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평, 조미숙 여주곤충박물관 대표 ‘아이들’을 위해 환생한 박물관

‘곤충박사 아들’을 둔 교육과 체험이 있는 농업회사 법인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입력 : 2017.11.08 10:43
편집자주농가경제 활성화를 6차 산업이 책임지고 있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 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다.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김용평(우)여주곤충박물관 대표, 조미숙(좌)여주곤충박물관 관장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남들 다 하는 생각, 세상에 떠도는 편견을 뛰어넘어야 독창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민간에서 운영하는 곤충박물관 중에 마니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김용평 여주곤충박물관 대표의 말이다.
“각도를 비틀고 새로운 시선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나만의 경쟁력이 된다.”는 김 대표와 조미숙 관장의 여주곤충박물관 창립 스토리는 흡사 맹모삼천지교를 보는 것과 같다. 곤충을 좋아하는 아들과 새를 좋아하는 딸의 학업을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곤충과 새를 매개로 학구열에 불을 질렀다. 그 결과 서울 목동에서 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했던 아들은 3개 국어를 하는 신동으로 인정받았다. 외국어 역시 곤충들을 더 탐구하기 위해서 공부한 것이었다.
그 다음이 바로 박물관이었다. 겨울 우연히 지나던 여주의 한 곤충박물관이 폐관 위기에 빠진 것을 보고 두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엄마 여기 우리가 하면 어때? 곤충들 내가 다 돌봐줄게.”라고 말한 것이 출발이다. 아이들이 원한다면 무조건 직진만 하는 엄마 조미숙 관장은 그 길로 아이들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갔다.
‘내 자식들이 놀고 싶어 하는 곤충과 새들의 놀이터를 만들자’는 단순한 시작이었지만 지금의 여주곤충박물관을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 원동력에 공감하는 엄마들과 미래 곤충 박사들이 한번 찾는 박물관이 아닌 자주 와서 놀고 배우고 연구하고 가는 체험하는 박물관으로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이번 ‘농촌은 Jump-up’은 경기도 여주시의 375 아울렛 내에 위치한 여주곤충박물관을 찾았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전 세계의 희귀 곤충을 볼 수 있는 표본전시실부터 곤충과 파충류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체험관까지 다양한 테마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곤충을 보고 만지는 체험을 넘어 곤충을 통한 아이들의 상담 치유까지 꿈꾸는 김용평, 조미숙 여주곤충박물관장 부부를 만났다.


-곤충박물관의 설립 스토리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곤충으로 돈을 벌 작심으로 여주에 온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들 때문에 시작하게 됐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랍스터, 열대어, 소라게, 파충류 등 다양한 생물을 키우는데 열성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곤충을 너무나 좋아해 나중에 곤충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한번은 아들을 위해 여주 매룡리에 있던 곤충박물관에 방문했는데, 당시 그 박물관의 주인이 그곳을 곧 처분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들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 박물관을 살리고 싶다고 말하더라. 겨우 달래 집으로 돌아왔는데 며칠 뒤 그분한테 전화가 왔다. 아들이 울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며 박물관을 인계받을 생각이 없는지를 물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들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빨리 여주로 이사를 가자며 보채기 시작했다. 당시 아이들이 목동에서 공부를 꽤 잘하고 있었고, 남편의 직장도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내려갈 순 없었다. 아이를 혼내도 보고 달래기도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 않나. 결국 아이의 뜻을 꺾을 순 없었다.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곤충을 계기로 나도 무언가를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곤충으로 교육도 시키고 박물관도 해보자 하며. 그런 점에선 내가 맹모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계기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사업으로 발전시켰으니 말이다. 물론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거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곤충을 좋아하는 아들로 인해 우리 가족 전체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특이하게 농업회사 법인이다
▶“아까 말했던 매룡리 박물관을 인계받으면서 2012년에 간이 사업자로 여주곤충박물관을 시작했고, 규모가 커지면서 2015년 2월에 농업회사 법인으로 전환했다. 사립 곤충박물관으로는 우리가 거의 1호다(등록 접수한 상태). 그래서 아마 이 분야가 생소할 거다. 분류상 곤충은 기타 동물에 포함되어 축산에 해당한다. 사육장에서 소와 돼지를 기르듯 이곳에선 곤충 사육장에서 곤충을 기르고 관리한다. 우리는 축산업을 하는 농민인 셈이다.
남들처럼 농업으로 접근했다면 아마 진작 문을 닫았을 거다. 농업을 1차 산업으로만 보는 것이 고정관념이다. 곤충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1차 산업과 그것을 매개로 하는 교육용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처음부터 관람객이 많은 편이었나
▶“사실 처음에는 박물관 운영을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에 관람객 수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그저 아이가 곤충을 좋아하니까 세컨하우스를 만들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온 가족이 함께 곡괭이로 땅을 갈며 조금씩 박물관을 꾸려가면서 서울에만 살았다면 할 수 없었을 체험을 한 것에 의의를 뒀다. 그러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때 본격적으로 관람객을 받았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수가 늘어났는데, 바로 우리 박물관의 영업왕인 아들 덕분이었다.
아들은 자신의 곤충 놀이터에 사람들이 놀러 온다는 사실을 즐겁게 여겼다. 스스로 곤충도감을 보고 알게 된 지식들을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하며 그야말로 곤충전도사가 됐다. ‘그 박물관에 가면 초등학교 6학년짜리 곤충박사가 있어요’라는 입소문을 타게 된 거다.”

