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가 만난 모두의 변호사]‘우리들의 천국’을 꿈꾸는 법조인

김용범 변호사, “의뢰인이 직접 고민하고 선택하는 게 사건 진행하는데 가장 중요”

모두의 변호사 김태우 센터장입력 : 2018.12.26 10:47
모두의 변호사 출범식 때 참 많은 분들이 참석했었다. 전직, 현직 장관들과 법조계의 모든 인사가 모여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을 다짐한 날이었다. 그 자리에 변호사 선배를 따라온 공익법무관 몇 명과 법대생 몇 명이 있었는데 다들 변호사가 되어서 돌아오겠다고 이야기한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새롭게 모두의 변호사에 합류한 김용범 변호사가 그 자리에 있던 공익법무관이었다. 시간을 기다려서까지 봉사를 하고자 하는 옛날 선비 같은 신세대 변호사를 만나본다.


-소개를 부탁한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실수도 많이 하지만 큰 사고는 일으키지 않고, 3년은 공익법 무관으로 2년은 전업 변호사로 일해 온 김용범이다.

-변호사가 된 계기는
▶누가 변호사가 된 계기를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변호사들처럼 좀 있어 보이도록 그럴싸하게 말할 때도 있다. 사실 두 가지 모두 내가 겪었던 사실에 기반한 이야기인데 듣는 사람을 고려해서 말한다. 2002년도에 대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 마침 2002 월드컵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대학생들 종강을 5월 31일로 해줬다. 방학도 일찍 하고 할 일도 없어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축구를 할 때는 친구들과 거리응원도 나가고 분위기를 즐기기도 했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고 결국에는 도서관을 근거지로 해서 학교 근처에서 어슬렁거리게 됐다.
학교 후문에 ‘누란’이라는 중국집이 있었는데, 친구들과도 자주 가고 방학 때 혼자서도 자주 가다보니 주인 아저씨와 친해져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내 전공을 물어 보셔서 법학이라고 했더니, 자신이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이야기부터 시민운동에 투신한 이야기까지 해주더니 고시원 출신 법조인이 되지 말고 거리의 법조인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가인 김병로’ 선생의 호가 왜 ‘가인’인지 설명해주었다. 나는 법학 전공자로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공부해서 거리의 변호사가 되고자 결심했다.
이 일은 내가 실제로 겪었고 당시에 그렇게 의지를 다졌던 내 모습을 기억에 의존해서 이야기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내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때가 2013년인데 10년이나 되는 기간에 저런 의지만으로 변호사 외길을 걸었다는건 나도 믿지 않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변호사가 된 계기는 콕 짚어 말하기 어렵다. 내가 지금처럼 변호사가 될 줄도 몰랐고, 당시 20대 초반에는 마음처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법학 전공으로 학교에 입학했지만 내가 법학에 맞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난 앞으로 뭘 하고 살아갈지 그런 고민으로 가득했다. 수능 하나만 바라보고 수능 성공만 꿈꾸며 살아왔는데, 욕심만큼 수능 성적이 나와주지도 않았고 만족할 만한 대학도 입학 하지 못했던 때라, 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 알 수도 없었고 과연 그런 때가 내게 올까 하는 의구심만 가득한 대학 신입생 시절을 보냈다.
때마침 IMF 외환위기가 휩쓸고 간 대학은 활력보다는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남자 동기들은 대학 1학년을 마치면 군대 갔다 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공식처럼 받아들여졌고, 여자 동기들은 남자 동기들이 군대 가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분위기였다.
당시에 나는 항상 어떻게 살지 고민만 했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뭐에 미친 듯이 달려들어야 할지도 몰랐던 것 같다.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현실을 잊기 위해 열심히 놀러 다닌 게 전부였던 것 같다. 집에는 사법시험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공부보다는 야구동아리에 가입해서 야구도 하고, 대학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일이 더 익숙했던 시기가 있었다.
빙상선수였던 이규혁 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올림픽 나가는 심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나도 사법시험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시험장에 가는 일을 반복했다. 시험에 3~4번 떨어지니 금방 20대 중반이 넘어갔고, 사법시험을 핑계로 미뤄둔 군입대는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수학의 정석처럼 계속 마음을 무겁게 했다.
내일은 뭘 할지, 군대는 어떻게 할지, 걱정만 했다. 군대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니 그 압박감은 하루하루 견디기 쉽지 않았지만, 군대 다녀오면 서른이 되는 내 상황은 생각보다 고민의 선택지를 줄여주었고, 막 출범하는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절실함이 통했는지, 운이 좋았는지 알 수 없지만 준비했던 법학전문대학원을 무난히 입학할 수 있었고, 인생의 숙제였던 군복무도 공익법무관 복무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
대단한 계기로 변호사가 된 게 아니라 실망 하실 수도 있지만, 내 나름대로는 절실함과 고민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다보니, 감사하게도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게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내 이야기이다.

