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의 영웅 문무왕의 리더십

668년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가 당나라에 의해 멸망당했다. 고구려 유민들은 다시 고구려를 부활하기 위해 노력했고, 드디어 698년 대조영(大祚榮, ?~719)이 중심이 되어 발해가 건국되었다. 발해 건국은 고구려의 부활을 한사코 막으려던 당나라의 집요한 방해를 물리치고 이뤄낸 것이다. 대조영과 그 무리들은 당나라 대군을 천문령 전투에서 격파함으로써, 드디어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다. 고구려 시대의 경험 때문에, 발해는 빠르게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곳곳이 폐허가 된 고구려의 옛 땅에서 구심점을 잃고 한동안 살아왔던 유민들을 모아 나라를 세우는 것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인구도 줄고, 산업과 유통망이 한번 붕괴되었던 만큼, 많은 부분에서 고구려만큼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대조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당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713년 고왕(高王) 대조영은 당나라와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다. 최대의 적국이고, 과거의 원수였지만, 실리가 중요한 국제관계에서 언제까지 대립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신생국 발해와 세계 제국 당나라와는 현실적으로 엄청난 국력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발해는 형식적이지만 당의 책봉을 받았고, 또한 왕자를 당나라에 숙위(宿衛-황제를 호위하며 지키는 일, 당과 주변국 간에 외교의 한 형태)로 보냈다. 당의 위협에서 벗어나 먼저 옛 고구려 영토를 회복하고 국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719년 대조영의 뒤를 이어 그의 장남 대무예가 발해 2대 무왕(武王)으로 즉위했다. 무왕은 언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린 시절에는 나라 없이 살아가는 고구려 유민의 삶을 경험했을 것이고, 고구려 부흥 전쟁을 직접 지켜보며 성장했을 것이다. 

무왕은 발해를 옛 고구려만큼 강대한 나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왕위에 오르자 인안(仁安)이란 연호를 제정했다. 동아시아에서 연호를 제정한다는 의미는 독립된 천하의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고구려가 태왕(太王, 황제와 같은 의미)이란 호칭을 사용하던 4세기 후반부터 멸망 때까지, 신라가 법흥왕 23년(536년)에서 진덕여왕 2년(648년)까지 연호를 사용한 바 있다. 발해의 경우는 699년 고왕이 천통(天統)이란 연호를 사용한 이래로 멸망 시까지 줄곧 연호를 사용했다. 무왕은 연호 사용을 지속함으로써, 발해의 독자성을 강조하고 제국의 위상을 과시했다. 

그는 즉위 후 영토 확장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727년 발해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에 사신을 보낸다. 이때 보낸 국서에서 “여러 나라를 아우르고 여러 번국을 감독하니 고구려의 옛 거주지를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지녔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팽창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신당서’에는 그가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여러 이민족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섬겼다고 했다. 

발해의 빠른 성장은 흑수말갈과 당나라를 긴장시켰다. 흑수말갈은 본래 고구려에 예속된 부족의 하나로, 만주 동북부 지역에서 수렵을 잘하며 싸움에 능한 거친 부족이었다. 흑수말갈은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만주 일대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으로 성장했었다. 그런데 발해가 건국되어 빠르게 성장하자 흑수말갈은 위협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발해를 견제할 필요성을 갖고 당나라에 접근했다. 722년 흑수말갈의 추장 아속리계는 당나라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자 당나라는 그에게 벼슬과 선물을 듬뿍 주는 등 크게 환대했다. 726년에는 당나라가 흑수말갈을 흑수주(黑水州)로 삼는다고 공포하여, 흑수말갈이 당나라와 특별한 관계임을 선언했다. 당나라 역시 흑수말갈을 통해 발해를 견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무왕은 흑수말갈이 당나라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서도, 발해에 통보하지 않은 것은 장차 두 세력이 협력하여 발해를 공격해올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왕은 곧 아우 대문예를 시켜 흑수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런데 대문예는 당나라에 파견되어 황제 곁에서 숙위하며 지낸 바 있어서, 당나라의 국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그는 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흑수말갈을 공격한다면 당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 당나라와의 전쟁은 발해를 멸망시키는 길이 될 수 있다. 당나라는 발해에 사람의 많음과 군사의 강함이 우리의 1만 배나 된다. 지난날 고구려가 강성하여 30만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와 싸웠지만 결국 멸망했다. 지금 발해의 군사 수는 고구려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는 당나라에 대항해 싸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무왕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출전을 강요했다. 대문예는 군사를 이끌고 흑수말갈과의 국경에 도달해서, 다시금 글을 올려 흑수말갈 공격을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자 무왕은 친척 형인 대일하로 사령관을 교체하고, 대문예를 불러들여 그를 처벌하고자 했다. 그러자 대문예는 두려워서 그만 당나라로 망명하고 말았다.

무왕은 720년 당나라가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거란(契丹)을 함께 공격하자는 제안을 해오자, 거절을 한 바 있다. 거란이 멸망하면, 당나라의 다음 목표가 발해가 될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무왕은 흑수말갈을 굴복시키지 못한다면, 발해의 안전이 다시 위태로울 수 있다고 보았다. 아울러 당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흑수말갈을 공격하지 못한다면, 이미 굴복시켰던 다른 말갈 부족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공격 강행을 명령한 것이었다. 