▲조미숙 여주곤충박물관 관장

-전시관들도 아들이 직접 꾸민 건가
▶“모두 아들이 한 건 아니고 가족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낸 결과다. 사실 아이들이나 곤충을 좋아했지 남편과 나는 아무런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귀농을 한 상태였다. 어찌되었든 시작하게 된 일이었고, 그렇다면 즐겁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곤충에 대해 모르는 부분은 아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따로 시간을 내 공부하기도 하며 박물관을 손수 꾸며 나갔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며 흥미로운 체험 동선을 고심한 건데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다(웃음).”


-연 방문객은 어느 정도인가
▶“작년까지는 대략 7만 명이 방문했고, 올해는 8만 명 정도 예상하고 있다. 아울렛 내부로 이전한 만큼 신규 관람객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여주375아울렛에는 올해 여름인 2017년 6월 들어오게 됐다. 맨 처음 매룡리의 박물관을 인계받고부터 계속 이사의 생각은 있었다. 그래서 2013년에 옮겨갈 장소를 정했는데 당시 박물관 허가를 받지 못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붕 뜬 상황이었다. 정말 난감한 상태에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다가 여주시 문화관광과에 제의를 해 아울렛으로 옮기게 됐다.
박물관 설립 취지에 맞지 않는 듯하여 이사하기 직전까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다니며 박물관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관람객들이 찾아오기에 접근성이 좋아졌다. 또 아울렛 상권 활성화에 일부 기여하면서 서로 윈-윈 하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박물관 개관 이후 손님이 급격히 늘었다는 통계 자료를 보여주면서 박물관 관람객들을 위한 무료쿠폰을 제공할 정도다.”


-여주곤충박물관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교육이 함께 있는 박물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아이를 위해, 그리고 아이에 의해 이 박물관을 시작한 것과 다름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곤충을 통한 교육이란 부분에 나름대로의 경쟁력이 생겼고, 그게 다른 체험형 농가들과의 차별점이 된 것 같다.
곤충을 너무 좋아했던 아이를 키워온 엄마의 교육법과 스토리가 우리만의 경쟁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박물관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우리들의 스토리가 관람객들과 공유되면서, 곤충 전시와 판매 이상의 것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곤충을 통한 교육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우리 아들은 곤충이란 관심사를 통해 외국어 공부를 한 케이스다. 한번은 일본에 있는 곤충박물관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가이드에게 통역과 설명을 해주지 말라고 일부러 부탁을 해가면서 박물관을 보고 돌아왔다. 그 뒤로 아이가 스스로 일본어 공부를 하더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찾아서 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중국어와 일본어를 마스터했다.
이런 경험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우리 박물관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에서의 곤충 체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를 계기로 자기주도 학습을 체득하는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있다. 현재 박물관 내에 곤충 연구소도 있는데 그곳에선 아이들이 관심 있는 곤충을 관찰·연구하고 보고서까지 써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가진 직원들이 그 교육을 담당하기도 한다. 보고서를 한 번 써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게 몇 번이고 지속될 수 있게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다. 예컨대 한 달 뒤, 아니면 6개월 뒤에 와라 하고 약속을 하는 거다. 그렇게 하면서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키움과 동시에 저희 입장에서도 박물관 체험이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꾸준히 계속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보고 있다. 이런 모든 노력들이 모여 우리 박물관을 찾게 하는 매력으로 키워졌다고 생각한다.”


-6차 사업자로 인증을 받았는데
▶“계획적이었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6차 산업으로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농업도 물론 마찬가지겠지만 곤충을 사고파는 농장 사업은 계절적 조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11월부터 4월경까진 수요가 아예 없을 뿐더러 생산을 한다고 하더라도 원가가 너무 많이 든다. 그 기간에는 그냥 문 닫고 손가락을 빨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다. 그런 사실을 2012년까지도 몰랐다. 실제로 부딪치면서 2013년도부터 알게 됐다. 경쟁력을 갖추게 된 건 그 뒤고, 초기엔 말 그대로 생계유지를 위해 체험형 박물관으로 발전시켰다.


