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과 신명

우리역사문화연구소 김용만 소장입력 : 2018.05.08 13:14
편집자주신뢰는 사회적 자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프란시스 후쿠야마 2017년 5월 출범한 신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 신뢰는 모든 리더십의 근간이다. 신뢰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우리는 지나온 역사를 통해 리더십과 신뢰의 문제를 돌아보고자 한다. 한국사에서 가장 신뢰도 높았던 고구려 시대를 중심으로 리더십과 신뢰 문제를 다루고, 1차 연도 기획이 끝난 후에 신라, 고려, 조선의 리더십과 신뢰 문제를 다루기로 한다.
전쟁과 동맹(東盟)

고구려 사람들은 전쟁에 매우 능숙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전쟁은 중요한 생활의 일부였다. 그렇지만 그들이 전쟁 자체를 즐긴 전쟁광은 아니었다. 전쟁은 늘 저승사자를 초대한다. 다행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전리품과 명예 등을 얻게 되겠지만, 패배는 곧 저승길에 들어선 것과 같다. 그들도 죽음에 대한 공포, 패배의 두려움을 늘 갖고 살았을 것이고,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고구려 사람들은 어떻게 공포와 두려움을 떨치고 전쟁에서 잘 싸울 수 있었을까. 고구려는 무예를 숭상하는 상무(尙武) 사회라고 일컬어진다. 아이들은 어려서 경당에서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배우고, ‘활을 잘 쏘는 자’를 뜻하는 ‘주몽’으로 불리고자 노력했다. 수렵이 생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고구려 초기에 ‘주몽’으로 불린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유능한 인재로 인정받는 것과 같았다. 사냥을 하며 생활했던 고구려인들에게 강한 맹수들은 사냥해야 할 존재이지, 피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평소 무예를 연마하며, 전쟁 대비 훈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사냥을 수시로 하던 고구려 사람들이기에 강한 적을 만나더라도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개인 전투력의 향상이 곧 집단 전투력의 수준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에 참여하는 군대의 전투력은 군사들의 전투 참여 의지, 즉 사기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우수해도 단결력이 약한 집단의 전투력은 낮기 마련이다. 고구려는 구성원의 단결력을 높이고, 그들의 전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문제를 동맹 축제를 통해 해결했다. 

고구려인들이 기다린 동맹
동맹은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삼한의 계절제와 마찬가지로 최고 신인 천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제천(祭天) 행사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동맹에서는 천신과 함께 조상신인 고등신(추모왕)과 부여신(유화부인)에게 제사를 올린다. 동맹 행사를 통해 사람들은 고구려가 천신의 아들인 추모왕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며, 신의 가호를 받는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나라임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자긍심을 키웠다. 

동맹행사는 사냥과 제사, 축제로 이어진다. 사냥은 신에게 바칠 제물을 얻기 위해 실시되는 동맹의 준비 단계다. 사냥대회를 통해 군사훈련도 하고 뛰어난 능력의 인재를 선발하기도 한다. 온달이 3월에 열리는 사냥대회에서 많은 짐승을 사냥해 평원왕의 눈에 들어 장군이 된 얘기는 유명하다. 동맹은 인재 선발의 장이기도 했다. 왕이 직접 주관하는 천신과 조상신 등에 대한 제의가 끝나면 사람들이 기다리는 축제가 진행된다. 

사람들은 연일 많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신분을 막론하고 이때만큼은 위아래 구분 없이 함께 어울린다. 신분은 달라도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믿고 지켜주는 존재라는 동질감과 유대감을 동맹을 통해 키운 것이다. 

동맹에서 신명 나기
사냥을 통해 제물을 마련하는 등, 신을 맞을 준비가 완료되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며 신을 경건하게 맞이한다. 신에게 바치는 제사는 경건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을 것이다. 하지만 신을 기쁘게 하는 의식, 즉 축제를 즐길 때는 신나는 음악이 울려 퍼졌다. 북소리에 차츰 흥이 돋기 시작하면 사람들의 긴장감은 풀어진다. 술을 마시고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하다 보면 점점 흥분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그리고 차츰 평상시에 보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

고구려 장천1호분 벽화 - 이 그림은 고구려인들의 야외 놀이 장면을 그린 것이다. 아래쪽에는 수렵을 하며 무예를 연마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동맹행사의 축소판을 이 그림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다. /사진=김용만 제공
기뻐서 저절로 날뛰기도 하고, 전에 없던 자신감을 드러내며 열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를 신바람 났다, 신명 났다고도 한다. 동맹 축제는 사람들을 신명 나게 하는 축제다. 신명은 혼자서는 잘 나지 않는다. 여러 사람과 함께 춤과 노래로 자신을 표현하면서 스스로를 옭아맸던 온갖 관념들을 놔버릴 때 쉽게 신명이 난다.

