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린 클라크]‘열두줄’에 푹 빠진 푸른눈 교수님

“국악 세계화 하려면 한국인들부터 먼저 좋아해야”

편승민 기자입력 : 2017.04.13 09:07
편집자주더리더는 한국에 정착, 혹은 귀화한 외국인들 중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취재하고자 한다. 한국의 세계화 안에서 그들의 역할을 조명하고, 인종을 떠나 하나된 대한민국이 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들어보고자 한다.

“이 대추차 너무 예뻐서 사진 좀 찍고 시작할게요.” 인터뷰 시작 전, 조세린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커피보다 대추차의 진한 향과 맛을 더 좋아하나보다. 미국 알래스카 주 출신의 배제대학교 조세린(본명은 조슬린 클라크 Jocelyn Clark) 교수는 가야금 연주를 하는 국악인이다.
비슷한 현악기인 일본의 고토, 중국의 쟁을 모두 배웠던 그는 한국의 가야금을 알고 나서는 가야금 소리와 이 소리의 고향인 한국이라는 나라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인터뷰 중반쯤, 아이러니하게도 조세린 교수에게 국악의 세계화에 관해 물었다. 그는 “한국인들도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외국인에게 먼저 소개할 수 있을까요? 미안한 마음으로 국악을 소개해서는 안 돼요.”라고 답했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한국이란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음을 그는 안타까워했다. 조세린 교수는 외국인인 자신이 국악과 가야금을 한국인들에게 소개한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이 귀를 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내비쳤다.


-가야금은 한국 사람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데, 가야금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1988년 일본의 고토 연주자 사와이 카즈에는 일본 전통음악이 죽어가는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 고민하던 중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바로 외국 젊은이들에게 고토를 가르치고 일본인들 앞에서 연주하면 관심이 생길까 해서 미국 웨슬리언 대학교를 비롯해 하와이, 네덜란드, 호주 등에 고토 선생님과 악기를 보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서 유학하며 오보에를 공부하고 졸업 후 고향인 미국 웨슬리언 대학교에 진학했다. 마침 그때 나는 일본에서 막 미국에 다시 들어온 상태라 계속 일본어를 연습하고 싶었던 마음으로 고토를 시작했다.
그런데 고토를 배우자마자 완전 소리에 빠졌다. 한편, 서예도 굉장히 좋아해서 일본 유학시절 홈스테이 가족에게 한자도 배웠다. 그런데 대학에 중국서예 수업을 들으려 했더니, 중국어를 못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중국어 공부도 시작했고, 중국 악기 중에도 고토와 비슷한 ‘쟁’이라는 악기를 알게 됐다. 쟁을 배우기 위해 중국 남경예술대학원에도 진학했다.
그렇게 아시아 현악기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한국에는 ‘가야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악기를 배우기 위해 1992년 국립국악원에서 장학금을 받고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가 내 나이 22살이었다. 처음에는 고토하고 쟁도 이미 배웠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소리가 어렵더라.
그래서 더욱 열심히 듣고 공부하다 보니 가야금 소리에 빠지게 됐다. 총 3년 정도 국립국악원에서 가야금을 공부했고, 미국에서 가야금 병창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내가 국립국악원을 다녔던 1990년대에는 故 향사(香史) 박귀희 선생님, 故 명창(名唱) 박동진 선생님 등 명인들의 연주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몰랐지만 그냥 좋았고 소리에 감동했다.

-지금은 가야금을 연주하지만 일본의 고토, 중국의 쟁도 배웠다. 세 가지 악기를 비교한다면
▶세 나라의 악기를 비교 했을 때 외형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가야금은 12현이고 아직까지 명주실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 고토는 13현으로, 과거에는 명주실을 사용하다가 지금은 주로 테트론을 쓰고 있다. 중국 쟁은 명나라 시대에는 16현이었는데 문화대혁명 때 21현금으로 만들었다. 내가 공부했을 때는 피크 4개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양손을 다 사용한다. 한국 가야금도 그 동안 18현, 25현까지 나왔고 많이 발전했다.
일본 고토, 중국 쟁은 가조나 피크를 사용하는 반면 가야금은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는다. 세 악기의 가장 큰 차이는 농현법(현악기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거나 흔들면서 본래 음 외에 여러 음을 내는 기법)이다. 어떻게 현을 뜯고 소리가 죽기 전에 왼손으로 어떻게 소리를 만지는지가 가장 큰 차이다. 그리고 현을 뜯는 방법도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 가야금의 경우는 화음 보다는 현을 하나 하나 뜯는 주법을 사용한다. 사람이 목소리를 내는 방법과 가장 가까운 악기다. 중국과 일본은 화음을 내는 쪽으로 많이 한다. 쟁은 흐르는 물처럼 으르렁 대는 소리가 난다.

