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메시지, 민주시민사회 진입

박상철교수의 정치클리닉

박상철 교수입력 : 2017.03.02 10:17

▲박상철 경기대학교 교수
국민 대중이 탄핵정국의 시작과 끝을 주도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배웠고, 탄핵은 나라의 주인이 대통령을 문책하는 것이다. 탄핵 인용 시 당면할 첫 과제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일인 것 같다. 탄핵이 질책의 주인 행세라면, 대통령을 뽑는 것은 새로운 일꾼을 맞이하는 선택과 결정의 주인 행세이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국민 대중이 성숙한 주권자로서 정치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했고, 민주주의를 강하게 했다. 강한 민주주의 국가는 대통령과 특권 세력의 부패와 특권 정치를 몰아내고 모든 영역에서의 민주시민의 자율과 책임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탄핵 메시지로서 명실상부한 민주시민사회로의 진입을 천명하여도 무방한지 꼼꼼히 살펴보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부터라고 본다.


선진국의 청신호로서 민주시민사회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는 규정되어진다. 원시사회는 원시인이 주도했을 것이고 야만사회는 야만족, 독재국가는 독재자가 주도한다. 인류사회 진화의 최종을 민주시민사회라고 볼 때, 민주시민이 이끄는 사회를 우리는 선진국가요 민주시민 사회라고 명명한다. 대다수의 국민 대중이 참여한 광화문 촛불집회가 강한 민주주의 국가 완성에 기여했다고 하여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사회의 진입에 성공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민주시민사회를 인류 사회 고도의 완성단계로 보는 것 중 가장 절실한 것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사는 교육이 되어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어느 과장하기 좋아하는 교수가 말하길, 독일은 민주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 예산 편성에 있어서 도로보수 비용보다 민주시민교육에 더 쏟아 붓는다고 한다. 과장은 분명하지만 민주시민사회 공동체 유지를 위한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 역설만큼은 실감이 난다.


독일의 경우 연방 정치교육센터와 주 정치교육센터에서 1999년 5월 26일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는 구호를 걸고, 공적 과제로서 정치교육은 다원적·초당적·독립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요구하고 구동독에서의 정치교육을 특별한 과제로 한다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뮌헨선언(Münchener Manifest)을 한 바 있다.


최근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비슷한 정치교육을 내용으로 하는 「선거정치교육기관 법률안」 등이 상정되었는데 정치적 오해와 예산문제로 항상 난항 중이다.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한 몇 걸음 앞서간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협약(Beutelsbacher Konsens)은 광화문 일대에서 보수·진보, 여·야, 국민 대중 간 적대적 대치 경험을 크게 한 우리에게 뼈에 사무친 교훈을 준다. 보이텔스바흐 협약은 1976년 서독의 보수·진보 정치교육자들 간의 토론 끝에 정립한 민주시민교육 지침이다.


첫째 강압적인 교화·교육이나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자, 둘째 학교 수업시간에도 실제와 같은 논쟁적 상황과 현실을 바탕으로 항상 논쟁성을 유지하자, 셋째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정치적 행위능력을 강화시키자는 세 가지 원칙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재 독일 정치교육의 헌법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실로 한국사회를 민주시민사회의 정상적인 궤도에 진입시키기 위해서 필수적 지침이 아닌가 싶다.


시대적 과제로서 한국 민주시민교육
우리 사회에서는 왜 국가 차원에서 민주시민교육이 아직도 시작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참담한 한국 민주주의의 현재의 질곡과 불투명한 미래를 확인하게 된다. 제5공화국을 군사 쿠데타로 출발시킨 전두환 전 대통령이 과욕을 부렸다.


