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협정론

[박상철교수의 정치클리닉]

경기대학교 박상철 교수입력 : 2018.05.01 09:30

2018년 4월27일은 한반도 평화 기원(紀元)의 시작일이다. 기원전과 기원후의 기억과 역사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에 관한 한 오류와 상식 부족이 많기에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교과서적 해석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


한반도 평화의 실천적 의미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북 간의 대화와 합의 그리고 평화문제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남북대화와 합의’는 소극적 평화, 즉 전쟁 없는 상태를 지켜가는 현재의 정전협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한반도 평화문제의 제도화는 소위 ‘평화협정’을 일컫는 것인데, 이는 적극적 평화로서 전쟁의 원인을 차단하는 것이다. 2018년 4월27일을 평화원년의 기원으로 삼는 것은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제도적 측면에서 풀어가고자 평화협정을 마련할 때 두 가지의 대전제, 즉 남북 상호 간의 비등가적 상호주의와 정경분리의 원칙이 필요하다.


기계적인 상호등가주의에 얽매여 있는 한, 평화의 정착은커녕 평화의 문을 열어볼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한반도 평화의 제도화로서 평화협정은 남북문제를 정경분리 원칙, 즉 탈정쟁•초당적 영역으로 옮겨놓을 때 가능하다. 국민적 염원 외에 현실적으로 여당과 야당 간의 초당적 협조가 필수적인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긴장과 대결 못지않게 의미 있는 대화와 합의가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1992년의 남북 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사항으로서 남북기본합의서가 있었고, 2000년과 2007년 두 번에 걸친 남북 정상 간의 만남이 있었다. 짧지 않은 기간에 적지 않은 남북 간 합의와 대화가 있었음에도 한반도 평화문제의 제도화에 있어서는 실적이 거의 없었다. 서로 간의 강제력이 없는 남북대화와 합의였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남북 통합의 환경이 설정되지 않았고 국내적으로는 국회에서의 협의 내지 비준•동의가 전혀 없었다. 4•27 남북정상회담의 실효성 확보는 제도화에 대한 국제적•국내적 환경이 뒷받침될 때 가능하다.


정전협정과 서명 안한 당사자
현 시점에서 남북문제를 풀어가는 것은 팩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대한민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오류다. 얼마 전 북한문제 전문가가 언론매체에서 “대한민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앞으로 전개될 평화협정의 협의에 있어서도 제외될까봐 우려가 된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이런저런 토론을 하는 것에 매우 당황했다. 팩트체크가 틀렸기 때문에 해법이 나올 리 없는 것이다.


1953년에 체결된 제네바 휴전협정의 당사자는 유엔 대표로서 미국의 마크 클라크 사령관, 북의 김일성, 중국의 펑더화이(彭德懷) 그리고 대한민국이었다. 다만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즉 이승만 대통령은 분단을 전제로 한 휴전과 정전에 반대했기 때문에 휴전협정의 서명을 거부했던 것이다. 정전협정에서 대한민국의 지위는 ‘서명 안한 당사자’이다. 이에 정전협정에 종지부를 찍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있어서, 대한민국이 협상의 주체이자 중심에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간의 접촉을 당사자의 법적지위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1953년 제네바회담은 교전단체(交戰團體) 간의 회담이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서로 인정하지 않는 남북한의 정치세력 내지 집단 간의 성명이었다. 그리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정부(government) 간의 합의라고 한다면,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정상(summit) 간의 만남으로서 국가(state) 간의 회담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 어쩌면 4•27 남북정상회담은 획기적으로 일어났다기보다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 평화문제를 풀고자 했던 많은 생각과 노력들이 마치 마일리지처럼 축적돼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아쉽고도 결정적인 문제는 남북대화와 합의가 실천의 경지(境地)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남북대화와 합의가 강제력을 갖는 조약•법률로 보장되지 못했다. 4•27 남북 정상 간의 대화와 합의가 강제력을 갖는 것이 평화협정이다.


바람직한 한반도 평화협정의 구상
65년 동안 한반도 정전협정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휴전협정의 법적 구속력 때문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이 전쟁억지력을 발휘하고 있을 뿐이다. 정전협정에는 유효기간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일방적인 통보로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평화협정만이 적극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평화 기원의 원년 문서이다.

 
한때 평화협정 논의를 금기시할 때가 있었다. 평화협정 제안을 북한 당국의 전유물로 간주하고 위장 평화 공세의 상징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분명한 것은 평화협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북한에 유리하거나 또는 우리에게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실효적이면서 남북한 모두에게 만족스러워야 한다.


평화협정안 중 ‘북미평화협정’ 안은 남한을 제외하고 북한과 미국 양자 간의 기본적인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으로서 북핵문제 해결을 중심에 두었을 때 현실적 구상 같아 보이지만 대한민국에는 최악이다. 이에 반해서 ‘남북평화협정’ 안은 미국의 책임자적 지위를 평화협정 보증국가로 변경하면서 평화의 성격에 있어서도 법제도 및 시장통합과 보편적 민주주의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론상 북한이 거부할 수밖에 없다.

 
평화협정에 있어서 핵심사항은 협정 주체의 당사자문제이다. 남북한의 자율성이 보장되면서도 동시에 유엔과 국제법적 보장이 필요하다. 북핵폐기•체제보장•시장개방 해결을 위한 평화협정의 최소한의 당사자는 한국•북한•미국•중국으로 상정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정전협정 당사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정전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에 최적의 4개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컨대 한반도 평화협상 문제의 해결사로서 대한민국이 그 역할을 다하려면 정전체제 해체 및 종전선언의 최종성 그리고 평화협정의 완결성을 확보하여야 할 것이다. 이제는 4•27의 영웅 문재인•김정은의 몫이라기보다는 대한민국 국민과 북한 인민 그리고 미국•중국인의 과제이기에 새로운 상황에 대한 많은 이의 연구와 끝없는 토론이 요구된다. 소극적 평화는 지도자의 힘으로도 가능하지만, 적극적 평화는 많은 이의 동참이 필요하다.


박상철 교수
경기대학교 부총장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semi409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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