곤충을 직접 만지는 체험을 좋아하는 우리 아들과 같은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전시된 표본을 눈으로 보는 것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곤충을 만질 수 있게 되니, 비수기인 겨울에도 아이들이 박물관을 많이 찾아왔다.
우리 박물관과 같은 체험, 혹은 관광의 콘셉트를 가진 6차 산업엔 홍보 부분에서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각각의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이 늘어나면 좋을 것 같다.”

▲김용평 여주곤충박물관 대표

-경영혁신 중소기업 인증도 받았다. 메인비즈 인증을 받은 기업은 여주곤충박물관이 처음이라고 들었다
▶“사실 메인비즈 인증의 경우 우리 박물관은 자격도 부족하다. 그러나 미래 발전 가능성 부분까지 평가를 해주어 인증이 가능했다. 아까 말했듯이 우리는 홍보가 절실하기 때문에 그런 마케팅의 일환으로 한 도전이었다. 메인비즈 인증을 받으면 TV나 라디오 등 미디어 광고 할인을 해주더라.


처음엔 관계자들이 당황해했다. 심사위원들에게 저희의 모든 스토리가 담긴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것에 공을 들였다. 이때 스토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심사위원들이 ‘당신들 정말 대단하다고’ 하며 사업계획의 점수를 크게 주신 거다. 그래서 1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아직까진 그 혜택을 보진 못했지만, 자신만의 스토리가 담긴 사업 아이템이라면 그를 활용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것 같다.”


-그간의 스토리가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적으로 들릴 것 같다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힘든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끼리는 ‘매일이 버라이어티였다’고 표현하며 그때를 회고한다. 아무것도 없던 때부터 직접 땅을 갈면서 박물관을 손수 만들어 나갔다. 심지어 남편은 설립 초반에 원래 다니던 직장과 박물관 일을 병행했던 터라 1년 넘게 여주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기도 했다. 체험 단위가 어느 정도 커지고 방문객도 많아지면서, 끝없는 변화의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왔다. 한 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또한 어떤 형태든지 귀농에는 항상 기본적인 육체노동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자기만의 무기가 있다면 못할 일도 없다고 생각하다. 이를 위해선 고정관념을 뛰어 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아직도 사람들은 1차 산업으로서의 농업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소 구시대적 발상인 것 같다. 그렇게만 생각한다면 발전 가능성이 적다.


얼마든지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것을 2차, 3차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거다. 우리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처음엔 돈도 없고 능력도 안 되니까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를 생산하는 농장에서 애벌레를 사다가 팔았다. 그렇게 시작을 한 뒤 차차 우리만의 색깔을 담아낸 산업으로 발전을 시킨 거고, 지금은 여건이 가능해진 만큼 박물관에서 자체적으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애벌레를 생산하고 판매한다. 다시 말해 귀농했다고 반드시 삽질을 하고 땅을 파야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또 그런 식으로 2차, 3차 산업이 1차 산업을 견인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확산되다 보면 앞으로 생산 농가들과 더불어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더 많이 열릴 수 있다고 본다.”


-스토리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강조하는데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무작정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박물관을 기획했다면 아마 실패했을 거다. 농민대학교에서 하는 귀농·귀촌 교육을 받으며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배웠고 그것을 우리만의 경쟁력으로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아이들과의 스토리와 곤충과의 스토리 우리 가족의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관람객들이 좋아하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체험을 넘어서서 곤충을 통한 치유를 테마로 아동 상담 프로그램을 확장시킬 계획이다. 그를 위해 동물 매개 상담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대개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대신 집중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런 특징을 잘 발휘하며 성장할 수 있게 상담 및 지도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혼자서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는 것으로 여가의 대부분을 보낸다. 그렇게 정서적으로 메말라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적어도 박물관에서 만큼은 곤충들과 놀며 힐링 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떤 박물관으로 성장시키고자 하나
▶“‘아이들이 행복한 박물관’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면 다른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아들 때문에 박물관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 지금 박물관에는 우리 아들에게 못해줬던 많은 일들이 현실화됐다. 초기에 비하면 곤충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실제로 만지는 체험을 허용한 범위도 훨씬 넓어졌다. 우리 가족만의 스토리가 계기였다면, 앞으로는 그런 행복한 추억을 더 많은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들과 나누며 발전해 나가고 싶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자꾸 또 가고 싶은 박물관’으로 기억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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