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곤 의원, 4•3 사건 70년,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제주

[국회in]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김평화, 안재용 기자입력 : 2018.04.03 10:21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4월에 피는 동백꽃. 제주에선 흔하지만 인기가 많진 않았다. 질 때 모습이 스산해서다. 온전하던 붉은 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지는 모습은 목이 잘리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70년 전 제주에서 스러져간 생명들과 꼭 닮았다. 약 5만 명이 ‘빨치산’으로 몰렸다. 목숨을 잃었다. 영문도 몰랐다.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동백꽃이 재조명받는다. 4•3사건 원혼들을 기리는 꽃으로서다. 제주도는 ‘4월엔 동백꽃을 달아주세요’ 캠페인을 벌인다. 4•3 전국화 사업의 일환이다.

3월 20일 오후에 찾은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서귀포)의 사무실도 분주했다. 직원들 모두가 국회의원 300명에게 보낼 동백꽃 배지를 포장하고 있었다. 위 의원은 “4•3 사건 진상이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상보고서가 채택됐지만 제주도민들은 구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제주도민에게 4•3 사건은 트라우마다. 당시 신고된 사망자만 3만여 명이다. 그때 인구가 25만 명 정도였다. 도민 10명 중 1명 이상 목숨을 잃은 것이다.

도민들이 바라는 건 ‘단죄’ 등 극단적인 대응이 아니다. 화해와 상생이다. 위 의원은 “그들의 조상이 왜 죽었는지, 돌도 안된 아이들이 왜 세상을 등졌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며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 의원은 민주당의 ‘믿을맨’이다. 3선 도의원 출신으로 2016년 20대 총선 때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에서 지방분권 부대표를 맡고 있다. 지방자치와 중앙정치 사이 ‘미들(middle)맨’을 자처한다.

아울러 민주당 전국농어민위원장을 맡았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도 손꼽히는 정책통이다. 여당이 그에게 ‘농정(農政)’을 믿고 맡겼다. 위 의원과 만나 4•3 사건의 의미를 물었다. 남북 평화 국면에서 제주와 농어업계가 기대할 만한 일들도 들었다.

-4•3 사건 70년이 지났다
▶실제 피해자는 5만 명 정도인데 이들이 왜 죽었는지 규명이 안 돼 있다. 그 이유를 증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가 나서 피해 당사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 당시 정부가 미군이었는데 미군정이 이 사건에 어디까지 관여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사과도 해야 한다. 국회의원 60여 명이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1998년에 4•3 특별법을 만들고 개정을 못했다. 국가 공권력이 제 역할을 못한 것이다.

4•3 사건을 잘 모르는 국민이 의외로 많다
▶동백꽃 배지를 나눠주는 것도 역사를 알리기 위해서다. 2013년 개봉한 영화 ‘지슬’이 관객 10만 명을 넘겼다. 독립영화인데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관광객들에게 제주의 역사인 4•3 사건을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관광지에 이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다. 요즘 역사기행이나 관광지의 속살을 알 수 있는 여행이 많아지고 있어서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아프지만 역사다
▶아픔, 고통, 상처를 치유하는 게 또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치유 과정을 다른 국가들에도 보여주는 거다. 평화를 전달하는 역할을 부여받으면 좋을 것 같다.
 
-남북 평화국면에서 제주의 역할은
▶다자회담 구도로 가게 될 것이다. 다자회담에 민간 전문가들을 불러서 평화 콘퍼런스를 7월에 열 계획이다. 제주도는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본과 중국도 제주에 상당한 매력을 갖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한•소 정상회담을 제주에서 했다. 역사적 사례가 있다. 다음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도 제주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상징적이기도 하고, 지리나 경호 측면에서 괜찮다. 적극 추천한다. 성사를 위해서라면 내 재산이라도 내고 싶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제주는 아름답기만 한 관광지인가
▶관광지에서 힘들게 농사짓고 있는 원주민을 대상화해서 보면 아름답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힘든 고통이다. 제주에선 개발이냐 보존이냐 하는 논쟁이 끊임없이 진행된다. 관광개발로 경제가 성장해서 삶이 나아지긴 했다. 그렇다고 더 행복해진 건 아니다. 도민 개개인이 각자 보존은 어떻고 개발은 어떻다는 논리가 있다. 지금은 ‘반반’ 정도 나뉘는 것 같다.

-제주도는 물과 바람이 유명한데
▶1991년 제주대 학생회장 할 때 제주개발 특별법이 이슈였다. 개발하겠다는 중앙정부와 안 된다는 학생•시민들이 맞섰다. 결국 법은 통과됐지만 물과 바람은 지켜냈다. 공공재로 관리해야 한다는 보존 논리가 적용됐다. 제주엔 ‘순우름’이란 두레적 전통이 있다. 공동체 의식이다. 물과 바람은 섬 조건에서 생긴 것이다. 관리가 필요하다.

