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현(미실란) 대표,‘희망의 열매’를 따는 박사 농부

“당장 없으면 굶게 되는 밥은 생명 지키는 소중한 것”

머니투데이 더리더 가현정 객원기자입력 : 2017.12.13 18:29
편집자주1차산업의 대표격인 농업이 6차산업으로 변신 중이다. 농사만 지어 도매가로 농작물을 넘기던 농민들이 제조와 마케팅, 판매, 서비스까지 책임지는 6차산업의 최전선에 나서고 있는 것. ‘더리더’는 농민의 변화로 농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농촌을 찾기 바라는 마음으로 신규 코너를 선보인다. 농촌이 잘 살아야 우리 먹거리의 질이 좋아지고 삶이 풍요로워진다. 제2의 농촌 호황기를 만들 ‘新농민’들을 만나보자. / 편집자

▲이동현(미실란) 대표
‘가현정 작가의 명옥헌 초대석’ 열세 번째 주인공은 미생물학 박사에서 농부로 변신하여 쌀을 소재로 한 신개념 밥 카페를 운영하는 이동현 ‘미실란’ 대표다. 서울대학교와 일본 규수대학교에서 미생물학을 전공한 그가 친환경 쌀농사를 시작한 것은 ‘식(食)’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밥 카페의 성공을 계기로 농업회사 법인을 세워 이제는 대표적인 기업가로 손꼽힌다. 아름다운 자연이 함께하는 섬진강가 골짜기에 농촌과 농업에 희망을 만들어 보고자 2006년 둥지를 튼 미실란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꽃 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단순히 노래가사 그 이상으로 기업의 가치로 삶의 철학으로 구현해내는 이동현 박사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 참 행복했다. 아름다운 코스모스 가득 피어 있는 섬진강 가를 걷다 보면 밥 카페 미실란의 아늑한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림과 나눔을 실천하는 이동현 박사님의 연구로 빛나는 황금물결로 가득한 섬진강 근처 미실란 카페는 전남 곡성에 위치해 있지만 대한민국 대표 명소로 자리잡았다. 미실란으로 가는 길이 참 풍요롭고 따뜻하게 느껴진 이유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동현 대표 소개 부탁합니다
▶“전남 고흥 벽계라는 산골에서 나고 자란 시골 출신입니다. 이곳 곡성은 비록 고향은 아니어도 마치 어릴 적 고향에서 뛰놀던 행복한 기억 그대로를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한학자였던 아버지께서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늘 연구하는 자세로 일하셨습니다. 지금 제 모습도 어쩌면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제게 커다란 산처럼 계시면서 항상 많은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무언가를 가르치려 하신 것이 아니라 그저 생활하시는 모습 자체로 배움을 얻게 해주셨습니다. 미생물학 박사로 수많은 공부와 연구를 거듭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결국 농사를 짓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하곤 합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참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땐 모두가 가난했기에 어려움을 몰랐기에 고향에 대해 농촌에 대해 늘 긍정적인 느낌을 갖고 살았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절대빈곤에 시달리지 않음에도 사람의 인생을 수저에 빗대어 금 수저이니 흙 수저이니 하는 말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흙 속에 일하는 저야 말로 흙 수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금 보다는 생명을 살리는 흙이 더 좋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는 날까지 기쁨과 보람의 땀을 기꺼이 흘리겠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을 심는 연구를 지속하고, 사람들의 건강과 농촌을 지키는 소중한 벗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미생물학 박사가 농부가 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농업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순전히 운명에 의한 이끌림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부터 친환경 농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휴학하고, 친환경 버섯 농사에 도전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부터 버섯에 발생하는 병해충을 친환경으로 방제하는 연구를 자체적으로 했습니다. 그러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잠시 순천대학교에서 특별연구원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그 당시 고향에 계신 어머니 밭을 산 사람이 쌀 가공 사업을 하고 싶다며 이따금 도움을 청해온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도와주던 위치에서 직접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사업 시작과 함께 곡성에 정착해서,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연구실이 아닌 논으로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박사에서 농부가 된 저를 의아해하며 이동현이라는 이름보다도 ‘박사 농부’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품종을 연구하고, 그 쌀을 이용해 발아현미와 발아현미를 이용한 가공식품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박사 농부’라는 표현이 딱 맞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게만 들리던 단어가 이제는 친숙해졌습니다. 일본 국비 유학 중 미생물을 이용해 병·해충·암세포를 방어하는 연구를 하는 지도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도 친환경 유기농업에 헌신하라는 뜻인 것만 같았습니다. 일본에서도 병과 해충 그리고 암세포를 방어하는 미생물을 연구하게 된 것은 생각지도 않게 찾아온 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저를 건강한 땅과 생명 그리고 사람을 지키라고 이 길로 인도하신 것은 아닌지 소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박사이자 대학 교수가 농사를 한다는 것에 가족의 반대는 없었는지요
▶“물론 소명이라 생각하며 들어선 농부의 길이지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때론 거친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힘이 되어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제가 생각하고 꿈꾸는 세상을 위해 고민하고 연구한 대안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저를 잘 아는 가족들이기에 직접적으로 반대를 표시하지 않았지만, 내심 농부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까지 신념을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입니다. 아내는 항상 저에게 어렵게 배워 온 학문을 소중한 곳에 생명을 살리는 일에 활용되길 바란다고 강조했습니다. 언제나 아들을 믿고 지지해주신 어머니께서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큰 힘을 실어 주셨습니다. 연구실에만 있는 박사가 아니라 실제로 농사 현장에서 일하며 연구하는 농부가 되어 친환경 발아현미 관련 품종을 연구하고, 가공식품을 생산하여 판매하는 기업과 밥 카페 ‘반하다’까지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밥을 소재로 한 카페라는 발상이 새로운데요
▶“당장 밥이 없으면 우리는 굶게 되고, 생명이 위태로워집니다. 그만큼 밥은 생명을 지키는데 필수인 소중한 것입니다. 많은 돈과 멋진 차와 좋은 집도 밥 보다 더 중요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쌀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의 성품과 건강한 삶에 더없이 중요한 곡식입니다.