-의뢰인을 대하는 마음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이청준이고, 제일 좋아하는 책은 <당신들의 천국>이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인데, 그때의 충격과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이 책을 읽다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신들의 천국>을 관통하는 주제는 왜 ‘우 리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이냐는 문제였다. 너무 어렵게 설명 드리는 것 같은데 한번은 친구와 서울을 다녀오다가 노숙자를 보고 언쟁을 한 적이 있었다.
예전에 내가 학부를 다닐 때, 지방으로 가는 기차는 모두 서울역에서 출발했다. 지방에 살던 나는 서울을 친구와 다녀가다가 야간열차를 타게 되었는데, 심야시간에 서울역 앞은 노숙자가 무척 많았다. 내 친구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너무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들이라며 우리나라가 아직도 가난하다는 말을 내게 했다.
하지만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노숙자들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고, 노숙자들이 우리의 시각에서는 불행하고 불쌍해 보일 수 있지만, 그들 나름의 세상과 세계관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획일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서의 문제의식도 마찬가지인데, 과연 우리가 말하는 행복과 윤택함이 모두에게 천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당신들의 천국>은 결국 획일적인 행복과 윤택함의 강요가 누군가에는 폭력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그런 표준적인 천국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에 불과함을 전달하고자 한다.
나는 의뢰인들을 대할 때에도 이런 시각에서 접근한다. 법률전문가의 시각이 아니라, 정말 그 사람의 입장이 되고자 노력한다.
변호사인 나는 당연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도 의뢰인 입장에서는 생소하고 낯설며 당황스러울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하게 현재 의뢰인의 상황을 설명하고, 의뢰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수임의 문제라거나 착수금과 성공보수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의뢰인을 만나고 있다. 의뢰인이 직접 고민하고 선택하는 게 사건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법조인으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형사 사건 중에서 횡령죄에 대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을 변호한 적이 있었다.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었는데, 외부로 드러나 보이는 정황은 횡령죄의 구성 요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지만, 과연 이게 꼭 처벌을 해야 할 만한 사건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횡령죄의 구성 요건을 모두 충족했지만, 피고인이 그 돈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도 아니고 또한 유용액도 소액이었으며, 피고인이 개인 통장을 시골 마을의 비용 통장과 혼용하여 사용하면서 벌어진 일인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를 제기한 마을 주민들이 피고인을 횡령죄로 고소하고 거세게 항의했지만, 수사 자료를 살펴보다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자료를 다소 발견했고, 10년간의 회계자료를 모두 제출받아 이를 검토하여 자금 흐름을 정리해낸 뒤 이를 근거로 재판부에 변론을 진행하여 피고인을 집행유예 정도로 처벌 받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방대한 자료를 피고인에게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모두 정리하여 피고인의 방어권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 많이 맡고 있는 전문분야는 어떻게 되나 건설소송과 재개발·재건축 사건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전문분야에 대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 부탁한다
▶아파트나 주택, 그리고 일반 건물들처럼 인간은 항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생활 하게 된다. 그리고 건물은 완공이라는 탄생부터 철거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삶처럼 그 순환을 반복한다. 건설소송은 건축된 건축물이 설계도면과 같이 시공되었는지부터 건축물이 그 성능을 제대로 구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관련 법령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다투는 소송이다.
재개발·재건축 소송은 도시정비사업 진행과 관련하여 파생되는 모든 법률관계를 종합적으로 대응하는 분야이다. 다수의 당사자들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업진행 과정에서 성공적인 사업진행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의 고충은 무엇인가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법률적인 조언뿐만 아니라,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의견까지도 제시해야 하는 직업군이다. 단순히 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전문가로서 의뢰인에게 최상의 결과를 낼 수 있는 변호사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다보니, 항상 긴장하고 사건에서 놓치는 법률적 쟁점이나 정보를 확인해야 해서 큰 사건이건 작은 사건이건 업무 강도가 생각보다 높다.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일이라는 게 가장 큰 고충이다.

