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훈의 국민권익백서]농사

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긴 여름, 맹위를 떨치던 폭염 속에서도 노동을 쉬지 않았던 농부들의 시간이 마침내 한가위, 수확의 문턱에 이르렀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농사는 인류 경제활동의 중심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경작의 과정이 인간 삶의 본질적 부분과 맞닿아 있어 수많은 교훈을 준다는 점에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라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을까

중국 춘추시대 관중(管仲)은 농사를 중시했던 정치가였다. 잘 알려진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이기도 한 관중은, 포숙아(鮑叔牙)의 천거로 제나라 환공(桓公)의 면접을 보는 가운데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요체로 인재를 꼽으며 제안을 했다.

“농부의 자식은 다시 농부가 될 뿐이지만 순박하고, 간사하지 않습니다. 농부의 자식 중 수재(秀才)를 뽑아 사(士)로 삼으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농사를 지으면 크게 수확하고, 출사(出仕)를 하면 크게 현명할 것이니 성왕(聖王)께서는 농부를 공경하고 가까이 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관중은 현실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정립하는 과정에서도 농사의 이치를 즐겨 사용했는데, 그의 이름을 딴 중국고전 관자(管子) 권수(權樹)편에 “1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곡식을 심는 일만한 게 없고, 1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나무를 심는 일만한 게 없으며, 100년에 대한 계획으로는 사람을 기르는 일만한 게 없다.“는 관중의 말이 실려 있다.

그렇다면 국가가 국민 행복이라는 열매를 거두기 위해 법과 제도의 씨앗을 뿌리고 가꾸는, 행정이라는 농사는 얼마나 멀리 내다 보아야 할까. 아마도 기한을 정할 수 없는 영속적인 계획이요, 농사일 것이다.

우리 정부가 바람직한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운영하는 제도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국민권익위원회가 담당하는 행정심판은 유난히 농사와 닮아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마치 밭을 갈고 김을 매듯이 매주 수백 건의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관련 처분의 법리를 검토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를 개최한다. 소속 고위공무원과 교수·변호사·의사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면밀한 검토와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이들 안건을 심리·의결한다.

지난 1985년 행정심판법이 시행된 이후, 관중이 말한 농부와 같이 ‘순박하고, 간사하지 않은’ 30년간의 농사를 통해 우리 행정심판 제도는 신속하고 공정한 선진 권익구제 제도로 성장했다.

수확의 시간은 국민권익위원회에도 찾아왔다. 행정심판 농사를 지은 지 30년이 된 지금 국민권익위원회는 값진 성과들을 거두고 있다. 매년 약 2만5천 건의 행정심판 청구 사건을 검토해 4천여 건을 구제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행정 전반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제고함으로써 단순한 통계적 성과를 넘어서, 바람직한 행정을 실현하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또한, 행정심판을 통한 권익구제 절차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던 그간의 성과들이 반영된 선진화된 시스템은 이웃나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현재의 풍성한 소출에 머무르지 않고 행정심판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땀 흘리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행정심판을 통한 구제 결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행정기관이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청구인에게 금전적 배상을 하도록 하는 간접강제 제도를 포함한 행정심판법 개정안이 9월 중에 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또한 행정심판 청구부터 결과 확인까지 온라인상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도록 국민 편익을 크게 높인 온라인행정심판 시스템을 연내 60여개기관까지 확대할 것이다. 무릇 현명한 농부는 수확과 동시에 다음 해에 뿌릴 씨앗을 미리 준비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