신명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준다. 신명이 나게 되면 무엇이나 할 수 있고, 멋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일탈도 하게 된다. 사회적 규범 밖에서 방자하고 용감하며 때로는 음란하며 미친 듯이 별짓을 다 하게 된다. 이를 통해 평소에 맺혔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모든 집단은 질서가 있어야 유지된다. 그래서 권력은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강한 군대는 대체로 군율이 엄하다. 전쟁이 잦았던 고구려도 법질서가 대단히 엄격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전쟁 때문에 고구려 사람들은 늘 긴장하고 살았다. 하지만 긴장상태가 계속되면 사람들은 피곤해지고 단순해지며 삶이 피폐해진다. 이때 동맹 행사를 통한 신명 나기는 잠시 무질서를 만든다. 무질서는 질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준다. 긴장 속에서 살아가던 고구려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자부심과 자신감, 그리고 동료들에 대한 믿음과 삶의 안정감을 주며 스트레스도 풀어주는 동맹 행사를 항상 기다렸다. 

동맹에서 의사결정 효과
동맹에는 나라 사람 모두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치장을 한껏 한 후 참석한다. 엄청난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큰 모임에서 국가의 중대사가 논해진다. 음력 10월은 한 해의 수확에 감사하고 내년의 일을 점검하기에 적절한 시점이다. 이때 군사행동, 대외관계, 조세 수취, 공공사업, 죄인에 대한 판결 등 국가적 대소사가 다뤄졌다. 흉노, 선비, 거란, 몽골 등 유목민 집단들도 제천 행사에서 집단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했다. 부여도 전쟁 전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점복을 통해 전쟁 수행 여부를 결정했다. 

집단의 중대사는 물론 왕과 부족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결정했다. 그들의 결정은 제천행사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공포되고, 동의를 얻어 추인됐다. 구성원 모두가 다음에는 어떤 상대와 전쟁을 하는지, 상벌이 어떻게 시행되는지 등을 알았다. 특히 전쟁 수행은 다수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 특정인의 독단에 의해 전쟁이 결정되면 참전하는 자들의 적극적인 전투 의지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고구려 사람들은 전쟁에서 자신이 할 일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또 전리품이나 전공을 얻기 위해 열심히 싸울 수 있었다. 국가 규모가 커질수록, 더 큰 전쟁을 치를수록 신뢰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특히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방어전쟁의 경우는 이번 전쟁이 집단의 생존과 번영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구성원 모두가 납득해야 적극적으로 싸울 수가 있다. 고구려는 구성원 사이의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수·당의 침략군과 맞서 방어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고구려 말기까지 왕이 직접 주관하며 지속된 동맹의 효과라고도 할 수 있다. 

반면에 한무제, 수양제, 당태종처럼 전쟁의 과실을 대부분 자신의 것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독재자들은 백성들의 이익과는 무관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들이야말로 전쟁광들이다. 이들이 일으킨 전쟁에 따른 피해와 희생은 전쟁에서 얻을 것이 거의 없는 백성들의 몫이다. 보급품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면서,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가는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부터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전쟁터로 가다가 도망치는 자들이 생겨난다. 수양제가 고구려를 공격하기 직전인 611년 수나라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무향요동낭사가’라는 노래가 유행하기도 했다. 기원전 109년 한무제는 고조선 침략에 죄수들을 이용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죄수들은 감시만 소홀하면 언제든지 전쟁터를 이탈해 도망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래서 이들 뒤에는 늘 감시자들이 붙는다. 

