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빛날 5인] 구범준 세상을바꾼시간15분 대표PD, 생각을 바꾸는 씨앗 ‘15분’으로 세상을 바꾸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혁신적 시도로 강연 프로그램의 새로운 모델로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고은 기자입력 : 2018.01.02 11:07
하루에도 수없이 무의미하게 허비될 수 있는 시간 15분. 이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15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버려지는 시간을 통해 개인의 삶은 물론 세상을 바꾸려 노력한 사람이 있다. 구범준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대표 PD다. 

구 대표는 "'세바시'를 보고 내 삶이 바뀌었다는 편지를 받으면 참 보람을 느낀다"며 자신이 가장 큰 수혜자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습관과 행동을 바꿨고 필요한 지식도 강연을 통해 얻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방송국 PD에서 독립 법인 '세바시'의 대표이사가 됐다. 한국의 TED로 불리는 '세바시'는 단 6개월 만에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 변화의 흐름을 빠르게 읽고 혁신적인 도전에 과감히 뛰어든 것이 열쇠였다. TV와 컴퓨터가 주를 이루던 콘텐츠 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공략했다.

프로그램 구성도 색달랐다. 강연 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공개 방송 형식을 도입하고 자발적 관객 참여를 유도했다. 그래서일까. 지상파의 강연 프로그램에는 없는 열혈 팬도 생겼다. 매회 관객석이 가득 차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바시' 팬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콘텐츠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다. '열린 번역'으로 강연 영상에 자막을 제작하거나 직접 강연자가 되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무엇이 사람들을 이토록 열광케 할까. 구 대표는 한국인의 언어로 한국인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펼치는 세상 을 밝게 만든 이야기를 듣기 위해 <더리더>가 15일 CBS 사옥 14층 '세바시' 사무실을 찾았다.

환경재단 15주년 후원의 밤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문화상 수상을 축하한다
▶조금 쑥스럽다. 우리 '세바시'는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을 무대에 세우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든다. 그런 입장에서 이 상을 받은 것이 부끄럽기도 하다.
내가 세상을 밝게 만들었다기보다는, 세상을 밝게 만들 아이디어를 가진, 또 세상을 밝게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을 무대에 세워서, 그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했다. 사실 그것이 '세바시'의 임무고 소명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상은 '지금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잘해'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고 있다.

구범준 대표가 생각하는 '세상을 밝게 만드는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단번에 우리 '세바시'에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수상한 조세현 작가도 평창동계올림픽 특집 강연에 강연자로 나섰고, 유튜브 채널 '둘째언니' 운영자 장혜영씨도 신년특집 강연자로 섭외했다

강연 프로그램이 많다. 다른 지상파 강연프로그램과 차이점이 있다면
▶다른 지상파 강연 프로그램과의 차이는 독립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게 가장 큰 차이다. 독립성이 있다는 것은 편성부의 기획에 따라 폐지·변경·수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상파에서 요즘 강연 프로그램이 유행이니까 만들기는 한다. 근데 오래가기는 힘들다. 방송국의 계획에 따라 폐지되거나 중단될 수 있다. TED나 '세바시'는 다르다. 방송사의 편성 계획에 따라 좌지우지되지도 않을 뿐더러 7년 동안 꾸준히 해오니까 팬덤, 커뮤니티가 생겼다. 그래서 만약 ‘세바시’가 폐지된다고 하면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거다. 작지만 정말 큰 차이다.

