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는 실천학문…‘자기 개발’ ‘다양한 경험’ 필요"

봉사=가업, 봉사를 위해 태어난 가정
사회복지법인 동방사회복지회 김숙진 회장은 동방사회복지회를 설립한 고암 김득황 박사의 딸이다. 1972년 동방사회복지회가 설립될 당시부터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사회봉사에 앞장섰다. 설립하신 분이 아버지라고 해서 처음부터 중책을 맡은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를 돌보거나 고아들을 보살피는 등 사명감이 없으면 쉽게 해내기 힘든 일부터 배워나간 것이다. 봉사를 위해 태어난 가정에서 평생을 남을 위해 살다시피 한 그녀이기에 여유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편하게 지내지 않았다고 주변 지인들은 입을 모은다.

발전하는 봉사, 변화하는 봉사
김득황 박사가 동방사회복지회를 설립할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고아들과 과부들이 많았던 시절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김 박사는 성경 말씀을 기초로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기 위해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했다. 내무부 차관과 해외개발공사 차장까지 역임했던 분이 모든 관직을 뒤로 하고 사회복지법인을 만든다고 할 때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봉사하는 삶으로 평생을 보내자 이내 시선은 후원으로 바뀌었다. 김 박사의 뒤를 이어 김진숙 부부가 회장으로 전면에 나선 이후에도 변한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김 회장 부부는 봉사의 범위를 더 넓혀 입양, 미혼모, 장애아동 등 정부가 미처 손대지 못하는 일들까지 감싸 안았다. 전국에 30여개 시설과 370여명이 근무하는 복지법인으로 성장한 것도 김 회장 부부의 역량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혼모-장애아동 복지 위해 노력
김숙진 회장 부부가 동방사회복지회를 이끌면서 달라진 것은 미혼모와 장애아동을 위한 시설이 더 늘어났다는 것. 산업화되면서 미혼모와 장애아동이 늘어나고 이들을 안전하게 돌볼 수 있는 공간은 반대로 턱없이 부족해지자 다른 어떤 복지단체보다도 앞장서서 시설 확충에 나선 것이다.
특히 미혼모와 장애아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존재해 있던 시절부터 이들에 대한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에 다른 복지단체의 벤치마킹 대상이 될 정도다. 김 회장 부부의 노력에 생겨난 곳이 평택에 위치한 ‘동방평택복지타운’이다. 1980년 재활원 시설에서 시작해 지금은 생활관, 특수학교, 직원훈련원, 장애인글로복지관 등 종합복지타운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합복지관 ‘동방평택복지타운’
‘동방평택복지타운’의 발전은 동방사회복지회의 발전과 일맥상통한다.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해 세워진 공간은 “장애아동들도 정규수업을 배워야 한다.”는 김 회장 부부의 의지에 따라 특수학교가 건립되고 이후 중고등 과정이 들어섰다. 발전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직업을 갖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직업훈련원까지 만들어 장애인 스스로 기술을 습득해 자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장애인들이 일터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장애인글로복지관을 설립해 사후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물론 장애 정도에 따라 배우는 기술이 다르기 때문에 소득의 격차는 있을 수 있지만 장애인 스스로 일할 기회를 주고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은 선진적 복지의 모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뜻하지 않은 위기, 곤고해진 사명감
봉사를 위해 살아온 삶에도 위기는 찾아왔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으로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있어야만 했던 것. 극진한 간호 속에 기적적으로 깨어났지만 ‘반신불수’로 오랫동안 지내다 보니 간호해오던 김 회장의 심신은 지쳐만 갔다. 다행히 재활에 대한 의지가 높았던 남편은 완치가 됐다고 할 정도로 건강한 몸을 되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회장으로 있을 때에는 재활원 원장, 사회복지관 관장, 특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다.
9년전 김 회장이 남편의 뒤를 이어 회장에 오르면서 장애인 재활과 복지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뜻하지 않게 찾아온 남편의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사명감은 더 드세졌으며 활동은 더 왕성해졌다.