-보람은 무엇인가
▶변호사라는 직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래서 다양한 곳에서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물론 생계를 위해서 일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내 능력을 남에게 나눌 기회가 있고 사회에서 나의 쓰임이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가장 처음 맡은 사건은
▶공익법무관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임금사건을 주로 맡았다. 노동 사건이어서 당사자들의 감정이 상당히 나빠져 있는 상태에서 사건을 진행하다보니, 의뢰인을 응대하는게 참 어려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의 경험으로 지금도 많은 상담과 미팅을 잘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사라질 직업중 하나가 변호사라는데 사건 처리가 기계적으로, 획일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에서는 인공지능이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판단자의 가치 판단이 들어가야 하는 사건들에 있어서는 인간의 고뇌가 녹아져야만이 누구든 납득할 만한 결과가 도출되는 법률문제의 특성상 인공지능이 모든 부분을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들의 재능기부 참여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변호사들이 어느 직업군보다 사회와 호흡하고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하라고 우리 사회가 변호사에게 자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변호사라는 자격을 하늘에서 준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시민 들이 준 것이라면 재능기부는 변호사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사회적 약자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개념 이다. 그만큼 정의하기도 어려운 계층이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는 우리 사회가 미처 살펴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투명인간, 존재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으나 느껴지지 않는 분들이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한다.

-무료법률상담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무료법률상담은 국가에서 진행하는 법률상담 외에는 거의 수임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수익 구조가 수반되지 않는 무료법률상담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고, 무료법률상담을 법조인들에게 무조건 강요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상담을 받고자 하는 사람 또는 도움을 받고자 하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 사이에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조절해 주는 단체가 있다면 더 내실 있는 무료상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료법률상담센터 모두의 변호사’ 는 어떻게 생각하나
▶‘무료법률상담센터 모두의 변호사’는 무료 법률상담뿐만 아니라 법률상담의 미래를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실제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법률상담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줄 수 있는 새로운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변호사가 된 이유는 공익법무관으로 복무하면서, 대한법률구조공단과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 사회에서의 투명인간 같은 노동자와 외국인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다 포용하지 못하고 관심 갖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내가 가진 조그마한 능력이나마 보태고 싶었다.

-모두의 변호사에게 바라는 점은
▶많은 변호사는 각자의 전문분야가 있다.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실력이 출중한 변호사 들이 쌓아온 능력을 조금씩만 나누어준다면, 모두의 변호사가 훨씬 더 많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모두의 변호사를 통한 재능기부가 나에게도 유익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료 법률상담이 우선이 아니고 양질의 법률상담과 법률적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서 선순환적인 구조를 조금 더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의 변호사의 향후 전망은 어떻게 예상하나
▶꾸준히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해나가고, 많은 변호사가 참여해준다면 ‘무료법률상담센터 모두의 변호사’가 향후 우리 법률시장의 새로운 법률상담 모델과 시장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 모두가 행복 하고 상생할 수 있는 상담센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면
우리 사회가 그동안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고, 작은 목소리를 무시해왔던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는 사회적 약자들이 더 이상 투명인간 취급을 받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장 대단한 관심이나 변화가 생기기는 어렵겠지만 우리가 조금씩 노력해서 앞으로는 누구도 소외 받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회가 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결국 개개인들의 작은 노력과 관심이 모여서 사회가 변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 사회가 확립되어 사회적 약자 들이 더 이상 투명인간이 아니고 무관심의 대상에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인식될 수 있는 그날까지 모두 힘냈으면 좋겠다.



김용범 변호사
변호사시험 제2회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現 법무법인 로원 변호사
前 대한법률구조공단 공익법무관
前 법무부 서울출입국·외국인청 국적난민과 송무팀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carriepy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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