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자맹 주아노 문화인류학자]열린 마음 가진 나라 됐으면

‘다이나믹 코리아’, 좀 더 남을 환영하는 실천적 자세 필요

편승민 기자입력 : 2016.12.14 09:33
편집자주더리더는 5월부터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들어보고자 한다.

‘한국’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 동안 우리는 각종 문화홍보영상을 통해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 K-POP과 K-DRAMA의 본거지,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나라임을 수 없이 머리 속에 각인시켜 왔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한국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제가 보여주고, 이야기 하려는 것은 진짜로 한국에 오면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진짜 한국’의 모습입니다.” 한국에 온지 22년이 된 프랑스 문화인류학자 벵자맹 주아노(Benjamin Joinau)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연히 오게 되었던 이국땅 한국에 ‘정’이 들었고, 끊임없이 생겨난 호기심은 그를 한국 문화인류학 연구에 매진하게 했다.


번역가, 교수, 레스토랑 오너, 작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벵자맹은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현재이며, 이것이 곧 미래라고 이야기 했다. 제 2의 고향인 한국이 더 관용 있고 남을 환영할 수 있는 나라가 되면, 지금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도 잘 극복해 나갈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한국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 처음에 온 건 1994년이다. 프랑스에서는 그때까지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군대에 가야 했다. 그런데 일반 군대에 가는 것 외에 해외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이나 회사, 혹은 학교에서 일하는 것으로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대학 졸업자의 경우 이 제도를 신청할 수 있었다. 단, 어느 나라로 갈지는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청을 했고, 어느 날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결과를 받게 됐다. 당시에는 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았고, 처음에 기대했던 나라가 아니어서 조금 실망했다. 원래는 아시아 중에서는 일본이나 중국, 인도를 기대했다.
사실 그때까지 한국은 공장밖에 없고, 상업적인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있었다. 한국 하면, Made in Korea라는 이미지뿐이었다. 깊고 오래된 역사와 문화가 있는지 몰라서 실망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에 살게 되었나
▶2년간의 계약 기간 동안 한국에 와서 지내면서 모든 건 내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생각보다 한국은 훨씬 멋있고 재미있는 나라였다. 풍경도 멋있고, 사람들도 좋았고, 역사도 오래된 나라였다. 이런 것들을 발견하면서 조금씩 정이 들었다. 2년의 기간이 지나고 나서는 굳이 바로 프랑스로 돌아가야만 하는 게 아니어서 한국에 조금 더 머물면서 문화를 배우고 이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랑스 학교나 대사관에서만 일하면 프랑스 사람만 만나니까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이곳 홍대 불어불문과에서 일자리를 찾았고 불어회화 교수로 5년 동안 일했다. 그때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여행도 많이 하면서 프랑스어로 된 한국에 대한 여행 가이드 책을 출판했다. 그렇게 조금씩 한국에 대해 배우면서 알아갔다.
그렇게 일을 하다가 부딪힌 문제가, 프랑스어 외에 내 전공을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외국인교수로서 재계약 문제와 같이 불안정한 일자리 문제도 있었다. 그래서 서른 살 정도 되어서는 한국에 계속 살려면 완전히 다른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때 전공을 바꿨다. 원래 전공은 고전문학, 그리스어, 라틴어, 철학 등 이었는데 그때부턴 문화인류학, 한국학으로 바꿨다. 파리에 있는 프랑스 사회과학 고등대학원(EHESS)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파리에 있지만 수업이나 강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논문 제출 등으로 학위를 받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했다.

