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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만 이 시대의 디자인은 ‘디자인이 끝난 시대’다. ‘디자인이 끝낸 시대’의 디자인은 결국 도둑질을 잘해야 하는 것. 과거에서부터 훔쳐온 것들로만 넘쳐나는 세상”이라며 “이런 디자인에서 벗어나려면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아니고 패턴을 잘 뜨는 사람도 아닌, 이 시대가 안고 있는 문화를 흡수할 수 있는 육신을 지니면서 그가 만든 옷에서는 소리와 멋이 느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용수와의 인터뷰로 이 시대의 진정한 디자이너는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 알아본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왜 택했는지? 또 택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이런 얘기를 담기 위해 집필했다. 고등학교 시절 얘기부터 디자이너의 삶의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옷에 어울리는 마네킹이 필요해서 엔터테이너들 하고의 많은 관계를 맺게 되고 그러다 또 자연스럽게 ‘스타메이커’라고 불러질 만큼 소위 매니지먼트도 겸하게 되는 과정, 여기에 얽힌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을 수 있다. 책 제목도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제가 좋아했었던 프랑스 감독 ‘장뤽 고다르 감독’ 의 ‘네 멋대로 해라’를 인용했다.”

“지금처럼 메스미디어가 현란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았다. 당시에는 허리우드 키드생애가 아니면 팝송을 들을 수도 없었고 또 우리가 추구했던 어떤 판타지를 느낄 수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허리우드 키드가 됐기 때문에 서양문물을 접할 수 있었고 거기서 많은 것을 축적할 수 있었던 그런 시절이다.”

19살 길거리에서 캐스팅됐다. 어떻게 된 것인지

“19살에 명동 로열호텔 앞을 걷다가 캐스팅됐다. 당시 캐스팅 하셨던 분이 하는 말이 ‘난 잘 모르겠어. 내가 잘나서 캐스팅하는 거보다는 워낙 좀 별나니깐 선택했어.’라고 하셨다. 코카콜라 관계자였는데 아마도 내 옷이 유난히 눈에 들어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당시는 모델이라는 개념 자체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고 모델이라는 직업 자체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직업도 아니라서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용평에 가서 스키도 타고 사진도 멋있게 찍어주고 돈도 주겠다는 제의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당시 1년 동안 코카콜라 모델로 활동했던 것 같다. 그 이듬해인 20살 때에는 모델인 친구가 스튜디오에 같이 가자고해서 따라 갔다가 동아제약 관계자를 만나게 됐고 즉석해서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뒤 ‘박카스’ 1호 인물모델이 됐다. 동아제약에서 2년 모델 활동하고 곧 바로 ‘오란씨’라는 음료가 생겨서 전속모델로 활동했다.”

“신상옥 감독이 당시 출연했던 광고를 보고 ‘천동’(1973)이라는 영화에 나를 출연시켜주었다. 당시 나는 대학에서 행정학과를 다닐 때라 배우를 열망하던 청년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부모의 강요에 의해서 법관 혹은 정치가가 될 생각으로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끼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외국어대 연극부와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들이 공연할 때면 따라다니면서 관람했다. 또 운 좋게도 한 친구가 공연 날 일이 생겨 못나오는 바람에 내가 대본을 외우고 무대에 섰던 경험도 있다.

본격적으로 영화판에 뛰어든 것은 이장호 감독 덕분이다. 이장호 감독은 ‘별들의 고향에서 영석이는 나의 분신이니까는 하용수 너가 해야 한다’라고 해서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별들의 고향’이 대박나면서 계속 배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운명은 아무도 예견 못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당시 ‘별들의 고향’은 개봉하고 나서 46만명이 관람했다. 지금으로 치면 1400만명 정도가 영화를 본 셈이다. 국도극장에서 명보극장까지 기마대가 동원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많은 관객들이 ‘별들의 고향’을 찾았다. 이틀 뒤 나에게 들어온 시나리오만 15개 였을 정도이니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내 인기가 실감이 나지 않던 20대였다.”

“27세 때였다. 고위층까지 연루된 사건이었기 때문에 파장이 컸다. 또한 내 꿈이 일순간에 무너진 사건이기도 하다. 영화도 못하게 됐고 인기스타에서 하루아침에 역적이 돼버린, 아니 이 나라의 청소년들을 우롱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 있었다. 자괴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편안하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장희를 비롯해 우리 영화에 OST 감독을 했던 강근식, 신중현 등 인기 꽤나 있었다는 젊은 히어로들은 죄다 걸려들어 갔다. 지금도 매스컴을 보고 있으면 당시와 비슷한 ‘마녀사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무엇인가를 숨기기 위해 항상 연예인을 앞세워 ‘마녀사냥’ 하려는 것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때는 궁금한 게 많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당시 삼청동 프랑스문화원에 자주 갔었는데 우연히 ‘앱생로랑쇼’를 보게 됐다.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느꼈다. ‘샤넬 쇼’도 구경했는데 한편의 드라마와 뮤지컬 같은 쇼에 너무 놀랐다. 반면 우리나라 패션쇼는 모노톤인 6명 혹은 7명이 캄보밴드 하나에 뚝딱뚝딱하는 라이브 쇼에 지나지 않았다. 1994년 나에게 기회가 왔다.

