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무총리론과 이낙연

[박상철 교수의 정치클리닉]

박상철 교수입력 : 2017.09.05 16:14

▲박상철 교수
이낙연 국무총리가 어쩌면 한국 최초로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마치는 국무총리가 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큰 근거로는 넉살이 좋고, 조직 내부관리는 깐깐할지 모르겠지만 외형상 모난 곳이 전혀 없는 듯하여 하는 말이다.
올해 6월 말 가뭄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하였는데, 출발하기 직전 이총리 왈 ‘다녀오시는 동안 가뭄을 해소해 놓을테니 걱정마시라’면서 이ㆍ낙ㆍ연이라는 이름에 물 수(水)가 두 개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고 애교를 부렸다 한다. 본인 스스로 화투로 치면 비 광(光)이라고도 한다. 다른 광 없이는 스스로 힘을 못 쓰는 존재로 자평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국무총리를 절대권력자가 싫어 할리 없을 것이고, 어느 누가 작심하고 적의(敵意)를 품겠는가. 물론 이러한 무난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처신에도 불구하고 한국정치는 한국의 국무총리를 5년 내내 고스란히 보존시켜주기에는 너무도 역동적이고 절대 불가능적이라 역설할 수 있다.

한국 국무총리, 영욕의 역사
한국 국무총리는 제헌헌법에서부터 등장하여 아주 한시적인 시기에 한해서 폐지되었을 뿐, 지금까지 줄곧 유지되고 있다. 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제도적 야합이었던 제헌헌법에서는 대통령ㆍ부통령ㆍ국무총리가 모두 존재하는 상황까지 연출되기도 하였다. 힘이 있는 국무총리는 제2공화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재임ㆍ재직 일수가 넉 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이 중에는 겨우 두 달에 불과한 경우도 두 차례나 있었다. 제45대 이낙연 총리는 오래 갈 것 같다라는 가상을 해 보았지만, 최장수 총리로서는 제9대 국무총리 정일권의 6년 6개월(2,416일), 제11대ㆍ31대 김종필 총리의 6여 년(2,172일)의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긴 기간은 군사정권의 장기집권 하의 상황이어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국무총리 제도에 대해서 가장 흔히 제기되는 비판은 이론상 대통령제와 어울리지 않게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임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헌헌법 제정시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시작된 국무총리는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제 하에서 방탄총리와 대독총리로 불리며 그 위상을 제대로 인정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역대 국무총리들이 실질적 권한이 없으면서 대통령이 져야할 정치적 책임을 대신함으로써 대통령직을 성역화시키는 반민주적 역기능을 해왔다는 악평을 받고 있는 것이 한국 국무총리의 현주소이다.


현행헌법과 행정체계에서도 국무총리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국무총리는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현행헌법 하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기에 최종적 책임자가 아니다. 동시에 행정 각부의 장을 지휘감독하나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 측면에서 각 행정각부의 장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일인지하만인지상이라는 헌법적 지위를 실질적으로 확보하고 있지 못한 셈이다. 이와 같이 한국 국무총리는 제도의 존재가치가 매우 취약하다. 이에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국무총리직은 부통령제로의 전환 내지 대체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무총리 대안으로서 부통령제 도입
부통령제 제도는 미국에서 최초로 도입이 되었고, 짧은 미국 헌법사에서도 그 권한과 위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에는 일상적으로는 상원의장 업무를 수행하고, 대통령 궐위시에도 그 직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권한을 ‘대행’하는 것에 그쳤다. 한국의 국무총리만큼이나 유명무실한 존재였던 미국에서의 부통령제가 최근에 들어와서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런닝메이트로서 부통령의 존재가치와 권한강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 특히 1967년에 통과된 수정헌법에서는 부통령의 궐위에 대비하는 조항까지 신설하여 미국헌정의 현실에서 부통령직의 중요성이 매우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헌정에서 부통령제의 도입이 현실화 될 때 어떤 형태로 부각시켜야 될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과 토론이 필요하다. 왜 부통령제를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에 있어서도 다양할 수밖에 없으며 제도적으로도 그렇게 완벽하지 않다. 각 주(州)의 자치권이 강하게 보장된 미국연방국가에서의 부통령제와 한국헌정에서의 부통령은 엄연한 차별과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지역 간 대결양상으로 이루어질 경우 정ㆍ부통령 후보는 지역연합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통령의 경우 지지기반이 취약한 지역에서의 득표를 위해 지명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으로 그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을 때 과연 제대로 대통령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지역연합이 아닌 정당 간 연합에서도 동일한 문제는 발생한다. 미국과 같은 양당제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에서 다수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소수정당과의 연합을 목적으로 부통령을 지명할 경우 부통령의 권력승계는 대통령제의 안정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취약한 소수정당의 집권이라는 상황으로 묘하게 전환되어버릴 것이다. 대통령의 유고시 부통령이 승계하면 정권이 교체돼버리는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한국헌법에 부통령제를 도입할 경우 대통령과 부통령의 선출방식이 가장 핵심적일 것이다. 대통령 후보가 지명하는 방식과 정당투표라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대통령 후보 당선자가 여러 가지 정치적인 목적으로 런닝메이트를 선정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다. 그 외 전체후보자 중 제1 득표자를 대통령으로 하고, 제2 득표자를 부통령으로 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은 정당대의민주국가 현실에서 선거에 패배한 경쟁자를 부통령으로 선출한 것으로 부적합하다.


