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양박(兩朴) 이후, 보수정치가 가야할 길

[박상철교수의 정치클리닉]

머니투데이 더리더 박상철 교수입력 : 2017.11.01 11:09

▲박상철 경기대 부총장
‘포스트 양박’이라 함은 한국 보수정치에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 시대 이후를 일컫는다. 아마도 박정희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양박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글이 처음일 것이고, 양박에 대한 절대 지지층에서는 그 무례함에 대해서 크게 격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박이라는 표현을 굳이 사용하는 것은 한국 보수정치에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이 숭모의 대상에서 탈피•극복되어야만 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양박’과 엇비슷한 의미에서 이제는 집권 정치세력이 되었지만 한국 야당사에는 ‘양김’이라는 정치 용어가 있었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말로서 양김은 민주당 전통의 매우 큰 준령(峻嶺)으로서 평가받는다. 무엇보다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교동계류의 가신적(家臣的) 숭모의 대상에서 탈피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로 진화•극복됨으로써, 현재의 문재인 정부로 진보정치가 재생산되고 있다. 이렇듯 한국 보수정치에서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의 탈피•극복•재생산이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양박’의 실체 규명과 극복의 길
한국 보수정치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의미 있는 인물은 별로 없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법적 단죄를 이미 받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가 없다. 양박 중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 보수정치에서 우뚝 선 준령(峻嶺)으로서, ‘박정희’라는 거대한 산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실체의 규명이 정확하고 객관적인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큼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살아온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만주국 육군 군관학교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편입학하고 만주국 군복무를 하였다. 일제강점기 타카기 마사오(高木正雄 たかぎ まさお)로 창씨개명을 하였는데 이 팩트를 특별히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 시절 창씨개명을 안 한 자가 대단할 뿐 대부분 수동적으로 창씨개명을 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사람처럼 받아들여지는 일환으로써 오카모토 미노르(岡本 實 おかもと みのる)로 제2차 창씨개명을 한 부분은, 사실이라면 식민통치 하에서 한 인간으로서의 수치로 치부하기에는 상당히 심각한 부분이다. 친일 행각을 덮어두지 않는 한국 역사에서 보수정치 지도자로서의 박정희 대통령의 이 시절에 대한 재평가와 해명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미화와 회피보다는 사실에 입각한 회고적 재해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해방 후 박정희는 장교 경험자를 찾고 있던 한국 광복군에 편입되고, 묘하게도 남조선노동당 하부 조직책으로 체포되어 1심에서 파면•급료몰수•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 정치파동과 이승만 전 대통령 축출계획에 연류된 사람들과 인맥을 같이하고 있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군 시절은 물론이고 정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수차례 사상 의심을 받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이 부분 또한 은폐보다는 솔직담백한 규명과 재해석을 해내는 것이 한국 보수정치의 영역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정치는 5•16군사정변에서 시작되었다. 제2공화국의 몰락과 5•16군사정변이 조국 근대화라는 혁명적 전환기에서 불가피한 것이었는가는 분명한 논쟁거리다. 진보정치의 영역에서는 반역적 군의 정치개입이라고 단정짓고 있지만, 소위 근대화 및 산업화의 보수정치에서는 5•16군사정변은 경제발전의 측면에서는 대한민국 발전의 대전환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러나 3선 금지를 폐기한 제6차 개헌과 유신체제를 탄생시킨 제7차 개헌은 ‘장기집권’ 외에는 달리 설명할 해명거리가 그다지 많지가 않다.


일제•해방정국•장기집권의 박정희 부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불가역적 팩트이다. 반면에 중공업적 경제성장론과 한일협정의 불가피성은 사뭇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논쟁에는 거듭되는 토론이 불가피하다.
과연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비약적 발전에 ‘절대적 존재’였나에 대한 여러 번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경제에서 박정희의 스타일이 ‘절대적 유산’으로서 작동되고 있는 것에 대한 논쟁에도 거듭된 답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 보수정치에서 박정희의 존재가 불변의 가치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해명과 해석이 이어져야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등 보수정당들과 보수 사회과학자들의 역사적 사명이자 정치적 임무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호소하는 친박 단체와 태극기 집회의 몫은 결코 아니다.


‘양박’의 반면교사로서 양김정치(兩金政治)
양박의 박정희와 양김의 김대중은 정치적 라이벌이었다. 두 분 다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정치적 부침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김대중의 햇볕정책과 경제발전 및 사회복지 등이 재평가를 받고 있지만 박정희 또한 보수정치의 변화에 따라서 그럴 날이 온다. 김대중의 정치적 부활 현상이 단순히 정권교체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만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이었던 동교동계가 김대중과 야당정치의 중심을 계속해 왔다면, 김대중은 진보정치의 준령과 후광(後光)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대중 정치의 중심이었던 동교동계가 주변부로 형해화(形骸化)되고, 새로이 진화된 노무현 정치와 문재인 정부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준령•후광•부활 등이 운운 되고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제1 보수야당인 자유한국당이 환골탈태하지 못하고, 변신과 변장에 연연한 것 같아 보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고 친박의원 몇 명을 제명시키면, 과연 한국 보수정치의 본당이 되는 것인가. 자유한국당의 밖에 있는 또 다른 작은 보수야당인 바른정당과 보수정치의 논쟁은 필요 없고, 분열 이후 봉합을 시도하는 것이 과연 보수의 통합인가. 지금의 한국 보수정치는 힘과 숫자 싸움 보다는 토론과 논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자유한국당 안에서의 논쟁 못지않게 바른정당과의 토론, 그리고 보수 지지층 및 전 국민과의 대화가 공당(公黨)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핵이라는 지금의 한국적 상황에서, 보수 정객으로서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와 바른정당을 대표하는 유승민 의원 등의 안보관이 안정감이 없고 뿌리가 없는 듯해서 아쉬움이 크다. 만약에 이들의 대북정책론이 박정희의 자주국방론과 통일관(선개발 후통일)•핵개발 추진 등에 근거하고 계승•발전시킨 논리였다면 현실성과 족보 있는 정견으로 비춰지고 그 정치적 힘도 클 수 있다. 전체적으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리만큼 비판적일 수 있지만, 한국 보수정치에서는 새로운 해석과 재구성을 통하여 박정희를 보수의 연혁으로 삼을만한 것을 제작하여야 한다. 탄핵이라는 정치적 비운을 맞이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포함한 양박의 보수정치는 한국 보수정치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할 정치적 뿌리이지 제거의 대상은 아니다. 현재 자유한국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근혜 및 친박 제거 작업은 보수정치 과정으로서는 낙제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새로운 보수의 탄생도 충분히 예견된다.


요컨대, 보수정치의 가장 큰 강점은 전통과 통합을 중시 여김으로써 안정감을 보여주는데 있다 하겠다. 지금 보수 야당들은 양박으로 일컬어지는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합리적인 재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보수의 재구성을 고민할 때이지, 보수영역의 땅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박상철 교수
법학박사
경기대학교 부총장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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