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한민국 정치노트]대한민국 국회의사당 변천사

편승민 기자입력 : 2017.09.08 09:30
편집자주<더리더>는 창간 3주년 특집 기획으로 '대한민국 정치 노트'를 마련했다. 그 두 번째로 우리나라 정치의 역사가 담겨있는 국회의사당의 변천사를 알아봤다.

여의도동 1번지 국회의사당은 언제 생긴 것일까? 국가 위기 상황이 되면 정말 국회의사당 돔이 열리면서 로봇 태권브이가 나타날까? 광복과 한국전쟁 발발, 그리고 여의도 국회 시대가 시작되기까지 대한민국 국회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제1대 국회는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로 시작했다. 국회의사당은 경복궁 내에 있는 구 조선총독부 건물을 사용했다. 그러나 2년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국회 역시 전국을 떠도는 피난민 신세가 됐다. 국회는 대구문화극장, 부산문화극장 등을 전전하며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역할을 이어갔다. 1951년 6월부터 1953년 9월까지는 부산 경남도청에 있는 경찰 무술 연마장인 무덕전을 임시의사당으로 사용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1954년 6월 9일부터는 태평로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 새롭게 둥지를 틀면서 1975년까지 머무르게 됐다. 제9대 국회까지 오랜 세월 동안 태평로 의사당 시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태평로 부민관은 일제강점기 경성부민들을 위해 지은 최초 근대식 다목적 회관이었기 때문에 회의나 의사당 역할을 할 제반 시설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또한, 점차 늘어난 1,000여 명의 국회 직원을 수용할 수 없어 여러 업무 부처가 흩어져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1966년 2월 국회의사당 건립위원회가 생겼고, 1969년 7월 17일 제헌절을 맞아 여의도 국회의사당 기공식이 진행됐다. 사실 새로운 국회의사당이 지어질 후보지는 사직공원, 서울고교, 종묘, 말죽거리, 미8군 골프장 등 약 10여 곳이 거론됐다. 하지만 통일을 대비하고 국회도서관과 의원회관 등 부속 건물들을 짓기 위해서는 의사당 건물자리 외에 넓은 부지가 필요했다. 결국 서울시 한강건설계획 중 하나로 여의도 개발이 추진되면서 여의도 국회의사당 신축이 결정됐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330,580㎡(10만평)의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6층(높이 70m)의 건물 면적 81,452㎡(24,636평)로 6년 동안 지어졌다. 국회의사당을 상징하는 푸른색 돔에 관해 우스갯소리로 ‘전쟁이 발발하거나 국가 위기 상황이 오면 돔이 열리면서 로봇 태권브이가 나온다’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돔은 밑지름이 64m, 무게가 1,000t에 달할 만큼 크기와 위엄이 대단하여, 태권브이 이야기가 나올 법도 했다.
1975년 여의도 국회의사당 준공 당시 국회 사무총장이었던 선우종원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1,000t에 달하는 돔을 올려놓는 건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구조학 권위자였던 김형걸 인천대학장이 1,000t을 완벽하게 분산시키는 철골조를 설계한 장본인이라고 썼다. 이 돔은 황동 재질로 건축 당시에는 원래 붉은빛을 띠었는데 지속적인 산화 작용으로 지금은 푸른빛을 띠는 회록색이 됐다.돔을 지탱하는 것은 회백색 처마와 8각 기둥의 24개 각주다. 이 24개 기둥은 경복궁 경회루 석주를 본 따서 만든 것으로 24절기와 하루 24시간을 상징한다. 1년 365일 매시간 국민을 생각하며 의견을 담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1969년 기공식을 하고, 197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준공식을 가졌다. 단일 의사당 건물로서는 동양 최대 크기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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