-무엇 때문에 계속 한국에 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나
▶한국과 정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정이란 것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열정적인 게 아니라 조금씩 생기는 거다. 처음엔 한국에 와서 모든 게 이국적이어서 다 새롭고 재미있고 그랬는데 살아보니까 그런 감정들은 조금씩 없어졌다. 대신에 조금씩 친구도 생기고, 살기가 편해지고,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문화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하니 습관도 생겼다. 그러면서 호기심도 더 많이 생겼는데 특히 학술적인 궁금증이 많이 생겼다. 그래서 연구대상으로 한국문화를 연구하면 즐겁고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게 됐다.
이렇게 나와 한국과의 관계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끌렸고, 그 다음엔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또 다음에는 여기에 머물 이유들이 생기고 했다. 나는 이걸 한국과 정이 들었다고 본다. 조금씩 정이 깊어지고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처음 만났던 시기와 지금은 달라질 수 밖에 없지 않나? 결혼생활도 20, 30년 살다 보면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웃음)

-한식문화와 관련된 활동도 많이 했다. 요즘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소위 ‘쿡방’(요리 프로그램)이다. 이런 쿡방 열풍이 이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문화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먼저 고급 문화로 분류되는 문학, 텍스트를 집중했던 문화가 있다. 그리고 현대사회에 와서 문화라고 지칭 하는 것은 문명적인 것보다는 일상생활의 습관들, 관습들,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을 뜻한다.
지금 한국에 불고 있는 쿡방열풍은 두 번째 의미의 문화다. 이런 문화를 통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들여다 보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사회에 새롭게 나타나게 된 개인주의, 새로운 도시 생활 속의 외로움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나 모든 것이 상품화 되는지도 잘 살필 수 있다. 음식이라는 것은 원래 즐거움이고 나눔의 의미가 큰데 이런 프로그램을 보면 얼마나 음식이 본연의 기본적인 의미가 변화했는지 볼 수 있다.
동시에 우리가 갖는 사회 안에서의 관계들이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도 보여주는 것 같다. 과거에 비해서 조금 더 추상적인 관계가 생긴 것이라고 본다. 현실적인 것보다 가상의 관계 또한 중요해 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요즘 새롭게 떠오르는 트랜드 중 하나가 ‘혼술’, ‘혼밥’ 문화다. 프랑스에도 이런 문화가 있나
▶물론 프랑스에도 혼밥 문화가 있고 역사도 아주 오래 되었다. 혼자 사는 1인 가구가 많아서 슈퍼마켓에 가면 한 사람을 위한 가공식품의 종류가 굉장히 많다. 한국보다 훨씬 더 많다. 지금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가 아직 시작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슈퍼나 편의점에 가면 한 명을 위한 음식들을 요즘은 꽤 볼 수 있는데 아직은 시작으로 보인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사회의 흐름에 따른 문화라고 본다. 옛날 한국은 외식 문화가 많았다. 그리고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동창, 동기들과 함께 먹는 문화였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김영란법 때문에 그런 문화가 더더욱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웃음)
혼술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프랑스의 경우 열심히 일하고 나서 퇴근 후 집에 오면 Aperitifs(아페리티프, 식전주)라고 하는 술이 있다.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식전에 너무 독하지 않은 술 한 잔을 먹으면서 푸는 것이다. 혼자 살면 혼자 마실 수도 있다. 만약 한 잔이 아니라 한 병을 마시면 조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프랑스에서도 혼자 밥 먹는 건 아무 문제없지만 혼술은 조금 이상하다고 본다. 프랑스에서도 역시 식사하는 것, 술 마시는 것은 즐거움, 나눔과 관련된 개념이고, 중요한 사회적인 행사로 본다. 어쩔 수 없이 먹는 게 아니라 문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번역가, 프랑스 레스토랑 오너, 칼럼니스트, 교수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나
▶늘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재미있고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지금은 한국에 대한 연구와 한국에 관한 프랑스 출판사를 운영하고, 교수로 일하면서 제일 신나게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 쓰는 것도 힘들긴 하지만 재미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래는 바로 지금이라는(The Future is now) 것이다. 마치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카피라이팅 문구같지만 늘 그 말을 새기고 있다.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지금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통 학술계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은 못 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어떤 분류하는 카테고리가 있는 것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수면 교수 일만 하고, 사업가는 사업만 해야지, 이것저것 하면서 살 수 없다고 사람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엔 쉽지 않았지만 하나도 후회 하지 않는다.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남들보다 더 많이 배웠고, 모든 것이 다 내가 하고 싶어했던 일이다. 그런 만족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썼던 책 중 ‘얼굴,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라는 작품이 인상 깊다. 어떤 책인가
▶이 책은 연세대학교 상상개발연구소에서 시작했던 상상 관련 시리즈 중 한 권 이었다. 내가 맡은 것은 얼굴과 상상이라는 주제였다. 예전에 인류학 공부했을 때 상상계를 전문으로 했다.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작업했던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얼굴’이라는 개념이 무엇이고 언제부터 생겼는지에 대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얼굴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사회적인 구성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서양과 동양, 다른 나라와 문명에서는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책이다. 그리고 20세기부터는 얼굴 해체와, 파괴 같은 과정도 있었는데 도대체 현대시대에 얼굴관이 왜 이렇게 형성되었고, 어떤 상징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다.

