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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번순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경제학과 교수 |
트럼프는 이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미국 우선의 고립주의 공약을 내걸었다. 통상과 관련한 트럼프의 공약은 미국인의 고용 창출, 임금인상,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공정한 무역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측이 주로 이용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은 멕시코와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출범한 이후 제조업에서 고용이 거의 1/3이 감소했다. 미국의 대멕시코 무역수지는 1993년 거의 균형상태였지만 2015년에는 적자가 거의 6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트럼프는 또한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미국에서 5만개의 공장이 사라져 갔고, 중국이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훔치지 못하도록 한다면 미국에서 20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국 우선 무역정책을 택한 트럼프
또한 트럼프는 TPP 협상 국가들과 교역에서 적자로 인해 미국은 2015년 200만 명의 일자리를 잃었고 그 중의 110만 제조업 일자리였다고 한다. 특히 자동차 및 부품 분야에서 거의 74만명의 일자리가 없어졌는데 TPP가 실제로 발효한다면 외국산 차에 대한 수입관세는 인하되고, 미국 차의 해외 판매를 어렵게 하는 외국의 관행들은 그대로 두어 더 많은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심지어 TPP는 멕시코에서 제조되는 자동차에 중국이 부품을 공급할 수 있는 뒷문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무역이 미국의 일자리를 없앤다고 생각하는 트럼프 진영의 통상정책의 핵심은 그 동안 체결했던 무역협정을 미국에 유리하게 개정하거나 협상 중인 무역협정에서 탈퇴하고, 중국에 대한 통상압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1994년 발효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재개정하고 멕시코나 캐나다가 동의하지 않으면 탈퇴를 한다.
또 오바마정부가 주도하여 비준을 앞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철회한다.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중국의 불공정무역에 대해 제소하며 나아가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해 모든 대통령 권한을 사용하여 중국을 제재하겠다는 등이다. 중국 상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대폭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 우선주의 혹은 고립주의는 20세기 들어 세계 초강대국으로 존재했던 미국이 이제 그 지위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다. 미국은 20세기 자유진영의 리더국으로서 수많은 개도국이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기여했고 또 이들에게 시장을 제공했다. 이로써 미국은 공산진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소위 더치페이를 하든가 시쳇말로 1/n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자세는 중국이 아직 세계 지도국으로 부상하지 않은 가운데 국제경제질서에 중대한 문제를 던져준다.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을 연구한 킨들버그는 교수는 영국이 리더십을 잃었는데 미국이 그 리더십을 이어받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물론 트럼프의 고립주의 미국 우선정책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비록 공화당이 상하원을 지배한다고 해도 트럼프 정책을 액면 그대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보호주의로 미국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대폭적인 감세정책은 오히려 미국의 소득격차를 확대하는 결과를 빚을 전망이다. 예컨대 미국이 멕시코에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멕시코에 진출한 미국기업으로부터 수입이 있다. 중국에서 조립되는 애플의 iPhone7의 가격은 649달러인데 이 중 원자재 값은 219.8달러, 제조비용은 5달러이다.
나머지는 바로 미국기업인 애플사에게 돌아간다. 애플사는 디자인, 마케팅 비용을 쓰겠지만 중국의 노동자가 iPhone 한 대를 조립하면서 5달러를 벌 때 애플사는 그 보다 수십 배를 벌고 있다. 저렴하고 우수한 중국의 노동자들이 없다면 미국의 소비자들은 훨씬 비싼 휴대폰을 사야 한다.
또한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전통적인 공화당 정책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공화당의 기본 철학은 작은 정부에 시장기능의 중시이다. 공화당은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을 신봉하며 국제무역에서도 민주당에 비해 훨씬 더 자유주의를 추구한다. 전통적 무역이론은 국가들은 비교우위가 다르기 때문에 무역에 참여하면 모든 나라가 다 이익을 본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국제무역의 A B C를 트럼프는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권인수위원회에서 작성한 200일 계획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의 세계화 세력들과 절연한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공화당과 차별화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상대적으로 무역개방에 소극적인 민주당보다도 더 후퇴한 것이다.
