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판 대표 “제2의 벤처붐, 시장이 주도해야”

‘관’주도의 생각 벗어나 벤처기업을 위한 자본시장 필요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윤희 기자입력 : 2019.04.13 09:30
▲김진호 대표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나는 쌀집 아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단골이 몇 명 있어야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훤히 알고 있었다. 200명도 안 되는 충성도 높은 단골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온라인상에서도 단골을 만들고, 커뮤니티를 강화하면 다른 가치가 생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벤처 1세대 골드뱅크의 김진호 대표가 사업을 시작할 때 가졌던 생각이다. 이 확신과 열정이 1세대 벤처를 붐으로 끌어올렸다. 버블이란 평가와 함께 1세대는 퇴장했지만 그들의 실패를 밑거름으로 토양은 한층 단단해졌다. 그곳에서 벤처 2세대들이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김 대표는 실패를 교훈 삼아 벤처계의 신인을 발굴하고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빌려주고 때론 식사도 제공한다. 한창때 기성세대가 터전을 잘 못 닦아놨다고 투덜대던 생각을 하면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지금은 괜스레 후배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들을 육성하고 키우는 건 바로 김 대표의 사명이다.
정부 역시 2세대 벤처 붐을 일으키고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금 김 대표 같은 경험자의 조언이 가장 필요한 때다. 1세대 벤처인 김진호 대표를 찾아 그가 생각하는 벤처에 대한 단상을 들었다.

-벤처 1세대로 이름을 날리셨다. 지금은 어떤 일은 하고 있나
▶여의도에서 ‘지리산’이란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다. 또 ‘판’이라는 법인 이름으로 뜻이 맞는 분들과 모여,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함께 고민하고 성장을 도모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매달 한 번씩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달에는 20년 전 코스닥 붐 당시 경제수석이었던 김태동 교수를 초청했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여의도 고깃집에서 스타트업 대표들과 모여 삼겹살 먹는 행사를 6개월째 하고 있다. 새롭게 열리는 시장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새롭게 만나는 벤처기업인과 만나 기업 모델과 성장 방안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있다.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집권한 김대중 정부는 벤처 스타트업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의 환경과 지금을 비교해본다면
▶놀랍도록 유사하다. 요즘은 입만 열면 ‘20년 만에 온 기회’라고 기업인들에게 이야기한다.당시에도 대기업이 아닌 새로운 경제 주체의 성장이 꼭 필요한 시점이었고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격려와 지원이 있었다. 코스닥 시장에 자금이 모이고 벤처 열풍이 일었다. 골드뱅크도 당시 적자가 26억이고 매출이 10억인 회사였지만 인터넷 유저의 대부분을 확보했던 힘으로 세계 최초로 인터넷 공모를 성공시키면서 코스닥에 상장했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 과분할 만큼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버블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지난 20년을 이끈 새로운 기업이 등장하고 육성됐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 동안의 정책은 기존 대기업의 역량을 강화해서 경제를 이끌어가는 정책이었고, 자금 시장 역시 대기업 중심으로 편성되어 새로운 기업이 도약할 기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벤처기업의 지원 정책이 기업 성장이라는 측면에 맞추기보다 몇 개의 벤처 기업이 창업해서 몇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느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후 성장에는 아무 대안이 없었다. 앞으로는 벤처 기업의 중요성을 알고 이런 부분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 당시에 어떤 계기로 벤처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그때 나는 정치 지망생이었다. 강동구 구의원에 도전했다가 근소한 차로 낙선하고는 구청에서 7급 공무원 생활을 했다.
95년에는 민선 1기 김충환 강동구청장 비서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내가 주로 한 일은 구청장의 지역 모임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지역 모임도 있고, 여러 단체와 만나는 모임도 있었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더라. 그때 나우누리에서 PC통신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만남을 해보자는 생각을 해냈다. 구청장이 들어오는 채팅방을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모였다.
비용도 들지 않고 직접 소통하는 또 다른 만남의 공간이었다. 이게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확 꽂혔다. 그때 미국에서 인터넷이라는 게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익스플로러와 넷스케이프 같은 인터넷 브라우저가 등장했다. 뭔가 온라인상에 큰 변화를 가지고 올 것이라는 흐름을 감지했다. 모두에게 오픈되는 망은 어떨까를 상상하면서 세상이 새롭게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청에서 일하면서 강동구라는 도시에 투입되는 예산, 공무원,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개념이 있었는데, 그런 도시가 통째로 인터넷 안에 형성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가상사회와 전자상거래라는 책이 나왔는데 번역서라 내용이 어려웠지만 성경과 같은 책이 되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시장, 정치, 등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려졌다. 그게 시작이다.
▲김진호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런 발상으로 골드뱅크를 설립했나
▶송파강동시민 모임의 시삽과 부시삽이었던 나, 그리고 관계자 3명이 함께 만든 게 골드뱅크의 시작이다. 1997년 4월 7일에 법인을 설립했다. 페이지를 하나만 열어서 ‘혁명은 시작됐다’라는 문구를 내걸고 사람을 모았다. 아직 페이지도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패기 있게 미리 가입하면 5천 포인트를 준다고 했다. 서비스 개시 전 1만 명의 회원이 생겼다. 당시 인터넷 인구 전원에 해당하는 수였다.
그게 계속 화재가 되면서 서비스 개시 전에 연일 신문에 났다. 은행에서 일억을 빌려 시작했다. 지식이 부족해 1억으로 1년은 버틸 것으로 봤는데 서버가 1억이 넘더라.

