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와 제재완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남성욱의 한반도 워치

고려대학교 남성욱 행정대학원장 입력 : 2019.04.02 10:31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양측 간 진실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의 범위 여부였다. 비핵화에 대해 북한은 영변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데 반해 미국은 영변은 물론 우라늄 농축 시설이 가동되는 강선 등 나머지 시설 등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비핵화와 제재완화의 범위를 둘러싼 미국의 셈법이 뚱딴지 같으며 참으로 이상한 궤변이라며 미국을 비난했다. 특히 해제 범위를 둘러싸고 북·미 양측 간에 ‘네 탓 공방’이 치열하다. 결렬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사안이다. 

양측이 회담이 틀어진 당일 심야에 반박과 재반박의 격렬한 대언론 심리전을 전개했고 평양과 워싱턴에 돌아와서 목소리를 높인 주제도 북한이 요구한 대북제재 해제의 범위였다. ‘어느 쪽에 협상 결렬의 책임이 있느냐’는 기자 질문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은 대북제재 해제를 원했고, 우리는 북한 핵시설의 큰 부분에 대한 폐기를 원했다. 우리가 대북제재를 해제해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우리는 실현 가능한 제안을 했다. 모든 제재를 없애달라고 하지 않았고, 부분적 제재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협상 결렬 뒤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모든 제재의 해제를 요구했다(Basically, they wanted the sanctions lifted in their entirety)”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리 외무상은 이렇게 밝혔다. “미국이 유엔 제재의 일부, 즉 민수경제와 특히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의 제재를 해제하면, 우리는 영변지구의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포함한 모든 핵물질 생산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하에 두 나라 기술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영구적으로 완전히 폐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20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다.”

미국 국무부 고위당국자는 3월 1일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로 요구한 것은 무기에 대한 제재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제재에 대한 해제였다며 북한의 ‘일부 해제’ 요구 주장을 ‘말장난(I think they’re parsing words)’이라고 규정하는 등 정면 반박에 나섰다. 제재의 범위를 둘러싼 ‘전면’과 ‘부분’의 공방이 말장난인지 속사정을 파악해보자.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는 크게 유엔 안보리가 채택하는 제재와 미국 행정부가 미국법에 근거하여 발동하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미국의 대북제재는 ‘의회 입법을 통한 법령 제정’과 관련 법령에 의해 위임받은 권한에 따라 대통령이 필요한 조치를 내리는 ‘행정명령(utive order)’의 두 종류가 있다. 

먼저, 미국 대북제재의 역사와 효과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북제재는 6.25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남침 직후 미국으로부터 적성국으로 지정돼 재무부 및 상무부로부터 금융 및 무역거래가 중지됐다. 1987년 11월 KAL기 폭파사건으로 이듬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20년 동안 각종 제재를 받았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김정남 암살의 배후 등의 이유로 9년 만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이후 미국 재무부·상무부 등 행정부서에서 연속적으로 대북제재 관련 행정조치를 발동해 경제봉쇄(an economic blockade) 수준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역대 미국 행정부의 대북제재는 470여 건이다. 이 중 절반이 넘는 240건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뤄졌다. 최고 수준의 대북제재가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게 했다는 트럼프의 주장이 허구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모든 제재는 상호연계돼 촘촘한 저인망 그물을 쳐놓은 격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재 해제를 요청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실태를 파악해보자. 안보리는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후 지금까지 모두 11건의 대북제재를 결의했다. 이 중 6건이 2016~2017년 결의됐고 무기 거래와 관련된 특정 기관과 개인을 제재한 2017년 6월 제재를 뺀 나머지가 리용호가 심야 기자회견에서 밝힌 ‘5건의 유엔 제재’로 보인다. 주목할 건 2016년을 전후로 유엔 제재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점이다. 2016년 이전 제재는 대부분 미사일 부품 등 군수용품 및 사치품을 제한하는 부분적 비경제제재였다. 하지만 북핵·미사일 실험이 국제 이슈가 된 2016년 이후 제재는 북한의 ‘돈줄’을 죄는 경제제재였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은 2006년 7월 채택된 1695호가 원조다. 북한 핵과 미사일,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금지와 관련 자금 동결, 기술이전 금지 등을 권고했다. 그해 10월 발표된 결의안 1718호에선 대북제재 이행 및 제재위원회 구성을 결정했다. 북한을 향해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라고 촉구하는 권고 수준이었다.

