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이유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석사를 거쳐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기업관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겸임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학자,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KOTRA 중국사업단장을 지냈다. KOTRA 홍콩•상하이•베이징 무역관 근무에 이어 현재 타이베이무역관장으로 있으며 중화권 ‘양안삼지(兩岸三地, 중국•대만•홍콩)’ 모두에 정통하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돼간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병상에 누워있다. 몇 번의 반짝 경기는 반딧불처럼 날아갔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한 것인가?(Abnormal is the new normal)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인가?

각국은 그야말로 동병상린이다. 높은 실업률과 불경기로 몸살이다. 앞날을 내다보기 어렵다. 불확실성은 경제의 가장 큰 적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0년 안팎으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중국이 옆에 있다는 것은 한국 경제에 큰 행운이다. 최대 해외시장이 중국이다. 수출도 그렇고 투자도 그렇다. 한국 경제엔 특별한 존재다. 중국이 너무 커져 걱정이라지만 한국에 없어선 안 될 존재다. 그럼에도 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중국의 산업경쟁력이 곧 한국을 앞설 것이란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성과 유연성의 문제다. 중국은 끝임 없이 변하는데 한국은 변하지 않았다. 중국을 보는 한국의 시각과 행동이 변하지 않았다.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똑같다. 혹 각주구검(刻舟求劍)의 뱃사람 같은 과오를 범한 건 아닌지…

한국과 중국 관계가 최대 위기에 빠졌다. “역사상 가장 좋다”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말이다. 지혜로운 자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 곤경에서 벗어나려면 양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쉽지 않을 테니 우리부터 노력해보자. 비정부 부문부터 시작하자. 외교 테이블은 그 다음에 순서다. 중국은 우리 국민 모두와 연계돼 있다. 누구도 자유롭기 어려운 탓이다.

 
우선 개인의 노력. 중국을 보는 시각의 교정에서 출발해야한다. 우리의 중국관은 이분법적 사고이다. 양극단을 오간다. 차이나 드림과 차이나 쇼크가 어지럽게 섞여있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20년 전에도 그랬다. 이분법적 사고는 어떻게든 50%의 가능성을 갖는 게 아니다. 판단과 방향을 잃기 십상이다.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를 둔 어머니 마음이 늘 불안한 이유다.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다면 중국이 더 잘 보일 것이다.

미래 중국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이분법으로 본다면 G1 등극 혹은 붕괴다. 경제 외형(GDP)만으로 보면 G1 등극은 초읽기다. 정말 그렇게 될까? 돈의 무게만으로 세계의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돈은 가치가 따라야한다. 그 가치는 하드웨어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붙여야한다. 그렇다고 중국이 무너질까? 그렇지 않다. 문제는 중국이란 객체에 있다기보다는 우리라는 주체에 있어 보인다.

다음은 기업의 노력. 중국은 한국 경제에 위협인가, 기회인가? 20여 년 동안 변하지 않은 이 질문도 이분법적 사고이다. 약과 독은 본디 그 성질이 정해지지 않는다.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 된다. 기업의 이분법은 ‘차이나 붐’과 ‘차이나 리스크’다. “중국 시장이 좋으니 중국에 집중하자.” “중국에 올인하는 건 위험하다. 대안지역을 찾아야 한다.” 이런 얘기만으로 사업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기업들은 또 개별 경제수치에 따라 기대감과 위기감을 오간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대한 집착이 대표적인 경우다. 부동산•부채 거품 우려에 경착륙 걱정도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앞의 현상이 아닌 변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판단이 가능해진다.

기업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부터 그만 두어야한다. 중국은 비슷한 상품, 비슷한 방법으로 가는 곳이 아니다. 튀는 물건을 튀는 마케팅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전 패러다임을 벗어나 신산업에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곳이 아니다. 달라야 살아남는 곳이다.

공동체는 중국과의 교류 물꼬를 양방향으로 터야한다. 요즘 한류가 수난이다. 예정된 공연이 돌연 취소된다. 한류 스타들의 방중이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중국은 부인하지만 ‘팩트’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보복 차원에서 한 일일 수도 있다. 보복이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다 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자.

한류는 문화다. 문화는 양방향으로 흘러야 한다. 한쪽으로만 간다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만다. 그동안 한류는 한국에서 중국으로만 갔다. 때로 나타났던 반한류 움직임은 이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 한류가 중국으로 가는 만큼 중국 문화도 한국으로 와야 한다. 그래야 문화 교류가 지속 가능해진다. 그래야 어느 한 나라가 상대국에 대해 독자적 행동을 취하기 어렵게 된다. 한국은 지금부터라도 이 점을 깊이 새겨야한다. 필자는 연사로 패널로 중국관련 포럼에 자주 다닌다. 그 어디서도 문화 교류를 양방향으로 하자는 제안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한류에 대한 성과 분석보다는 늦었지만 ‘양방향’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다.

개인, 기업, 공동체 모두의 과제는 미래 대비다. 미래학자 피터 슈와츠(Peter Schwartz) 얘기를 해보자. 그는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scenario planning)의 대가이다. 구소련 붕괴와 9•11 테러를 정확히 예측했다. 미래는 복잡다단하다. 알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의 복합조합이다.

슈와츠가 미래를 바라보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합리적이다. ‘더 나은 미래’ ‘지금 같은 미래’ ‘지금보다 못한 미래’로 나눈다. 각 상황별로 자료를 모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미래의 징조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합리적인 대책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변하려면 자신만 볼게 아니다. 상대도 보고 주변도 봐야 한다. 우리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중국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 주변의 다른 곳에선 또 무슨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최근 달라진 중국변수의 무게로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곳이 있다. 대만이다. 대중국 경제의존도가 한국보다 훨씬 높다. 중국이 관광객을 줄이자 타격을 입고 있는 곳이다. 대만은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곧 부딪힐 상황들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엔 그 장면을 보려는 노력이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중국발 ‘퍼펙트 스톰’은 언제라도 올 수 있다. 그 충격은 경제적 타격, 외교적 곤경 차원을 뛰어넘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우선 우리부터 변해야 한다. 중국을 섣불리 재단하려는 경향은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중국을 관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