언제든 도망가려는 자들로 가득한 이런 군대들은 감시와 처벌을 강화해 병사들을 억지로 명령에 복종하게 만든다. 통솔자는 병사들을 신뢰할 수 없기에 신뢰도가 높은 집단에서는 필요 없는 내부 감시자를 더 많이 두고, 적보다 자기 집단 내부의 싸움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따라서 이들의 전투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북한에 있는 동명왕릉 전시관의 그림은 고구려인들의 동맹 축제 모습을 상상해 그린 것이다. /사진=김용만 제공
모두가 참여하는 동맹 축제와 신뢰
동맹은 천신에게 제사만 올리는 단순한 제천행사가 아니다. 제천행사 가운데는 특정 소수만이 천신에 대한 제사에 참여하고, 하층민들은 감히 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다. 중국의 봉선(封禪)제가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천행사는 지배층의 권위를 돈독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집단 구성원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반면에 고구려의 동맹, 부여의 영고, 삼한의 계절제와 같이 구성원 전부가 참여하는 제천행사는 집단의 단결과 신뢰를 축적하기 위해 열렸다. 고구려 사회가 신뢰도가 높은 사회였던 것은 구성원 모두가 함께하는 동맹 축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비록 고대국가지만, 고대 그리스와 달리 노비의 비중이 높지 않았다. 전쟁이 나면 그들은 자신을 핍박했던 주인을 배신할 수도 있다. 집단을 위해 그들이 목숨 걸고 싸울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제천행사인 동맹을 계승한 팔관회는 고려시대 내내 폐지와 부활을 거듭했다. 신바람 나게 놀며 함께 어울리는 축제는 지배층의 이익에 의해 종종 중단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함께 참여하는 축제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상하구분 없이 함께 술 마시고 춤추며 노는 풍습은 사회질서를 깨뜨리는 것이라고 배척당했다. 조선에서는 왕과 사대부들이 지내는 제사와, 백성들이 지내는 마을 제사가 확연히 구분됐다. 

신명 나기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체면, 차별적 상하 구분, 지시와 복종의 일방통행, 변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생각, 근면 성실 엄숙 등 지나친 도덕주의 등이다. 이런 요소들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불만을 키우게 만든다. 조선은 백성들의 일탈 욕망을 지속적으로 억압했다. 백성들이 신명 나게 놀며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기도 하는 일탈을 왕과 사대부들이 막았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에는 질서라는 명목으로 점점 확실한 구분이 생겨났다. 그리고 백성을 억눌러 노비로 만들어 부리는 압량위천(壓良爲賤)이 성행했다.

그래서 조선이 고구려보다 훨씬 노비들이 많았다. 조선은 고구려보다 훨씬 많은 인구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신뢰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약한 전투력을 가진 미약한 군대를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스트레스를 풀지 못한 백성들은 한(恨)이 맺혔고, 그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신명이 나지 않으니 자신들이 가진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하지도 못했다. 집단을 활기차게 만드는 새로운 힘이 나오기 어려웠다. 조선의 지배층은 신명 나기의 효과보다는 자신들을 위한 질서를 수호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을 뿐이었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이것이 당장 큰 문제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벌어지자 질서 강조의 부작용이 너무도 크게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리더들의 리더십과 동맹
권력이 강해지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남과 다른 대우를 받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남과 다르다는 우월의식을 갖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월의식을 지속시켜줄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려고만 한다.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자들과 소통하고 함께 어울리려는 태도를 갖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하지만 고구려 리더들은 동맹을 통해 대중과 어울리는 자리를 지속했다. 그래서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질서만을 강조하는 사회는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

늘 팽팽한 줄은 끊어지기 쉽다. 때로는 느슨하게 풀었다가 다시 조이는 것이 필요하다. 고구려 사람들은 동맹 축제에서 신명 나게 놀면서 새로운 창조의 힘을 만들어냈다. 엄격한 법질서를 가진 전쟁의 나라 고구려가 700년 넘는 오랜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동맹에 있었다. 

신바람 나게 놀아야 한다. 그래야 신명 나게 다시 일할 수 있다. 

위아래의 벽을 허물고 서로의 신뢰를 쌓아라. 그것이 조직을 강하게 하고, 조직원의 믿음을 얻어 조직의 생명력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힘이다. 

고구려 리더들은 동맹의 긍정적인 효과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구려가 강대국이 된 힘의 원천이 동맹이었음을 잊지 않았다.

김용만 소장
우리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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