아시아는 역내에서 시장을 창출해야
미국의 무역수지를 보면 트럼프의 견해에 대해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다. 2015년 미국은 7,371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오랫동안 세계경제의 중요한 문제였다. 돌아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나기 전에 세계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동아시아의 흑자라는 글로벌 불균형이라는 문제를 겪었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2006년 8,180억 달러까지 증가했고, 그만큼 아시아는 흑자를 기록했다. 아시아는 쌓이는 달러를 사용할 곳이 없어 다시 미국의 재무부채권을 샀다. 달러가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면서 미국의 소비자들은 저금리에 주택을 사고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적자 속에서도 풍요를 누렸다.
이러한 불안정한 균형은 깨졌고 그것이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경제위기 이후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5000억대로 낮아지면서 불균형 문제에 대한 우려가 진정되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경제가 회복되면서 적자가 다시 증가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위해 주요 공격대상으로 삼은 곳이 바로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이다. 중국의 옷과 전자제품, 한국의 자동차와 휴대폰, 그리고 일본의 자동차 때문에 미국의 실업자가 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환율을 조작해 인위적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고 미국 제품의 수입을 막고 있으며 미국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이 체결한 한미 FTA에서 미국은 불리하게 협상이 이루어졌고 일본의 자동차는 현재도 미국의 일자리를 잡아먹고 있는데 TPP를 출범시킨다면 일본의 자동차 수입은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2015년 미국의 대중국 적자는 3,657억 달러로 전체 적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적자를 기록한 상위 15개국 중 아시아 국가가 8개국이며 이들로부터의 적자는 5,828억 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적자의 80% 선에 이르고 있다. 트럼프가 아시아에 눈을 부라리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이 점에서 아시아도 대미 흑자를 줄일 필요는 있다. 과도한 적자가 다시 한 번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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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국가들은 부품과 소재를 중국에 실어 보내고 중국기업이나 중국에 진출한 다른 아시아 기업들이 이들을 조립해서 미국으로 수출한다. 즉 아시아의 생산 네트워크가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 “메이드 인 차이나”가 사실은 “메이드 인 이스트 아시아”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한다면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수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아시아 경제는 미국의 보호무역보다도 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바로 중국의 부품 및 소재의 직접 생산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면서 조립제품을 대외에 수출하면서 아시아로부터 원자재, 부품, 소재를 수입했고, 이는 아시아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대만기업 폭스콘(Foxconn)이 중국에서 조립하는 애플의 iPhone 전화기에는 한국, 대만, 일본의 부품이 대거 사용되고 있다. 중국에서 조립되는 대부분의 상품은 이와 같이 아시아의 기업과 연결되어 있다. 이제 중국이 자국 기업이나 외국기업의 유치를 통해서 국내에서 부품과 소재의 생산을 늘린다. 한국의 삼성전자, 삼성 디스플레이, LG 디스플레이, SK 하이닉스 등은 이제 핵심부품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고 이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수출을 감소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시아는 이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 시장은 아시아 자체일 수밖에 없다. 중국, 아세안,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만 해도 세계 3대 경제권의 하나로 손색이 없다. 아시아의 소득수준은 아직 낮고 성장 잠재력이 높다. 아시아가 좀 더 무역장벽을 완화한다면 아시아의 수출을 자체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아시아에는 다수의 무역협정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동아시아 지역은 무역과 투자를 자유화하려는 동아시아자유무역지대(EAFTA)가 논의되었고, 2013년 이후부터는 아세안 10국과 한중일 그리고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RCEP은 아세안이 기존에 체결했던 5개의 FTA, 즉 아세안-한국, 아세안- 일본, 아세안-중국, 아세안-인도, 아세안-호주-뉴질랜드 FTA를 통합하는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TPP가 중국을 포위하는 형태로 진행되면서 RCEP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 통합체로 인식되었다.
