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숙 한국의사미술회 회장, 의술과 예술로 더 가까이 가다

[차홍규 교수가 만난사람] 장혜숙 한국의사미술회 회장, “모든 장르의 미술 작품들이 소비가 잘 되는 문화 되었으면”

머니투데이 더리더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입력 : 2018.03.22 17:23
의사로 예술가로 상업화랑대표로 여러 직업을 가진 장혜숙 회장을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라 많은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더욱 필자의 안사람과 같은 나이고 이화여대 동문이라 서로 대화하기가 부드러웠다. 우선 고향이 어딘지 궁금하였다.

-고향이 어디인지
▶내장산으로 유명한 정읍에서 3남4녀 중 6번째로 태어났고, 언니 오빠들을 따라 중학교 때부터 서울로 올라와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면 어릴 때의 꿈은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는 자주 편찮으셔서 누워 계시는 때가 많았다. 의사의 왕진 횟수가 많아졌고, 오실 때마다 ‘사루소부로카농’이라는 소염진통제를 큰 주사기에 채워 엄마의 팔에 혈관주사를 놓고 가시곤 했다. 언니들은 주사바늘만 봐도 도망가곤 했지만, 나는 혈관을 찾아 주사 놓는 것을 흥미롭게 쳐다보면서, 내가 의사가 되어 엄마 병을 직접 고쳐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소망이 나의 잠재의식 속에 꿈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의학공부가 많이 힘들었을 텐데
▶의과대학교 때 해부학시간을 못 견디고 중퇴하는 학생도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해부학시간 첫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잊지 못한다.
“여러분, 여러분의 공부를 위해 바쳐진 이 시신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산 사람은 인간을 해칠 수도 있고, 배신할 수도 있지만, 죽은 이는 결코 여러분을 해치지도 배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해부학 교실에서의 두려움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해부학 공부에 더욱 전념할 수 있었다. 또한 미생물학 시간에는 세균을 배양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도 흥미로웠다. 그리고 질병의 원인, 증세, 진단, 치료, 예방 등 모든 의학 공부는 나에게는 끝없이 궁금한 학문이었기 때문에 비록 공부하는 시간들은 힘들었지만 참고 잘 견딜 수 있었다.

-졸업 후 사회에서 의사로서의 길은 어떠했는지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인천길병원 내과과장으로 처음 취업하였다. 그때 나이가 30세였다. 처음에 젊은 여의사를 보는 시각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으나 나는 그런 관념적 편견을 없애주려고 남자 의사들보다 모든 면에서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다. 진료할 때도 더 많은 시간과 정성으로 진료에 임했다.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환자를 진료하는 데 기울였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보람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으로 그렇게 나의 젊음을 보냈다.

-저도 미술인이지만, 의사와 화가는 잘 접목이 안 되는데,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는
▶글쎄, 접목이 안 되나? 40세로 막 접어 들어가는 나이에, 의협신문에 의민미전 개최에 대한 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아! 의인미전!’ 그림의 그자도 모르던 내가 갑자기 설레기 시작했고 수면 아래 깊이 감춰져 있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무작정 미술학원으로 가서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점심을 빵조각으로 때우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첫 작품을 부끄러움도 없이 의인미전에 출품했고, 그때부터 흥미로운 미술인생이 시작되었다.

-우문현답을 기대한다. 그렇다면 그림 그리는 일은 의사일보다 쉬웠는지
▶그림 그리는 일은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하얀 캔버스는 내 내면세계의 또 다른 분출을 도모하도록 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색으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려움으로 치자면 의사 되고 진료하는 일보다 곱절 이상은 어려웠던 것 같다. 그 후 추상회화(비구상회화)에 대한 끝없는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홍익대 현대미술최고위과정을 수료하였고, 그 후 컴퓨터로만 수강 가능한 디지털대학교 회화과에 늦은 나이지만 입학하여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매력적인 그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평생 동안 붓을 놓지는 않을 생각이다.

-어떻게 해서 갤러리까지 개관하게 되었는지
▶나의 미술세계는 더 확장되어 작가와 미술애호가, 시민들과 소통하는 열린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갤러리를 개관하게 되었다. 갤러리 이름은 즉흥적으로 제 이름의 중간자 은혜 혜자의 혜와 남편 이름(서원벽)의 중간자 으뜸원의 원자를 따서 혜원으로 정하고 겁도 없이 개관하게 되었다.

