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붑 M&M인터내셔널 대표]영화를 통해 다양성 존중받는 한국 만들 것

[글로벌리더를 만나다]이주노동자에서 영화인이 되기까지, 돌아보면 한국을 위한 삶

편승민 기자입력 : 2017.02.07 10:16
편집자주더리더는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 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들어보고자 한다.

“저는 이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영화가 좋아요. 이주민이라고 항상 억울하고, 슬프고, 착하고 그런 건 아니죠.” 그의 말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TV에 비춰진 한국 이주민들은 소수 약자의 이미지였다. 그들은 고된 노동 때문에 힘들고, 타지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사연을 가진 착한 사람들이라고만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그냥 피부색만 다른 보통이웃이란 말이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1999년 이주 노동을 위해 한국에 온 마붑 알엄은 이제 한국 영화계에 널리 알려진 배우 ‘이마붑’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주민들의 인권향상을 위해 일해 왔던 그는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작년 M&M인터내셔널의 문을 열었다.


첫 수입 작품이었던 ‘아프리칸 닥터’의 성적은 저조했지만 의미 있는 첫 걸음이었다. 그는 영화업계에도 만연한 대기업 독점 때문에 좋은 작품의 다양성 영화들이 개봉조차 못하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콘텐츠가 외국에서 얼마나 잘 되는지는 혈안이 되면서 평가하고, 거꾸로 한국 속에 들어와 있는 다양성은 부정하고 외면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연기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바꿔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에서 산 지 18년째다. 처음 어떤 동기로 한국에 오게 됐나
▶방글라데시에 있을 때 회계 관련 공부를 했다. 원래는 유학을 가고 싶었는데 결국 이주노동을 선택했다. 가까운 나라에서 3년 정도 일을 할 생각으로 처음 한국에 오게 되었다. 당시에 친형도 한국에 있었다. 사실 그때는 워킹홀리데이처럼 일도 하면서 문화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와보니 이주노동자들의 일은 그야말로 막노동이었다. 경험이 없어서 더욱 힘들었다. 그때 당시에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국 이주노동자들의 노동환경 현실이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그것들을 보고 돌아가고 싶었다.
사실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던 이유 중 첫 번째는 어머니 병원비 마련 때문이었다. 당시에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2~3천만원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그 돈을 빨리 마련하고 싶어서 한국에 7월에 왔는데 어머니가 그해 12월에 돌아가셨다. 여러 가지로 힘들고 믿어지지도 않고, 가고 싶어도 못가는 공황 상태였다. 그래서 형이 대신 방글라데시에 들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공장에서 2년 넘게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고 몸도 많이 안 좋아져 결국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힘들었는데도 한국에 계속 머물게 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
▶사실 그런 고민이 많았다. 한국에 들어와서 현장이 열악한 것도 마음에 많이 걸렸고 어머니도 돌아가셔서 심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일을 하면서 뭐가 보람 있을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질문을 많이 던졌다. 이주노동자로서 어렵고 힘들었지만 동시에 이주민에 관련된 일들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한국에서 지내며 알게 된 주변 친구들의 불편한 점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등 이주민 노동과 인권에 대해 뭔가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많아서 여러 나라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함께 밥도 먹고 생활하면서 이주민 관련한 사업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이주민 관련 단체들이나 교회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이주민 센터들을 연결해 일하다 보니 바빠졌다. 그런 보람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한국에 머물게 되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영화배우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연기를 했나
▶방글라데시에서 학교 동아리 활동으로 했던 것 외에는 처음이다. 한국에서는 이주민 콘텐츠를 통해 영화보다 방송 활동을 먼저 시작했다. 지금도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제도화를 통해 더 많아져야 할 부분인데, 국영방송에는 일정 시간에 시청자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를 방송하도록 되어 있다. KBS TV의 경우 매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30~40분까지 시청자들이 제작한 콘텐츠를 방송한다. 나는 2003~2004년에 이주민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서 시민 방송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영화와도 연결이 됐다. 그때는 비록 한국말이 지금보다 많이 서툴렀지만 이주민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활동을 하다 보니 이주민에 관련된 단편 영화들이나 이주민을 소재로 한 영화에 출연 제안을 받게 되었다.

