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대표단의 소련 방문과 YS-박철언 갈등 내막

염돈재 교수의 외교 이야기④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입력 : 2017.10.13 11:15
편집자주1990년 3월 민자당 대표단의 소련 방문은 많은 화제와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김영삼 최고위원을 만나준 것이 세계적 빅 뉴스였고, YS-고르비 면담 내용에 대해서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고, 이 방문을 계기로 박 장관이 사임하는 등 민자당 내부의 갈등도 심화됐기 때문이다. 당시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염돈재 교수를 만나 뒷얘기를 들어본다. / 편집자

▲염돈재 교수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잊고 있지만 당시 신문을 보니 민자당 대표단의 방소는 큰 화젯거리였던 것 같다. 이유는
▶“시작부터 논란이 많았다. 박 장관이 김영삼 최고위원과 함께 가는 것이 ‘수행’이 아니고 ‘동행’이라고 얘기한 것이 큰 논란의 대상이 됐고, YS가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만나는 등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고르바초프 면담 결과를 과장해 의혹의 대상이 됐고, 이 방문이 갓 통합된 민자당 내부 갈등이 표면화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김영삼 최고위원과 함께 소련 가는 것을 굳이 ‘수행’이 아니고 ‘동행’이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무위원은 여당 최고위원의 지휘 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행’이 아니고 ‘동행’이라는 거다. 법률가인 박 장관 시각으로는 맞는 얘기다. 또 YS와는 별도로 소련과 회담을 하기 위해서도 소련 측에 ‘YS 수행‘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둘 필요가 있었다. 거기다 3당 통합 직후여서 YS 견제 심리도 조금 작용했던 것 같다.”


-이 방문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게 됐는가
▶“YS는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인 1989년 6월 세계경제및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초청으로 방소한 적이 있어 그 인맥으로 대소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컸던 것 같다. YS의 소련 방문은 측근인 정재문 의원이 주선했고 정 의원은 버클리대 은사인 스칼라피노 교수의 도움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철언 장관은 왜 민자당 방문단에 합류하게 됐는가
▶“박 장관은 1988년부터 소련 외무성 등과 긴밀한 협조 채널을 갖고 있어 YS와의 동행을 원치 않았으나 YS의 요청을 받은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로 부득이 동행하게 됐다. YS는 북방 정책의 주역이자 현직 장관인 박 장관과 함께 가면 대표단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고르바초프 면담이 성사되면 박 장관의 북방 정책 주도권을 자기들이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방소 시 YS와 박 장관 간에 불화설이 널리 퍼졌는데 무슨 일 때문인가
▶“YS의 고르바초프 면담 내용과 대통령 친서 전달 문제가 직접적 원인이 됐다. YS는 소련 측과의 약속 때문에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측근들을 통해 고르바초프와 대통령실에서 50분간 회담하고 수교 원칙에 합의했다고 과장해서 흘렸다. 또 YS측이 노 대통령 친서를 전달하지 못한 것은 박 장관이 얘기를 안 해 YS는 친서 휴대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 박 장관이 그렇지 않다고 설명을 한 것이 불화 원인이 됐다.”


-YS와 고르바초프 면담 내용은 YS만이 알고 있는데 박 장관은 무슨 근거로 반론을 제기했나
▶“박 장관이 소련 측 고위 인사와의 회담 시 물어봤다.”


-같은 대표단 멤버가 소련 측에 그런 걸 물어본 것은 우리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박 장관님의 그런 능력은 탁월하다. 회담장에 앉자마자 “어제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김 최고위원을 만나주고 수교 원칙에 합의한데 대해 감사드린다. 두 분께서 수교 원칙에 합의했으니 이제부터는 세부 사항 협의에 들어가자”고 하자 소련 대표가 완강하게 부인하면서 사실을 얘기해줬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퇴근길에 갑자기 얘기할 일이 생각나 프리마코프 최고연방회의 의장 방에 들렀는데 김 최고위원이 있어 3-4분간 의례적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소련 측이 YS와의 만남을 그런 식으로 짠 것인데 YS와 측근들이 그 만남을 과장했다.”


-YS가 친서 휴대 사실을 몰랐다는 게 사실인가
▶“YS가 크렘린 궁에서 돌아온 후 박 장관님과 내가 YS 숙소에 올라갔다. 황병태 의원도 있었다. 박 장관이 “고르바초프 면담 시 친서를 전달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고 하자 YS가 “나는 하도 급해서 코트도 못 입고 갔다“면서 ”어떻게 박 장관이 좀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다음날 국내 언론에는 박 장관이 얘기 안 해서 YS는 친서 휴대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고 보도됐다. YS 측이 그렇게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다.”


-YS는 귀국 시 기내 회견에서 고르바초프와 1시간 정도 노 대통령 초청 문제 등 중요한 문제를 협의하고 중요 사항은 모두 답변을 들었으나 세부 내용은 노 대통령에게 얘기한 후 밝히겠다고 했다. 그 후 어떤 얘기들을 밝혔나
▶“귀국 후 기자회견에서는 고르바초프가 중요한 얘기를 많이 했다고 언급했고, 노 대통령과의 면담 후에는 “대통령 보고 때 비밀 내용이 많았다”고 했으나 노 대통령 보고 시에도 특별한 내용 없이 무용담만 길게 얘기하다가 노 대통령으로부터 핀잔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박 장관이 소련 측으로부터 받아온 메모를 통해 주요 논의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메모는 노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구두 답신으로 체르냐예프 대외담당 보좌관이 서명한 것이다.”


-민자당 대표단의 소련 방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것 같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나
▶“민자당 대표단의 방문이 한소 관계 발전에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다. YS는 박 장관이 접촉하지 않은 IMEMO를 통해 고르바초프 대통령, 야코블레프 최고위원 등 소련 고위급 접촉 대상을 대폭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대통령 등 고위 인사와의 면담 내용을 과장한 것은 북방 정책 추진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었다. 따라서 중요한 국가 간의 교섭은 정부 기관이 담당하고 정치인은 지원 역할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염돈재 건국대 초빙교수
1943년 8월 27일, 강원도 강릉 /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박사 / 청와대 비서관 / 주독일 대사관 공사 / 국가정보원 제1차장 /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원장 /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한독통일자문위원회 위원 / 現 건국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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