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존스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회장]"기부=십시일반 정신"

기부를 부자들 '전유물'에서 탈피해 하나의 ‘문화’로 만들 것

편승민 기자입력 : 2016.10.05 15:51
편집자주더리더는 5월부터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들어보고자 한다.

누가 이보다 더 한국을 사랑할 수 있을까? 더리더가 만난 여섯번째 글로벌 리더는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한 남자, 미국 국제 변호사이자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재단 회장인 제프리 존스다.

1971년 봉사를 하기 위해 무작정 마음의 소리에 이끌려 왔던 한국은 큰 이유 없이 그를 사로잡았다. 한국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 그는 현재 법조계의 삼성이라 불리는 ‘김&장 법률사무소’ 창립멤버로 한국에서의 삶을 다시금 이어갔다. 이후에 그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한국관광공사 이사 등을 두루 거쳤고, 이제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한국인이 다 됐다.



현재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는 소아암이나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인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를 만들어 주는 재단이다. 전세계 63개국에 재단이 있으며, 한국은 53번째로 설립되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부터 기부와 봉사를 강조해 왔던 존스 회장은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가 잘 운영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기부문화가 이제는 달라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부는 돈 있는 부자들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탈피해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할 때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한국과 어떻게 인연이 닿게 되었나
▶1971년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가 잠시 휴학을 하고 봉사를 하고 싶었다. 그때 불현듯 내 마음 속에서 “한국으로 가라”는 말이 들렸고 그래서 처음 한국에 오게 됐다. 한국에 와서 2년 동안 선교사 활동을 했다. 그 뒤에 다시 미국에 돌아가 대학을 마치고 변호사 면허증을 땄고, 처음에는 미국에 있는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일본의 도쿄로 파견됐다.
도쿄에서 1년 반 정도 파견 근무를 하면서 가끔 한국으로 출장을 나왔었다. 그렇게 출장을 오면서 다시 한국을 보게 됐고, 다시 연이 이어지면서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게 됐다. 그 후, 일본 파견 근무가 끝나고 미국 시카고로 돌아갔는데 너무 심심하고 재미가 없었다.
그때 마침 김&장 법률사무소 창립자를 만났다. 당시의 김&장은 지금에 비하면 아주 작은 사무실이었지만 “우리 같이 일하자”라는 제안을 받고 ‘재미 있겠다’고 생각해서 수락했다. 그렇게 1980년에 다시 한국에 오게 됐고, 그 이후 지금까지 36년동안 계속 한국에 살고 있다.