-배우로서 첫 출연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복수의 길(2005)’이라는 작품이 나의 첫 출연작이다. 이우열 감독의 블랙코미디 단편 영화다. 네팔과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 두 명이 주인공이다. 네팔 출신이 형 역할이었고 내가 동생 역할이었다. 한국에서 억울하게 일하면서 동생을 위해 형이 나서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노동부에 가도 들어주지 않고, 어디에서도 해결이 안 되니까 결국 사장을 죽이자고 하는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내용이다.
거의 일주일 정도 촬영했다. 이주민의 현실에 대해 감독과 대화도 많이 하면서 하나 둘씩 만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 보람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화에 어떻게 반응할까?’ ‘연기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작품은 서울 독립영화제 에서 상영이 되었는데 칭찬해주는 사람들도 많았고 재밌었다. 내가 연기 경험이 없는데 숨어 다니는 장면이 많아 촬영하며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다. 게다가 독립 영화라서 예산이 별로 없어서 인건비도 거의 받지 않고 하는 등 여러 가지 힘든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보면서 만족스러웠다. 단지 배우로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함께 만들어 나가는 한 명의 스태프로 참석한 부분이 좋았다.

-출연했던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반두비(2009)다. 캐스팅 에피소드가 있다던데
▶‘복수의 길’을 하고 나서 다양한 이주민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2006년에는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주민 영화제도 만들었다. TV 방송 프로에서 이주민 이슈를 다루는 것을 보면 주로 딱딱하고 슬프고 어려운 현실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이 어떤 때는 재미없기도 하고 밝은 뉴스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좀 더 이주민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방송과는 다른 플랫폼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직접 제작도 시작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도 만들고, 영화제도 만들고 하면서 동시에 여러 단편영화에 출연하게 됐다. 대부분 학생들 졸업 작품들이었다.
반두비 전에 ‘나의 친구, 그의 아내’라는 신동일 감독 작품에 잠깐 출연했다. 이주노동자 역할로 딱 한 장면이었는데 그 때 감독님을 처음 만났다. 반두비의 원제는 ‘민서와 카림’이었는데 감독님한테 두 가지 부탁을 받았다. 첫 번째는 현실에 맞는 부분들을 시나리오에 조언 해달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카림 역을 할 만한 배우를 찾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 역할을 하려면 배우에 맞는 얼굴이어야 하고, 한국어도 어느 정도 구사해야 하고, 체류 자격 문제도 없어야 하는 등 조건에 맞는 사람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감독님께 내가 하겠다고 제안했다. 내가 꼭 하고 싶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당황하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때 반두비 여주인공 캐스팅을 위해 오디션을 많이 했는데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나 자신이 카림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결국 감독님이 승낙을 했는데 조건이 있었다. 상대방 역할이 좀 어리니까 나도 거기에 맞게 살을 좀 빼야 했고, 연기도 더 연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반두비를 찍게 되었다. 내가 주인공을 하겠다고 제안한 이유는 연기 욕심을 떠나 기본적으로 카림이 처한 환경들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방글라데시 청년 카림의 삶이 내가 겪었던 이주노동자의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카림이 마붑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감독님에게도 내가 하겠다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반두비’ 스틸컷
-방글라데시 국적을 포기하고 몇 년 전 귀화 결정을 했다.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이유가 여러 가지 있었던 것 같다. 인권노동 활동을 하면서 사실 실망을 한 적도 많다. 사회적 분위기도 그렇고 주변의 사건 사고도 많이 접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나라와 제도권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국에 생활하면서 좋은 친구들도 많아졌고 좋아하는 문화들도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 사람과 결혼도 했다.
그렇게 지내면서 어느덧 내 주변 사람들이나 내가 하는 활동들, 할 수 있는 일이 모두 한국과 관련된 일이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외국인이다” 혹은 “다른 나라 국적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선택하는데 있어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지금 하는 일들은 한국을 위한 일이다. 그리고 나 역시 ‘이제는 한국 사람이 됐구나!’라고 생각했다.

