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가을의 마음 꽁치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입력 : 2017.12.05 18:38

▲고대화 대표 프로듀서

고대화 아우라 미디어 대표 프로듀서

이제 완연한 가을입니다.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찌는, 소위 천고마비의 계절입니다. 어제 TV에 가을이라고 제철 꽁치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어찌나 반가운지요. 지금은 사시사철 꽁치를 시장에서 살 수 있어 헷갈리기는 하지만, 사실 꽁치의 제철은 가을입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서 꽁치의 지방 함량이 높아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을철에 제 맛을 내며 그 몸이 칼 모양으로 길다는 뜻으로 꽁치를 추도어(秋刀魚)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어렸을 적 이렇게 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종종 시장에서 꽁치를 사오셨지요. 신문지에 돌돌 말린 꽁치들을 방안에 툭 던지시며 “꽁치 구워먹자” 하셨지요. 그런 날이면 어머니가 마당에서 연탄불을 피우시고, 석쇠 위에 꽁치를 구워서 온 마당에 자욱하던 흰 연기가 생각납니다. 적당한 생선 비린내가 섞인, 눈이 맵지만 아주 고소한 냄새가 마당을 온통 진동하지요. 지금 생각하면 가을 꽁치의 고소한 지방이 타는 맛있는 냄새지요.
꽁치는 우리 한국인에게는 예로부터 국민생선이라 할 만큼 서민 밥상의 단골 생선이었지요. 꽁치의 제철은 10~11월인데, 꽁치는 추운 겨울을 앞두고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기 때문에 지방 성분이 전체 몸의 20%에 달하여 가장 맛이 좋답니다. 꽁치는 껍질과 그 주변 살에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껍질은 벗기지 않는 상태로 조리하여야 합니다. 꽁치는 소금을 뿌려서 숯불에 구워 먹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에서는 꽁치회를 즐겨 먹습니다. 저도 수년 전 일본에 갔을 때 싱싱한 꽁치회를 일본 친구에게 얻어먹고는 너무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어가 ‘고소한 가을전어’라고 가을을 알리는 생선으로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꽁치가 가을을 알리는 생선입니다. 꽁치가 가을에 맛있어지는 것이 당연한 이유이겠습니다만, 좀 색다른 다른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꽁치내장 드셔보셨나요? 꽁치는 내장도 먹는 생선인데, 구운 꽁치의 내장을 먹으면 씁쓸하면서도 비릿한 묘한 맛이 납니다. 일본에서는 이 맛을 ‘어른의 맛’이라고 부른답니다.


▲일러스트=박유하


드라마로도 히트한 유명한 만화 <와카코와 술>에서 주인공 와카코는 소주 한 잔에 꽁치 내장을 집어들고 ‘짜지만 쌉쌀한 이 비린 맛’을 맛보고는, “흠. 나도 이제 어른이 됐나봐”라고 중얼거립니다.
명작 <도쿄 이야기>로 유명한, 일본의 3대 명감독 중 한 분인 오스 야스지로의 영화중에 <꽁치의 맛[秋刀魚の味]>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딸을 시집보낸 날, 주인공 히라야마는 항상 가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가 퇴근했을 때마다 언제나 반갑게 뛰어나오던 딸은 이제 더 이상 이 집에 없습니다. 히라야마는 딸의 방 앞에 서서 한참동안 빈방을 우두커니 바라봅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쓸쓸하게 주전자의 물을 한잔 마시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언제나 때가오면 누군가는 남아 있고 누군가는 떠나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걸, 노감독은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제목과는 달리 이 영화에는 꽁치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꽁치의 맛>은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아버지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푸르고 넓은 바다를 젊은 시절 종횡무진 힘차게 달리다가, 조금은 지친 모습이지만 담담하게 인생의 황혼에 다다른 꽁치랄까요. 씁쓸하면서 비릿한 어른의 맛, 황혼의 모습과 가을의 꽁치가 어울립니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차네요. 오늘은 퇴근 후에 마음 통하는 벗 오랜만에 만나, 허름한 선술집에서 연탄불에 기름 자르르 노릇노릇 잘 구워진 꽁치 두어 마리 올려놓고, 어렸을 적 저녁상에 아버지가 맛나게 드시던 그 맛있고 씁쓸한 가을꽁치를 안주로, 가을 저녁 이슥토록 소주 한 잔 기울여야겠습니다. 


대전고 졸업
서울대 /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KPMG 근무(한국 공인회계사)
SBS 기획팀, 제작본부 근무
SBS USA General Manager
SBS i 총괄상무
SBS USA 대표이사
2008년 SBS 연기대상 제작공로상 수상
2013년 아시아소사이어티 5주년 기념 공로상 수상(드라마를 통한 한류 확산 및 외교 기여)
前 올리브나인 미디어 대표이사
現 아우라 미디어 대표 프로듀서
現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 교수


▶본 칼럼은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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