특히 친환경 쌀과 발아현미는 365일 국민 건강을 지키는 음식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친환경 농사는 땅과 자연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에 가장 중요합니다. 친환경 쌀과 발아현미가 대한민국에서 더 많이 생산되어 수입하지 않고 자급할 수 있는 시대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의 밥상과 건강을 지키는 가공식품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시작한 결과 지금은 대한민국 친환경 발아현미의 상징이 된 것 같아 힘들었던 것 이상으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유기농 쌀을 재배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 역시 처음에는 유기농 쌀을 재배하고 가공식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흰 가운을 벗어 던지고 논으로 뛰어 들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생각만큼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남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유기농 재배나 친환경 농사를 짓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농사일보다 더 힘든 일은 판로를 개척하는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간 4천여 명이 방문하여 교육과 견학을 할 정도로 미실란을 활짝 꽃피웠고, 발아현미 제품화에 박차를 가한 공로를 인정받아 ‘농업계 노벨상’인 대산농촌문화상을 받은 저에게 대체 어려운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정작 저에게 어려운 일은 힘든 농사일도 아니고 연구도 아니었습니다. 시골 출신으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지금껏 농촌 현장에서 살아왔고 농업계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해 오다 보니 농사일은 충분히 이겨 낼만한 일이었습니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은 돈 한 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아내와 개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발아현미와 가공식품을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좋은 품질로 생산했지만, 어디에다 팔아야할지 전혀 모르던 그 시절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현대 농부들에게 요구하는 역량이 그야말로 박사급 수준을 뛰어넘고, 다방면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농업계 노벨상, 대산농촌문화상 수상하기까지 과정을 설명해 준다면요
▶“대한민국 농업계 최고의 상이라는 ‘대산농촌문화상’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또한 앞으로도 농업과 농촌을 위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노력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산농촌문화상은 ‘농업은 우리 삶의 뿌리’라는 대산 신용호 선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농업과 농촌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을 발굴하여 그 공적을 치하하고, 우리 사회 전체의 본보기로 삼아 복지농촌 건설과 인류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고자 1991년에 제정한 상입니다.


