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직? 우지직!

[박미산의 맛있는 시읽기]

서울디지털대학 박미산 교수입력 : 2018.08.10 17:47
/그림=원은희
- 황인숙
그 언젠가 경기도 장흥쯤을 지나가는데
길가 현수막에 이런 문구가 펄럭이고 있었다
‘레미콘 반 남은 거 판매함
 포장해 드립니다’
오, 레미콘을 포장해 주다니
시멘트 포대에 담아준다는 걸까
드럼통에 담아준다는 걸까
멍하니 생각하다가
킬킬 웃었다
그 포장(包裝)이 아니라 이 포장(鋪裝)이었던 것
나는 때때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나도 함께 깔깔깔이건 혼자 배시시이건
웃고 싶다
그런데 말귀를 못 알아들어도
뒤에는 그걸 알아채야 한다
뭘 알아야 웃든지 말든지
끝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
저는 안 웃어도 속 편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속이 뒤집히고
속이 타고 속이 터진다
개그라면 아재개그라도 좋다고
하시라도 웃을 준비가 된
웃고 싶은 사람들을
울고 싶게 만든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귀를 못 알아들어 생뚱맞은 대답만 일삼는 사오정을 보고 있으면 처음엔 당황스럽다가 3초 후쯤에는 웃음이 터지곤 합니다.
나도 수업 중에 학생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의도하지 않게 학생들을 웃기기도 합니다. 그들만이 쓰는 말, 특히 요새는 줄임말이 많아서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정말 많습니다.
학생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 뒤늦게 웃는 사오정이 될 때의 낭패감이라니. 학생들은 그런 나를 보고 깔깔깔 대놓고 웃기도 하고, 억지로 웃음을 참다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끝까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우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은 안 웃어서 속이 편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속이 뒤집히고 속이 타고 속이 터집니다.
우직한 사람들은 요새 같이 더위에 지쳐 아재 개그라도 좋다고 언제라도 웃을 준비가 된 웃고 싶은 사람들을 울고 싶게 만듭니다. 우직함은 그 자체로 능력이고 미덕이고 아름다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직을 우지직 부숴서 폭염을 날려버릴 사오정 개그라도 한 방 날리면 어떨까요?
우직이 우지직 부서지는 순간, 더위에 지친 짜증이 한 방에 훅 날아갈 겁니다.

박미산 교수
서울디지털대학 초빙교수
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PDF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