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나타내고 있는 통치행태의 특성 (1)

강석승 미래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입력 : 2017.12.26 14:26
강석승 미래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인천대 정책대학원 겸임교수
Ⅰ. 서언

김정은이 공식적으로 제3대 절대권력 세습자로 등장하기까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기인하여 그의 개인정보가 매우 빈약한데다 김정일과의 권력공유 또는 분점의 과정을 거의 거치지 않은 젊은 후계자라는 점으로 인해서 그 주된 관심은 주로 후계구축 과정에 집중되었었다. 이런 과정에서 김정일 시대와 비교를 통해 차이점이 제시되었고 후계구축 움직임과 특징 등이 논의되기도 하였으나, 김정은 정권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이후에는 김정은의 국정운영 능력과 리더십 등 정권의 안정성 부분이 보다 중점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이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김정은은 2인자인 장성택과 리영길 총참모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고위 엘리트 140여 명을 처형하며 ‘공포정치’를 확산시켰다. 이 같은 공포정치로 북한 엘리트 집단의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으나, 북한 내 국영언론은 김정은의 군대 지휘와 당내 활동들을 쉴 새 없이 보도하였으며,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선친과 조부가 오랜 기간 보유했던 역할들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았다.
이런 북한의 현실과 관련하여, 내외의 전문연구가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정권의 안정성 여부일 것이며, 이에 대해서는 여러 차원에서의 접근이 가능한데 그동안 주된 관심은 핵심 엘리트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권력구도를 분석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의 사망과 동시에 ‘김정은 시대’가 열렸다. 즉 2012년 4월 11일 당대표자회,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를 연이어 개최하고 김정은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추대하는 공식승계절차를 마무리했다. 김정은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공화국 원수에 추대됨으로써 한반도 절반의 새로운 상속인으로 공인됐다. 즉 선대 수령의 사망과 동시에 후계 수령으로 등극한 김정은이 당·정·군의 수위에 오름으로써 명실상부한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됐다. 왕조시대 왕위계승처럼 권력승계가 순조롭게 이뤄진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영도체계에 입각한 ‘수령제’ 통치시스템을 구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6년이란 기간은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이 김정은의 명성을 높이고 네트워크를 쌓으면서 그 주변에 권력을 집중하는 기간으로 규정할 수 있다. 첫 2, 3년 동안 그는 기본적 합법성을 다지고 정권을 유지하는 데 관심을 집중했으나, 이후에는 오직 3대 세습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고모부 및 이복형인 김정남을 비롯한 고위 간부와 주민 340여 명을 공개 총살하고 숙청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자행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2년부터는 선군정치로부터 다소 벗어나 핵-경제병진체제로 돌아서는 등 현재의 지도자를 둘러싸고 정권을 다소나마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최근에는 주요 정치 회담, 몇몇 당과 국영기업의 재배열 등이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변화는 올해 초 국방위원회를 대체할 국가사무위원회를 설립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김정은의 지도로 지속적인 핵무기, 탄도미사일 그리고 다른 전략적 가치가 있는 무기의 개발을 통해 국력을 입증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 캐리커쳐 /삽화=머니투데이 임종석 디자이너

Ⅱ. 김정은의 통치행태 특성

1.1 왜곡된 신화
북한당국이 전개하고 있는 최고지도자에 대한 우상화, 신격화 놀음은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가랑잎을 타고 일제 백만 군을 때려눕혔다’는 식으로 시작된다.
