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개소문 김춘추 이병철의 성공과 실패 리더십

[편집인 레터]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21세기 리더십

홍찬선 편집인입력 : 2017.06.01 09:38

700년 이상을 유지했던 고구려는 광개토대왕부터 연개소문까지 260여 년 중국과 자웅을 겨룬 제국이었다. 隋(수) 양제와 唐(당) 태종의 100만 대군에 맞서 싸워 이길 정도로 강했다. 독자적 연호를 쓰고 대규모 왕릉을 만들었으며 왕궁도 황제에 맞게 세웠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665년에 죽은 뒤 급속히 기울었다.


아들들과 숙부 사이에 권력투쟁이 일어나 장남 남생은 당에, 동생인 연정토는 신라에 투항했다. 백만 대군으로도 무너지지 않았던 고구려 제국은 내부 분열이라는 치명적 癌(암)에 걸려 스스로 망했다. 중국 최고의 황제 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이세민(당 태종)마저 벌벌 떨게 만들었던 연개소문이 자녀 교육과 후계자 양성에 실패한 탓이다.

신라의 김춘추는 달랐다. 고구려와 백제의 협공에 시달리던 그는 羅唐(나당)연합군이라는 ‘신의 한수’를 구사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당에 사신으로 가서 이세민에게 군대를 보내주도록 간청했다. 요즘 시각으로 볼 때 ‘외세를 끌어들인 逆賊(역적)같은 행위’라는 비판이 있기는 하지만, 삼국을 통일하고 영토를 넓히기 위한 遠交近攻(원교근공) 전략을 기막히게 쓴 것이다.

문제는 나당연합군이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을 차례로 무너뜨린 뒤였다. 唐軍(당군)은 신라까지 먹으려고 철수하지 않았다. 이때 여우같은 ‘굴욕적 외교’와 무력 투쟁이란 양면 전술로 당군을 몰아낸 사람이 그의 아들 문무왕이다. 죽은 뒤에도 왜구의 침략을 막겠다며 동해 바다에 묻어달라고 해 대왕암에 묻힌 그 문무왕이다.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아들 교육과 후계자양성에 성공함으로써 그가 뿌린 통일의 씨앗이 열매를 맺도록 했다.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은 후계자로 셋째 아들인 이건희를 지목했다. 장남과 차남이 있었고, 장남이 가업을 승계하는 게 일반적 정서였던 1987년에 셋째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것은 여러 가지 모험적 결단이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여러 가지 비판받는 일도 있지만) 반도체와 스마트폰을 바탕으로 삼성을 글로벌 톱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병철 회장의 고뇌에 찬 선택이 맞았음을 보여줬다. 한반도 반만년 역사에서 전 세계에 대한민국을 가장 확실히 각인시킨 인물은 이건희일 것이다.

연개소문과 김춘추 이병철은 한 시대를 주무른 영웅이었다. 연개소문은 쿠데타로 영류왕과 반대 귀족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뒤 唐과 맞서 싸웠다. 얼마나 싸움을 잘했으면 아직도 京劇(경극)에서 연개소문을 매우 무서운 장군으로 묘사할 정도다. 김춘추는 성골에서 진골로 떨어진 뒤 臥薪嘗膽(와신상담)하며 김유신 등과 힘을 모아 왕위에 올랐다. 이병철도 日帝(일제)의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등의 어려움을 뚫고 한국 최대의 기업을 일궈냈다.

이들 세 사람의 운명은 死後(사후)에 극명하게 달라졌다. 연개소문은 피 흘려 지킨 제국이 망하는 것을 지하에서 눈물 뿌리며 보았을 터다. 반면 김춘추와 이병철은 하늘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周易>(주역)의 서른여섯 번 째 괘는 明夷(명이)다. 밝음이 상처받는 어려운 때에 지도자들은 ‘어둠을 써서 밝음을 지키는’用晦而明(용회이명)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鄧小平(덩샤오핑)이 내세웠던 韜光養晦(도광양회, 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이 바로 그것이다. 취임한 지 한 달이 되는 문재인 대통령과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을 헤쳐나아가야 하는 기업 CEO들에게 필요한 것도 용회이명이 아닐까.

사람과 기업과 국가는 계속 살아가는 유기체다. 내가 살아있을 때만 잘 나가면 그만인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딸과 그 딸아들들이 계속 어려움 없이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된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와 후계자를 양성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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