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산 자들이 다들 모여 왁자지껄 신이 난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평생 웃음이 없던 그가 영정 속에서 웃고 있다

첫눈이, 아 - 첫눈이

조등을 적시며 밤새 내릴 기세다

이 세상의 눈은 모두 첫눈인 듯 반갑고

이 세상의 사랑은 모두 첫사랑인 듯 그립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평생 울고 싶었던 그는 왜 죽자고 웃고 있는가

그럼 울어? 첫눈인데?

우아한 용서는 첫눈이 다 한다

정말 이 세상의 죽음은 모두 첫 죽음인데

초상집의 소주는 왜 이리 늘 달디단가

산 자들은 저마다 살 궁리에 바빠 돌아가고

죽어 빈집을 나온 그는 노숙이 걱정이다

-강연호

며칠 전에 첫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첫눈치고는 꽤 많이 내렸지요. ‘첫’이라는 말은 설레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합니다. 첫눈이 그렇고, 첫돌, 첫사랑, 첫 키스, 첫 직장, 첫 기차, 첫 비행기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첫’에 대한 기억이 아름답기도 하고 특별하기도 할 겁니다. 아! 그런데 첫 죽음이 있군요.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습니다. 우리 인간은 일회성이지요.
첫눈 오는 날, 평소에 웃음이 없던 그가 죽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우울하게 살고 싶지도 않았을 겁니다. 평생 뜻대로 살지 못해 울고 싶었던 그는 영정사진에서는 왜 죽자고 웃고 있는 걸까 요? 그의 영정 아래, 산 자들이 다들 모여 왁자지껄 신이 나서 소주를 마십니다. 첫눈은 조등을 적시며 밤새 내릴 기세입니다. 이 세상의 눈은 모두 첫눈인 듯 반갑고, 이 세상의 사랑은 모두 첫사랑인 듯 그리운데 그는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달디달게 소주를 마시던 산 자들은 저마다 살 궁리에 바빠 돌아가고 죽은 자의 빈집만 동그마니 남습니다. 나는 영정 속의 그에게 묻습니다. 왜 웃고 있니? 그가 대답합니다. 그럼 울어? 첫눈인데?
이 세상의 죽음은 모두 첫 죽음인데, 우아한 용서는 첫눈이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첫눈은 소복소복 쌓이는데 죽어 빈집을 나온 그는 어디로 갈까요? 우리는 뜻대로 살지는 못했어도 마음을 비우고 반가운 첫눈처럼 웃으면서 살아가길 빌어봅니다. 첫 죽음을 빈집이 아닌 충만한 집으로 만들면서,

박미산 교수  
서울디지털대학 초빙교수  
시인/문학박사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