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한반도 평화분위기에 도취해선 안돼

기무사 해편(解編)과 육사적폐(陸士積弊)
軍 통수권의 구심력이 약화될 수 있어
2017년 방위사업청 신무기 도입 예산 고작 7.1% 집행
軍 북한의 해상유류밀거래 10건 적발하고도 쉬쉬
북한 눈치 보기는 곧 북한의 강압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증거

북한 비핵화를 위한 역사적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더딘 비핵화 조치로 실행 가능성에 대한 조급함이 드러나고 있다. 한미의 ‘선(先) 비핵화, 후(後) 체제안전보장’ 전략과 북한의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의 단계적•동시적 조치’ 전략의 충돌이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미와 북한은 한미 연합연습(훈련) 중단과 미사일 발사대 해체 및 미군 유해 송환 등의 조치를 통해 상호 신뢰 문제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이라는 문제의 본질에서는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략적 유연성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 우리 군(軍)은 적폐청산과 기무사 해편(解編), 국방개혁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군의 주류였던 육사(陸士)를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지목하는 분위기가 또 다른 군 내 반목과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의 신경조직과도 같았던 기무사가 적폐 대상이 되어 조직 해체 및 재편성의 과정을 겪으면서 통수권의 구심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도 있다. 또한 방위사업청이 새로운 무기 도입 예산을 집행하지 않아 무기 도입이 중단되었고, 군이 북한의 해상유류밀거래를 10건이나 적발하고도 쉬쉬하면서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NGO단체인 군 인권센터장이 소장급 이상 장성과 민간위원 등 10여 명이 참석한 군인복무정책 실무위원회에서 군 간부들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안보는 손 놓고, 명예는 짓밟히고, 전략은 없어 보인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잘못된 것은 도려내고 고쳐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미운 감정과 사랑의 마음으로 채찍을 드는 것은 다르다.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생명과 같이 여기는 군 조직에서 상부의 명에 따른 정상적 임무 수행으로 적폐 대상이 되었다면 그들의 명예는 누가 지켜주어야 하는 것인가. 얼마 전 기무사에 근무하는 한 간부가 울분을 토하며 전한 능지처참(陵遲處斬), 도륙학살(屠戮虐殺), 보복응징(報復應懲)의 내부 분위기는 개인의 안타까움을 넘어 국가안보를 담당해온 특정조직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갖게 하였다는 점에서 국가안보에 결코 이롭지 못함을 생각하게 한다. 트라우마는 언젠가 또 다시 아픔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기무사는 그동안 정권안보의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정권안보를 위해 이용되었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기무사의 기본 기능에 ‘대전복’ 기능이 있고, 우리나라가 쿠데타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정부가 기무사를 이용했고, 현 정부가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 쿠데타 역사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쨌든 기무사 장병들은 그들의 기본적 임무수행 명분으로 군 통수권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들에겐 그것이 정의였고, 명예였으며, 자긍심이었다. 자긍심이 지나쳐 오만함도 있었지만 군의 질서를 유지하고 고위 간부들의 일탈을 억제하는 데는 존재만으로도 긍정적 요인이 되었다. 해편(解編) 과정에서 그렇게 처절한 상처를 남겼어야 했는지, 좀 더 지혜롭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아쉽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회 상임위에서의 기무사 대령과 국방부장관 간의 진실공방은 대통령의 군 통수권 보좌를 최우선시하는 그들의 기능적 속성이 더 본질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취임 초기에는 기무사의 오만함을 경계하며, 기무사령관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았으나, 통수권 차원에서 대면보고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다시금 대면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최근 기무사 개혁위원회가 제시한 개혁안에서도 ‘대전복’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군 통수권 보좌 기능을 계속 수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방위사업청 신무기 도입 예산의 집행률 저조현상은 또 다른 안보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국방부가 한반도 평화분위기에 도취해서 현재의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아니라면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강압전략에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지 않고서야 계획된 신무기 구매사업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 어느 야당 정책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 사업 등 18개 신규 사업예산 431억5200만 원의 집행률이 고작 7.1%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2016년 집행률 95%와 지난 4년간 평균 집행률 80% 이상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군 내 어수선함에 대비태세마저 흔들리고 있으니 어찌 국가안위가 걱정스럽지 않겠는가.

군에 대한 현 정권의 인식이 어떠한가는 최근 발생한 해병대 마린온 헬리콥터 추락사고 당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5명의 해병대 장병이 순직한 사고에 대한 청와대 및 국방부의 인식은 군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파수꾼으로서의 삶을 명예롭게 생각하며 살아온 장병 및 수많은 예비역들에게 실망을 넘어 좌절감을 갖게 했다. 지도자에게 부여된 돈과 명예와 권력은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고의 원인이 무엇이든 생명을 담보로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장병들의 넋을 기리고, 유족들을 위로하는 일에 왜 그렇게 인색해야 했는지 묻고 싶다.

J 차일드(Child) 박사의 전략적 선택이론에 따르면 전략 결정의 핵심요인은 상황이 아니라 지도자(의사결정권자)의 상황인식이라고 했다. 한반도에 불어닥친 평화분위기에 대한 지도자들의 상황인식이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단국대학교 공공인재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9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