캠페인 및 행사로 봉사 알리기
김 회장의 왕성한 활동은 각종 캠페인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미혼모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비롯해 미혼모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카페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특히 입양이 아니어도 ‘요보호아동’(방치된 아이들)들을 위해 사회가 부모가 되어주는 캠페인은 모범적인 캠페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밖에도 중고등학교 자원봉사 시간 3시간을 인정해 주는 ‘아기 및 영아를 위한 손수건 만들기 자원봉사 캠페인’은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봉사와 인식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진일보하는 봉사, 복지문화 선도
입양아에 대한 지원 사업은 최근 김 회장이 직접 나서 꼼꼼히 챙기는 사업 중 하나다. 무조건 해외로 입양아동을 보냈던 과거와 달리 요즘 미혼모들의 아기들은 국내 입양 위주로 추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이를 위해 미혼모 보호시설인 ‘새롱이새남이집’이라는 자제 복지기관도 설립했다. 미혼모들이 거주하면서 자립할 때까지 보호해주는 시설이다. 이처럼 김 회장이 이 사업에 더 애착을 느끼는 것은 입양아동들에 대한 사후 관리의 필요성 때문이다. 해외 입양아동의 경우 사후 관리를 할 수 없지만 국내 입양아동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입양 사후 프로그램으로 지원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노력에 동방사회복지회에는 미혼모와 관련 시설만 20여개로 늘어났다. 이 시설을 통해 입양아동 합창단, 입양아동을 위한 심리캠프, 해외 입양아 친가족 찾아주기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미혼모들의 안식처, 연희동 복지회
20여개의 미혼모 시설 중 서대문구 연희동 동방사회복지회 본사에 위치한 미혼모 시설은 미혼모들에게는 안식처에 해당하는 장소다. 미혼모라면 누구나 상담, 휴식,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본인이 원한다면 출산하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김 회장의 미혼모에 대한 사랑은 국경을 초월한다.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 아이들에 대한 지원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현지에 장학금, 공부방, 놀이방 등을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생필품 지원, 피임 관련 교육, 현지 간호사를 통해 의료 지원, 낙후지역의 주택보수 지원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교육, 인생을 걸고 추진해야할 사명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는 김 회장에게 교육은 사명이자 숙명이다. 아이들의 인생에 가장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 교육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복지에 입문하려는 후배들에게 교육으로 전문성을 키워 주려하는 것 또한 이런 아이들을 위한 배려에서다. 김 회장은 후배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공부를 통해 실력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재 사회복지사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데 경험부족에서 오는 시행착오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는 실천학문”이라고 강조한 그녀는 나이 어린 후배들이 선생이 되고 나서 자기 개발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로 제자리에 머무르는 경우를 가장 안타까워했다.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책을 읽고 경험도 더 많이 쌓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학생들이 실습 오면 책 한권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하는 것도 동방사회복지회만의 문화이자 교육에 대한 의지의 실천이다.

국가적 관심, 국가적 지원 절실
김 회장은 국가적인 지원과 관심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혼모와 장애아동에 대한 관심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저출산 문제’에 대한 해결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된다면 미혼모도 아이를 키우며 충분히 혼자서도 자립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정부에 12시간 이상, 24시간 보육할 수 있는 기관시설 확충에 노력해 달라고 매번 요청하지만 아직까지 되돌아오는 메아리는 예산부족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동방사회복지회 여직원들이 직장을 그만 두는 이유 역시 육아라는 것이다. 정부가 무료든 유료든 관계없이 직장 여성이나 맞벌이 부부가 마음 놓고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사회에 환원하는 삶 살았으면
김 회장은 사람들이 재물이든 재능이든 사회에 자신의 몫만큼 돌려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다 보니 혼란과 혼돈, 마음의 병이 증가하는 것도 모자라 점차 심리치료가 필요한 사회로 전의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동방사회복지회는 김 회장을 중심으로 이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후원이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는 게 선행조건이다.
하지만 최근 각박해진 사회에서는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상황은 김 회장이 직접 가방에 팜플렛과 홍보책자를 들고 다닐 정도다. 김 회장은 44년된 동방사회복지회를 통해 많은 분들이 선행을 실천하는 사회로 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