-“한국을 알려면 이건 꼭 알아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
▶한국인들은 대체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이런 호기심이 때로 너무 지나치면 사람을 불편하게도 하지만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아예 안 물어보거나 무관심할 때도 있는데 어떨 땐 지나치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 걸 볼 때, 외국인이나 혹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받아들일 때 마음의 준비를 많이 하라고 하고 싶다. 그들의 호기심 분야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나는 택시를 자주 타는데 택시 안에서 듣는 질문이 다 다르다. 내가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돈은 많이 버냐.” “고향에 언제 돌아 가냐.” 이렇게 물어본다. 이 질문들은 되게 친절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냉정하게 보면 감정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 이주노동자나 방글라데시 사람이라고 하면 단순한 노동자로 생각해서 돈 버는 사람, 그리고 여기서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떨 때 한국인이라고 이야기 하면 “한국인이 어떻게 됐냐.” 하고, 미국인이라고 하면 “미국인 같이 안 생겼는데” 하면서 또 다른 질문들이 튀어 나온다. 상대방은 나를 못 사는 나라에서 왔다고 무시할 수 도 있고, 칭찬할 수도 관심이 없을 수도 있는 등 반응이 정말 다양하다. 그런 호기심과 다양한 반응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런 걸까
▶예전에는 그런 일들로 싸울 때도 많았다. 그래서 왜 그럴까에 대해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교육 문제도 있지만, 교육 제도뿐 만 아니라 영화나 미디어, 예술계에도 이런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이주민, 외국인을 어떻게 이해하겠나? 우리는 늘 우리나라 콘텐츠만 외부에 수출하기 바쁘다. k팝이 얼마나 많이 팔리는 지, 어떻게 자랑할 수 있을지, 싸이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얼마나 되는지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거꾸로 우리사회 속에 들어와 있는 다양성에는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지 않다. 방송에서 다루어 주지 않고 지원도 없어서 한국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힘들게 하고 있다. 게다가 예술계 사람들 중에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람도 많다. 솔직히 말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예술과 문화 활동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이주민 인권 실태는 그 동안 어떻게 바뀌어 왔다고 보는가
▶기본적으로 정치인들조차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자세나 마음이 전혀 없다. 어쩔 수 없이 움직이는 분위기다.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되는 글로벌 이슈이기 때문에 인지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민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활동 범위가 다양해지고 넓어졌지만 그에 비해 사실 제도나 개선에 대해서는 빵점이다. 하다못해 이자스민 의원과 같이 이주민 관련 정치인이 있어도 정치적 쇼에 이용당한 부분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한국이 글로벌 시민에 대해 생각이 많이 짧은 것 같다. 왜 그런 부분이 부족한지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한국에 있는 미디어 플랫폼을 봤을 때 이주민에 대한 것들이 일단 별로 없다. 굳이 찾는다면 JTBC TV ‘비정상회담’ 정도? 하지만 그것도 완전한 주류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더 이상 이주민이 아니지 않은가. 이들은 국제결혼, 유학, 시민권 획득 등을 통해 이제는 한국인들의 다른 모습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저출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이들이 채워주고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굳이 강제적으로 부정하는 모습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주민들의 정치 참여나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결과물들이 오히려 예전에 더 많았다. 내가 콘텐츠 관련 활동을 하면서 느끼기에도 10년 전이 더 편했다. 당시에는 지원금도 있고, 사회적 관심도 더 많았고, 도움도 많았는데 지금은 그때보다도 힘들어졌다. 사회적 맥락에서 다양성을 좀 더 키워줘야 하는 부분들이 있어야 할 것 같다.