-그 많던 벤처 1세대들이 지금 시장에서 거의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미숙해서다. 당시 우리는 사업에 대한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십대 후반의 열정 넘치는 젊은이였다. 경영학도 실전에서 익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나눌 장도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열정만이 넘쳤다.
나뿐만 아니라 거의 비슷했다. 그 열정이 미숙함을 채워주기엔 부족했다. 열정은 넘쳤지만 그 모든 압력을 넘어서기엔 준비가 부족했다고 평하고 싶다. 벤처 1세대 사람들이 크게 실수를 해서 지금 사라진 건 아니다. 사명감도 컸고 열심히 했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다. 그걸 극복 못한 케이스가 많다. 안 만나야 할 사람도 만나고….
가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지금의 내가 27살의 김진호 옆에 있으면 어떨까… 아마 구글이 우리나라에서 나왔겠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대형 전용 펀드를 조성, 향후 4년간 12조원 규모의 투자를 창출해 스케일업을 지원하고 2020년까지 유니콘 기업을 20개로 늘리겠다’고 강조했는데 어떻게 보시나
▶투자를 확대하고 스케일업에 집중하겠다고 하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혁신 성장과 벤처 지원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바가 없다.
개인적으론 이왕 이야기할 거 유니콘 기업을 100개 정도 하겠다고 조금 더 기를 살려주셨으면 어떨까 싶긴 했다. 방향 자체는 타당하다고 보고 대통령의 뜻을 이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문재인 대통령이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앞으로 디테일이 관건이다.