무왕의 흑수말갈 공격은 발해가 제국으로 자리 잡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 만약 여기서 흑수말갈을 제압하지 못한다면 발해는 제국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흑수말갈이 당과 계속 협력하며 발해의 변방을 위협하게 놔둔다면 계속 발해에 우환거리가 될 것이고, 당나라의 간섭을 발해가 쉽게 물리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당나라로 망명한 대문예가 당나라에서 크게 환대받고 좌효위장군이란 벼슬까지 받았다. 그러자 무왕은 당나라에게 대문예를 죽여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당나라는 무왕의 요청을 거절하고 대문예를 잠시 피신시켰다. 당나라에게 대문예는 발해를 제어할 때 쓸모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당나라는 발해에 사신을 보내 대문예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영남(嶺南, 남중국)으로 유배를 보냈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대문예가 영남 땅으로 가지도 않은 것을 무왕이 모를 리가 없었다. 무왕은 다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나라의 거짓말에 강력히 항의했다. 

730년 당나라의 간섭을 받던 거란이 유목제국인 돌궐 편에 서서 당나라에 맞섰다. 무왕은 거란을 지원했으나, 732년 3월 거란이 당나라에 크게 패하고 이웃한 해족(奚族)마저 당나라에 항복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동안 당나라는 대문예에 대한 정보를 흘린 관리를 처벌하고, 대문예를 영남 땅으로 유배를 보낸 일을 발해에 통보하는 등, 발해와 외교전에서나 명분에서 계속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힘에서 자신감을 얻은 당나라는 732년 7월 발해에 사신을 보내 대문예에 대한 처벌 요구를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만약 발해가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오면 발해를 향해 쳐들어가겠다고 협박을 해왔다. 게다가 발해의 흑수말갈 공격에도 불구하고, 728년 흑수말갈은 다시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과 협력관계를 강화했고, 당나라 역시 흑수말갈을 계속 지원했다.

강자의 횡포를 부리는 당나라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무왕의 리더십이 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무왕은 중대 결정을 내렸다. 당나라가 장차 발해를 공격해올 경우, 전진기지가 될 산둥반도 북쪽에 위치한 등주를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등주 공격은 점령이 목표가 아니었다. 당나라가 발해를 공격할 수 없게 만들고, 언제든지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한 기습공격을 한 것이다. 당나라는 등주성이 함락되고, 등주 자사가 죽임을 당하자, 서둘러 대문예를 시켜 유주(幽州, 허베이성 일대)의 군대를 동원해 발해군을 막게 했다. 

대문예가 당나라 사령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무왕은 분노했다. 동생이 정책 차이로 인해 당나라로 망명한 것도 용서 못할 일이지만, 이제 당나라의 앞잡이가 된 것은 용서가 아니라 처벌을 해야 할 일이었다. 무왕은 자객단을 당나라로 파견했다. 발해의 자객들은 천진교 남쪽에서 대문예를 죽이려고 덤볐으나, 그를 호위하는 당나라 병사들 때문에 암살에 실패하고, 낙양 근처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무왕은 733년 3월에는 당나라와 맞서는 거란을 지원하기 위해 군대를 보냈다. 거란, 돌궐과 합세하여 당나라군을 격파했다. 그러자 당나라는 위급함을 느끼고, 신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나라는 신라에 함께 10만 대군을 동원해 발해를 공격하고자 계획했으나 추운 날씨 탓에 당군은 출발도 못했고, 신라군도 발해와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추위와 눈 때문에 철군했다. 

무왕은 다시 군대를 보내 당나라의 마도산(馬都山, 현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에 위치한 도산)을 공격했다. 하지만 734년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변했다. 당나라가 거란을 크게 격파하면서, 당나라와 발해 사이에 거란이라는 걸림돌이 사라졌다. 또한 당과 맞서던 돌궐마저 빌게카한이 신하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정치적 혼란과 더불어 서서히 약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국제 정세가 변해가자, 무왕의 선택도 달라졌다.

736년 무왕은 그간 전쟁에서 생긴 당나라 포로를 돌려보내면서 당나라에 화해를 요청했다. 당나라도 그간 붙잡아 두었던 발해 사신을 풀어주었다. 737년 무왕의 아들 대흠무(大欽茂)가 3대 문왕이 되자, 발해는 당나라와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무왕이 당과 전쟁을 했던 것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했던 동생에 대한 미움과, 동생을 보호한 당나라에 대한 불만이 한 가지 원인일 수는 있다. 하지만 발해와 당의 전쟁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면 동생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발해의 이익과 미래에 관련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당나라는 발해에 비해 국력이 월등했지만, 많은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국력이 월등한 당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발해가 당연히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전면전은 최후의 선택이고, 전면전에 이를 때까지 수많은 선택지가 놓여 있다. 미리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머리를 숙이면, 계속 양보를 해야 하고 스스로의 발전 기회를 놓치게 된다. 대문예가 당, 고구려와 발해의 국력을 비교하며 흑수말갈과 싸우지 말자는 것은 발해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지레 겁먹고 움츠린 자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무왕은 달랐다. 그는 발해의 미래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했다. 그리고 위험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보여주기 위해 과감한 행동을 했다. 거짓말을 한 당나라를 호강하게 질책했고, 당나라에 대한 선제공격을 통해 결코 발해가 당나라에게 쉬운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어 이후 180년간 발해가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면서도 현실 감각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국제정세가 불리하게 돌아갔을 때는 당나라에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를 할 줄도 알았다. 

무왕은 9세기 초 발해가 해동성국으로 불리게 된 기틀을 마련한 임금이었다. 흑수말갈은 결국 발해에게 흡수되었고, 발해는 사방 5천리의 대국으로 성장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해동성국 발해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발해 역사를 대표하는 가장 탁월한 리더였다.

김용만 소장
우리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