미국에서의 부통령제에 대한 논쟁도 여전히 다양하여 폐지론과 권한강화론 등 새로운 변화를 논의하고 있다. 대통령 중임제로의 개헌을 할 경우 한국에서는 국무총리제의 존치여부와 부통령제 도입 방법에 대한 논의가 더욱 다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제 하에서도 한국헌법사에서 지속적으로 존재해온 내각제적 전통으로서의 국무총리를 쉽게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책임총리로서의 이낙연
‘책임총리’라는 단어는 법률용어는 아니며 연혁적으로 참여정부의 이해찬 총리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정치적 용어에 불과하다. 어떻게 해야지 책임총리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하기도 어렵다. 들리는 말로 문재인 대통령이 이낙연 총리에게 책임총리를 해달라 하면서 ‘이해찬 총리같이 하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해찬 총리를 소신과 힘을 가진 국무총리로 상정했던 것 같다. 걸맞는 시스템으로서 매 주 월요일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가 1시간 30분 주례회동 하는 것을 그 근거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이 주례회동이지 실질적 성격은 주례보고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책임총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이낙연 총리의 무난함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소리가 많다.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화투짝의 비 광(光)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라든가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한 막걸리론도 책임총리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표현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면 책임총리를 잘할 수 있다고 단정짓는 것 또한 곤란하다.


내년에 총리직에 대한 어떠한 개헌이 있다 하여도 차기 대통령에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낙연의 제45대 국무총리직 수행은 개헌과 별개의 문제다. 잘 살펴보면, 대통령과 야당 그리고 국민들이 원하는 책임총리직 수행방법은 이미 헌법과 법률에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제86조 1항을 제일의 업무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국회동의에 대한 의미를 무시하거나 축소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국무총리는 대통령 보좌 외에도 야당과의 정치, 국민과의 정치도 국무총리의 업무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법은 국무총리의 권한과 역할로서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 국무를 조정하고 통할하는 것이라고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국무총리의 역할은 대통령만큼이나 광활하다 하겠다.


헌법 제87조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행사한 국무총리는 역대에 없었다. 이낙연 총리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대통령 조기 및 보궐선거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에서 제청권 행사는 타이밍상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현재의 내각이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장기간 순항할 수는 없는 것이 정치현실이기에, 향후 이낙연은 제청과 해임건의를 언젠가는 행사할 수 있다. 특히 거의 발생하지 않겠지만 국무총리는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대통령의 권한을 임시적으로 이어받기에 국무총리에 대한 국민적 정체감은 문재인 정부의 아주 큰 정치적 자산일 수 있다.


책임총리의 강조는 국무총리의 위상과 국정의 안정감 및 역동성을 보장하기에 하면 할수록 문재인 정부에 좋다. 특히 지역적ㆍ이념적으로도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의 결합은 ‘대통합의 극대화’를 보여주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총리 제안은 돋보였다 하겠다. 이제 이낙연 총리가 답을 할 때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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