각 대학교의 사범대학에 국민윤리학과를 신설시키고 모든 공무원 시험에서 국사 과목 대신 국민윤리 과목을 강제 대체하면서 가식적 민주시민교육을 단행했다. 이에 한국에서는 국민윤리나 정치교육이 독재정권의 어용 교육으로 둔갑하면서 처음부터 비정상적이고 국민적 거부감 속에서 시작되었다.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조례안 공청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겼던 해프닝을 한 가지 소개하면, 민주시민교육에서 ‘민주’라는 용어에 대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경기도 도의원들의 반응이었다. 다수당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사용하는 공식 명칭임을 주장했지만 새누리당에서는 민주라는 용어가 당내에서 이 조례안이 좌파 내지 새정치민주연합을 위한 내용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 반응을 보였다. 한국 정치권과 보수·진보간의 대립 양상이 민주라는 명칭에서 부딪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으며, 우리 사회의 정치권은 이미 사회통합 내지 국민통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정말 정치권에 대한 민주시민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민주시민교육의 좋지 않은 시작은 정권 교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제6공화국에서도 여전하다. 민주시민교육의 국가적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여·야 서로의 불신·부정 때문에 정치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이라는 국민의식 교육이 없는 한국 민주주의에서 어떠한 위기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쟁만이 남고 진정한 의미의 즉, 시민의식에 뿌리를 둔 국민통합과 화합은 요원할 뿐이다. 보수는 진보를 종북 세력으로까지 몰아붙이고, 진보는 보수의 본질을 극우폭력 세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의 자화상이다. 이에 한국 사회의 갈등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갈등과 대립의 참담한 한국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많은 국민들이 ‘깨어난 시민’으로 거듭날 때만 가능하다.


1999년 선진 정치국가로 인정받는 독일에서 ‘민주주의는 정치교육을 필요로 한다.’라는 구호를 채택한 것은 민주시민교육의 절대적 필요성을 웅변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메르스 사태에서의 공중의식 실종, 그리고 최근의 맞불집회로서 태극기 집회에서의 정치적 선동행위에서 우리는 실종된 민주시민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대통령을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태극기 집회는 수긍할 수 있으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보다는 고집불통의 어른들과 무책임한 정치인들에게 민주시민교육을 정조준 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싶다.


유권자 정치교육으로서 민주시민교육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정치교육’에 있다. 정치권에서 상용되고 있는 정치교육이라는 용어는 그들의 정치적 상(商)행위에 불과하고, 간혹은 불신의 늪으로 인도하는 악마의 유혹마저 가미되어 있어서 특별히 구별하여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에 있어서 정치교육은 간단하다. 선거 때 제대로 투표하는 것이다.


여·야, 보수·진보의 지지와 상관없이 올바른 세계관에서 비롯된 정치적 결단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치교육이다. 그래서 정치교육은 국가기관 중 정치 중립이 가장 많이 보장될 수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몫으로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풍토가 대통령·국회의원·지방단체장·지방의원·교육감 등 공직자 선출은 물론 대학교 총장, 농·수·축협 및 산림조합장, 정당의 당내경선, 학생회장, 동네 반장을 비롯한 각종 사적 영역까지 선거와 투표 방식은 이미 시비 불가능한 정통성 부여행위로 일상화되어 자리 잡고 있으며 정형화된 직접 민주적 사회행위가 되었다. 일반 국민의 정형화된 직접 민주적 정치행위가 공적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정치중립적인 국가기관의 제대로 된 서비스를 충분히 받아야 하고, 국민은 그것을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 정치 중립적인 국가기관이 바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다. 동 위원회의 분발과 정치권의 협조를 당부한다. 당장에 제19대 대통령으로서 최적의 조건이 무엇일까. 여·야, 좌·우의 영역을 초월하여 민주시민교육 차원의 팁을 준다면, 대통령 후보의 정치적 전공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민주주의·경제·안보 세 분야 만큼은 대학 학점으로 치자면 공동 필수과목으로 우수하게 이수한 자여야 한다. 한국 사회의 세 기둥인 민주주의·경제·안보를 좌·우, 보수·진보, 여·야의 칼날로 들이댄 자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본다. 민주주의와 경제 그리고 안보는 객관적 검증이 가능하기에 이미 과학에 해당한다.


요컨대 대통령을 투표할 때 유권자는 민주시민의 자격과 수준으로서 대통령의 조건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줄 알아야 한다. ‘민주시민’의 시대 방식에 걸맞은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때 국민대중이 원하는 국가지대사가 염려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보며, 비로소 탄핵 메시지로서 민주시민사회로의 진입을 자신 있게 천명할 수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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