-여러 악기를 다뤘는데 그 중에서도 가야금을 택했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세 악기 중에 12현 가야금이 가장 나의 마음과 가깝게 느껴졌다. 악기인데도 인간적인 느낌이 있다. 가야금은 아주 특별하고 한국에만 있는 소리다. 그래서 잘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직은 잘 못하지만 계속 하다보면 혼자서 흥이 생겨 재밌다. 노래도 공부하는데 못 하지만 재미있어서 계속 하고 있다.


-가야금 연주 곡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산조(가야금으로 연주하는 독주곡)가 가장 좋다. 산조는 진짜 잘하려고 하면 일생이 걸리는 곡이다. 지금은 가야금 산조 명인 故 성금연 선생님의 큰딸인 지성자 선생님께 배우고 있다. 지성자 명인은 현재 전라북도 전주 인간문화재 40호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전주에 가서 배운다.
가야금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국립국악원에서 이지영 선생님께 배웠다. 지금은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지영 선생님 다음으로는 지애리 선생님께 배우다가 내가 미국에 다시 들어가면서 끝나게 됐다.
현재는 강은경 선생님께 가야금 병창(자신의 가야금 연주에 맞춰 판소리, 민요 등을 부르는 연주)을 배우고 있다. 강은경 선생님은 가야금 병창 인간문화재 23호 이수자다.

-가야금 병창으로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논문까지 썼다. 병창을 했던 이유는
▶옛날 판소리는 길에서 나오는 음악이어서 말에 비속어나 야설 등이 많이 섞여있었다. 그런데 판소리가 인기가 생기면서 점차 양반과 같은 지배계층 사람들까지 시작했다. 지배계층들이 판소리에 중국의 시를 많이 갖다 붙였다. 그래서 판소리 언어를 살펴보면 굉장히 재밌다. 중국의 고전 문학적인 언어와 길에서 나온 서민의 언어가 섞여 있어서 재밌다.
한편, 나는 미국에서 가야금 병창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병창의 노래가사인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번역을 해야 했다. 사랑가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문제는 많은 언어가 섞여 있는 판소리 번역이었다. 판소리 가사의 뜻을 찾아보면 5가지 해석이 나오기도 하고 출처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가야금 병창의 역사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을 보았다. 내 논문에는 19세기 판소리 대가인 동리 신재효 선생이 판소리에 어떤 시를 사용하였는지가 나온다. 대부분은 유명한 이백의 시도 있지만 유명하지 않은 시들도 많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당시 한국에서는 어떤 시가 유행했는지 그런 연구를 했다.

-가야금 연주를 시작하면서 한국에서의 삶도 시작되었다. 언어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
▶한국에 오기 전에 한 학기 한국말을 배웠다. 처음에는 한국, 일본, 중국이 다 비슷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달라서 처음에 너무 고생했다. 그런데 재밌는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국악원에서 처음에 기악만 하다가 병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때 강정숙 선생님이 국립국악원에 계셨는데 내가 병창을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 오라고 해서 갔다. 처음에는 말을 못해서 너무 힘들었다. 말하는 것도 힘드니 당연히 노래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선생님 제자 한 명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 일본유학을 해서 일본말은 그래도 한국말보다 잘해서 그분과 일본어로 대화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큰 선생님께서 제자한테 부탁해서 나를 가르치게 했다. 그분이 지금 나의 병창 선생님인 강은경 선생님이다. 그리고 산조 선생님인 지성자 선생님도 30년 동안 일본에서 오래계셔서 나는 국악을 일본말로 배웠다.(웃음) 그래서 처음에는 주로 일본말 하다가 점점 한국말을 배우고 또 살면서 많이 늘었다.


