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화의 멋있는 음식] 봄날은 간다 봄 멸치회

머니투데이 더리더 최정면 기자입력 : 2018.05.01 18:36

꽤 오랜만에 부산에 왔습니다. 서울에서 KTX를 타니 금방 오네요. 늘, 부산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막상 자주 오지 못하는 곳이 부산이지요. 부산역에 도착해서 해운대의 멋지게 빠진 고층건물들을 곁눈으로 보면서 부산 토박이들이 많이 가는 송도해수욕장쪽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문득 대변항이라는 예쁘장하고 호젓한 항구가 나타납니다. 4월말 5월초, 그야말로 봄 햇살이 화사하게 한창 빛나는 이맘때쯤 대변항에 가면 “멸치축제”가 한창입니다. 은빛으로 빛나는 멸치를 뱃사람들이 모여 배 그물에서 탁 탁 털어내는 동영상 많이 보셨지요? 지금 그곳에 가면 막 잡은 멸치로 뜬 회를 먹을 수 있습니다. 멸치회, 드셔보셨나요? 우리가 매일 자주 먹는 바짝 마른 멸치가 아니라, 방금전까지 살아서 펄떡펄떡 뛰고 파르르 떨던, 예쁘고 날렵한 자태의 멸치, 그 멸치회말입니다.

멸치하면 이름은 좀 그저 그런 느낌인데 살아있는 실물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멸치의 은빛비늘은 정말로 예쁘답니다. 흰색으로 반짝이는 배는 싱싱하고 탄력이 있구요. 등부위는 검은 듯 푸르기까지 하고, 모터보트처럼 깔끔한 유선형의 몸매는 실로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 날렵합니다. 멸치의 까만 눈동자는 몸통의 흰색과 대비되어서 너무나 또렷하여 그 자체로 싱싱하고 정직함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은 멸치가 그물에 잡힌후 뱃전에서 파닥거리며 살아있을 때, 딱 그 순간만의 아름다움입니다. 빛나게 떼지어 다니며 바다를 누비던 멸치는 장엄하지만, 바다 밖으로 나온 한 마리의 멸치는 파닥거리다 바로 죽기 때문입니다. 멸치의 싱싱한 아름다움은 짧아서 더욱 아름다운 것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멸 치 - 문 순태

누가 너를 작고 못생겼다고 할까/너의 짧은 생은 참으로 치열했고
마지막 은빛 파닥거림은 장엄했다
너는 떼 지어 다닐 때가 빛났고/혼자 있을 때는 늘 빳빳한 주검이었다
그 여리고 애처로운 몸으로/넓은 바다를 눈부시게 누볐던
너는 아직 내 안에서 희망이 되어/슬프도록 파닥거리고 있다

멸치는 난류성 어류이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태평양 먼바다까지 멀리 나가 있다가 봄이 되면 쿠로시오난류를 타고 남해안으로 떼지어 몰려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남쪽에서 멸치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겁니다. 요즈음에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쿠로시오난류가 서해까지 올라와서 서해안의 여러 항구에서도 멸치가 꽤 많이 잡힌다는데, 그래도 멸치는 여전히 남해에서 많이 나고 남해 것이 맛있다고 합니다. 멸치는 어느 책에는 4년까지 산다고 합니다만 실제로 우리가 쉽게 보는 멸치는 2년생 아래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고, 크기는 최대로 많이 크면 15센티미터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쉽사리 그런 멸치가 보이지 않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삼치, 전갱이, 갈치등등의 멸치 포식자들이 멸치를 자연수명이 다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멸치류는 아주 오랫동안 인류가 먹어온 생선입니다. 멸치는 전세계에서 고루 잡히기 때문에, 인간이 먹는 방법도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합니다. 제일 많이 먹는 방법은 멸치의 창자를 제거한 후 소금물에 염장하여 숙성된 후에 기름이나 소금에 담겨져 음식맛을 내는데 쓰이는 용도로, 이것이 거의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멸치먹는 방법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득한 로마 시대때, 멸치는 '가룸'이라는 발효생선소스의 주재료로 여러 음식에 빠짐없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멸치는 염장을 하면 생기는 강한 풍미 때문에 우스터소스를 비롯한 많은 생선 소스에 재료로 두루두루 쓰입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뼈를 추려낸 뒤 기름이나 소금처리된 통조림에 담겨져 널리 팔리는 음식입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등 동남아시아에서도 대중적인 생선 소스나 생선국물을 만드는 재료로 주로 쓰입니다.

발효되거나 숙성되지 않은 생멸치와 마른멸치는 인도에서 중요한 음식이며, 인도 남부 지방에서는 값싼 식량 제공원이라 합니다. 그곳에서는 멸치를 기름에 튀겨서 먹거나 매운 카레에 비벼먹는다지요. 한국과 일본에서는 숙성되거나 발효된 멸치보다는 주로 햇볕에 말린 멸치가 국물을 내는 데 사용되며, 한국의 전통 국 요리나 우동에 특히 많이 쓰입니다. 한국은 멸치젓도 담그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다양하게 멸치를 사용하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음식중 생선국물은 대부분 말린멸치로 맛을 내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었지요. 찌개나 국에 말린 멸치 몇 개를 넣아 한소끔 우려내면 얼마나 맛있는 국물이 됩니까. 언제나 삼삼하고 감칠맛나는 국물을 내어주는 멸치가 없으면 한국의 음식맛이 얼마나 허전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한국사람에게 멸치는 없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식재료랍니다.

멸 치 - 김 태정

(전략) 그리하여 어느 궁핍한 저녁/한소끔 들끓어오르는 국냄비
생의 한때 격정이 지나/꽃잎처럼 여려지는 그 살과 뼈는
고즈넉한 비린내로 한 세상 가득하여/두 손 모아 네 몸엣것 받으리
뼈라고 할 것도 없는 그 뼈와/살이라고 할 것도 없는 그 살과
차마 내지르지 못하여/삼켜버린 비명까지

봄에 부산에서 먹는 멸치회는 참으로 기가 막히는 맛입니다. 멸치회는 생선이 작고 잘 무르기 때문에,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고, 야채에 무치거나, 기름 약간에 깨소금만 살짝 쳐서 먹기도 합니다. 너무 강하지 않은 맛, 달달하고 담백한 멸치살. 어떤 사소한 죄도 지을 수 없을 것 같이 그저 착하고 순박해보이는 멸치의 모습처럼, 멸치회의 맛은 실제로도 과장없이 정직합니다. 멸치는 추운 겨울, 깊고 어둡고 차디 찬 태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단련하며 보내고, 부산앞바다에 와서 미지근한 봄 바다를 만나 살찌며 조금 풀어져서, 그 살에서 달달하고 향긋한 맛이 난답니다. 봄처럼 부드럽고 달달하고 야들야들합니다.

흠. 멸치축제가 한창인 대변항의 나른한 봄 오후입니다. 오늘은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고. 아름다운 봄바다가 있고. 갓 잡아 아직도 펄떡펄떡 뛰는 듯한 싱그러운 멸치회가 있습니다. 짧고 찬란한 봄 멸치의 아름다움. 부산 대변항 봄바다를 선술집 창밖으로 보며 오랜 벗과 한잔 두잔 기울이는 소주에, 아름답고 찬란한 오후의 시간이 매우 천천히 지나갑니다. 지금 이 시간은 천천히 흘러가지만, 찬란한 봄날은 짧겠지요. 좋은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jungmy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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