제2대 절대권력 세습자인 김정일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어, ‘김정일화라는 꽃’까지도 우상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그는 생애 처음 친 골프에서 ‘홀인원 11개를 치며 38언더를 쳤다’고 큰 소리를 쳐서 상식과 전혀 다른 황당무계한 그 거짓말에 전 세계가 조소(嘲笑)를 금치 못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이에 뒤질세라 북한당국은 김정은의 특수성, 즉 3대 세습의 천재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선전하고 있다. 즉 그는 ‘7살 때부터 명사수였으며 7개 국어에 능통하다’고 한다. 이는 곧 ‘김정은만 개방됐다’는 뜻인데, 2,500만 명의 인민들은 ‘우물 속 개구리’로 만들면서 유독 최고지도자인 김정은만이 7개 국어 능통하다고 하니, 이런 이율배반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북한정권은 마치 이런 선전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현지지도에 나선 김정은이 열심히 손짓하는 사진들을 자주 내보내곤 한다. 어떤 외신이 “북한의 미사일은 굉장히 위협적이다. 명중률이 높아서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떨어질 불량품이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듯이 김정은의 현지시찰도 어쩌면 그런 불량 미사일처럼 기술도, 예측도 불가능한 허세일 뿐인 데 보다 놀라운 점이 있다. 즉 간부들이 그의 양옆으로 쭉 늘어서서 마치 지난 정권 우리의 핵심적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의 말씀을 열심히 기록하듯이 김정은의 ‘현지 왜곡’을 매우 정중히 노트에 담는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진=노동신문
이런 김정은이 북한의 전반적인 국정운영을 떠맡은 지 올해로 6년째이다. 사실 그가 2011년 선친인 김정일의 뒤를 이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외부 세계에선 일말의 기대도 적지 않게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이도 매우 젊고 해외 생활도 해보았기 때문에 그가 선대의 절대 권력자들과는 달리 북한을 뭔가 새로운 길로 이끌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이런 기대와는 상반되게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발사를 강행했고 이어 2016년 4차·5차 핵실험과 중장거리 미사일·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등 반평화적인 핵·미사일 고도화에 집착하면서 유엔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자초하였다.
결국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왜곡된 신화’를 통해 카리스마를 부여받으려 하고 있고, 이를 통한 우상화 놀음에 진력하는 통치행태를 나타내고 있는 ‘김씨 일가’의 한 부류인 것에 다름 아니다.
집권 6년차를 맞은 북한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처럼 ‘기록영화’를 우상화에 적극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북한의 영화 이론 지침서인 『영화예술론』(1973)을 통해 집권초기 기록영화를 우상화 수단으로 활용했던 김정일처럼 김정은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며 체제 결속 행보를 가속화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작년 10월부터 기록영화 ‘혁명의 최전성기를 펼쳐 주시여’를 각종 대회에 연속 방영하며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군부대 시찰 및 식료품 공장 시찰, 수산사업소 방문, 200일 전투, 미사일 발사 등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업적으로 내세우는 내용으로 구성된 이 기록영화는 지난해 10월 22일 조선직업총동맹 제7차대회 때 처음 공개했다.

1.2 공포정치를 포장한 ‘인민애’ 강조 전략
김정은은 2011년 말 집권 이후 기존 북한 권력층의 실세를 숙청하는 이른바 ‘공포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해왔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인민애룰 강조하였다. 그 대표저인 예로는 2013년 8월 14일 ‘송도원야영소가 생긴 지 50년 만에 온 세상 어린이들이 찾아오는 행복의 요람이 됐다’며 야영소를 찾았던 김정은 일가의 인민애를 부각시켰으며, 2015년 9월 18일 나선시 수해복구 현지지도 사진에서도 김정은이 신은 운동화가 신의주신발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라는 증언이 나와 김정은이 인민들이 생산한 운동화를 신고 활동적인 현지지도 모습을 통해 ‘인민애’를 선전하였다.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잔혹성이 국제사회에 각인되었다.
반면 당창건 70주년을 맞아 북한군 2만여 명과 주민 10만여 명을 동원해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진행했으며, 이날 김정은은 육성연설을 통해 시종일관 인민과 청년을 위한 공화국 지도자라는 것을 어필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김정은은 전과 달리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연설 내내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인민애를 강조했다.
2016년에도 어김없이 김정은은 공포정치를 이어갔는데, 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7월 경에 처형되었다. 반면 2016년 12월에 김정은이 군(軍) 수산사업소에서 잡은 물고기를 평양 시민들에게 전달했다. 2017년 1월에는 김정은이 새해 첫 공개활동으로 평양가방공장 현지지도를 행했으며, 최근 개조공사를 마친 평양시 외곽 류경김치공장을 시찰하면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올해의 총진군길에서도 마음속 신들메(신이 벗겨지지 않도록 발에다 동여매는 끈)를 더 바싹 조여매고 내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2017년에 접어들어 평양가방공장과 김정숙평양제사공장(이불공장)을 시찰하는 등 새해 현지지도 대상으로 주민생활과 밀접한 경공업공장을 잇따라 선택하며 애민(愛民)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김정숙평양제사공장 둘러보는 김정은 /사진=노동신문
이런 가운데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은의 강원도 시찰 장면을 담은 기록영화를 공개하면서 김정은이 왼쪽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까지 그대로 노출시켜 의도가 주목된다. 통상 북한의 기록영화는 최고지도자를 우상화·신격화하기 위해 제작되는 만큼 ‘건강이상설’과 같은 의혹이 제기될 만한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정일도 2008년 8월 뇌졸중으로 57일간 공개활동을 중지했고, 2010년 방중한 자리에서도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이 포착됐지만 그의 기록영화에서는 김정일의 건강이상을 노출시킬만한 장면을 내보내지 않았다. 대신 북한은 김정일이 건강문제로 은둔할 당시를 ‘삼복철 강행군’이라 선전하면서 인민애를 강조한 바 있다.