-예산 지원 외에 정부에서 어떤 정책을 내놓아야 막 창업한 기업이 스케일업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
▶답은 언제나 시장이다. 문제는 여전히 관 주도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다. 아무리 큰 펀드를 만들어도 스케일업이 쉽게 되진 않는다. 과거 1차 벤처 붐 때는 펀드도 없었다. 벤처기업에 투자했던 용기가 시장에서 보상받기 시작하자 투자자는 재투자하기 시작했고 그게 벤처 붐으로 이어졌다.
벤처기업을 위한 자본 시장이 있어야 한다. 코스닥은 이미 모험 시장으로서 기능을 잃었다. 코넥스를 성장시켜 코스닥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매출과 성장의 불일치를 어떻게 메울 것이냐가 관건인데 이것은 재정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미래 가치를 주목하는 대중의 모험 자본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골드뱅크의 가장 커다란 공은 인터넷 공모의 성공에 있다고 확신한다. 세계 최초의 인터넷 공모 성공이 다수의 개인 투자자가 형성되고 이 다수의 투자자가 코스닥 붐에 힘입어 수익을 창출하고 또 다른 새로운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기업이 지금의 ‘넥슨’이고 ‘엔씨소프트’다. 이런 자본 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창업에도 환경영향평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어떤 의도인가
▶지금 기업이 왜 힘든지 3년 뒤 생존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왜 떨어지는지, 자본 시장 참여자는 다른 나라와 뭐가 다른지, 이런 것들을 다양하게 고민해서 정책을 세워야 한다. 미국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식은 맞지 않는다. 미국의 벤처 환경과 한국의 벤처 환경, 일본의 벤처 환경이 모두 다르다. 우리 현실에 맞고 업종에도 맞는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
지금의 지원 정책은 외국의 좋은 정책을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벤처기업 지원 정책은 숫자 늘리기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성장과 상관없이 정부의 지원이 쏟아지는 3년을 버티다가 그 지원이 끊어지는 순간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기업이 되는 거다. 그렇게 온실에서 키웠다면 어떻게 온실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광고를 보면 돈을 주는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 벤처를 일궈낸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시대를 앞선 아이디가 돋보였다. 요즘 시장에서는 어떤 모델이 성공 벤처를 일궈낼 수 있다고 보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무얼까? 어떤 것이 비합리적인가를 생각해보면 보인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만들어진 시장에서 관계 자본을 활용해 중간에 감추어진 비용을 줄이거나 없애 가치를 폭발시키는 일련의 과정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퀀텀점프(물리학 용어로, 양자세계에서 양자가 어떤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갈 때 계단의 차이만큼 뛰어오르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를 할 수 있는 새로운 기업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가치가 없는 것을 가치 있게 만들 때, 흐르지 않는 것을 흐르게 할 때, 미적인 가치를 추가했을 때, 이 세 가지를 핵심으로 본다.

-이제 막 시작하는 벤처기업에 조언을 해준다면
▶우선 사과부터 해야겠다. 벤처 1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먹고 창업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할 수 잇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그래도 한마디 하자면 ‘도전해라’.
스타트업을 하는 기업가는 정부의 지원을 구걸받는 거라고 생각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해야 한다. 대신 시장에서 직접 부딪히고 관심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 시장 속에 기여한다는 자세로 자본 시장과 판매 시장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용기를 가지고 시장에 부딪히는 것이 기업가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이 있다면
▶이 정도의 경험이면 도가 트일 법도 한데…. 다만 성공 경험을 통해서 통찰을 기르고 그 실패 경험을 통해 더 단단해지고 너그러워졌다. 견딜 수만 있다면 실패는 신이 준 선물이다. 큰 실패를 통해 얻은 것이 도리어 많다. 지천명이 넘었는데 천명은 모르겠고 온갖 것이 관심이며 유혹 거리다. 지금 고깃집 운영하는 것만도 매일매일 성공과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꼭 이루고자 하는 일은
▶나는 빚쟁이다. 실제로 지금도 갚아야 할 것이 많다. 사회에도 많은 기회를 준 데 대해 마음의 빚이 있다. 그 빚을 갚고자 한다. 나이 27살에 창업했을 때 사회에 대해 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욕을 먹어야 하는 기성세대다.
최선을 다해 팟캐스트도 하고 또 스타트업 기업가들 밥도 사고 술도 사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조언하고 같이 뒹굴면서 고민을 같이 나누고자 한다. 이런 활동이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자 말에 나이 50이 넘으면 다른 사람의 꿈을 도우라 했다. 젊은이들의 꿈을 돕는 사람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

PROFILE
김진호 대표
●서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강동 구청장 비서
●골드뱅크 대표
●일본 엠스타
●지리산 예술가 경영
●판 대표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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