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탁구커플 안재형-자오즈민 결혼 비사

염돈재 교수의 외교이야기3

임윤희 기자입력 : 2017.09.07 15:35
편집자주우리와 중국이 국교가 없던 1989년 12월 우리 탁구대표 안재형 선수와 중국 자오즈민(焦志敏) 선수의 결혼은 이념의 장벽을 넘은 세기적 로맨스였고, 우리 국민들이 북방정책의 성과를 피부로 느끼는 계기가 됐다. 이들의 결혼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염돈재 교수를 만나 그 뒷얘기를 들어본다. / 편집자

▲염돈재 교수
청와대 정책보좌관실이 안재형-자오즈민 결혼을 도와주게 된 이유는
“1989년 6월 14일 탁구협회 팀 닥터이고 안재형 선수의 후원자인 영동정형외과 양원찬 원장이 안재형 선수와 함께 청와대로 박철언 정책보좌관님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했다. 처음 나는 청와대가 개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 북한을 자극해 한중관계 발전에 장애가 될 수 있고, 만에 하나 이들의 결혼 생활이 순탄치 않으면 비난이 청와대로 향할 가능성이 있고, 성사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간여하게 됐는가
“이들이 사랑이 결실을 맺도록 도와주라는 박철언 보좌관님의 강력한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토 결과, 보안만 잘 유지되면 중국정부의 우리에 대한 태도를 타진해 볼 수 있고, 중국정부가 대한(對韓)정책을 재검토할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북방정책의 성과를 피부로 느끼게 하는 등의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 추진하게 됐다.”

1985년 이후 안재형-자오즈민의 열애설과 결별설이 모두 많았는데 이들이 결혼을 확정한 것은 언제쯤인가
“1984년 파키스탄에서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 대회 때 처음 만나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큰 진전이 없다가 1987년 11월 서울 아시안컵 탁구대회에서 자오즈민이 안재형 선수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 승낙을 받고, 1988년 8월 양원찬 원장이 하얼빈을 방문, 자오즈민 가족의 승낙을 받아 결혼이 확정됐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항상 언론의 표적이 됐고 성적부진 시에는 사랑 때문이라는 비난을 받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중국정부가 이들의 결혼을 허가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1988년부터 여러 번 있었는데 꼭 정부 지원이 필요했는가
“일본 언론에서 몇 차례 보도됐으나 확인이 안 됐고 특히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의 개방 정책이 후퇴돼 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따라서 두 사람은 미국으로 갈 생각으로 자오즈민이 영어 공부에 열중하기도 했으나 결국 한국 정착을 결심하고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박철언 팀에서는 무슨 지원을 했나
“첫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차오스(喬石) 부수상, 장바이파(張百發) 북경시장, IOC 위원 등 중국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서신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 문안은 외교관인 박동선 행정관이, 번역은 중국 전문가 김장환 행정관이 담당했다. 글씨는 국전 추천작가 김구해 씨가 썼다. 둘째, 스웨덴 앵비탁구클럽이 자오즈민과 안재형을 초청토록 하고, 병역 해당자인 안재형의 해외 여행을 위해 비밀리에 체육회 해외파견심사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에는 탁구협회 김창제 전무가 큰 도움을 주었다. 셋째, 두 사람의 스웨덴 여행 경비, 신혼집 및 살림 마련 등 결혼 후 정착도 지원했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보안이 누설되면 성사도 어렵고 부작용이 클 것 같아 특히 신경을 많이 썼다. 자오즈민 출국과 중국대사관 혼인 신고 때까지가 중요했는데 동아일보가 약속을 어기고 10월 18일 이틀 먼저 보도해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19일 오후 우리 대사관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다음날 중국대사관에 가자 대사관 직원들이 자오즈민을 환대해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당시 최원석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아파트를 제공하고 현대백화점이 혼수를 지원하는 등 많은 후원자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초에는 현대 정주영 회장님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최원석 회장이 아파트 제공과 혼례비용 부담을 제안했다. 고려합섬 장치혁 회장께서도 자오즈민의 은퇴식 경비와 두 사람의 스웨덴 여행경비 13,000달러를 지원하고 자오즈민 가족과 관계자들을 위해 만찬을 베풀었고 현대백화점이 혼수와 가재도구를 협찬했다.”

최원석 회장은 24평 아파트를 제공했다. 좀 작지 않았나
“최원석 회장은 그보다 좀 큰 것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자칫하다가는 권력자와 재벌의 과도한 선심으로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이 걱정됐다. 고심 끝에 양원찬 원장과 함께 광고회사 코래드 김 사장에게 가 자오즈민 커플의 광고 가치를 알아봤는데 이미지가 좋으면 연간 건당 1~2억원은 가능하다고 해 안재형 선수에게는 미안했지만 결국 이미지를 위해 아파트를 25평 이하로 줄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1989년 11월 11일자 조선일보에는 재벌 기업과 지도급 인사들이 자오즈민에게 과도한 선심 공세를 했다는 비난 기사가 게재됐다. 왜 그랬나
“원래 전자제품과 가재도구는 스포츠서울이 안재형 선수의 수기를 연재하는 대가로 업체의 협찬을 받아주고, 혼수 쇼핑은 동대문시장에서 하는 등 검소하게 하기로 했는데 양원찬 원장이 현대백화점의 협찬을 받는 게 좋겠다고 해 비공개리에 협찬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1,500만원 상당의 가구와 혼수를 제공한 백화점에서 언론에 알리고 자오즈민 방문 당일 사장 등 간부들이 도열해 환대하면서 그런 보도가 나가게 됐다. 또 이틀 후 경향신문에도 비슷한 기사가 게재돼 경위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해야 했다.”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결혼 모습=자료제공 염돈재 교수

한국과 중국에 국제 체육 커플이 많은데 유독 자오즈민-안재형만 영웅 대접을 받고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이유는
“안재형-자오즈민 부부의 현명한 처신 때문이라 생각한다. 입국 첫날 자오즈민이 말하는 것을 보고 25살 운동선수가 어떻게 저렇게 현명할까 싶었다. 자오즈민은 항상 중국정부와 체육계에 감사했고 태극마크를 달고 중국선수와 겨루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항상 겸손하고 검소했다. 그리고 첫 광고모델료를 받자 중국 체육회에 3,000만원, 흑룡강성 탁구협회에 1,000만원, 우리 불우이웃돕기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당시 중국인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그리고 성격도 활달해 TV 일일연속극과 양국 각종 행사에도 자주 출연해 한중 우호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인품과 노력과 정성의 결과라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값진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염돈재 건국대 초빙교수
1943년 8월 27일, 강원도 강릉 /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박사 / 청와대 비서관 / 주독일 대사관 공사 / 국가정보원 제1차장 /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원장 /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한독통일자문위원회 위원 / 現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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