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예측과 정박효과(anchoring effect)

이일환 동아대국제전문대학원교수

‘정보가 홍수’라는 단어가 이제 식상한 용어가 되었을 정도로 정보과잉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라는 영양분이 넘쳐 과잉 소비되고,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다. 지하철을 타보면 모두가 스마트폰이라는 ‘정보 저장의 신’에게 경배한다. 주위사람들에게 일체의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스마트폰 내에서 오가는 정보를 탐색하거나, 자신이 찾거나 받은 정보를 전달하기에 바쁘다. 이 때문에 특정 사안이나 이슈에 대한 정보 교환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정보소외 현상’까지 발생할 정도다. 전문가들이 오히려 일반인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정보를 더 모르는 현상까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여기에는 뚜렷한 맹점이 있다. 내가 받은 정보는 이미 남들이 대부분 아는 정보라는 것이다. 정보의 고유한 가치 중의 하나는 ‘예측’이다. 남들보다 먼저 아는 데서 정보의 힘이 발생한다.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달걀을 깨고 탁자위에 달걀을 세우는 방법을 뒤늦게 아는 것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정보는 무엇보다 ‘선점’이 중요하다. ‘선점’은 예측과도 연결된다. 예측적 능력이 없으면 선점하기 어렵다. 프로이센의 정치가인 비스마르크는 ‘정치인은 역사 속에 순간적으로 지나치는 신의 옷자락을 잡아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듯이, 정보과잉 시대이자 모두가 정보전문가(?)인 디지털 시대에는 정치인 만이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순식간에 지나치는 정보’를 잡아채는 능력이 더없이 요구된다.

한반도가 중심이 된 동북아시아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큰 파도가 다가오고 있고, 국제정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어제의 잣대로, 어제의 관념으로 오늘이나 내일의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대통령 선거가 다가옴에 따라 정치적인 정보나 북한에 관한 정보가 특히 폭증하여 진실과 왜곡이 뒤엉킬 가능성이 많다. 국제적으로는 시진핑의 중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과거 차르시대의 영광 회복을 부르짖는 러시아는 냉전 시대의 강대국으로 올라설 것인지, 일본 아베의 폭주는 멈출 것인지, 그리고 미국의 경우 ‘11월의 서프라이즈(트럼프가 당선되는 이변)’가 돌출되지 않을까 등 한반도 주변안보환경은 3차원, 4차원의 방정식이 되어 가고 있다. 여기에다 현대인들은 점점 더 영악해지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자기 행동에 색칠을 하는 위대한 거짓말쟁이(?) 로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염려되는 것이 왜곡된 정보나 지식으로 인해 오판의 가능성이 증대한다는 점이다. 풍부하게 아는 것 같은데, 그림이 머릿속에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는 모순적인 상황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정보무지의 세상’을 역설적으로 맞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정보의 정확성과 신뢰성을 판별하기가 그 만큼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는 변질되고 왜곡되기 쉽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개별 행위자들은 정보력과 심리전 등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왜곡되고 때에 따라 거짓된 정보를 퍼뜨리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지 않고, 노아의 방주처럼 정보 홍수의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첫 번째 해답은 예측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필자는 과거에 퇴직한 선배들이나 고위직으로 재직했던 지인들을 종종 만난다.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지향적이란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과거퇴영적이다. 만남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늘 생각한다. “나는 과거의 노예가 되지 말고, 미래의 전도사가 되자”라고. 예측적 능력을 기르는 일은 작은 변화에 주목하고 큰 흐름을 동시에 읽는 다차원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디테일에 약하고 대의만 읽을 줄 알았던 관우같은 스타일–粗心大意는 디지털 정보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두 번째는 정박효과를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나온 이 용어는 사람들이 최초에 습득한 정보에 몰입하여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성향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박효과에 사로잡혀 있다. 고정관념 등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을 고집한다. 새로운 정보를 쉽게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노년층으로 갈수록 정박효과는 강하게 나타난다. 처칠은 모범사례다. 늘 핵심적인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전체적인 맥락도 파악하고 있었다. 새롭게 전개되는 사항들을 고려하는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었으며, 새롭게 나타나는 기회를 활용할 줄 알았다.

성공과 실패의 운명은 선견지명이 가른다고 했다. 선견지명은 곧 예측적인 능력이다. 예측적 능력을 갖춘 인간이 성공한다는 의미다. 하나의 위험에서 탈출하고 나면 여지없이 또 다른 위험에 맞닥뜨리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예측적 능력을 함양하는 일이다. 자신의 사고를 기존관념이란 항구에 정박시키는 것이 아니라, 열린 자세로 사안을 바라보는 유연함은 ‘혼돈의 세상’에서 북극성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이일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前 국가정보원 부산지부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
한국국가정보학회 이사
한국가버넌스혁신포럼 이사
미래예측포럼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