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파워의 척도, 공유권 통제력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만큼 자주 인용되는 이론도 흔치 않다. 생물학에 뿌리를 두지만 경제학과 사회학에도 널리 쓰인다.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소를 풀어놓아 결국 황무지가 되고 만다는 게 기본 가정이다.

이 이론은 미국의 생물학자인 개럿 하딘(Garrett Hardin, 1915~2003)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한다. 그는 방목장의 규모는 정해져있는데 더 많은 소를 풀어두면 생태계 전체가 파괴된다고 지적했다. 하딘은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산아제한 또는 수태조절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신맬서스주의자(neo-Malthusianist)였다.

‘공유지의 비극’은 경제학에서는 지하자원과 공기, 물 등 함께 써야할 자원을 시장경제에만 맡겨두면 위기에 봉착한다는 개념으로 확장한다. 모든 사람들의 이기심이 자원고갈을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선 무상복지·무상보육 논쟁의 와중에 이 이론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도 했다.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들여다보면 쓰임새가 다른 국제관계 용어가 있다. ‘공유권 통제력Command of the Commons)’. 매사추세츠공대(MIT) 국제정치학 교수인 배리 포센(Barry Posen)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하늘과 해역의 통제권을 누가 쥐고 있느냐를 국력의 척도로 보는 개념이다. 육지는 각자 고유의 영역이 정해져있어 분쟁 소지가 크지 않지만 하늘과 바다는 현실적으로 ‘주인 없는 공유지’가 많아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의 미국을 미국답게 만든 바탕으로 흔히 기술력과 경제력, 군사력을 꼽는다. ‘공유권 통제력’이란 개념에서 본다면 보다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힘의 사용이 가능한 공간을 얼마나 자유롭게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자.

공유권 통제력은 남중국해에서 관련국들이 벌이고 있는 영유권 분쟁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물리적인 분쟁공간은 물론 완전히 주인이 없는 빈 공간까지 포함한 모든 공유공간에 대한 지배권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국제관계의 현실에서 공유권 통제력은 핵, 잠수함, 위성 등 다양한 물리적 시스템을 포함하는 세분화된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기존 강대국 미국과 떠오르는 강대국 중국이 경쟁하고 있다. 갈등 국면(conflict status)이 악화되고 있다지만 모든 범주에서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앞서 있다.

공유권 통제력 경쟁에선 한번 뒤지면 그 열세를 만회하기 쉽지 않다. 미국은 공유권 통제력 유지를 위해 지난해 5975억 달러의 국방예산을 쏟아 부었다. 중국(1458억 달러)의 4배 규모다. 미국이 국방 연구개발(R&D)에 투입한 돈(2012년 790억 달러)은 중국보다 무려 13배나 많다. 게다가 지난 50년간의 기술축적까지 감안한다면 미국과 중국의 격차는 줄어들기보다는 더 벌어질 수도 있다.

공유권 통제력을 가지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작전을 펼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근해, 영공도 지키기 어려워진다. 미국은 북쪽으로는 힘없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대국(캐나다)이 있다. 남쪽으로는 가난한 사회주의 소국(중남미)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은 아무도 없는 바다뿐이다. 엄청난 자원을 가지고 곧바로 작전을 개시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다. 미국의 대양 해군이 전 세계를 무대로 발전한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은 다르다. 국경을 맞댄 국가만도 14개국이다. 동쪽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 보자. 북한, 러시아, 몽골,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복잡하다. 이 정도면 세계 최다 수준이다.

접경국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지역이 동남아다. 이곳은 남중국해 문제로 대변되듯 중국이 전략적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지역이다. 접경지역과 전략지역에 있는 나라들과 모두 잘 지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중국의 경우는 많은 나라들과 긴장관계에 있다는 것이 미국에 비해 불리한 점이다. 특히 동남아 지역의 갈등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국이 미국처럼 해양대국으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공유권 통제력은 천부의 지정학적 장점이다. 동시에 오랜 기간 쌓여온 종합국력이 합쳐져 생긴 결과물이기도 하다. 당분간 중국이 미국을 따라가기 힘든 부분 중 하나이다.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하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가 유사한 개념의 전략적 시도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일대일로는 물자 수송로 확보 차원에서 일차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어서 그 이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공유권 통제력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예상 가능한 시기에 미국을 제치고 세계 유일의 슈퍼 파워로 등장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앞으로 상당 기간 중국은 강대국(great power)과 초강대국(super power) 사이에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잠재적 슈퍼파워(potential superpower)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

중국은 필리핀과의 영유권 분쟁지역인 남중국해 7곳에 인공섬을 건설했다. 영해로 만들고 배타적 경제수역(EEZ) 권리를 행사하려 했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필리핀의 손을 들어줬다. 바로 다음날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방어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 체계를 한국에 설치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연일 초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한국은 안보유지와 국익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내야 한다. 핵심적인 전략 결정에 대해 주변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예상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주변국의 대응 능력을 ‘공유권 통제력’이란 차원에서 검증해보는 노력 말이다.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석사를 거쳐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기업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겸임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학자,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KOTRA 중국사업단장을 지냈다. KOTRA 홍콩·상하이·베이징 무역관 근무에 이어 현재 타이베이무역관장으로 있으며 중화권 ‘양안삼지(兩岸三地, 중국·대만·홍콩)’ 모두에 정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