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 법의 사각지대, “대법원 판례 한 건도 없어"

[법의 사각지대 그곳에도 희망을]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인터뷰

임윤희 기자입력 : 2017.02.10 09:31
편집자주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법의 사각지대를 찾아 그곳에서 벌어지는 문제점을 알리고 더 나아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코너로 소외된 곳에 희망을 줄 수 있는 법의 울타리를 함께 모색 해 나아가고자 한다. 2016년 1월호 아동 놀이터 문제를 시작으로 다문화, 군대 선진화법, 주거문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법의 사각지대를 찾아 관련 법 제정까지 확장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 편집자
▲전북도 인권팀장 성폭행 의혹 규탄
한동안 연예인 성폭행 사건들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다. 특히 ‘박유천 사건’은 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공개되면서 동일한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2차, 3차 피해자임을 호소하기도 했다. 경찰이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한 달여간 수사한 결과 박 씨는 성폭행 혐의를 벗었음에도 성매매와 사기 혐의를 받았고, 박 씨 측이 무고 혐의로 맞고소한 여성들은 결국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유명인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고소·고발 심리에 경각심을 주는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성범죄의 경우 둘만의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서로 간에 죄를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성폭행은 무조건 여성이 피해자라는 사고에서 벗어나 최근 사건들로 돈을 목적으로 한 ‘무고죄’의 유죄 판결이 알려지면서 남성도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일반인들의 케이스에도 적용되고 있다. 사실상 90% 이상 여성이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죄’는 남성들의 또 다른 무기가 되었고, 여성들은 역 고소를 당할까 겁이 나 신고도 못하는 경우가 증가하는 추세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12월 20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성폭력 범죄 재판 확정 전까지 피해자에 대한 무고 사건을 조사, 수사, 심리, 재판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해당 개정안은 ‘검사와 사법경찰관 또는 법원이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가 형법 제156조(무고)의 혐의로 고소 또는 고발되는 경우에 형사소송법에 따른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종료되거나, 법원의 재판이 확정되기 전까지 성폭력 범죄 피해자의 무고 사건을 조사 또는 수사(인지 수사를 포함한다), 심리 및 재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찬반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통과까지는 큰 산을 넘어야 하겠지만 일단 여성계는 반기는 분위기다.
이런 다양한 법적 노력에도 ‘무고죄’와 ‘성폭력’ 간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의 탈을 쓰고 법 앞에서 진실 공방을 할 것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문화운동팀의 노선이씨는 “이런 문제가 남자와 여자의 성폭행에 대한 인식이 다른 데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나날이 다양하고 복잡해지고 있는 성폭력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의 개선책을 찾아보기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노선이씨를 만났다.

-우리나라 성폭력 실태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인가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기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우리나라에 성폭력 발생 건수는 현격히 줄거나 늘어났다기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사건으로 그간 표면적으로 들어나지 않던 것이 이제 불거지면서 언론에 의해 ‘세계 최고’라는 표현으로 확대되었다고 본다.
성폭력이라는 것은 사회에서의 여성 지위와 동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사회에서 여성 차별 등을 상징하는 소위 ‘유리천장(Glass-Ceiling)’ 지수는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 OECD 국가(29개) 중 꼴찌다. 자료(영국 이코노미스트 2016년 3월 발표)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성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는 항상 논란이 많다. 해외 사례 대비하여 그 처벌이 약하다는 여론이 많은데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로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아동·청소년 사건에 대해 형량을 높이고 전자발찌 부착이나 부수적인 징계 처벌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성범죄는 줄어들고 있지 않다. 오히려 법조인들은 “사법부 입장에서는 처벌이 강화 될수록 부담을 느껴서 판결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성범죄 처벌 강화가 사법부에 판결에 도리어 역효과를 내고 있고 이런 판례들을 만들어냄에 따라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 집행 유예 판결이 나오고 갈수록 유죄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노선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사법부 구성의 남성 편향이 여성 피해 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있었다. 어떻게 보나
▶“사회 전반에 여성이 고위직으로 올라가는 비율이 낮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여성 의원 30% 달성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우리 사회가 여성의 성장에 인색하다. 남성 편향의 문제는 사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비율을 늘리려면 여성이 일하기 좋은 사회 여건이 되어야 한다.
다만 지금 현실적으로 여성 피해 사건에 여성의 시각을 입히기 위한 방법으로는 법조인 양성기관에서 젠더 감수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간접 경험 등을 느끼게 하는 커리큘럼을 추가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성폭력 피해 상담기관의 인턴 실습 등을 실시하지만 실질적인 체험을 하기엔 부족하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전문가들도 부족하다. 실질적으로 기반이 약하다. 젠더 이슈를 좀 더 구체적으로 연구하고 활발히 활동하는 구성원들이나 기구를 내부에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무부에서도 그런 장치들을 만들어 연구원 분들이 젠더 의식이나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연구를 더 해주면 좋을 듯하다.”