RCEP 협상은 당초 2015년 말까지 완료될 예정이었지만 기대만큼 진전되지 않았다. 참가국 정상들은 2015년 12월 RCEP을 2016년 말까지 타결짓기로 다시 합의했지만 지난 10월 중국 천진에서 개최된 마지막 협상에서는 경제 및 기술협력 분야만 타결하는데 그쳤다. 논란이 가장 많은 상품무역, 서비스, 투자 등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요원한 듯하다.
이제 TPP가 파탄이 나고 미국이 각개격투 식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무역협상을 하여 미국의 이익을 추구해 나간다면 아시아 각국은 RCEP을 통해서 시장을 창출하여야 한다. 현재 RCEP의 협상에서 문제는 제조업이 취약한 인도가 상품무역에서 계속 이견을 내고 있다는 점, 서비스나 투자에서 선진국인 한국이나 일본의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 등으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 각국은 빠른 시간에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의 역동성을 살려야
트럼프 시대의 한국 경제는 양방향의 도전에 직면한다. 하나는 트럼프 정부가 한국에게 가할 압력 때문에 직접 미치는 영향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할 때 미국의 대한국 수출이 100억 달러 이상 증가하고, 7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이야기했으나 실제로는 4년 동안 미국에서 95,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무역수지 적자가 2배로 확대되었다고 평가한다.
이제 트럼프는 한미 FTA의 개정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자동차나 철강 등 주요 수출제품에 대해서 공정 시비를 걸 수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4월 한국을 환율감시국에 포함했다. 지속적인 무역수지 적자가 기준이라지만 트럼프에게는 한국을 압박하는 좋은 호재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한국 제조업체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중국이나 베트남이 미국의 통상 압력 사정거리에 들어있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은 1990년대 초부터 노동집약적 업종을 중심으로 중국과 베트남에 진출했고, 생산에 사용되는 부품과 소재를 한국에서 조달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중국과 베트남에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상당수는 역외시장에 수출을 목표로 진출했다. 중국 내수시장이 성장하면서 수출과 내수를 병행하거나 자동차와 같이 100% 내수 목적으로 진출한 경우가 증대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현지에 투자한 중소기업들에게 미국 시장은 중요하다. 이런 기업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큰 도전이다.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섬유의류, 신발, 휴대폰 등 전자제품을 수입하면서 30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기업이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제품이 들어 있다. 한국기업의 베트남 투자는 1990년대 초반 시작되었는데 베트남과 미국이 국교정상화를 하고 미국이 베트남에 대한 무역특혜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게 작용했다. 베트남의 TPP 참여는 한국의 기업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제 TPP가 출범하지 못한다면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우리에게 위기라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첫째는 대외적으로 아시아 경제통합에 앞장서면서 역내 시장 창출에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이미 아세안, 인도 등과 FTA를 체결했다. 한국-인도 FTA는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으며 한국-아세안 FTA도 실제 활용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한중일 3국의 FTA 협상과 RCEP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 FTA의 수준을 높여 무역을 확대하고 나아가 협상중인 FTA가 타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대한 투자보다 국내에 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의 수익성 유지를 위해 해외투자가 필요하겠지만 국민경제 전체로는 산업공동화를 촉발시킨다. 국내에서 생산설비가 축소되고 고용이 감소하면 경제적 역동성이 낮아진다. 중국과 베트남이 통상압력 대상이 된다면 국내 투자환경을 개선하여 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무역관계도 지금까지 강조해 온 부품 및 소재의 생산과 수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평적 산업내 무역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중국은 계속 성장할 것이고 소득도 증가할 것이다. 대기업 중심의 대량생산 조립제조업이 아닌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의 특색 있는 최종소비재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