36년 동안 한국에 살면서 느낀 변화는 어떤가
▶큰 틀에서 봤을 때 한국은 경제적인 면에서 훌륭하게 발전했다. 이제 서울은 대도시가 됐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이 됐다. 내가 본 가장 큰 변화는 총 세 가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먼저 첫번째로 내가 1971년에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18년 밖에 안 되었다. 전쟁의 기억이 아주 활발하게 남아 있고 거기에 따른 비극, 어려움,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이산가족 문제도 심했는데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엄마가 어디 있는지, 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그렇게 전쟁으로 말미암은 고통이나 트라우마들이 굉장히 살아있었다. 그런데 36년이란 세월동안 그게 점점 없어지고 아픔을 극복한 사람들에게 훨씬 더 편안한 세상이 되었다. 그게 가장 크게 느낀 변화다.
두번째는 아시다시피 1987년부터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들어왔지 않은가. 민주주의가 들어오고 나서 우리나라(그는 한국을 우리나라 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훨씬 더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비로소 자기의 꿈도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런 면에서 사회도 물론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굉장히 많이 변했다..
세번째로는 1998년 IMF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은행에 들어가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하는 무조건적인 안전한 자리보다는 자기 꿈을 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꿈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노력을 하면 결국 이뤄낼 수 있다는 새로운 문화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굉장히 창조적이기 때문에 영화나 음악 분야에서도 그동안 엄청난 발전을 했다. 한국은 새로운 문화를 개발하는데 뛰어났고 그때부터 한류도 시작된 것이다.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과거부터 해왔던 사회적인 순서, 질서, 계약 같은 것이 있었다.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사고방식이 있었다. 그런데 IMF가 터지고 나서 그게 다 깨졌다. ‘이젠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 바로 그때부터 창조적인 한국이 비로소 나왔다. 그것이 굉장히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16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의 법률자문으로 동행했다. 한국 팀의 일원으로서 올림픽을 통해 느꼈던 점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굉장히 큰 영광이었다. 아직은 내가 미국 시민권을 가진 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오랫동안 땀 흘리고, 돈 벌고,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시키면서 한국에 대한 애국심이 아주 강해졌다.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 함께 태극기를 옷에 달고 팀의 일원으로서 다녔던 것이 굉장히 뿌듯하고, 영광스러웠으며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작년 7월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회장으로 취임했다. 아직 한국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곳인데 소개 부탁한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의 시작은 필라델피아다. 킴 힐(Kim Hill)이란 작은 소녀는 백혈병으로 인해 필라델피아 어린이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킴 힐의 아버지, 프레드 힐(Fred Hill)은 오랜 기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딸과 복도에서 잠을자며 간병을 하는 아내, 병원에 있는 엄마와 떨어져 우는 막내를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에 아픈 아이와 가족이 치료기간에도 떨어져 지내지 않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하우스를 건립하기 위해 어린이병원 의사 오드리(Audrey)에게 알렸다. 이를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이글스 선수들, 그리고 지역사회 주민들의 후원이 모여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다. 필라델피아의 맥도날드 점주들은 매장에 모금함을 설치하여 지역주민이 후원에 적극 참여할 수 있게했고, 해피밀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하우스 건립을 위해 기부했다. 현재도 한국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모금함 운영과 함께 해피밀 1개 판매 시, 50원을 적립하여 기부 중이다.
이렇게 첫번째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가 탄생했고 이는 유럽과 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현재 63개국에 퍼진 글로벌 비영리 재단으로 성장했고 한국에는 53번째로 설립됐다.


지난 4월 30일 ‘제2회 로날드 가족걷기’ 행사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라는 이름이 그럼 맥도날드와 관련이 있나
▶이런 질문을 실제로 많이 받는데, 사실 두곳의 이름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 앞서 말했듯이 맥도날드가 판매금의 일부분 기부를 통해 어느 정도 재단을 지원한다. 한국맥도날드의 경우 1년에 2억 정도 기부를 한다. 그러나 운영에 있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사실 그런 연관을 짓는 것부터가 재단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도전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재단을 방문하고 배우면서 아픈 아이와 부모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하우스를 운영해야 하는지 상당한 기술을 배웠다. 그런 좋은 기술들을 우리나라에 가지고 와서 이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술, 하우스 운영방법 등이 우리가 배우고 싶고 알아야 하는 부분이기에 재단 본래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재단의 가장 주된 사업은 하우스 사업이다. 어떤 사업이고 한국에서 추진상황은
▶평소와 같이 흘러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약 4명의 아이들은 소아암 진단을 받는다. 즉 하루에 4명, 연평균 1500명의 많은 아이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다. 장기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아이와 가족은 치료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이 놓인다. 치료비 마련을 위한 경제적 어려움도 있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가족 해체다. 병 간호를 위해 아픈 아이와 병원에서 생활하는 엄마, 치료비 마련을 위해 밤낮 일해야 하는 아빠,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형제 자매는 친척집에 맡겨진다. 가족은 어떠한 경우에도 함께 살아야 가족이다.
치료를 받는 기간 동안 가족들이 함께 머물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는 단순한 머뭄의 공간을 넘어 가족 개개인에 맞춘 집과 같은 공간이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가족을 위한 부엌과 룸, 세탁실이 있다. 또한 환아와 형제자매를 위한 독서실과 놀이방이 마련되어 있으며 프로그램실에서는 다양한 놀이, 치료,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국의 첫번째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는 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에 2017년 설립될 예정이며, 대구계명대학교와 협약을 맺어 두번째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역시 건립을 준비 중이다.