그렇다면 TED와는 어떤 차별성이 있나
▶TED는 '세바시'의 명명백백한 레퍼런스다. 제가 생각하기에 TED는 완벽한 프로그램이다. 플랫폼·제작·도네이션·수익·강연자 등 모든 것이 완벽하다. 강연 콘텐츠가 이상적으로 발전하면 결국 TED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세바시'를 기획할 때도 많이 참고했다.
그래도 차이점은 있다. TED가 세상을 바꿀만한 지식과 경험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세바시'는 한국 문화의 특성상 '내 삶의 성장'에 더 많은 방점이 찍혀 있다. 우리나라는 책도 자기계발서가 많이 팔린다. 그런 성향이 콘텐츠를 구성하는 한 축이 됐다. TED가 유명해진 계기가 에코, 환경 이런 내용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근데 '환경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웃음).
내 삶의 성장은 또 우리의 성장으로 연결된다. '세바시' 슬로건이 '나로 시작해서 우리로 열리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라는 것은 책에서 읽은,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닌 내가 경험한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강연자들은 마지막에 '여러 분들도 이렇게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가치제안을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이름이 특이하다
▶이 타이틀은 내가 만들었는데, 이 이름이 우리의 정체성을 직접 드러내서 마음에 든다. 당시에는 '명견만리' 같은 상징적인 이름이 많았다. 우리 이름은 너무 직설적이라 약간 촌스러 운 느낌이 있었다. 또 사람들이 프로그램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세상이 15분 만에 바뀌나?'라고 저항도 했다. 근데 그런 저항을 할 때마다 반대로 기억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할 때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세바시'가 각인됐다.

'세바시' 이후 우리나라에도 많은 강연 프로그램이 생겨났다. 강연 프로그램의 원조라고 볼 수 있겠다
▶원조라기보다는 많은 강연 프로그램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TV에서 방영되는 강연 프로그램은 결국 방송 프로그램이다. '세바시'가 없었어도 태어났을 프로그램들이다. ‘세바시’는 가장 먼저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이전 강연 프로그램들은 방송사에서 강연자를 초청하고, 방청객을 모아 스튜디오에서 녹화하는 식이었다. 비자발적 관객들이 주를 이뤘다. '세바시'는 자발적 관객을 대규모로 동원한 첫 강연 프로그램이었다. 처음 관객을 모집했을 때는 관객석 400석 중에 100석 밖에 채우지 못했다. 자리가 너무 많이 비어서 사람이 없는 부분은 조명을 끄고 녹화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제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관객이 없는 게 창피한 게 아니었다. 그 다음부터는 다시 불을 켰다.
자발적 관객을 모집하려고 많이 고민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페이스북이었다. 방송국 홈페이지에 게시판을 만들면 사람들이 안 간다. 그러니 더욱 소통이 안 되는 거다. 우리가 뭘 하는지, 무슨 이벤트를 할 것인지 알리려면 사람들이 자주 가는 곳을 이용해야 했다.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고 이벤트를 열고, 사람들과 친구를 맺었다. 이런 노력으로 2012년 1월 처음으로 관객석을 가득 채웠고, 그 이후로는 계속 만석이다.
우리가 이렇게 자발적 관객을 모집하고 공개방송의 형태를 취하면서 인기가 많아지자 그 뒤로 많은 강연 프로그램들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그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확산시켰다. 이런 혁신적인 부분은 '세바시'가 선도하고 있다.

2011년 5월에 시작해서 반년 만에 관객석을 가득 채웠는데 비결이 있나
▶우리 영상은 노 베리어(무장벽)·전 채널·전량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은 페이스북, 유튜브에 자투리 영상을 올렸다. 60분 예능이면 5분짜리 클립 영상을 올리는 식이었다. 더 보고 싶으면 홈페이지에 가서 유료로 봐야 했다. ‘세바시’는 오픈 콘텐츠다. 회원가입 없이, 무료로, 강연 전체를 어디서나 볼 수 있도록 했다.
또 한 가지 전략으로 다음 포털과 2011년 11월부터 탭을 노출하는 계약을 맺었다. 격주로 수요일마다 다음 메인 탭에 '15분'이라는 단어가 떴는데 그걸 클릭하면 우리 강연 15분짜리 6개가 소개됐다. 당시 다음TV팟에는 오락·예능, 드라마 자투리 영상만 있었다. 교양 콘텐츠가 없어서 먼저 제안을 했다. 탭에 노출되고 하루 만에 조회수가 20만 건이 나왔다. 그걸로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한다.