-갤러리 운영은 누구나 관심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갤러리를 운영하는 일은 그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긴 있지만 전혀 다른 세계였다. 관심이 있어서 개관을 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세심하게 기획하고,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와 지식이 있어야 하고, 관람객은 물론 마케팅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등 얼마나 많은 과제가 주어지는지 모른다.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작가나 컬렉터, 관람객에게 모두 베풀고 책임져야 하는 것이 갤러리였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듯이 갤러리 운영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어서 개관 후 홍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과에 입학하여 공부하였다. 예술기획과에서는 기획에 대한 필수과목뿐만 아니라 미술마케팅, 미술비평, 미술심리, 한국의 미학, 박물관학, 미술복원학, 미디어미술 등의 학문을 접했는데, 모두 새롭게 배우는 분야라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아직은 낙후한 것이 한국의 현실인데, 갤러리는 잘 운영되고 있는지
▶개관한 지 벌써 10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크고 작은 많은 전시들을 하였다. 주변으로부터 사회에 공헌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으나, 성과가 부족하여 작가들에게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경제적으로만 계산하면 갤러리 운영은 솔직히 어려움이 많지만,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과 의사를 떠나 지역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있어 나름대로 삶의 한 보람으로 운영하고 있다.

-인생관이 궁금하다
▶나의 일관된 삶의 신조는 정직성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성실성이다. 이 둘이 중요하고 삶의 근본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업에서도 인간관계에서도 정직과 성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거대한 꿈이나 계획은 없지만 하려고 하는 일은 있다. 다른 분들은 이미 다 읽었을 테지만 나는 못 읽은 공자, 장자, 노자 등의 책을 가까이 하는 것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해, 스피노자, 헤겔, 칸트, 니체 등 철학자들의 책을 읽는 것, 그 외 내가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을 놓지 않는 일, 그리고 그림을 계속 그리는 일, 신앙을 키우는 일 등 웰빙과 웰다잉을 위해 준비하며 사는 일이다. 
그리고 꼭 한 가지 원하는 것은 죽기 전에 소설을 한 권 쓰는 일이다. 뜬금없이 웬 소설이냐고 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글 쓰는 공부를 해서 고해성사 같은 하나의 소설을 써서 하나님께 바치고 싶다. 그것이 내가 하얀 천국으로 가는 길로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공감한다. 예술의 대중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
▶미술은 더욱 상업적이며 디자인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예술은 모든 삶속에 침투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술의 대중화는 아직도 멀게 느껴지는 것일까. 모든 장르의 창작 미술가들의 작품이 소비가 잘되는 문화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교육을 통하여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야 하고,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당연히 국가적인 차원에서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얼마 전 인천시에서 ‘천개의 문화 오아시스’ 조성 지원 사업이 공고되었다. 그 내용은 갤러리, 북카페, 음악클럽, 서점, 공방, 커뮤니티 등 문화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이나, 지하철 역사, 지하보도, 공공청사 등의 유휴공간 사용허가를 받아 문화공간으로 활용할 민간단체 및 개인에게 운영비 및 수선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다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50개소를 선정해서 10% 이상의 자부담을 조건으로 한다는 것이지만, 이런 공모들이 더 많아지고 활성화되기를 기대해본다.

-필자같은 예술인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미술인에게 감히 뭐라고 말씀 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기에 ‘어떤 예술이 옳고 어떤 것은 그르다’라는 편견이 있으면 안 된다고 본다.
작가 개인의 독창성이 묻어나는 작품이 매력적이고 호감이 간다. 독창성과 작가의 진실한 예술혼이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야 관람객의 심금을 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렵지만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시대 예술인에게 깊은 감사와 찬사를 드린다. 아울러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에게 정부에서도 따뜻한 손길을 주었으면 한다.

정직과 성실을 기본으로 삶을 살아온 장혜숙 작가. 긴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려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우리 속담에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다. 필자도 미술인으로 개인전을 하면 조각은 물론, 회화, 서예, 도자 작품은 물론 한지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니 관람객들이 그룹전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전부 미술작품에 국한되어 하이브리드 작가로 불리기도 하는데, 장혜숙 작가는 의료인이며 미술작가이다. 

또한 의사미술협회회장도 지내고 화랑도 운영하는 전문 예술경영인이다. 말이야 쉽지만 오랜 기간의 미술 수업과 예술 경영 수업, 그리고 그의 작품 활동은 아무리 의사라고 하여도, 아니 의사이기에 더욱 시간 등 어려운 제약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려움은 전혀 내색이 없이 즐거움과 기쁨만 이야기하고 있으니 작품을 떠나 ‘한중미술협회장’이라는 조그만 직책도 버거운 필자에게는 가히 전설과도 같은 존재이다. 

하이브리드적 삶을 살아내는 그 비결은 정직과 성실이리라. 정직과 성실이라는 당당함 앞에 그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감히 맞설 수 있겠는가. 진리를 깨달으면 마음이 훈훈하다고 한다. 돌아오는 귀갓길에 마음이 따뜻하여짐은 계속되었던 한파가 물러간 것이 아니라 장 작가의 정직과 성실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올해 필자의 따뜻한 봄날은 유난히 길 것만 같다.

장혜숙 한국의사미술회 회장
現 한국의사미술회 회장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홍익대학교 현대미술 최고위과정 수료
서울디지털대학교(S.D.U) 회화과 졸업
가천의대 길병원 내과과장 
한국여자의사회 인천지부 회장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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