모금홍보 사업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이달에 특별한 모금행사가 열린다고 알고 있는데
▶10월7일 금요일 오후 7시30분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본관 1층 아리랑홀에서 제2회 애견패션쇼를 개최한다. 많은 사람들이 왜 애견패션쇼를 개최하는지 질문한다. 우리는 소아암 환아가 단순히 행사에 참여하여 관람하는 행사를 원치 않았다. 즉, 소아암 환아가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는 행사이길 원했다. 또한 애견과 소아암 환아는 참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애견과 소아암 환아 모두 우리의 돌봄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이지 않은가.
많은 이들의 축하와 격려 속에 소아암 환아와 애견이 함께 주체가 될 수 있는 행사가 패션쇼였다. 본 행사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여 올해는 모델 의상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로 참여해주는 분들이 많다. 특히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이사장 이민성)에서는 장소 대관부터 공연,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공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여 행사를 기획했다. 또한 윤다훈씨를 비롯하여 여러 아티스트들과 기업 경영인들이 함께 모델로 참여한다.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에서 기획하는 모든 행사는 이처럼 많은 이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외에도 재단에서는 매년 4월 로날드가족걷기를 진행하고, 12월에는 로날드백일장 ‘울림’ 전시회와 시상식을 개최한다. 로날드가족걷기는 중증장애아동 치과진료비 지원을 위한 행사로 가족구성원이 함께 주어진 코스를 걷고 미션도 수행하며 가족이 하나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로날드백일장 ‘울림’은 전국 어린이병원학교 33개소에 재학 중인 소아암 환아들이 자신의 마음 속 이야기를 동시, 수필, 소설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이다. 현재 참가작을 모집 중이며 10월 중 심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제프리존스 회장, 제2회 로날드 가족걷기 행사 중 건강도 챙기고 나눔 실천도 하고


그 동안 꾸준히 이야기했던 ‘한국의 기부문화 확산’을 위한 도전인가
▶물론 그런 면도 있다. 사실은 친한 친구가 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재단과 관련된 일을 했었고 하우스 건립을 위해 건축 위원회를 하나 만들었다. 그때 처음 그 위원회에 들어가서 로날드맥도날드재단의 오픈사업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거기에서 또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열정을 갖고 재단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회장이라는 막중한 자리까지 맡게 됐다.

앞으로 한국에 기부와 봉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리나라가 꼭 바뀌어야 할 두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개인의 기부문화가 강화되어야 한다. 아직은 그런 문화가 좀 많이 약하다고 본다. 개인들이 기부를 많이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개인들이 ‘내가 기부한다고 해서 무슨 대단한 일이 생길까’, ‘만원, 이만원 이런 조그만 돈 가지고 무슨 도움이 되나’ 하는 의심들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인구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인구가 5000만명이고, 그 중 경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약 2300~2400만 명인데 그들이 매월 만원씩 기부한다고 하면 엄청나게 큰돈이다. 옛날에 ‘십시일반’ 이라는 말이 있지 않았나. 그런 작은 힘들을 우리가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힘이 모이기 위해서는 실질적으로는 세법 수정이 있어야 한다. 개인들이 기부를 할 때 확실히 기부 혜택을 잘 받을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지금도 기부를 하면 일부 혜택이 있기도 하지만 인정이 안되는 곳도 많고 확실한 보상은 별로 없다. 그래서 세금 제도의 개편을 통해서 투명하게 운영하고 세금 혜택도 확실히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대기업들이나 부자들이 기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였다. “부자가 천리 안에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옛날 정서와 사고방식이 있었다. 이렇게 기부 문화같은 것에 대해서 “내가 할 필요 없다. 그건 부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라고 하는 문화들은 좀 깨져야 한다.

