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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
G2는 기본적으로 경제 규모에 착안한 개념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중국의 경제적 위상과 영향력이 급부상하면서 G2는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말 중에 하나가 되었다.
현실적으로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쓰임새가 넓다. 즉 2000년대 중반 이후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기존의 초강대국인 미국이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국가 체제를 이루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다. G2는 기존 글로벌 권력 메커니즘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하지만 미·중 관계의 본질과 구조 역학적 특성을 담아내기엔 아무래도 좀 부족한 느낌이다.
우선 실체가 모호하다. G7 G8 G20은 주요국 정상들이 실제로 만나서 공식적인 어젠다를 협의하는 ‘오프라인’의 장(場)이다. 하지만 G2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관계 내지는 국제관계의 재편을 상징화한 표현일 뿐이다.
둘째 중국은 이 말에 대해 기분 좋아하기보다는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국의 파워가 아직은 미국을 직접 상대할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는 듯하다. 만약 G2 체제가 공식화된다면 중국은 당장 국제사회에서 큰 부담과 의무감을 이행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국내에 복잡한 문제들이 너무도 많다. 설령 국내에 복잡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세계를 경영 내지는 관리하려는 의도는 아직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는 워싱턴 DC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할 때 유력 싱크탱크에서 미국의 국제관계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유독 한국에서만 G2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은 비록 중국이 세계 2위라고는 하지만 아직 자신의 적수가 못된다고 생각해서 이 말에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은 자신이 빠져있는 그룹이어서 가급적 회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이 G2라는 말을 쓰는 것은 다소 앞서나간 느낌이다. 신문 기사에 이른바 ‘야마(주제)’를 잡거나 제목을 붙이기엔 좋을지 몰라도 말이다.
미·중 관계는 근거가 부족한 G2라는 하나의 단어로 섣불리 표현하기 보다는 양국 관계의 저변과 흐름을 ‘프레너미’의 관점에서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레너미는 친구(friend)와 적(enemy)의 합성어이다. 그래야 양국 관계의 진전 양상에 따른 한국의 대응 좌표도 보다 잘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G2는 단순히 경제 규모만을 갖고 만들어 낸 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반면 프레너미는 양국 관계의 실질적인 상호작용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흔히 미국을 현재의 권력이라고 하고 중국을 미래의 권력이라고 말한다. 프레너미는 ‘친구인 척 하는 적(an enemy pretending to be a friend)’, ‘친구인데 라이벌인 관계(a friend but also a rival)’로도 표현할 수 있다.
프레너미라는 단어가 한국 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사실 국제관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60년도 더 지난 오래 전 일이다. 1953년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월터 윈첼(Walter Winchell)이 당시 소련을 이렇게 부르면서 시작됐다. 당시는 냉전체제를 양분한 미국과 소련이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필요한 동반자였던 동시에 서로의 심장을 겨누는 적이었던 때였다. 그리고 이 단어는 한 동안 잊혀졌다.
2012년 2월 중국의 5세대 대표주자가 된 시진핑(習近平)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이때 《LA타임스》가 “프레너미가 왔다”고 보도하면서, 프레너미가 미국과 중국 관계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단어로 부활했다.
프레너미는 냉전 시대에 미·소 관계의 상징으로 생겨난 말이었지만 글로벌 시대인 지금의 미·중 관계에는 새로운 의미가 있다. 프레너미가 영어 합성어여서 다소 까다롭게 느낄 수도 있지만 ‘친구’와 ‘적’은 역사적으로 익숙한 개념이고 각국의 문화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서양에 “화해한 친구는 이중의 적(A reconciled friend is a double enemy)”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마치 우리가 지난 역사를 통해 보아온 강대국들의 관계를 담아낸 듯하다. 또 아랍 속담에는 “적의 적은 동지(The enemy of my enemy is my friend)”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중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 한류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온 대사로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이 속담은 국제관계의 현상과 해법을 모색하는 ‘전략적 삼각관계(strategic triangle)’ 이론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과 중국을 단지 G2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양국을 단지 규모로만 비교하게 되어 양국 관계의 본질과 미래 전개양상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국력을 평가할 때 과학기술력, 경제력, 군사력 등의 수치만으로 비교한다면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미국도 매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정도로 중국은 과거보다 강해졌다. 오늘날 중국의 위상을 만든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는 경제적 성과 내지는 성취만으로 중국의 경제력을 판단하는 것도 오류이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의 경제산업 구조 비교와 양국간 교류 메커니즘 측면에서 관찰해야 한다.
미·중 관계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양국 관계는 G2라는 고정적 표현보다는 프레너미라는 동태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양국 관계의 미래를 더 잘 볼 수 있다.
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석사를 거쳐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기업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겸임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학자,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KOTRA 중국사업단장을 지냈다. KOTRA 홍콩·상하이·베이징 무역관 근무에 이어 현재 타이베이무역관장으로 있으며 중화권 ‘양안삼지(兩岸三地, 중국·대만·홍콩)’ 모두에 정통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