-국악은 유난히도 자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종목 중 하나다. 국악의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
▶내가 한국에 왔을 때 영화 서편제(1993)가 나왔는데 그때는 국악의 인기가 높았다. 당시에 국악 공연은 2~3년 동안 표를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박사 논문을 따러 미국에 다녀왔더니 또 국악의 인기가 이미 사그라져 버렸다.
개인적으로 국악과 재즈의 콜라보레이션은 흥미롭다. 하지만 인기있는 음악은 대부분 K-POP 쪽으로 가니까 지금은 너무 가벼워졌다. 국악방송을 들어보면 옛날 국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음악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저 국악기만 사용할 뿐이지 음악은 이것이 국악인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현대음악도 좋지만, 전통을 모두 버리고 그것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악은 잘하면 너무 맛이 있고 다른 나라에는 없는 좋은 음악이다. 지금은 우리의 맛이 너무 없다.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에도 힘쓰고 있다. 국악의 어떤 면을 부각시키고 싶나
▶세계화 하려면 한국 사람들이 먼저 좋아해야 한다. 한국 사람이 먼저 안 좋아하는데 어떻게 외국사람이 좋아하겠나 진심으로 소개해야 하는데 다들 미안한 마음으로 국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음악 조금 지겹지만 한번 들어보세요.” 이런 식이다. 나조차도 그럴 때가 있다.(웃음) 이건 잘못된 것이다. 내가 진짜 사랑하는 건 미안한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외국인들에게보다 한국인들에게 먼저 국악의 좋은 면을 소개하고 싶다. 우리 아이들이 국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다. 어렸을 때 우리가 학교에서 국악 수업을 할 때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주일 한번 정도 문방구에서 산 단소를 가지고 국악 수업을 한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만들어진 악기로 연주하면 화음도 만들 수 없고 소리도 좋지 않다. 아이들은 당연히 왜 재밌는지 모른다. 지금의 문제라기보다 옛날부터 시작된 문제다.
내가 사사 받았던 선생님들만큼, 혹은 어릴 때부터 국악을 했던 사람들보다는 실력이 못하지만 나 같은 외국인이 가야금 연주를 하니까 새로운 마음으로 사람들의 귀가 좀 열리는 것 같다. 내가 잘은 못 하더라도 새로운 마음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그게 나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계획은 지금 하는 대로 계속 가야금을 공부하려고 한다. 작년에는 학교수업이 너무 많고 바빠서 1년 동안 가야금 공부를 거의 못했다. 올해는 교양수업을 많이 줄여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경기도 분당에서는 수요일마다 강은경 선생님과 병창 공부를 하고, 일요일마다 전주에서는 지성자 선생님과 산조 공부를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
▶새로운 꿈이라기보다는 늘 꾸고 있는 꿈이다. 나의 꿈은 가야금을 잘하고 싶다는 것이다. 책을 쓴다던지 공연을 한다든지 하는 큰 꿈을 꾸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끊임없이 소리를 찾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생각해보면 앞으로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죽기 전까지 좋은 소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주름도 생기고, 백발이 되어가고 있지만(웃음) 노력하고 있다. 병창 선생님인 강은경 선생님도 아직까지 본인의 스승께 배우고 있다. 나 또한 선생님이 함께 계시는 동안은 꾸준히 계속 공부하려고 한다.

△ 조세린(Jocelyn Collette Clark, 趙世麟)
––1970년생(미국, 워싱턴DC)
––일본 전통악기 고토 사사(1988)
––중국 남경예술대학(南京藝術大學院)에서 고쟁 사사(1990)
––미국 알라스카주 웨슬리안대학(Wesleyan University) 졸업(일본어학, 중국어학 1992)
––국립국악원 가야금 사사(1993)
––미국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isty) 대학원 석사(Regional Studies East Asia 동양학 1994)
––미국 하버드대학 대학원 박사(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동아시아 언어와 문명 2005)
––국악사사 : 지성자(성금연류 산조 등), 강은경(가야금 병창 등), 황병기(현대곡), 강정숙(가야금 병창 등),

                  지애리(성금연류 산조 등), 이지영 (궁중음악 등)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자문위원/대전 거주외국인지원자문위원
––現 IIIZ+ 아시아현대예술그룹 단장(2001~)
––現 배재대학교 아펜젤러 국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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