-피해자 입장에서 납득 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연예기획사 성폭력사건’이다. 15세 여중생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시킨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에게 ‘연인 관계’를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연예기획사 대표 A씨에 대해 징역 12년을, 2심 재판부는 징역 9년을 각각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피해자 B양 진술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주장한 A씨의 의견을 받아들여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의 편에서 판결한 사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성폭력 피해자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로 성인 남성이 10대 청소년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가했던 맥락은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현재 제3심판결에 들어가 있으며, 관련해 여러 단체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작년 4월~ 5월부터 지속적으로 매주 목요일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고 있다.”

-이런 사건들을 위한 ‘판례 뒤집기’를 통해 공론화 하는 것으로 안다. 소개해 주신다면
▶“최협의설과 아내 강간, 아동 성폭력, 비장애인 중심의 판례를 여성 주의적으로 분석하고 평석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했던 운동이었다. 최협의설은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것을 말한다. ‘여성이 극도로 저항하면 강간은 불가능하다’는 남성적 정조 관념이 바탕에 깔린 해석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나 여러 상황에 비추어 강간을 판단하는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했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눈에 띄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으면 피해자를 의심하는 시선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2015년에 다시 ‘판례 뒤집기’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대법원 판례는 다른 하급심에 영향을 미치고 법적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유죄를 받아내기 어렵기에 대법원 판례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의 구성 요건과 쟁점을 검토함으로써 법의 언어에 여성 주의적 인식을 더하고,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며, 사회 전반의 젠더 감수성이 증진 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7년에도 모의 법정을 진행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법정이라는 전문가들의 문턱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성폭력 사건에 다양한 시선을 반영해서 만들어 보니 기획하고 실행하면서도 재미있고 이를 통해 사법부에도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성폭력의 법의 사각지대라면 어떤 것을 꼽을 수 있나
▶“준강간 성폭력을 성범죄의 사각지대라고 본다. 준강간은 피해자가 알코올이나 약물로 기억 능력이 없는 상황이나 수면상태를 노리고 가해 행위를 저질러 빠르게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준강간 발생 과정에서 여성 피해자들은 사회의 성차별적 통념에 의해 늦은 시간까지 술을 먹었다는데 따른 죄책감을 가지게 되어 문제에 대한 본질적인 해결을 회피하기도 한다.
준강간 사건이라는 법적인 용어와 처벌이 정해져 있는데도 ‘준강간 사건’은 대법원 판결이 없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15년 총 1,308건의 상담 중 준강간에 해당하는 성폭력 상담이 111건인 것을 보면 다소 의아한 결론이다.
그만큼 입증이 어려운 분야라는 것이다. 피해자는 만취 상태에서도 성폭력을 입증을 해야만 한다. 몸은 움직이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소위 필름이 끊긴 상태라면 상황은 더 최악이다. 이런 케이스에서 법정으로 가면 대부분 CCTV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리는데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 때문에 피해자를 인정하지 않는 케이스가 많다. 또한 속칭 ‘물뽕’ 이라는 마약류로 ‘데이트 강간’을 하는 케이스도 마찬가지다. 물에 타서 마시게 되면 취한 상태와 유사하게 되어 본인도 모르는 상태에 피해를 입게 된다.
최근 연예인들의 성폭행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무고죄’다. 몇몇 피해자는 이 ‘무고죄’를 통해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한다. 일반인 가해자들도 이런 케이스를 보고 가해자가 반대로 무고로 대처 하려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다. 피해자들이 무고로 역 고소당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상담이 많다. 무고죄도 준강간 사건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신고율이 낮은 성범죄 특성상 무고죄 고소 남발로 인해 정작 성폭력 피해자가 피의자로 되면서 진술 조력권 등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면 2차 피해를 당할 수 있다.”

-성폭력의 사각지대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법적으로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게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법적인 부분으로 풀기는 힘들지만 시민들을 대상으로 ‘#그건 강간입니다’라는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진행했다. 남성 문화에서는 이런 케이스를 거친 성관계 정도로 일반화 되어 있다. 크리스마스에 홍대 거리에 나가서 스티커 설명하고 캠페인을 했다. 성폭력에 대한 생각이 여성과 남성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성폭력으로 힘들어 하는 분들께 한 말씀

▶“가장 중요한 것은 성폭력에 모든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주변 상담소에 꼭 활용하는 것이 혼자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억울한 부분에 대한 법적 대응이나 공론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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