결의안이 북한 경제의 목줄을 확실하게 조이는 계기는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이었다. 목표물이 북한의 궁정경제는 물론 민수경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안보리는 2016년 3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로켓발사에 대응한 새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공식 채택했다. 북한이 1월 6일 4차 핵실험을 한 지 57일 만이다. 기존 결의들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제재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2270호는 주요 광물 수출 및 선박·항공기에 대한 제재, 대외 금융 억제 등 북한 경제에 타격을 미치는 조치를 담았다. 

대다수 조항이 ‘권고(call upon)’를 넘어 ‘의무화(decide 또는 shall)’됐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20여 년 만의 가장 강력한 제재”라고 평가했다. 그해 9월 5차 핵실험에 따른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는 북한의 주요 수출품인 석탄 수출을 원천 봉쇄했다. 석탄 수출의 상한제(cap)를 도입해 북한 외화 수입에 연간 7억 달러 이상의 타격을 주고 있고, 북한 전체 수출액의 20% 감소 효과가 있다. 만수대창작사에서 아프리카와 일부 동남아 국가에서 주문하는 동상 조형물(statue)의 판매 금지로 1억 달러의 외화 수입이 차단됐다. 재외공관이 개설할 수 있는 금융계좌도 1개로 제한했다. ‘민생 목적(livelihood)은 예외’란 규정도 없앴다.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북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을 확실히 간파했다. 10년 동안 고문변호사였던 마이크 코헨의 청문회로 곤욕을 치른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정치를 돌파하기 위해 배드 딜(bad deal)을 하기란 쉽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나온 이유는 제재 해제 때문이라는 판단을 굳혔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진짜 비핵화를 수행하려면 제재 이외에는 수단이 없다는 인식은 이제 워싱턴의 조야를 막론하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내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북한 문제를 활용하려는 시도를 북한 외무성이 역이용하려는 평양의 전략 역시 수정돼야 한다. 미국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류(main stream)도 있지만 다른 버전의 주류도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제대로 인식했다면 하노이 회담의 값진 성과가 될 것이다. 

앞으로 미국 지도자의 의사 결정 구조를 오판해 김정은에게 잘못된 보고서를 제출하는 참모진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일부에서 미국이 제재 완화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땐 즉각 제재를 재개하는 ‘스냅백(snapback)’ 조치로 다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지만 정상 간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빅딜을 시도했는데도 결렬이 된 마당에 설득력이 부족한 제안이다. 특히 전체 북한 핵의 3분의 1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만 가지고 대북제재를 완화하려는 북한의 협상 전략은 강선 등 영변 이외 지역에 대한 폐기 계획을 포함해 재편돼야 한다. 김정은은 왕복 130시간의 기차 여행 후 평양으로 귀환한 뒤 노동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서 자력갱생의 경제 메시지를 발표했다. 노동신문에서 뜻밖의 노딜(no deal) 하노이 협상 결과를 밝힌 만큼 중장기전으로 버티기 전략을 주문한 것이다.

향후 1차 싱가포르 회담 이후 8개월 만에 2차회담이 개최됐지만 이제 상대의 카드를 모두 확인한 만큼 1년 안에 빅딜 협상을 예견하는 것은 어렵다. 볼턴 백악관 안보 보좌관은 하노이에서 귀국한 직후인 3월 3일부터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을 연일 강조했다. 미국이 금년 안에 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이 적다는 신호다. 과거 베트남과 이란의 제재 집행에서 봤듯이 미국은 장기적인 제재를 끌고 가는 데 이골이 나있다. 일본과 달리 사전 정보 부족으로 2차 하노이 정상회담이 종전선언과 영변핵 폐기가 교환되는 스몰딜을 확신하였던 정부는 패닉 상태가 되었다. 중재자를 자처하던 청와대 입장에서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자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이라는 공감대가 없는 용어로 미국의 입장 전환을 시도하자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허한 대북 스탠스는 시의성이 결여되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증거다.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이 변수였다면 2차 하노이 회담은 김정은 위원장의 오산이 변수였다. 미국 국내정치의 약점을 파고들 경우 트럼프 대통령을 배드 딜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평양 대미 협상팀들의 전술은 결렬로 이어졌다. 정부는 회담 결렬이후 양측의 협상 내용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업무 순서다. 또한 양측의 간극이 어느 정도이고 향후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올해 36세인 김정은은 문재인, 시진핑 및 트럼프 등 정상과의 회담 과정에서 동북아 국제정치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참모진들의 보고서대로 회담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깨달은 만큼 전면적 제재를 감내할지 아니면 전면적 비핵화를 결심할 것인지, 면밀한 고뇌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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