기 보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8월 달에 치루어질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 이후 2017년 제19대 대통령 후보 결정에 있어서 한국 정치지형에도 정당과 인물 동시 혼합형태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중정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 있어서 유권자의 힘이 커진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의 임무

8월 9일과 8월 27일로 예정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에서 뽑힐 신임 대표의 임무는 대선 후보를 관리한다는 차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통령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는 아니기 때문에 당 내의 최상의, 최선의, 최고의 대표감이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신임 대표들이 각 당의 계파관리에 실패해서 대선 후보 진영의 틈새에서 중심을 잃을 경우 그 당은 크게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고 본다.

새누리당의 경우 신임 대표가 친박과 비박의 물리적ㆍ화학적 결합에 실패할 경우 범여권에서 새누리당발 제2의 정계개편이 일어날 수도 있다. 새누리당의 균열적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쩌면 미국공화당의 전당대회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당 지도부와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과의 결합된 힘이 생겨나면 강력한 범여권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제20대 총선에서 제1당으로 출발하였지만 더불어민주당만으로 제1당을 유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바로 판명되었다. 최악의 새누리당이 최고 정점의 더불어민주당보다 강세인 것이 입증된 것이다. 혹시라도 내년 대선에서 다자구도가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라는 오판과 오만에 빠지면 그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야권분열의 구조화와 대선 낭패가 쉽게 예견된다 하겠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의 신임대표는 범여권에 대항할 수 있는 범야권의 정치적 일체성을 강화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내 주류와 비주류 간의 현격한 세력의 차이는 오히려 범야권의 통합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더민주의 신임대표가 이에 대한 해법을 찾아낸다면 정권교체는 아주 낙관적일 수 있다고 보는데 묘하게도 미국 민주당 힐러리 후보의 결정과정이 연상된다. 경쟁자였던 센더스의 이질적인 정치세력과 정책들을 전당대회 과정에서 묶어놓았다는 뜻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어떠한 새로운 정치가 필요한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며 그 답을 정당과 일반 국민과의 동시결합에서 찾아낼 것을 권하고 싶다. 요컨대 어느덧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의 의식이 균형감각을 찾았기 때문에,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와 여권의 정권재창출을 예측하기가 쉽지는 않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