-한라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이 있는데
▶한라산에 편하게 오를 수 있도록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쟁이 있었다. 보존과 개발 입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도 한라산을 오를 기회를 줄 것이냐 하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에 전체적인 한라산 조망을 해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영산’의 단면을 굳이 훼손해야 하냐는 비판도 있었다. 과거엔 개발하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지금은 개발을 성찰하는 시기가 됐다. 보존이 소수였는데 지금은 이분들이 절반 이상 된 것 같다.

법제도 보완 현안사항 책자를 전달하는 위성곤 의원(왼쪽)과 우원식 원내대표/사진=뉴스1
-주민자치가 가능한가
▶지방 주민 스스로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중앙정치만 하는 분들은 그걸 의심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회에 내놓을 때 심경이랄까. 지방분권엔 큰 틀에서 동의하지만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다. 200여 개 기초단체에서 다양한 정책 실험을 할 수 있다. 지방에 맡기면 실천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한다.

-도정과 국정의 차이는
▶도의원일 때 지역민들의 관심을 더 받았다. 지역민들과 스킨십이 잦았다. 피드백(반응)도 바로 온다. 지역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도민과 연결돼 있다. 그래서 주민들이 정치인들을 잘 안다.
중앙정치에선 아무래도 그런 게 적다. 정당 간, 정파 간 자기 중심성이 강하다. 정파• 당파적 이익을 너무 챙긴다. 지방자치 분권 논의가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다. 정치인은 단련돼 성장할 수 있다. 주민들은 직접 정치를 지켜보고 참여할 수 있다. 지방에 비해 중앙(국회)은 진영 논리가 훨씬 강하다. 지방에선 협의될 수 있는 지점이 중앙에선 잘 안 된다.

-남북 평화 국면이 다가온다는 관측이 있는데
▶제주엔 비타민(생선)이 많다. 북한엔 고랭지 채소가 많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했던 과거와는 다른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또 북한 해역에 많은 어종이 있다. 지금은 중국에 헐값에 넘기고 있다. 우리 어선이 가서 잡게 허가하는 등 북한 어획물 수입이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수입을 대체해 수산물 가격을 낮추고 양질의 생선을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남북 사이에 사고 파는 시장이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다. 지방정부 교류는 정치적 부담이 덜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런 일들을 구체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위한 법을 발의했는데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대한 개정안이다. 농산물 가격이 안정돼야 농민의 삶이 안정된다. 수확물이 최근 3년간 판매 금액의 80%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보장해 주자는 법안이다. 재원은 국가와 지방정부 등으로 충당할 수 있다.
/사진=머니투데이 이동훈 기자
-직불금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현행법은 경지면적에 따라 쌀 직불금을 지급한다. 면적에 따라 보상금을 3000만 원까지 준다. 경작 면적이 좁은 농가는 조금 받고 넓은 농가는 많이 받는 구조다. 어떻게 보면 부자한테 더 많이 지원해주는 셈이다. 농가에서 불만이 나온다. 기준을 바꿔야 한다.

-전통주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전통주 산업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 일본의 사케처럼 지역마다 전통주 개발이 가능하게끔 제도를 만들고 싶다. 현재 발표주는 산성도가 5.0이상인 균만 쓰도록 돼 있다. 나머지 균은 다 못쓰고 있는 현실이다. 다른 균을 전통주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서 전통주 사업도 키우고 쌀 등 곡물 활용도도 높일 궁리 중이다. 곡류 자급률과도 관계있는 일이다.

-정치 입문 계기는
▶학생회장까지 한 뒤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 당시 학생회장은 구속될 것을 기본 전제로 맡는 일이었다. 그 정도의 신념과 각오를 갖고 했었다. 대학 시절, 항상 사회변혁에 관심이 많았다.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졸업 후에는 건설회사를 운영했다. 원예학과를 나왔는데 진로는 달랐다. 작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주변에서 학생회장 경력을 크게 봐줬다. “네가 정치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정치를 하라는 제안이 많았다. 결국 선배의 제안을 받아 도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젊을 때 도의원이 돼 활동을 시작했는데
▶첫 도의원에 도전할 당시 38세, 최연소였다. 3선 지방의원이 됐을 때까지 최연소였다. 정치에 진출하는 청년들이 오히려 더 줄어든 셈이다. 젊은 사람들의 정치 진출이 필요하다. 지역 사회 현안을 바꿀 수 있는,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

국감 질의하는 위성곤 의원/사진=뉴스1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열정’과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그 전제가 듣고 공감하는 것이다. 같은 눈높이에서 느끼고 이해해야 한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한다.

-2028년 위성곤, 10년 뒤 모습은
▶3선 의원이 돼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방에서 일할 수도 있다. 지역에 애착이 간다. 어떻게든 10년 후에도 여전히 정치는 하고 있을 것 같다. 정치가 즐겁고 재밌다. 임기 동안 열정을 갖고 성실하게 할 생각이다. 정말 바꿀 게 많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
現 제20대 국회의원 (제주 서귀포시/더불어민주당)
1968년 1월 20일 출생
제주대학교 원예학 학사
제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제8대, 9대, 10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원
제9대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전반기 행정자치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평화, 안재용 머니투데이 정치부(the300) 기자 peac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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