북한 매체가 이처럼 김정은이 다리 저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 것 역시 일종의 정치적 ‘선전술’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의 신년사 속 자책성 발언을 ‘인민대중제일주의’로 포장하고 나선 데 이어, 그의 건강이상까지도 “아픈 몸을 이끌고 민생행보를 보인다”고 선전하는 데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3 노리개가 된 북한 장성들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북한 군부의 장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땅바닥을 박박 기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들의 이런 ‘생존의 몸부림’은 육군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2014년 3월 17일 김정은이 보는 앞에서 군단장 사격경기대회가 열렸다. 바로 이때 머리가 흰 장령(將領)들이 잔디밭에 배를 깔고 사격을 하는 뒤에서 김정은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사진이 북한 언론에 실렸다. 며칠 뒤 사단장들은 군장을 메고 숨을 헉헉거리며 백두산까지 행군 경기를 벌였다고 한다.
육군이 이러니까 공군은 한술 더 떠서 1995년부터 2008년까지 공군사령관을 지냈던 오금철에게 간청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영길 총참모장이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보다 훨씬 선배인데다, 항일빨치산활동 당시 김일성의 경위중대장을 지냈다는 오백룡의 아들이니 확실한 ‘백두혈통’인 셈이다. 오금철은 처음에 “내가 비행기 탈 나이가 아니다”며 거절했으나 “그 연세에 비행기를 타면 공군은 누구나 육체적으로 준비됐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냐”라는 집요한 청이 따랐다고 한다. 오금철은 재차 “몸이 아파서 비행기 조종이 힘들다”고 거절했는데 이번에도 “그럼에도 비행기를 타면 결사의 각오가 김정은을 감동시키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돌아와서 더는 어쩔 수 없이 전투기를 탔다고 한다. 그때가 바로 2014년 5월 10일 온천비행장에서 열린 ‘전투비행술경기대회’였다. 오금철은 각 비행전단장들이 경기를 마친 뒤 직접 미그기를 몰고 하늘에 올랐는데 이게 정말로 김정은을 감동시켰는지 오금철은 2014년 7월 17일 대장으로 진급했다. 황병서처럼 보름 만에 상장에서 차수까지 두 계급 진급한 인물도 있는데 오금철은 상장에서 대장까지 19년이나 걸렸다. 오금철이 비행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는 이야기는 곧 장령들 속에 소문이 퍼졌다. 그런데 “오금철이 비행을 두 번씩이나 거절한 이유는 나이나 병 때문이 아니라 전투기 추락이 겁나서였다”고 한다.