-작년, 리얼 한국을 소개하는 책인 ‘스케치스 오브 코리아(Sketches of Korea)’를 발간했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한국의 모습은 무엇이었나
▶내가 한국에 왔을 때 비로소 현재의 한국, 진짜 한국을 만나게 되었다. 국가와 정부가 외국에 소개하고 싶어하는 5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멋있는 나라가 아니라 일상의 한국을 말이다.
이 책을 만들고자 했을 때 나의 의도는 이렇게 진짜 한국문화, 진짜 한국에 오면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문화를 알려주고 싶었다. 조선시대 관련된 이야기라 할지라도 애국심이나 이데올로기가 풍부한 이야기 말고, 역사책에 그대로 나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라는 것을 조선시대 까지만 선을 그어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현대 적인 한국문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1990년대 까지 목욕탕 문화 라던지, 음식문화는 살아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부분들까지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문화적인 우월성을 홍보하는 책보다는 내가 그냥 한국에 오면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진짜 현실의 한국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프랑스와 한국이 갖고 있는 각각의 가장 독특한 문화를 하나씩만 꼽으라면
▶내가 항상 그리워하는 프랑스 고유의 문화는 비평사상(critical thinking)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좋아하는 것은 감정에서 기인하는 부분들이다. 여기는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한국을 ‘다이나믹 코리아’라고도 하는데, 여기서는 불가능이란 없는 느낌이다. 그것이 참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느낀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문화를 가진 나라고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인가
▶한국에서 산지도 22년이 되었는데, 내일 잘 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도 있다. 22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린 것이다. 영주권 받기가 굉장히 어려웠는데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이 자랑스럽지 않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 살았지만 이중국적을 가질 수 없다. 만약 한국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나는 프랑스 국적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모순이고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한국에서 10년정도 더 살면 살아오면서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오랫동안 사는 게 된다.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한국에 대한 정체성도 있는데 한국 국적을 위해서는 무조건 외국 국적을 포기하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한국이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더 살펴보고 국민을 잘 통합 했으면 좋겠다. 특히 요새는 다문화 사회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데, 선진적인 다문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진짜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조금 더 관용 있고, 남을 환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라는 시에 나오는 것처럼 멀리서 돛단배 타고 온 손님을 환영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더욱 더 강하고, 재미있고, 창의력이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럼 지금의 정치적인 위기, 경제적인 도전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이루지 않으면 한국미래는 어둡다. 그래서 딱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열린 마음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계획은
▶내가 그 동안 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씩 다 해보았으니까 이제는 그 일들을 조금 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 책과 수필 집필하는 것, 문화를 이해하기 모두 그렇다. 이렇게 더 깊어지는 것이 내 나이 대와 잘 어울리는 목적인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쓴 책은 아니지만 우리 출판사가 출판을 앞두고 있는 책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 어로는 처음으로 쓰여진 서울에 대한 소설이다. 이 외에도 한국에 관한 책들도 속속 출판계획이 있다. 그리고 곧 있을 한불상호교류의 해 폐막식에서는 우리 출판사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프랑스 대사관에서 기념식을 할 예정이다. 그렇게 다양한 것들을 또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 벵자맹 주아노(Benjamin Joinau) 문화인류학자
–– 1969년 10월 19일 출생
––프랑스 파리 국립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문화인류학박사
––現 홍익대학교 불문과 교수
––現 EHESS 한국학 연구소 연구원
––現 Atelier des cahiers 출판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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