현재 재단의 기부현황은 어떠한가
▶사실 기부금의 규모가 상당히 작다. 1년에 몇억원 정도만 들어오고 있는데 재단의 사업들을 하기엔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한테 많이 기대는 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경제가 어렵다 보니 함께 어려운 처지이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개인들의 소액 기부가 중요하다. 3000원, 5000원, 만원은 누구나 기부할 수 있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다. 그런 작은 마음을 전하는 길을 우리 재단이 열어줄 수 있도록 엄청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면 크라우드펀딩을 한다던지, 행사를 개최하여 사람들이 참여하고, 참여하면서 조금씩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0월7일에 있는 강아지 패션쇼 같은 행사에서 좀 더 알리고, 기부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2015년 12월 21일 소아암·백혈병 환아들을 대상 '울림' 백일장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재단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올 것인지
▶재단사업을 하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픈 일들이 많다. 소아암이나 혹은 심각한 병에 걸린 어린아이들이 굉장히 힘들어 하고, 학교도 못 다니고, 병원에 입원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계속 병원을 왔다갔다 하기도 한다. 이렇게 아픈 아이도 고생이지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아이를 돌보는 부모다. 그래서 우리 재단의 가장 큰 목적은 아픈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편안한 자리를 마련해서 아이와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아이가 학교를 못가면 배움의 자리를 만들어서 과외수업을 하던지 학교 선생님이 와서 가르치도록 하여 학업의 기회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모와 아이 사이의 힐링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 재단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게 엄마와 아이가 함께 힐링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그래서 해외에 있는 로날드맥도날드 하우스를 방문할 때마다 그런 사례들을 많이 눈여겨서 봤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에도 하우스가 많은데 아직 우리나라에만 없다. 그 점이 조금 아쉽다.
한국사람들 중에는 현재 아프리카 등 해외 어려운 국가들에 가서 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건 확실히 좋은 일이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나라도 그런 봉사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인식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아직도 아픈 아이들, 그 아이들의 부모가 있고 그들 역시 우리의 사랑과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는데 재단이 조그마한 힘이 되도록 하겠다.

본인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인가
▶한국은 나의 삶이고, 완전한 나의 인연이다. 그래서 여기서 아이들을 키우고, 나도 여기서 먹고 살고,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웃음) 완전히 나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지금 큰 아이가 열네살, 작은 놈이 열세살인데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할 때는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등학교 끝날 때까지 반드시 한국에 있을 생각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이루고자 하는 또 다른 ‘꿈’이 있다면
▶내게 지금 한가지 꿈이 있다면 드러머로서 재즈밴드를 한번 해보고 싶다. 원래부터 재즈음악을 좋아해서 집에서도 가끔 연습을 하고 있다. 드럼 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아는 사람들과 모여서 연주를 하기도 하는데 언젠가는 진짜 밴드 하나를 만들어서 연주하고 싶다. 내가 한 70~80세 정도 되어서 연주를 하게 되면 한 번 구경하러 와주길 바란다.(웃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지난 토요일에 한 대학의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곳에서 학생들에게도 했던 이야기인데, 아까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계속 꿈을 꿔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의 직장만 가지고 5~60세까지 일하고, 그 다음에 모든 것이 딱 끝나는 게 아니다. 계속 새로운 꿈, 새로운 작업,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산다면 80세, 90세가 되어도 할 수 있다. 건강만 유지한다면 우리가 계속 꿈꿔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꿈꿨으면 좋겠다.

△ 제프리 존스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회장
–– 1952년 6월 7일 미국출생
––브리검영대 대학원 법학 석사
––베이커앤맥켄지 법률사무소 변호사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경기도 영어문화원 원장
––한국 관광공사 이사
––포스코, 두산 사외이사
––現 서울특별시 외국인투자자문위원회 위원
––現 한미교육문화재단 이사
––現 대한적십자 미래전략특별위원회 위원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現 한국로날드맥도날드하우스 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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