실제 북한 비행기들은 언제 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투기의 수명은 기껏 40년에 불과한데 북한 전투기의 90% 이상이 수명이 30년이 넘은 것들이고, 직승기는 90% 이상이 20년이 지난 고물들이다. 거기에 소련제가 질이 좋을 리도 만무하고, 요즘엔 러시아와 중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는데 애를 먹고 있어 사실상 이제 5년만 지나면 북한 공군엔 탈만한 비행기가 없어지는 셈이다. 올해 들어서만 미그-19기가 3대나 추락했고, 직승기도 2대나 추락했다. 에너지 수급이 원활치 않아 훈련도 거의 안했는데 이 정도이니, 아마도 오금철이 그나마 제일 좋은 미그기를 골라 탔으니 다행히 추락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공군이 김정은 앞에서 이렇듯 ‘재롱잔치’를 벌이고 나니 이번엔 해군이 나설 차례가 되었을 것이다. 2014년 7월 2일 배를 한껏 내밀고 서 있는 뚱뚱한 김정은 앞에서 팬티 바람의 해군 전대장 이상 지휘관들이 송도원에서 일말의 구호를 외치곤 10㎞ 바다 수영에 도전하는 사진이 북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북한의 TV화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김정은이 군부대에 가서 활짝 웃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아마도 자기 말 한마디에 군부 노인들이 하늘과 바다, 땅에서 설설 기고 있으니 카타르시스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1.4 점점 심해지는 견장놀음
김정은의 통치행태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조선인민군 장령들에 대한 이른바 ‘견장놀음’이라 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공개된 김정은의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 기념 공훈국가합창단 공연 관람사진을 보면 대장이던 장정남이 상장(별 3개) 계급장을 달고 군단장들과 나란히 관람석에 앉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장정남은 인민무력부장에서 일선 군단장으로 좌천되면서 계급도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민무력부장 재임 시기인 2014년 2월 초에도 상장으로 강등됐다가 다음 달 대장으로 복귀하는 등 지난 1년간 중장-상장-대장을 오르내리며 다섯 번이나 계급장이 바뀌었다.

2017년 7월 27일 북한 7·27 전승절 결의대회 /사진=노동신문
여기에 덧붙여 윤정린 호위사령관(한국의 청와대 경호실장)은 2014년 6월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됐으며, 1년 사이 상장에서 소장으로 2계급이나 강등된 윤동현 인민무력부 부부장은 얼마 전 상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윤동현 부부장은 김정은 체제에 접어들어 승진과 강등을 여러 번 반복하며 ‘용수철’식 계급 변동을 보여줬다. 그는 2012년 3월 군 상장을 달고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나 2013년 4월 중장으로 강등된데 이어 같은 해 10월 다시 소장(별 1개)으로 강등한 사실이 북한 매체를 통해 확인됐다. 2013년 2월 다시 중장을 달았던 윤 부부장은 같은 해 4월 두 달 만에 상장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2015년 4월 또 중장으로 강등됨으로써 지난 3년 동안 무려 6차례나 계급장이 바뀐 것이다.
천안함폭침사건의 배후이자 미국 ‘소니사 해킹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정찰총국장도 2015년 4월 대장에서 상장으로 다시 강등되었다. 즉 그는 2012년 대장에 진급한 후 2015년 4월까지 대장-중장-대장-상장 등을 거치며 롤러코스터 같은 계급 변동을 겪었다.
이어 2015년 3월에는 김정은 집권 후 중장과 상장을 오르내리던 박정천 부총참모장 겸 화력지휘국장이 상장에서 소장으로 두 계급 강등된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리영길 총참모장 등 웬만한 군 고위간부 중 계급이 강등되지 않았던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김정은 체제에서 계급 강등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즉 계급이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했던 박정천 북한군 포병국장이 중장에서 상장으로 진급한 사실이 북한 매체를 통해 2017년 4월 12일 확인됐다. 박정천은 최고인민회의 제13기 5차 회의 회의장에 상장 계급장을 달고 앉아 있는 모습이 조선중앙TV 화면에 포착됐는데, 그는 상장, 중장, 소장 등으로 진급과 강등을 반복하다 한때 영관급인 대좌(우리의 대령)까지 떨어진 적도 있으나, 다시 상장까지 올라간 것이다.
이밖에도 북한군 육군, 해군, 항공 및 반항공군(공군) 장병들의 ‘김정은 충성맹세’ 예식 장면에서 렴철성은 상장 계급장을 달고 참석했다. 그는 김정일의 생일(광명성절ㆍ2월 16일)을 맞아 당ㆍ정ㆍ군 간부들이 지난 2월 13일 ‘백두산밀영’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중장 계급장을 단 모습이 포착된 바 있어 그 사이 진급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체제의 선전분야 핵심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그가 이전에도 중장에서 소장(2014년 2월)으로 강등됐다가 다시 중장(2014년 7월)으로 올라가는 등 계급 변동을 겪은 바 있다. 지난해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자축하며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중국인 3명을 숨지게 한 선양주재 북한 총영사관 단둥대표부의 렴철준 영사가 그의 동생이라고 중국 ‘봉황망’은 보도하기도 했다.
carriepyun@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