일본 규슈대학에서 국비 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농하여, 독자적인 발아현미 제조 기술과 다양한 친환경 쌀 가공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화하여 우리 쌀의 경쟁력과 가능성을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고 상을 주셨습니다. 또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과 공동으로 300여 종의 벼 품종을 직접 10여 년간 시험 재배하여 친환경에 적합한 품종과 발아현미에 적합한 벼 품종 등을 연구하여 지역에 보급했고, 그 원료를 가지고 발아현미를 산업화시켰습니다.
무엇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벼를 직접 재배하며, 우리나라 주곡인 쌀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산·관·연·농민 협력의 성공적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받았습니다. 미생물학으로 노벨상을 받는 것보다 농부로서 대산농촌문화상을 받게 된 것이 제게는 더 큰 영광입니다. 상을 주신 이유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친환경 쌀과 발아현미의 가치를 알리는 일에 더욱 헌신하라는 뜻이라고 해석됩니다
▶“제가 밥 카페를 운영하는 것은 수익을 위한 사업만은 결코 아닙니다.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공미를 비롯해 건강과 무관한 가공식품과 인스턴트식품을 너무 많이 섭취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잘못된 상식으로 쌀이 비만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다이어트를 위해선 쌀밥을 먹지 말아야한다는 잘못된 이야기가 온 세상에 퍼지고 있어 참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최고의 건강 비결은 밥을 잘 먹는 데에 있습니다. 쌀을 비롯한 오곡이 우리 몸과 머리를 건강하게 유지시켜 주는데, 그중 으뜸이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365일 삼시 세끼 주식으로 먹어 온 쌀입니다. 현미를 발아시키면서 나오는 건강 기능성 성분들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는 ‘먹는 음식과 약은 그 뿌리가 같다’는 ‘약식동원’의 원칙과 가장 일맥상통하는 음식이 ‘발아현미’라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10년째 발아현미 관련 품종, 제품 개발을 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우리 친환경 쌀과 발아현미의 가치를 더 알리기 위해 농촌진흥청·대학·병원과 함께 숙원 사업이었던 임상 시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직접 농사지은 친환경 쌀을 비롯한 곡식과 생명이 살아 있는 들녘이라는 공간을 함께 제공하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인 목적은 이런 활동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 쌀의 소중함을 알리고자 함입니다.”

▲미실란 밥카페로 가는길

-미실란 밥 카페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 메뉴 소개 부착합니다
▶“우리가 생산에 중점을 두는 쌀은 친환경 발아현미입니다. 단순히 밥상 차림뿐 아니라 현미를 이용하여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은 한상 차려 먹기가 참 힘듭니다. 편리하게 먹으면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메뉴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이유입니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주식 대용이나 간식으로 인기가 있는 발아 오색 미숫가루, 그리고 겨울철에만 만날 수 있는 발아 오색 떡국 등이 있습니다. 곡성에 있는 미실란 밥 카페에서 뿐 아니라, 최근 전주에 개점한 밥 카페에서도 발아 오색미로 지은 건강하고 맛있는 밥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꿈 너머 꿈과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요
▶“지역과 기후, 친환경 그리고 가공에 맞는 품종을 연구하기 위해 일한지 어느덧 1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땅을 살리겠다고 참숯 가루를 뿌리고, 자운영과 헤어리베치 등 녹비작물을 심고, 볏짚을 갈아 넣어 주었습니다. 땅 살리기와 더불어 품종의 특성을 연구하여, 건강에 좋은 발아현미 제품과 이를 이용한 가공식품 등을 과학적 근거들을 가지고 제품들을 생산, 판매하는 일이 제게는 소명입니다. 친환경 유기농 쌀을 비롯한 곡물을 함께 생산하는 농업인들이 포기하지 않고 땅과 생명, 사람까지 살리는 농업을 오래도록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산골 소년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일본으로 넘어가 연구를 하고 교수가 되고 농부가 되기까지 꿈 너머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갈 것입니다.


요즘 꾸는 꿈은 천년 숲을 가꾸는 것입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미실란 터에 희망의 나무를 심을 겁니다. 제가 나무를 심고, 아내가 나무를 심고, 우리 아이들이 나무를 심고, 그 딸과 아들들이 또 나무를 심다 보면 언젠가는 ‘천 년 숲’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꽃과 나무로만 조성된 천 년 숲이 아니라도 미실란을 통해 대를 이어 농업 부흥의 꿈을 이어가며, 우리가 일군 아름다운 성장의 모델을 보고 다음 세대들이 더 나은 농촌과 농업 발전을 위해 도전하고 발전해간다면, 그것 또한 또 다른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가득한 ‘천 년 숲’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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