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원리(戰場原理)로 본 남북군사합의

[차동길의 군사이야기]

단국대학교 공공인재대학 차동길 교수입력 : 2018.10.01 13:29

#정전체제에서 남북 군사합의의 성격

3차 남북정상회담이 지난 9월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되었다. 남북은 평양 공동선언문을 채택하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임석한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로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이하 남북군사합의)에 각각 서명함으로써 평양 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를 채택하였다.


그리고 한반도를 항구적인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적극 이행해 나가기로 약속했다. 남북 군사합의에서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지상•해상•공중 모두에서 남북 간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설정했는데,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에 대해 "사실상 남북 간 불가침 선언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은 평양 공동선언문 1조 2항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조속히 가동하여 남북 군사합의서의 이행 실태를 점검하고 우발적 무력충돌 방지를 위한 상시적 소통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남북 군사합의는 지난 4월27일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나갈 것"이라는 합의에 따른 것이다.


남북은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국제법상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전체제의 국제법적 의미는 일시적으로 전쟁이 중단된 상태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에 따라 체결한 남북 군사합의도, 문 대통령이 밝힌 연내 종전선언도 본질은 전쟁을 종식하여 정전체제를 합법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치적 선언의 성격이다.


아울러 남북 군사합의는 정 안보실장이 말했듯이 성격상 불가침 선언의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 사례로 1930년대 독소 불가침조약이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정치 선언적 성격의 불가침 약속 사례로는 1994년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합의에서 “북한을 위협하지 않고,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치선언과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확약한 사례가 있다. 최근에는 2018년 5월28일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조약 형태로 미국 의회에 제출하여 동의를 받겠다고 말함으로써 상호 불가침조약의 형태는 아니지만, 그 의미를 담은 회담 결과를 조약 형태로 보장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바 있다.


불가침조약이나 정치 선언적 성격의 불가침 합의 자체는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으면서 동시에 국제법적 위반도 아니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맺어진 상호 불가침조약은 주로 독일이 주변 국가들과 맺은 것이었는데 실효적이지 못했다. 따라서 국제법상 정전체제로 유지되고 있는 남북한 간의 불가침 선언 성격의 남북군사합의서 역시 법적 구속력이 없어 언제든지 어느 일방에 의해 파기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인 ‘남북 군사합의서’는 내용의 구체성만큼이나 일방적 파기에 의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남북 군사합의는 의지의 싸움 결과
전쟁의 끝은 평화의 시작이고, 평화의 끝이 전쟁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남북 군사합의는 전쟁의 끝, 곧 평화의 시작을 향한 발전된 합의로서, 힘에 의한 적대적 평화에서 타협에 의한 평화적 평화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남북은 1953년 정전체제 수립 이후 65년간 적대적 평화상태를 유지했으나, 남북 군사합의로 인하여 평화적 평화상태로 지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문 대통령의 의지, 즉 어떻게든 전쟁만은 막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작동한 결과로 보이며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기 위한 전략적 접근으로도 보인다. 따라서 합의 자체는 획기적이며,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와 전장원리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목적을 적의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이라 하였다. 곧 전쟁은 의지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전쟁은 물질적 전투력이 아무리 허약해도 싸울 의지만 있다면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아무리 국력이 강하고, 막강한 전투력을 갖고 있다 해도 싸울 의지가 없다면 쉽게 패망한다. 전쟁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평화의 의지는 약해지고, 평화의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전쟁의 의지는 약해진다.


정전체제에서 남북이 맺은 남북 군사합의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한 과정 중 일부이다. 과연 누구의 의지가 더 강했을까. 유형 전력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 우위에 있지만,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고려하면 남한이 상대적 우위라 할 수있다.


그러나 북한 입장으로 보면 65년간 상대적 열세의 전력으로 한미동맹에 맞서오다, 2017년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완료하면서 대미 억제력을 갖게 되었고, 대남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무형 전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특성상 사상의 자유, 전쟁에 대한 공포, 평화주의,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어떻게든 전쟁만은 막겠다는 강력한 평화 의지가 반영된 남한이 북한의 의지에 끌려가는 모양새다.


물론 북한이 남한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 전쟁 의지의 열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북한의 전통적인 군사 사상과 전략문화, 핵보유국으로서의 자신감, 통일전선 전략전술, 그들의 협상 수법 등을 고려하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을 역이용한 고도의 기만전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이도 적지 않다.


남북 간 의지의 싸움 결과가 나타난 것이 ‘판문점 선언 군사 분야 이행합의서(남북 군사합의서)’이다. 따라서 남북 군사합의서에서 제기되고 있는 몇 가지 문제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첫째, 평화체제 구축 프로세스 관점에서 보면 상호 신뢰구축단계를 건너뛴 합의로서, 의지가 강한 쪽에 의한 강요된 합의일 가능성이 있다. 둘째, 합의 결과 정전체제에서 남북한 군사력 운용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남북한이 지상•해상•공중 모두에서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설정, 군사력 운용을 제한한 것은 북한에 유리하고, 남한에 대단히 불리한 조치이다. 한미 양국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감시용 전술 정찰기와 중•대형 무인기 전력을 비무장지대(DMZ) 일대에서 운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나, 북한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비무장지대 감시초소(GP)를 상호 동수 폐쇄하기로 한 점, 서해 완충 수역의 불균형 설정 등은 북한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양 정상의 판문점 선언에 따라 구성하기로 한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 증강, 다양한 형태의 봉쇄•차단 및 항행 방해,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등을 협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향후 우리 군(軍)의 국방개혁과 전력증강 등에서 사사건건 제약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가안보가 걱정되는 이유이다.



차동길 교수 

단국대학교 공공인재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0월호에 실린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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