CBS는 기독교방송국이다. '세바시'의 시청 타깃을 진보 성향으로 잡았다고 들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생각하는 것만큼 큰 갈등은 없다. 사실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로 보면 약간 보수적이긴 한데 CBS는 다른 부분은 진보 성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진보 색채를 담은 방송을 해도 크게 상관이 없었다. 단, 몇 가지 주의할 점은 있다. 타 종교 인사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것, 최근에 논란이 됐던 동성애 관련 문제, 그리고 교회 비판 이야기. 이런 것만 빼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동성애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다
▶논란이 된 강연은 CBS에서 방송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바시'가 CBS에서 시작한 것을 알기 때문에 일부는 CBS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오해했다. 몇몇은 방송국에 후원금을 안 내겠다는 등 항의를 했다. 그걸 보고 CBS도 놀랐을 거다. 사실, 동성애를 조장한 것도 아니었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는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저런 갈등이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크게 문제될 만한 것은 없었다. 이 문제도 잘 풀었다.

지난 7년간 세상을 어떻게 바꿨을까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는 개인의 삶을 바꾼다는 의미도 있다. 강연을 본 사람이 생각을 바꾸면 자신의 행동을 고친다. 행동이 바뀌면 옆 사람과 대화하게 되고, 서로 협의하고 협동을 하면서 세상이 변화한다. 이제까지'‘세바시를 보고 내 삶이 바뀌었다'는 증언을 참 많이 들었다. 이렇게 개개인의 삶이 바뀌면서 세상이 조금 더 좋아졌을 수 있다.
최근에는 이국종 교수가 한 강연이 세상을 바꾼 중요한 사례라고 본다. 이 교수가 말한 한국 사회의 문제나 이에 대 한 쓴소리에 많은 분이 공감하고 반성했다. 응급의료센터 예산을 올리라는 청원도 열리고, 대통령 지시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켰다.


강연자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나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연자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강연을 본 관객이 '나도 무대에 설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직접 신청하기도 한다.

관객이 정말 강연자로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나
▶물론이다. 강연이 열리는 콘서트홀에 소감을 포스트잇에 써 붙이는 코너가 있는데 남성 두 분이 '반드시 세바시 무대에 오르겠습니다'라고 써낸 적이 있다. 그리고 2년 뒤에 정말 강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또 메일이나 편지로 강연 신청을 하는 분도 많다. 한 분은 스무 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가서 엔지니어로 살고 있었다. 휠체어를 타는데 파일럿이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미국에는 장애인 파일럿 프로그램이 있는데 훈련 과정이 혹독하다고 한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아시아인 최초로 장애인 파일럿이 됐다. 이런 이야기를 '세바시'에서 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이분은 551회 '세바시' 강연자로 무대에 올라 꿈을 실현한 이야기를 전했다.

'세바시'가 구범준 피디도 바꾸었나
▶강연을 만드는 게 일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기도 한다. '세바시' 강연을 가장 열심히 보는 사람들은 나와 우리 스태프들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연을 보는 사람도 삶이 바뀌었다고 메시지를 보내주는데 우리는 매일 본다.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태도나 습관들이 조금씩 바뀌었고 필요한 지식들도 '세바시'를 통해 많이 얻었다. 사실 제가 최대 수혜자이기도 하다. '세바시'를 통해 인생의 항로도 바뀌지 않았나(웃음). CBS에만 있었으면 프로그램 PD로만 남아있었을 텐데 지금은 독립 법인의 대표가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강연은?
▶배우 권해효씨의 강연 클로징 멘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권해효씨가 '행복은 근육이다. 행복의 근육을 키워야 하고 그 근육을 자주 써야 한다'고 했다. 살면서 힘들 때, 행복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이 말을 되뇌곤 했다.
강연 자체의 영향력으로는 이국종 교수 강연이 '세바시'가 낼 수 있는 최대 영향력을 보여줬다. 주요 언론사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사가 빠짐없이 강연 내용을 기사로 냈다. 이후에 이 교수가 북한 병사를 치료할 때도 우리 강연 자료를 넣어서 보도했다. 이국종 신드롬이 생겼다. 그런 걸 보면 좀 신기하다.

구범준 세상을바꾼시간15분 대표PD
–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졸업
– CBS 공채 21기 PD
– 뉴스뱅 주식회사 대표이사
– 現 주식회사 세상을바꾸는시간15분 대표이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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