진태옥 선생님이 조선호텔에서 디자이너 패션쇼를 기획했는데 내가 무한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제안해 조명, 스크립터, 음악, 연출 등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됐다. 당시 ‘이사도라 던컨’이 입었던 옷처럼 펄럭거리는 날개를 만들어 모델 15명에 입히고 그냥 맨발로 뛰어나오게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참신한 도전이었다. 진 선생님은 펑펑 울기에 정신이 없었고 관중석에서는 ‘OH MY GOD’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당시 1호 패션 디렉터이자 디자이너로서 연예인들이 내 옷을 안 입는 여배우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연예인들과 친구 또는 형, 동생으로 지내게 됐다. 특히 젊은 나이에는 저녁 술자리가 많았는데 한 명, 한 명 부르다가 보니 어느새 30여 명이 모여 함께 술을 먹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이러다 보니 연예인들의 ‘스타메이커’에 자연스럽게 뛰어들게 됐다. ‘스타메이커’ 일에서는 당대 최고의 포토그레퍼들하고도 일을 많이 했는데 조세현, 조남용, 조선희, 김용호, 중만이 등이 함께 했던 것 같다. 나랑 일 안했던 사진작가가 없을 정도로 폭넓게 일했다.”

“이정재다. 데뷔시키기 전 나한테는 기가 막힌 마네킹이었다. 이정재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여백이 있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여백이 있는 얼굴’이라는 것은 너무 찐하지도 않고 정확하게 생기지도 않은 얼굴이다. 쌍꺼풀이 없는 전형적인 오리엔탈 몽골리안 형으로 몽골리안 중에서도 굉장히 잘생긴, 서프라이즈형 몽골리안이다. 그래서 배우 매니지먼트를 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키게 했고 결국 데뷔시키는 데 성공했다.

만약 지금 연예인들 중에 이정재와 같은 첫 인상을 꼽으라면 빅뱅의 ‘탑’이 비슷한 같은 느낌이다. 어린데도 섹시하고 의연함이 있다. 조화를 이룬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섹시하고 근사할 뿐만 아니라 몸짓과 움직임도 멋스럽다. ‘탑’은 가수로써 뿐만 아니라 배우로써도 훌륭하게 성장할 것 같다. ‘포화속으로’를 비롯해 영화 몇개 봤는데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봉선화’는 정신대 할머니를 다룬 연극이다. 세종문화회관 서울시립극단에서 준비한 연극인데 윤정모 작가가 쓴 ‘애미 이름은 조센삐’라는 원작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 것이다. 우연히 길에서 김혜련 단장과 ‘봉선화’ 여주인공 이재희라는 연극 배우를 만나게 됐다. 김헤련 단장은 이름만 알고 처음 만난 사이었다. 앵콜 공연으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보게 할 요량으로 마케팅 회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 아이디어를 내놓다보니 ’헤드카피를 아프다로 갑시다‘로 선물을 해주고 OST를 물어보니 아직 없다고 해서 동생들 중에 음악하는 친구인 채은옥 이라는 가수의 제가 느꼈던 한국의 멜라니 사프카처럼 슬픈 목소리 가진 채은옥을 OST참여 시켜 OST도 완성시켰다.”

“김혜련 단장의 땡큐 디너쇼에 초대받아 즐겁게 보내고 있을 때 한국 최고의 드라마작가 정하연 선생의 딸인 정요숙 감독이 나한테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제의했다. ‘무슨 영화야?’라고 물어보니 내가 젊은 얘들과 소통하는 그런 모습을 영화로 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의미가 있겠다 싶어 흥쾌히 수락하고 정말 놀듯이 영화를 찍었다. 다 놀았다 싶으니까 영화 촬영이 끝났을 정도로 정말 영화 촬영 내내 놀기만 했다.

그렇게 한편의 영화가 끝나고 휴식기에 접어들 때 쯤 파리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이 친구 역시 나를 또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다고 얘기하길래 ‘영화 망한다.’고 거절했다. 나 이외에는 대타를 생각해 본적도 없다며 끈질기게 전화하고 찾아 온다고 얘기하길래 한번 만나보자는 생각에 오라고 했다. 그렇게 영화는 시작됐다. 그냥 파란만장한 한 노인네가 어느 날 죄목도 없이 유배당하듯이 제주도 요양원에 갇히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영화인데 마음에 들어 출연하겠다고 했다.‘천화’는 거친 성적 언어를 아무 곳에나 배설하고 다니는 치매 노인(하용수)와, 그를 간병하는 한 독특한 젊은 여인(이일화) 의 악전고투를 다룬 작품으로 양동근은 섬에 사는 예술 지망생으로 나온다.”

“개인적이지만 연기자 중에는 최민식보다는 송강호를 좋아한다. 송강호는 연기를 안하는 것 같지만 연기를 하는 아주 무서운 연기자다. 반면 최민식은 너무 연기를 한다. 즉 연기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는 얘기다. 송강호가 내가 보기에는 더 다양한 역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