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신뢰를 생각한다

[안민호의 여론객설(輿論客說)]

숙명여자대학교 안민호 교수입력 : 2018.11.06 15:03
예기치 못한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때, 성숙한 존재라면 그것이 국가든, 개인이든 스스로를 내적으로 깊이 성찰 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위기는 외부로부터 도둑처럼 갑작스레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잘 살펴보면 그 뿌리는 내부의 깊고, 일상적인 곳에 자리하고 있다. 외부의 적은 부수적일 뿐, 본령은 자신과의 매일매일의 싸움이다. 그런 내적 성찰의 끝자락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뢰의 상실’이다. 개인도 사회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 대해, 또 타자들에 대해 믿음을 잃어버리고 절망하는 것이 패망의 원천이다. 그 문제를 직시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는 백약이 무효다.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으려 해서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다가도 한순간에 쓰러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또 공동체다.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論語) 에도 이에 대한 얘기가 있다. 한 제자가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공자는 풍족하게 먹이고 (足食), 나라를 안전하게 지키고(足兵), 또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것(民信)이라고 말한 다. 제자가 다시 그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먼저 군사력 (兵)을 버리고, 그 다음으로 먹이는 일(食)을 버릴 수 있지만, 사람들의 신뢰는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신뢰 없이는 사람들이 살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 이 바로 여기서 나온 구절이다. 우리 현실에 적용해보면, 경제도 중요하고 한반도 평화도 유지해야 하지만, 그 무엇보다 지켜내야 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신뢰 라는 말이다.

만성적이지만 매우 심각한 우리의 사회병리 (社會病理)

최근 누구보다도 검소하게 살아온 한 노부 부가 힘들게 모은 400억 상당의 재산을 한 대학에 기부해 화제가 되었다.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아직 살 만한 세상임을 일깨우는 청량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런 선행을 알리는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읽다 보면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이 어느 정도로 밑바닥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칭찬은커녕 ‘사학재단 배불리는 어리석은 행동’, ‘교직원만 좋은 일’,‘부잣집 자녀들만 가는 명문대에 웬 기부’,‘바보 짓 말고 다쓰고 가지’ 등 뒤틀어진 빈정거림이 추천 수높은 댓글로 자리하고 있다. 비단 이 경우만 그런 것이 아니다. 기부 관련 기사들을 찾아 보면 거의 대부분 이런 반응이 주를 이룬다.

우리가 왜 이런 지경인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요즘 들어 갑자기 그런 것도 아니 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온 국내외에서 실시되는 다양한 사회 신뢰도 조사의 부정적 결과들과도 부합한다. 우리 공동체 구성원들간 상호신뢰의 정도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가장 낮은 축에 들고, 그것도 매년 더 나빠지고 있다. 어느 특정 조사를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모든 조사결과가 다 그렇다. 조사수치보다도 언론에 보도되는 현실은 더 암담해 보인다. 사법부의 최고위직 인사는 재판결과를 가지고 장사꾼처럼 청와대와 협상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고, 강남 명문여고의 교사는 자신의 딸을 위해 시험문제를 유출하고 내신성적을 조작했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재판과 입시제도 자체가 불신받는 상황이다. 여기에 정부 지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일부 사립 유치원장들의 천태만상 비리까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비리 당사 자들은 그래도 교육공무원보다는 자신들이 깨끗하다며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집단 위력을 과시한다. 철판도 이런 철판이 없는데, 이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종인가? 아니다. 다 보고 배운 대로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닌데 억울할 뿐이다. 우리도 그들을 보면서 또 배운다.

사회 협력을 고양시킬 수 있는 조건들에 관한 시뮬레이션 연구들이 꽤 있다. 게임 모델을 이용한 이들 연구결과를 보면 참가자들의 배신적 행위에 대한 처벌조건을 달리함에 따라 사회적 협력의 정도가 변화한다. 구체적으로 행동경제학자 허버트 긴티스와 인류학자 로버트 보이드는 가장 높은 정도의 사회적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규칙위반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규칙위반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행위에 대한 2차적 처벌까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대개의 민주주의사회에서, 규칙위반을 처벌 하는 책임은 일차적으로 사법기관, 또는 행정부에 있다. 이들이 엄정하고 공정하게 법집행을 하는 것이 사회 유지와 발전에 필수 적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하다. 그런데 사법기관이나 정부가 엄정하고, 공정한법 집행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면, 부정한 심판인 그들 역시 처벌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력이 가능 하다는 것이다.

“민나 도로보데스”

두 전직 대통령이 비리로 구속 수감되어 있고, 그와 관련해 수많은 공무원과 기업인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대법관이 유력했던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구속되었다. 부정한 심판들에 대한 2차적 처벌이 작동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데도 왜 우리의 사회적 신뢰수준은 여전히 밑바닥일까?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불신은 인화성이 높다. 어떤 구체적 대상에서 시작된 불신의 감정은 대상의 범위를 확장하고 일반화한다. 몇 가지 비리 사례를 접하게 되면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 게 우리의 인식이고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바뀌었지만 세상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인다. 강남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지 1년 만에 서울 전체 아파트 가격이 30% 넘게 급등하는 상황에도 주무 부처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은 이미 감옥에 있는 전 정부 인사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매우 익숙한 낯 두꺼움이다. 배신은 다시 교육되고 불신은 들불처럼 번져나간다.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이다. 만약 믿음이 있다면, 믿지 않아야 성공한다는 믿음 이다. 정부 정책과 반대로 움직이는 게 성공의 처세술이다. 아파트를 팔라고 할 때 사야 부자가 되고, 수능이 중요하다 할 때 남다른 학생부 만들 방도를 찾아야 좋은 대학 가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다. 이래서는 어떤 정책 이든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가짜뉴스는 병의 증세이지 원인이 아니다

가짜뉴스가 넘쳐난다고 걱정들 한다. 정부는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팔 걷어붙이고 나설 모양이다. 역시 익숙한 모습이다. 그런데 잘못 짚었다. 가짜뉴스의 범람은 사회적 신뢰의 상실 이라는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증세(症勢) 이지 원인이 아니다. 만성적이지만 매우 심각한 병이다. 더 이상 남 탓은 안 된다. 여야할 것 없이 한국정치는 완전히 새롭게 시작 해야 할 상황이다. 서로 믿지 못하면 협력할수 없고, 협력할 수 없다면 경제도 없고 안보도 없다.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한 대지에 사회적 신뢰를 파종하고 튼튼한 믿음의 수목으로 자라도록 양육하는 일이 현재 한국사회에서 정치하는 이들의 우선적인 책무다. 단순히 가짜뉴스를 때려 잡는다고, 누구를 감옥에 보낸다고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 이미 드러난 치부를 덮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서로를 벌거벗기고 저잣 거리로 내모는 행태도 그만해야 한다. 남을 손가락질하기보다 스스로의 문제를 성찰하고 책임지는 모습에서 신뢰는 쌓인다. 그렇게 작더라도 꾸준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하고 협력하면 이익이 되고 배신하면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경험하게 될 때 사회적 신뢰는 자랄 수 있다. 그걸 씨 뿌리고 북돋우는 것이 정치가 할 일이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 학부 교수
언론학 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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