-현재 대표로 있는 M&M인터내셔널은 다양성 영화 수입·배급사인데
▶다양성 영화, 이주민 영화들을 많이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되고자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개봉관 확보조차도 잘 안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대기업의 장악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가져와도 자원과 자본에 밀리고, 독점 때문에 밀리니 우리처럼 작은 회사는 싸워서 못 이긴다. ‘멀티플렉스’는 한국말로 직역 하자면 다양한 영화를 보는 곳이라는 뜻인데 사실 그렇지 않다. 이런 부분이 개선이 안 되면 아무리 해도 힘들다.
멀티플렉스 담당자들이 어떤 얘기를 하냐면 워낙 많은 영화들이 신청을 하기 때문에 다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면 자본력이 되는 영화들을 틀어준다. 개봉조차 못하는 독립 영화들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정책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개봉은 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법적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독점에 밀려서 구멍가게들의 씨가 마르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장악 해버리면 다 죽는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표 값이 많이 비싸지 않은 편이다. 사람들의 문화소비 활동 중에서는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한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장사하는 곳들이 다 장악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코 건강한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양성 영화의 경우 대자본에 의지하지 않고 공동체 상영을 많이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한국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면? 다문화, 이주민 관련 영화는
▶개인적으로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좋아한다. 전도연, 송강호씨 연기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박쥐’ ‘마더’ 이런 작품들도 좋아한다. 이주민 관련 영화라면 ‘완득이’를 좋아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주민이 등장하는 작품을 좋아한다. 지나치게 억울하고 힘든 것 보다는 그런 게 좋다. 시기적으로 이주민의 인권, 노동에 집중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는데 그것도 어느 한 단계라고 본다. 어느 순간 달라질 수도 있다. 이주민이라고 해서 늘 불쌍하고, 억울하고 착하고 꼭 그런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현실적이라면 당연히 다를 것이다. 아, 봉준호 감독의 ‘괴물’도 좋아한다.(웃음)


-지난해 M&M인터내셔널에서 수입한 첫 작품은 프랑스 영화인 ‘아프리칸 닥터’였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본인도 이주민 출신인데 어떤 느낌을 받았나
▶그 동안은 영화 연출에 관심이 있었고, 연출하면서 자연스레 출연도 했었다. 그런데 지원이 없다 보니 시장에 영화를 팔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영화 수입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해외 영화를 통해 좀 더 다양성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시작했다.
작년 5월 프랑스 칸 영화 마켓에 갔는데, 프랑스 영화를 그렇게 많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열흘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늦은 밤까지 하루에 5~6편씩 봤다. 그 중에서도 ‘아프리칸 닥터’는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실화이면서 내용도 무겁지 않고,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영화였다. 그래서 어렵게 수입을 했다. 영화 속 사람들은 처음 마을에 온 아프리카 의사를 신기해하고 진료를 안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피부색이나 인종의 차이를 신기해하고, 그런 사람들을 자기도 모르게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 영화는 우리가 왜 그럴까에 대해 고민이 들 때 보면 깨달을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이 영화는 한국인들의 유머 코드와도 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느끼기도 했다.


영화 '아프리칸 닥터' 포스터
-앞으로 M&M인터내셔널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고 싶나
▶제일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활동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로 왔지만 이제 한국은 고향보다도 더 고향 같은 곳이 되었다. 앞으로 서로 부담 없이 함께 다양성 영화를 볼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주민이 되었든 원주민이 되었든 같이 영화를 즐겨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런 영화의 장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
그런 의미로 이번 달 기획하고 있는 것이 서울-방글라 영화제다. 방글라데시 영화 5편을 이틀 동안 상영할 예정이다. 영어 자막으로 상영하여 다른 나라 친구들과 다 함께 같이 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만약 반응이 좋으면 내년에는 서남아시아 영화제도 한 번 만들어볼 계획이다. 서남아시아 영화들은 부산영화제 같은 곳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서울 주변에는 다양성에 관련된 영화제가 별로 없다. 부천판타스틱영화제도 있지만 다양성 영화제보다는 좀 더 넓은 의미라고 본다. 서울과 경기도 주변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산다. 그런 영화와 축제, 예술과 문화의 만남이란 콘텐츠를 만들어 보고 싶다.

△ 이마붑(Mahbub Lee)
–– 1978년 2월 17일생(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의 방송 MWTV설립, 공동대표(2004)
––제 2회, 4회 이주노동자영화제 집행위원장(2007,2009)
––방글라데시 연극단 ‘Bangladesh Migrant Theater’설립(2007)
––다큐멘터리 ‘쫓겨난 사람들’감독(2007/07 KBS 열린채널 방영)
––영화‘반두비’주연(감독 신동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예술교육 전문 인력 교육과정’ 수료
–– 1회 ‘CGV다문화영화제’ 홍보대사
––에세이 ‘나는 지구인이다’ 저술(2010)
––에세이 ‘소울 플레이스’ 공동저술(2012)
––現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Free Port)’ 설립 및 운영
––現 M&M인터내셔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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