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과 ‘미투’ 열풍

[이일환의 情(정보의 눈으로)•世(세상)•思(바라보기)]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이일환 교수입력 : 2018.04.13 11:24
미투 열풍이 우리 사회에 광풍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수십 년간 문제의식 없이 관행적으로 행하던 행위들이 법의 심판대에 서거나, 여론의 질타를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남성들에게 과거 자신들의 행동을 되짚어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됐다. 혹시 지금 문제가 되는 행동을 예전에 어느 특정 장소에서 하지 않았는지 등을 곱씹어 본다. 그러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미투 운동은 이렇듯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와 의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사례에서 보듯 지배 엘리트의 세력 변동도 유발하고, 여성들이 지방선거에도 대거 지원하는 등 정치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4년에 비해 여성 예비후보가 2배나 늘어난 지역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미투 열풍 와중에서 느닷없이 등장한 것이 음모론이다. ‘나꼼수’ 멤버 김어준 씨가 “미투 운동이 진보진영의 분열 기회로 이용될 것”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한 데 대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음모론을 좋아하는 김어준의 공작적 사고에 따르면 익명의 폭로 여성을 보수진영에서 미투 운동을 틈타 진보진영의 도덕성을 공격하기 위해 마련한 폭로를 말하는 것이냐”며 비판함으로써 한동안 음모론 공방이 인구에 회자됐다. 

음모론은 선진국가라고 해서 빠질 수 없는 인기메뉴이다. 미국에서도 지난 2017년 10월 라스베이거스 총기난사 사건(58명 사망)이 발생했을 때, “대량 학살은 정부가 기획했고, 코리 랭던은 행동가였다”는 음모론이 주목을 끌었다. 랭던은 이란 태생의 여성 택시운전사인데, 라스베이거스 대량 살인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SNS에 올린 당사자였다. 

심지어 “미연방수사국(FBI)이 그녀(랭던)를 괴롭히고 있다”고 걱정하기까지 했다. 2018년 2월 플로리다 마조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 총기사건으로 최소 17명이 사망한 뒤, 학생들이 주도해서 “총기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생존자들은 크라이시스 액터스(crisis actors)로서 총기규제를 확신시키기 위해 고용됐다”는 그럴싸한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유럽 국가라고 해서 음모론 생산의 예외는 아니다. 지난 2015년 11월 파리 시내 7곳에서 발생하여 무고한 시민 131명이 사망한 프랑스 파리 테러가 발생했을 때, 일부 블로그에 “파리 테러는 정부의 작품이고 거짓공작(false operation)이었으며, IS는 서방국가의 정교한 창작물”이란 ‘정부의 테러음모론’이 SNS를 장식하기도 했다.

음모론은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흔히 등장한다.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유 생산을 늘리고, 미국이 셰일오일 개발에 힘입어 원유 생산을 큰 폭으로 증가시키자 “이는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핵 개발을 적극 추진해온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궁지에 몰아넣고,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물밑에서 지원해온 러시아의 재정난을 가중시켜 미국을 측면지원하려는 계산”이라는 ‘석유 증산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러시아 해외 수출의 60%를 에너지 분야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은 사실 인간의 어두운 특질에 기인한다. 중국식으로 얘기하면 모략에 가깝고,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기획’과 유사하다.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할 때 반드시 어떤 이유가 저변에 깔려 있을 것이라는 예단에 바탕을 둔다. 특히 언론의 자유가 제약되는 사회에서 음모론은 기승을 부린다. 음모론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된 내용으로 사회를 선동하기 때문이다. 

음모론이 퍼지는 데 일등공신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 패턴이 변하고 있는 데 기인한다. 음모론적인 정보에 접근이 용이하고, ‘좋아요’처럼 공감하는 사람도 쉽게 찾을 수 있으며, 퍼지는 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졌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에 대한 음모론이 만들어지고 퍼지는 데 몇 개월이 걸린 것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문제는 소셜미디어 업체들이 허황한 음모론을 차단하기 위해 검열을 강화하면 음모론자들의 그릇된 신념을 더 강화시키고, 굳어진 편견을 바꿀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미시간대 심리학과 콜린 세이퍼트(Colleen Seifert) 교수는 “자신의 신념과 일치되지 않는 정보가 공격받으면 기존의 신념을 더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인간의 특질”이라고 말한다. ‘Suspicious Minds(음모적 마음)’의 저자 롭 브라더턴(Rob Brotherton)은 “사람은 누구나 음모적 마음을 갖고 있는 만큼, 진실을 마주 보고 앉으라”고 조언한다. 다가올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패턴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에 중요하다고 본다. 음모론에 직면할 때 한 발짝 물러나서 사실 여부를 알아보고 심리학적 관점에서 접근하도록 제언한다. 

음모론에는 3가지 편견이 작동한다. 의도성 편견(the intentionality bias), 비례성 편견(the proportionality bias), 확증편견(the confirmation bias) 등이 그것이다. 비례성 편견은 사건이 크면 클수록 음모의 크기도 비례한다는 것을 말한다. 모호한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내면에 이 편견의 렌즈를 통해 실체를 바라본다. 의도성 편견은 태어나면서 타고 나며 성인이 돼서도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재채기를 했다고 치면, 다른 아이들은 그가 의도를 갖고 재채기를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음모론적 사고는 양면성이 있다. 어떤 사실에 대해 좀 더 다차원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장점도 있다. 누구나 정부 관리나 기업, 제약회사 간부들이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순한 양처럼 되기 때문이다. 물론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 “기후변화가 과학자들이 연구자금을 더 모으기 위해 과장하는 것”이라든지, 반백신 음모론은 진짜 사람들로 하여금 아이들에게 백신을 덜 맞히게 하는 결과도 가져온다. 음모론적 생각은 우리의 뇌가 진화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음모론적 사고를 줄이는 방법은 분석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다. 실험 결과에서 보면, 구두 태스크(verbal task)를 하는 동안에 분석적으로 하도록 주문받은 사람은 음모론을 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회적 수준에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 우선이다. 정보 부재가 일차적으로 음모론을 키우는 토양이다. 음모론은 ‘불신이란 통로’를 통해 힘 있는 자나 정부와 같은 제도적 기관에 맞서는 방법으로 생겨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분석적으로 사고하고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기르는 방법이다. 그래서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가 부족하면 ‘신뢰 적자’가 쌓여 회복이 쉽지 않다. ‘신뢰 적자’란 서로 간에 불신이 쌓여 불신의 늪이 더 깊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4월과 5월은 한반도 안보지형을 혁명적으로 전변시킬 수 있는 정상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양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의 기틀을 닦으려면 회담 등과 관련된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는 국민 여론을 결집시킬 수 있고, 행여나 북한 정권의 전략적이고 모략적인 책동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거짓말 논란이 생겼고,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와 국민의 부담으로 남았다. 

“견고한 우리에는 개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건강한 심리상태를 지닌 군인이나 사회, 그리고 리더는 적의 심리공격에 무너지지 않는다. 정상회담은 기획과 음모의 집합체이자 불꽃 튀기는 심리전쟁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일환 교수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imgo62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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