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에 걸린 꽃잎

[박미산의 맛있는 시읽기]

서울디지털대학 박미산 교수입력 : 2018.04.27 10:08


  -변종태

왼쪽 다리에 깁스하고 보니
창가의 제라늄이 삐딱하게 누워있다.
지구의 중력을 잊고 산 듯
허공은 상처 없는 통증을 밀어 올린다.
한 발 디딜 때마다 꽃잎이 출렁 차례로 넘어진다.
뼈가 부러진 자리엔 제라늄의 붉은 입술이 항유(香油)처럼 번진다.
왼쪽 다리를 허공에 띄운 채 지는 꽃잎을 읽는다.
잡힐 듯 말 듯한 수평선 너머의 시간들,
지나간 상처는 모두 허공에 머무는 것이라고
네게로 가는 길이 끊어졌다가 이어지고.
수직의 벽마저 수평선을 꿈꾸는지
목발을 기대놓은 벽이 출렁거린다.
그때마다 네 모습이 보였다, 안 보였다
수평선 너머 네가 일어섰다, 앉았다
고무줄처럼 길게 늘어뜨린 허공의 시간들
네게로 가는 길이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제라늄 붉은 꽃잎 하나 툭,


왼쪽 다리에 깁스하고 누워 있는데 창가에 제라늄이 피어 있습니다.
제라늄을 보자 떠오르는 당신.
제라늄의 꽃말처럼 깁스하고 있는 내내 당신의 생각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잡힐 듯 말 듯한 수평선 너머의 시간 속에서 당신의 붉은 입술이 향유처럼 번집니다.
목발을 짚은 채 한 발 디딜 때마다 당신과의 시간이 출렁, 차례로 넘어집니다.
그때마다 당신 모습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고 수평선 너머 당신이 일어섰다, 앉았다 합니다.
다리를 허공에 띄운 채, 나는 지는 꽃잎을 읽습니다.
지는 꽃잎은 뼈가 부러진 고통처럼 상처투성이입니다.
붉게 피어났던 당신과 나의 사랑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는 꽃잎처럼 상처로 남았습니다.
당신에게로 가는 생각이 허공에서 툭,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것처럼
제라늄 붉은 꽃잎 하나가 수평선에 아슬하게 걸려 있습니다.


박미산 교수
서울디지털대학 초빙교수
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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