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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
특히 집권 8년 차를 맞이하여 신 권력층들의 호가호위 속에 부정부패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대대적인 군기잡기를 시도한 것이다. 주기적으로 숙청의 바람은 권력 상호 간의 견제를 통해 2인자 실세 권력의 출현을 방지하고 유일 수령 권력에 대한 기반을 다지는 연례적인 행사다. 올겨울 평양에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것은 단순히 시베리아 북서풍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평양 권부의 연말연시에 가장 중요한 과업은 항상 1월 1일 아침에 발표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 작성이다.
아마도 이 글을 쓴 시점에서는 초안 검토는 끝났을 것이고 글이 발간되었을 때에는 이미 신년사가 발표되었을 것이다. 12월 하순은 김 위원장이 초고 문장을 보고 최종 추가 지시를 하는 단계일 것이다. 원고지 수십 매 분량의 신년사는 총괄적인 지난해 정세 평가와 함께 신년도의 분야별 구상을 담고 있다. 새해 북한의 정책 방향을 추론해본다는 차원에서 매년 연초에 꼼꼼히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매년 대동소이하다. 공식적인 신년사보다는 김 위원장의 복심과 복안을 추정해보는 것이 역설적으로 신년 한반도 정세 파악에 보다 유일할 것 같아 감히 문장으로 적어본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8년은 일단 외교적으로 절반의 성공이 다. 일년 동안에 최초의 북미정상회담, 각각 3차례의 시진핑-김정은 북중정상회담 및 문재인-김정은 남북정상회담 등은 선대 지도자들도 하내지 못한 초유의 외교적 성과였다. 싱가포르 6·12 정상회담은 제재 해제 등 실속은 없었지만 홍보 효과만큼은 대박이었다. 남한의 홍보 대행사에서는 1조 원의 PR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이니 성공이다. 이로 인해 푸틴, 아베 총리 등이 나와의 회담을 제의하는 등 세계 정상급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섰으니 남는 장사 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보다도 더 결정적인 사건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의 3차례의 정상회담이었다. 지난 2012년 집권 이래 지속적으로 방중을 모색했으나 묵묵부답이었던 베이징이 미중 갈등 심화로 평양과 손을 잡기로 한 것은 북한 외교의 쾌거라고 평가하고 싶다.
미국과의 협상 이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니 항상 불안정 하지만 북·중 관계는 다르다. 북한 외교의 기본은 평양과 베이징 간의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다. 내가 미국과 대등하게 밀당을 할 수 있는 것도 시주석의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 김정일 등 선대 지도자들도 등극한 후에 베이징에서 책봉 스타일의 환대를 받고 나서야 위상이 올라갔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중국 방문은 나에게 미국과의 회담 못지 앉게 중요한 과제였다. 시 주석과의 만남으로 평양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상이 공고해진 느낌이라 잠자리가 한결 편안해 졌다. 황금돼지띠 2월경으로 예상되는 2차 북미정상회담도 기존 입장에서 큰 변화는 없다. 일단 장소는 유럽보다는 동남아가 편리하다. 특히 외무성에 우리와 관계가 원만한 베트남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추진하라고 지시하였다.
워싱턴에서 신고, 사찰, 검증을 주장하겠지만 지난 92년의 경험에서 볼 때 절대 수용불가다. 우리가 안을 내본들 미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서 자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와의 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언론에 흘리고 있는데 제재와 압박을 계속한다면 단계적으로 군사적 도발의 카드를 꺼낼 시점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변칙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 즈음에 트위터를 통해 스티븐 비건 특사의 보고를 받는 장면을 올린 것을 보니 나와 팽팽한 밀당을 시도하는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서 “내 북한 팀으로부터 크리스마스이브 보고가 있었다. 진전은 이뤄지고 있다(Progress being made). 위원장과의 다음 정상회담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관심과 관심을 주기적으로 표명하면서 나를 통째로 뒤흔드는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을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민간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미국 국민들의 북한 여행 금지 조치를 재검토하겠다는 깜작 대화카드를 꺼냈었다.
비건 대표의 발언은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단체들의 활동 제한을 완화해주겠다는 의미로 북한 당국을 향해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인도적 지원 차원에서 평양을 방문하던 미국인들이 오지 않으니 솔직히 말해 불편한 점이 많다는 보고가 올라온다. 물론 비건 대표의 발언이 미 정부의 대북 제재에 대한 전격적인 태도 변화를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8월 임명된 비건 대표는 지금까지 북한과 협상한 적도 카운터 파트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만나지도 못했다. 지난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고위급 회담이 지지부진해지면서 평양이 실무협상을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간 선거 이후 내년도에 2차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예정되었지만 현재로선 북미 간의 협상 동력이 약화된 상태다. 미국은 인도적 지원카드를 통해서 비핵화 교착 장기화에 돌파구 마련을 시도한 것이다.
제재 유지의 큰 틀을 훼손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의 체면을 살리면서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는 인센티브 카드로 판단된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남측에서 주장하는데 여행금지 완화 카드로 평양이 단번에 협상에 적극성을 보이기는 어렵다. 제재 완화에 대한 워싱턴의 명확한 사전지침이 없이 섣부르게 대화를 지속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지난해 11월 신의주 무기시험장에서 현지 지도하는 사진을 내보였으니 예고편은 방영한 셈이다.
하여튼 금년 상반기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생각이다. 하지만 제재와 압박이 지속되는 것을 언제까지나 두고 볼 수는 없다. 평양의 금고가 비어간다는 내부의 보고에 대해 심각한 플랜 B 대책이 필요하다. 청와대에서 나의 방남을 계속 요청하겠지만 서울에서 얻어낼 것이 많지 않아 고민이다. 종전선언도 미국과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냉면 발언으로 남측 대기업을 압박해도 경협은 어렵다. 서울 방문으로 내가 신의 경지에서 인간의 위상으로 격하되는 심리적 손해를 감내하기에는 시점이 부적합하다. 워싱턴을 압박하여 제재를 해제한 후에도 서울 방문은 늦지 않다. 남남갈등이 심한 서울 방문은 대차대조 표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일단은 미국 국내정치가 복잡하게 전개되는 트럼프 대통령을 요리조리 설득하여 제제와 압박을 해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겠다.
연말에 남측과는 경의선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을 했으나 실제 자재를 지원받아 북한 철도 현대화를 거행하는 것은 제재 때문에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니 남측의 결단을 기대하는 수밖에는 없다. 하여튼 지난해와 같이 북한은 새해 황금돼지띠에도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있다. 선대 지도자들도 연말연시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였는지 궁금하다. 요즘 남측 최고지도자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을 보니 남의 일 같지 않다. 황금돼지띠에도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느라 불철주야 움직여야 할 것 같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